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1화



하지만 베니티아 왕국 놈들은 지금도 아군 측 병사들과 기사들을 향해 욕설을 뱉고 있었다. 이점은 바로, 베니티아 왕국 측에서 휴전을 맺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안 되겠습니다. 제가 나서지요.”
“부사령관이? 아니 되오! 저들은 필시 왕자인 부사령관을 해코지 할 것이 분명하오!”
“아닙니다. 이미 우리 측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중에 아무리 강한 기사가 나서서 베니티아 왕국의 모라이트를 잡는다고 해도, 우리 측 사기는 그대로 일 것입니다. 차라리 왕자인 내가 나서서 저들 중 한 명을 잡는다면, 금세 사기가 북돋아질 테지요.”
피리오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모두 맞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좋소…… 하지만 부디 조심하길 바라외다.”
피리오가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전사대전을 보고 있던 베니티아 측 지휘관들은 피리오가 일어서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사전에 계획된 일임이 분명하다.
피리오가 원형 링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에도 베니티아 왕국은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우우우우! 부사령관이 나서다니, 역시 두려워서 안 나오는 것인가? 레노 왕국엔 기사가 없구나. 하하하!”
“하하하하! 너희 그거 모르느냐? 저자는 부사령관이기도 하지만, 라시온 사령관의 밤 시중을 드는 기생오라비다!”
“내 듣기로, 저자는 왕자라던데?”
“그렇지! 그러니까 라시온에게 엉덩이를 대 주고 부사령관이 된 게지!”
“하하하하하!”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 피리오의 얼굴은 빨개질 대로 빨개졌다. 특히, 사령관에게 엉덩이를 대 주고 부사령관이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더더욱.
아무튼 원형 링에 올라서자 한 기사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갑소. 피리오 폰 레노라고 하오.”
피리오의 정중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중년의 기사는 흥! 하고 비웃으며 말했다.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는가 보군. 기생오라비가 같은 네놈을 보내다니.”
피리오가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그의 생각을 간파하듯, 다른 곳엔 들리지 않게 말했기 때문이다.
“좋소, 그럼 덤비시오.”
필사의 각오를 했다는 듯 이미 피리오는 방패를 버리고 온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한편, 그들을 바라보는 21십인대원들의 어깨도 축 처져 있었다.
물론 현은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레노 왕국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기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진 못했지만 말이다.
“저런 육시랄 놈들! 감히 왕자 저하까지 나서게 하다니!”
옆에선 탄테가 치를 떨며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말이 없는 베단까지도 이를 갈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미친놈들! 전사대전을 빌미로 이런 계략을 꾸미다니! 게다가 전사대전에 나간 기사들을 욕보이게 만들다니 말이야…….”
베단의 말처럼 전사대전에 나간 기사들을 베니티아 왕국 측의 기사들은 대부분 욕을 했다. 기사가 맞느냐, 혹여 기사의 종자가 대신 나온 게 아니냐, 그것도 아니라면 기사 작위는 어떻게 땄냐는 모욕까지.
하지만 레노 왕국 측의 기사들은 패배한 자들이기에 말없이 등을 돌려야 했다.
그 부분에서는 현 또한 약간의 분노를 느끼긴 했다. 무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사가 어찌, 아니 무인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은 기사도를 숭상해야 하는 기사들이 저리도 나오는 것은 꼴불견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현은 베니티아 왕국의 기사들을 마음속이나마 무인이 아닌 쓰레기들이군이라고 생각하며 눈길을 피리오에게 돌렸다.

채앵!
“흐윽!”
현이 눈길을 돌린 피리오는 꽤나 심각한 상태였다. 이미 그의 갑옷은 너덜너덜 해진 상태였으며, 투구는 어디서 뒹굴다가 잃어버렸는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런 피리오를 베니티아 왕국 측의 기사는 즐기듯 공격하고 있었다.
“퉤!”
피리오가 입가에 뭉쳐진 피를 내뱉었다. 원형 링 안에는 피리오의 입에서 나온 피가 흥건히 적셔졌다.
“호오! 이러고도 왕자님이 맞으시오? 정말 부사령관 자리를 어떻게 따셨나, 그 엉덩이 좀 봐도 되겠소?”
기사의 능글맞은 말에 베니티아 왕국 측의 기사와 병사들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며 배를 부여잡고 웃고 있었다.
‘이리 모욕을 받다니…… 크흑!’
힐끔 뒤를 돌아보니 레노 왕국 측의 병사와 기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분노에 치를 떠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당한 모욕이라는 듯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나왔음에도 완전한 사기 회복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피리오가 입을 앙다물었다.
‘여기서 이기기만…… 이기기만 한다……면!’
눈앞에 있는 저 개 같은 중년 기사 놈만 잡는다면 어깨가 처져 있는 자신의 병사들은 당당히 어깨를 펴고 베니티아 왕국의 병사들을 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한쪽 무릎을 꿇고 검으로 몸을 지탱하던 피리오가 살며시 힘 주어 일어났다.
“아직…… 끝난 게 아니외다.”
피리오의 말이 가소롭다는 듯 중년의 기사는 금세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그대로 내려찍듯 피리오의 투구 없는 머리를 향해 검을 날렸다.
치잉!
피리오는 힘겹게 검을 들어 막긴 했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뛰어난 데다가 저자는 중년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도 않는지 헐떡거리지도 않고 있었기에 맞대고 있는 검이 점차 밀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때였다.
이번엔 중년 기사가 맞대고 있는 검을 그대로 두다가 한쪽 발로 피리오의 복부를 밀듯이 쳐 버렸다.
“크억!”
그에 볼썽사납게 나뒹굴어진 피리오가 방금 자신이 내뱉은 피에 얼굴을 적셨다.
“하하하! 그래, 그렇게 다시 네 입속으로 집어 넣거라.”
분노와 수치심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던, 피리오에게 중년 기사가 다가오더니 그의 머리를 발로 슬며시 짓밟았다.
그리고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끄듯 발을 좌우로 돌리는 게 아닌가?
꽤나 무게가 나가는지라, 피리오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신음성을 낸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더더욱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젠장! 저러고도 기사냐?”
“이런 씨발 놈의 새끼야, 차라리 날 밟아라!”
고개를 들지 못하던 레노 왕국 측의 병사들이 피리오가 짓밟히는 모습을 보자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에 질 수 없다는 듯, 중년 기사는 이번엔 쓰러져 있는 피리오의 복부를 가격했고, 베니티아 왕국의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히야아! 통쾌하다. 저런 병신 같은 새끼가 부사령관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것부터가 얼마나 엿 같았냐?”
“하하하! 네 말이 맞다. 레노 왕국엔 정말 기사가 없는 모양이다!”
“저기 얼굴이 빨개진 기생오라비 새끼 좀 봐라. 첫날밤 치르는 처녀의 그것과 같지 않냐?”
“크하하하하!”
베니티아 왕국의 병사들은 이렇듯 선을 넘는 모욕으로 피리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 레노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발을 구르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렇게 하는 것은 피리오에 대한 더욱더 큰 수치였다. 일대 일의 전사대전에서 누군가가 개입한다는 것은 남자로서, 혹은 기사로서 매우 큰 수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베니티아 왕국 측에서 이 여세를 몰아 돌격하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중년 기사는 아직까지도 피리오를 짓밟고 있었다.
퍼억!
중년 기사가 또다시 피리오의 복부를 가격했다.
“더러운 새끼, 그러고도 기사 작위를 하사받았냐? 역시 뒷배가 있었는가 보지? 이런 개새끼. 쓰읍, 퉤!”
중년 기사는 뭐가 더러운지, 피리오에게 더럽다는 말을 지껄였고, 급기야는 입안 가득 침을 양껏 모아 직접 피리오의 얼굴에 분사하기까지 이르렀다.
피리오가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쓰러져 있는 그의 얼굴을 레노 왕국의 병사들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무인이라는 자가 저리도 오만방자하다니…….’
현이었다.
현은 계속해서 저자가, 아니 베니티아 왕국의 기사들이 눈에 거슬렸다. 앞으로는 존댓말까지 써 가며 전사대전을 청했으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듯 온갖 욕설이 난무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세상에서는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이 저 모양이니, 검과 창을 쓰는 현의 얼굴이 괜스레 붉어졌다.
‘검을 모욕하는 새끼들이다.’
검을 모욕하는 새끼(?)!
현이 정말 싫어하는 자들이다. 일례로 예전에 아버지께 본국검법을 배우면서 체육관에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겉멋만 잔뜩 든 양아치 고등학생 몇 명이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검을 멋으로 들고 다녔고 자신이 들고 있는 검들을 모욕했다.
‘이건 내 손에 맞지 않아’ 혹은 ‘이까짓 걸 주다니, 쳇!’,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라는 둥, 이보다 심한 말로서도 검을 모욕했다.
검을 배우는 자는 자신의 검을 모욕해서는 아니 된다고 아버지께 배웠기에, 현은 그때 그 고등학생 몇을 대련을 빙자한 구타로 그만두게 만들어 버렸다.
그 새끼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중년 기사와 겹쳐 보였다.
‘검을 모욕하는 자는…….’
“이 개새끼야!”
옆에서 람스가 소리를 지른다. 참다 참다 못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에, 검을 모욕하는 자 어쩌고 저쩌고에 대한 상념에 잠겨 있던 현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람스와 눈이 마주치자 람스가 말했다.
“형님! 형님은 창과 검을 엄청 잘 쓰잖아요! 가서 복수해 주심 안 돼요? 보세요. 저 개자식이 지금 누구의 머리를 밟고 있는지!”
람스의 말에 잠시 당황하던 현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스니아였다.
“그래, 감히 사사로이는 부사령관이자, 크게는 왕자 저하를 모욕하는 저놈을 그대로 둘 순 없다. 보아하니 대련 경험은 많지만, 실전 경험은 없는 기사로 보인다. 락센을 꼬마 아이 손가락 비틀 듯 비튼 네 녀석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이번엔 지지 않겠다는 듯 필스가 나섰다.
“그래, 락센은 로터 너에게 아무런 제지도 못하고 당했잖아. 저 기사는 락센보다 약하다고! 락센은 그 험한 검투장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된 괴물이야. 하지만 넌 정말 간단하게 이겼다고. 그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삐적 마른, 체격도 그다지 크지 않는 네가 아스니아 대장도 못 이길 락센을 이겼으니 말이다.”
아스니아를 언급할 때 슬며시 아스니아를 쳐다보았지만, 아스니아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뭐, 그건 인정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번엔 탄테가 다가왔다.
“그래. 이걸 비교하는 건 정말 죽을죄지만, 자네가 말한 그 창녀와 레노 왕국 병사들의 처지가 비슷하다네. 그리고 앞에 있는 왕자 저하를 보게. 기절한 듯 보이지만 치욕스러워 일어나지 못하는 걸세. 자네가 나가서 복수 좀 해 주게. 부탁하네.”
현은 ‘어어’거렸지만, 우람한 팔뚝을 지닌 아스니아와 아크니아 형제에 의해 앞으로 내보내졌다.
원형 경기장을 둘러싼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현의 등장에 욕을 퍼붓던 레노 왕국의 병사들은 ‘이거 뭐야?’라는 표정으로 현을 쳐다봤고, 현은 ‘헤헤’ 하며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레이카살라에서 락센을 잡은 로터다! 내가 저자를 알아! 저자는 창으로 락센을 잡았어!”
어떤 병사가 외친 소리였다. 그 말을 듣고 잠시 레노 왕국 측이 요란해지더니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락센? 설마 검투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힐 줄이야…….”
“그렇다면 나올 만하잖아? 락센은 저기 있는 저 새끼보단 강할 거라고!”
병사들의 말에 선동질당했는지, 점점 레노 왕국 측의 병사들은 로터! 로터! 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무엄하다! 감히 한낱 평민 병사가 나와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피리오의 머리를 짓밟고 있던 중년 기사가 레노 왕국 측을 향해 소리쳤지만, 병사들은 대꾸 없이 ‘로터! 로터!’하며 현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로터! 로터! 로터! 로터! 로터!”
“쳐부숴라!!”
그리고 그때, 막사로 들어가려다 못 들어가 옆에 놔두었던 창을 아스니아가 던졌다.
“어어!”
투창하듯 날아오는 것이었던지라 안 받는다면 발이 닭꼬치마냥 꿰일 위기였기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걸 싸울 의지가 만땅 게이지로 채워졌다는 걸로 의식했나 보다.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주먹을 내지르며 환호를 했다.
그리고 그때, 레노 왕국 측의 기사 중 하나가 현에게 다가왔다.
“난 마안투스 기사단의 튜크 드 리센이라고 한다.”
뜻밖의 인물의 등장에 현이 좀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자, 튜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괜찮네. 나는 자네를 어찌할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네. 뒤쪽을 보게. 우리 레노 왕국 측의 기사들을…….”
튜크의 말에 현이 고개를 돌려보자 모두들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보았는가? 저자들은 저 기사에게 패배하여 치욕을 당할까, 나가지 않는 걸세.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거지. 상대를 이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패배하여 치욕을 당하면 어쩔까 하는……. 더군다나 기사라는 작위까지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요, 요점이……?”
“바로 말하겠네. 자네가 나서서 우리 기사들의 치욕을 갚아 주게.”
“치, 치욕을 갚으라뇨? 전 일개 병사입니다!”
현이 안 된다는 듯 애처로운 눈으로 소리쳤지만, 튜크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아니, 자네는 이곳에 나온 이상 병사가 아니네. 레노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일세. 부디 나가서 싸워 주게. 게다가 레이카살라에서의 무위라면 나도 보았네. 그 정도 실력이면 저자를 충분히 잡고도 남음이네. 걱정 말고 나가시게.”
이쯤 되자 현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기사님은 나가지 않으십니까?”
현의 반문에 기사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내뱉는 말은 달랐다.
“법에 정해졌기 때문일세. 전사대전은 지위가 높은 기사들은 나올 수가 없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입니까?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그만큼 지위가 높다는 뜻 아닙니까?”
현의 물음에 튜크가 고개를 젓는다.
“아닐세. 저자는 지위가 낮네. 하지만 이건 저들이 전사대전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임시적인 지위일 뿐이지, 저자의 실권은 기사단 내에서 꽤나 높을 걸세. 뭐…… 말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부디 레이카살라에서 보여 준 자네의 무용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뽐내 주시게나.”
탁탁!
튜크는 어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젠장…… 내가 어쩌다 이리 된 거냐.’
원망하는 눈빛으로 람스와 필스, 아스니아 등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휘파람을 불며 딴짓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링으로 올라가긴 해야 했다. 병사들 눈에만 띄었다면 몰라도 눈앞에 있는 튜크가 눈을 부릅뜨고 서 있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을 듯 보였다.
‘그래, 검에 대한 모욕을 한 자…… 구타로서 갚자.’
비장한 각오를 한 채 창을 꼬나들고 현이 링 위로 올라갔다.
레노 왕국 측의 기사들에 의해 피리오는 이미 링 아래에 임시로 마련된 돗자리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었다.
현이 링 위로 올라가자, 베니티아 왕국 측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정말 미친 거 아냐? 일개 병사를 올리다니…… 우리 측 기사를 모욕하는 거냐 뭐냐?! 그리고 창을 든 저 새끼를 봐 보라고! 징집병인지 심히 의심이 된다!”
“이봐, 이봐! 방심하지 말라고! 저자는 징집병이란 말야! 으하하하하!”
“캬하하하! 기사 나리! 저 병신같이 삐적 마르기만 한 자식을 금세 때려 눕혀 주십쇼오!”
중년 기사는 현에게 ‘기사인 내가 널 상대할 순 없다!’라고 외쳤지만, 베니티아 왕국 측에서의 응원을 한 몸에 받아서인지 지금은 별로 상관치 않는 것 같았다.
“그러라는군?”
중년 기사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하자 현의 얼굴이 똥 씹은 듯한 표정이 되어 갔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끝내 버리고 내려가겠수다.”
검에 대한 모욕을 한 자에겐 공손히 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인지 중년 기사에게 말하는 투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하하! 와이번, 드래곤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네 짝이로구나? 그래, 그래. 네깟 게 언제 기사와 대련을 해 보겠느냐? 내 친히 너와 대련을 해 주마. 하하하!”
중년 기사는 자신이 기사인 게 벼슬이라도 한 양 기사라는 단어만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꼬나 쥔 창대를 더욱 힘주어 잡는 현, 아니 지금만큼은 로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