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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앞서 말했듯 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요새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곳이라, 수십만 단위가 되는 상인, 주민 등을 성안으로 데려올 순 없었다.
‘약탈이 아무리 얼마 전 체결된 법에 위반된다 하더라도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아마 이긴다면 그들은 패자 측의 번화가 주민들을 약탈하고도 남을 것이다.’
약탈.
약탈은 지구든 이 세계든 있는 것이었다.
현이 알기로 이 세계에서는 지구보다 약탈이 더 성행한다고 한다.
같은 국가 안에 있는 국민들이라 하더라도, 이웃 간 영지전이 벌어진다면 해당 영지는 대부분 약탈을 당한다고 한다. 물론 생각 있는 영주들은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이 지금의 이익만을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흐음……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겠군.’
현이 결론을 내리며 고개를 퍼뜩 들자, 라시온과 피리오가 반색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
“한 가지? 그래, 무엇인가?”
라시온 후작의 물음에 현이 입가를 검지와 엄지로 쓰윽 닦고는 말했다.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는 것입니다.”
피리오와 라시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 그들의 걱정은 베니티아 놈들의 공격, 정확히 말하자면 병사 개개인들의 사기가 문제였다. 레노 왕국 군사들의 사기가 충만하다면야 어찌 이리 고민하겠는가?
한데 자신의 친우이자, 기사가 된 로터가 선공을 취하자니……. 살짝 실망한 피리오가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혹, 자네라면 무슨 방도가 있을 줄 알았는데, 흐음…….”
피리오의 한숨 소리에 현은 그게 아니라는 듯 눈에 힘을 주고 입을 열었다.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네. 베니티아 왕국 놈들은 현재 사기가 충만하여 선공을 취했으면 취했지, 우리가 취하리라곤 상상도 못할 것이네.”
“그거야 나와 저하도 생각했음이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시온 후작이 딴지를 걸었다. 하기야, 성인이 아닌 청소년이더라도 저런 생각은 하고도 남을 것이다.
“예. 각하의 말씀대로 우리 또한 그 수를 염두에 두고 있으니 그들도 그 수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겝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점은, 완전한 정면 돌파가 아닙니다.”
“완전한 정면 돌파가 아니다?”
“예. 먼저 부대를 편성하여 특수부대를 만듭니다. 되도록 기사들이 된다면 좋겠지만, 고귀한 그들이 이런 일에 참여할 일은 만무하니, 활을 잘 쏘는 사냥꾼 출신의 병사들, 기백과 날쌘 병사들 기백이면 됩니다. 그들로 하여금 특수부대를 만들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려, 자정이 되었을 때, 몰래 적의 진지에 잠입하여 혼란을 피웁니다. 아, 물론 그들이 어느 정도 진군을 하여 막사를 쳤을 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뒤, 특수부대는 유유히 빠져 나갑니다. 그렇다면 베니티아 왕국 측은 열이 뻗칠 때로 뻗쳤겠죠? 다음 날은 2배의 인원으로 또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그 뒤의 그들은 아마 ‘아, 오늘도 또 일개 소수 부대 쯤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리 지휘관들이 오늘 레노 왕국군들이 쳐들어올 것이다!라고 외친다 한들, 병사들은 듣지 않을 겁니다. 인간은 어렵지만 단순한 동물이니까요.
그들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 것이며, 오늘 밤 또한 그저 몇몇 레노 왕국군만 와서 지랄을 하겠지라고 생각을 할 겁니다. 물론 경계야 철저히 하겠습니다만, 그것도 일정 수준이지요. 우린 그때를 노려, 전군을 돌격시키는 겁니다.”
“……!”
“단순한 계책입니다만, 그 효용성은 사용함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습니다.”
피리오와 사령관의 눈이 부릅떠진다.
사실 최고지휘관이라는 직위에 있는 이들답게 이런 수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마 그들이 방비를 안 할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여 이런 수를 쓰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친우이자, 기사인 로터의 말이라면 자신들도 생각지 못한 허를 찌르자는 것이 아닌가?
물론 도박일 수도 있다. 병사 십수만의 목숨을 건, 도박.
하지만 지금으로선 승률이 거의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저들이 쳐들어오기로 생각한 이상, 수많은 공성무기와 지금 쉬고 있는 여타 지방의 마칸타스 대륙국의 지원병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레노 왕국이 지금에 와서야 프라마티뉴 연합군에게 지원 요청을 한다 한들,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평화시기라고 할 수 있다. 타 지방의 몇몇 주둔군들은 대부분 각 나라 간 휴전을 하였고, 다른 지방 몇몇 곳은 현재 국지전 양상의 전투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소수의 지방만이 레노 왕국과 베니티아처럼 지휘관들의 휴전하에,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일이란 자신이 겪지 않는다면 모르는 법. 아무리 연합군이라 한들, 종전이 된다면 후에는 본토에서 서로 칼을 맞대고 싸울 것이 분명한데 이들을 위해 자국의 군인을 희생시킬 지휘관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평화 시기니, 그럴 리 없다니 하며 거절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된다면 이래 하든, 저래 하든 도박인 건 마찬가지. 차라리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 곳에 그 희망을 던져 보는 것이 사람 심리였다.
“성공할 수 있을까?”
피리오의 물음에 현이 고개를 갸웃거려 본다.
“나도 장담은 못하네. 저들이 생각 외로 기강이 꽉 잡혀 있는 군대라면 이 계책은 막힐 수가 있겠지. 하나, 내 보기에 저들은 오랜 시간과 더불어 이번 전사대전을 통해 쉬이 흥분한 듯 보이네. 그만큼 그들의 기강은 본래보단 해이해진 것이 사실일 걸세. 제아무리 지휘관들이 통제한다 한들, 위에서 명령만 내린다고 무엇이 되겠는가? 난 지금 이 작전의 확률을 7:3으로 보고 있네.”
“칠대 삼이라……. 물론 칠이 우리 쪽이겠지?”
“물론.”
“사령관 각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내 보기에 로터의 말이 썩 틀린 것 같지 않고, 되려 정확한 것 같습니다만. 제아무리 그들이 방비를 한다 한들, 로터의 말대로 전사대전을 통해 그 기강이 해이해진 것은 사실일 겁니다. 이 기회를 통해 차라리 역습을 하는 것은 어떨는지요?”
피리오의 말에 라시온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나이가 든 이상 젊은 혈기의 피리오와 로터보다는 신중히 생각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번 일을 실패한다면 왕당파의 세력이 더 약화될 것은 자명한 일이오. 게다가 실패한다면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 도시의 주민들과 여행자들, 즉 유동인구와 고정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소? 자세한 통계를 낼 순 없으나, 족히 40∼50만은 잡고 있소. 거기다가 십만이 넘는 군대까지.”
“그렇긴 하지만, 본래 전쟁이 도박 아닙니까? 난 내 친구 로터를 믿습니다. 게다가 로터의 말은 일리가 있는 말 아닌지요? 사령관께서도 양치기 소년이란 이야기는 들어 보셨을 겁니다. 양치기 소년은 매번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소년과 양을 구하러 나타났지요.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고 결국 진짜로 늑대가 나타날 때는 소년을 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로터가 하는 이야기도 그런 것입니다. 확신을 내릴 순 없으나, 로터의 말대로 이미 저들은 기강이 어느 정도 해이해졌을 터, 거기다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와 같이 특수부대로 하여금 서서히 진군하는 저들을 옥죄는 훈련을 따로 하여 친다면 저들은 혼란에 빠질게 분명합니다.”
피리오의 설득 아닌 설득에 라시온은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수를 생각해 내긴 했지만, 자신도 이런 대담한 역습은 생각지 못했는데 그걸 생각해 낸 로터는 기특하긴 하나 위험도가 높았다.
농성을 한다면, 병사들의 죽음만 없다면 목숨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시간을 뻐기다가 지원 요청을 미리 보내어, 연합군에게 지원을 청한다면야 당연히 적국의 공격이 확실해진 이때에 그들은 앞 다투어 달려올 것이 뻔하다.
거기에 성안에 비축 식량을 어느 정도 쌓아 둔 뒤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면 되는 것이다. 물론 주민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로터의 말은 세 가지로 나눌 수도 있었다. 첫째는 병사들과 주민들의 희생이 적어 짐이고, 둘째는 사사로이는 공을 세울 수 있음이다. 공격을 당할 위기에서 역습을 하여 성공한다면 그것이 공을 세운 것이지 뭐겠는가? 셋째는 도박이라는 점이다.
먼저 특수부대를 편성한다는 것 자체가 도박이다. 특수부대라 함은 응당 뛰어난 병사와 기사가 구성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한순간의 실수로 잃는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안 그래도 흰머리가 조금씩 나 있는데, 이때를 기해 흰머리가 팍팍 올라오는 게 느껴질 정도인 라시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생각을 했을까? 쉽지 않을 결정이기에 조용히 지켜만 보던 피리오와 로터에게서 라시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네, 자네 말대로 하지.”
라시온의 말에 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뜻하지 않게도 부족한 자신의 의견을 택해 주어서 일 것이다.
7. 탄테의 비밀
“야, 로터. 어떻게 됐기에 사령관들께서 널 불렀냐?”
십인대장인 아스니아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현은 말할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알려지게 될 일. 일단은 말하자고 생각했다.
“제가 피리오와 친구가 됐다는 건 아시죠?”
이미 전날 밤에 들었기에 모든 부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캬! 겁나 부럽다. 누구는 왕자와 친구가 되고 누구는 이런 찌렁뱅이들하고 같이 사니 말이다.”
케일이 부대원들을 살펴보며 찌렁뱅이라 칭했다.
“아무튼 아까는 기사 작위를 위해 불려 간 거였어요.”
“기사 작위? 무슨 기사 작위를 사령관실에서 내려?”
아스니아의 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위라 함은 일단은 귀족이다. 기사, 방백, 준남작 등이 아무리 준귀족에 속하는 반귀족이라곤 하지만, 그런 작위를 사령관실에서 보는 사람도 없이 치르니, 아스니아는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아아, 지금은 전쟁 중이라 뭘 할 수가 없잖아요. 아마, 전쟁이 종전되고 본토로 돌아가면 국왕 전하께서 다시 주최하신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냐? 야, 기사 증서나 보여줘 봐라.”
아스니아의 말에 현이 품에 갈무리하여 가지고 온 방백 증서와 기사 증서를 꺼내 보인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당연지사!
“우,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케일이 말을 잇지 못한다. 평민인 그들이 언제 이런 걸 보았겠는가?
“혹시나 하고 말해 두는 건데요. 제가 기사라 해서 불편하게 대하지 말아 주셨음 해요. 우린 전우잖아요.”
현의 말이었다.
현은 기사라는 존재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번에 식당에 들어와서 식탁 위에 발을 덩그러니 올려놓는 그 개자식을 보더라도 얼마나 콧대가 높은 놈들인지 알 수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한 것이, 짧게는 십 년에서 길게는 20년 정도를 종자 생활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 누가 한 직업을 갖기 위해 20여 년간 고생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어린 나이 때부터.
해서 현은 혹시 부대원들이 불편하게 대한다면 자신 또한 개자식 기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전투를 함께한 부대원들에게 ‘기사님, 기사님’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미리 못을 박아 두는 것이었다.
그에, 부대원들도 은근히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사실 자신들도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내심 걱정했을 것이다. 로터가 바뀌면 어쩌나 하고…….
“야, 당연한 거 아니냐? 넌 영원히 내 밑에 있는 놈이야! 난 십인대장이고!”
아스니아의 말에 웃을 수밖에 없는 현이었다.
기사라 함은 능히 천인대장과 맞먹기, 아니 천인대장은 대부분이 기사단에 들어가지 않은 기사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기사단에 입단해 있지만 말이다.
“야, 근데 이거만 주고 다른 말은 안 하디? 부사령관께서는 너와 이제 친군데 그냥 이거만 주고 왔다는 건 말이 안 될 텐데? 으응?”
케일이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현의 옆구리를 찌르자 현이 하하 웃는다.
“말할게요. 말할게요, 케일 아저씨!”
그제야 케일이 간지럼을 멈추고는 현의 말을 기다렸다.
“이건 비밀이에요. 사실 형님들이니까 말해 주는 겁니다. 정말로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예요. 그렇지 않는다면 수많은 다른 병사들이 죽고 다칠 수가 있어요. 알겠죠?”
현은 말하기 전부터 쇠못을 박았다. 함부로 나불거리지 못하게 말이다.
사실 케일이 아니어도 동료들에겐 이 사실을 말하려고 했었다. 자신의 동료들에게까지 그걸 숨긴다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았기에 말이다.
하지만 일단 동료라 해도, 보안 유지는 약속받아야 했다.
“알겠다. 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네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약속하마. 비밀로 하겠다.”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탄테가 말하자, 그 뒤를 이어 다른 부대원들이 비밀을 약속하겠다고 말했고 그제야 현은 입을 열었다.
“대규모 전면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대, 대규모?”
“어, 얼마나?”
아스니아와 케일의 물음에 현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만, 아마 십만 이상이 될 것 같네요.”
“십만? 이것들이 돌았나! 씨팔, 누굴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아스니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성안 병사들은 알게 모르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지방의 연합국 군대들은 몇몇 곳은 이미 맞닿은 적국과 휴전을 맺었고, 현재는 그냥 혹시나 모를 침입을 대비해 소수의 주둔군만이 존재할 뿐,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거나, 돌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한데 자신들은 뭐란 말인가? 예전에 한창 베니티아와 맞붙을 때, 연합군들과 연합하여 공격을 할 때에나 보여질 법한 십만의 군세라니!
아스니아의 욕지거리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사실 사령관들께서는 생각은 없으신데, 베니티아 왕국 놈들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 왔더라고요. 근데 행세를 보아하니 합의를 하지 않는다 해도 밀고 들어올 요량인가 봐요. 게다가 사령관님과 피리오의 성품을 보면, 도시의 주민들을 그대로 놔두기도 뭐하시고…….”
현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아스니아가 이해가 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도시의 주민들이 문제란 거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우리야 번화가 주민들 식량을 다 징수하고 성문을 걸어 잠근다면 연합국들이 지원을 해 줄 테니까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베니티아군들에게 번화가 주민들은 못 볼꼴을 당하게 될 테지만요.”
“흐음…… 그렇긴 할 테지. 우리를 도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녀자들은 강간할 테고, 남성들은 노예로 쓸 것이 뻔하지. 이도저도 아닌 노인과 아이들은 밥벌레에 불과하니 그 자리에서 죽일 테고. 물론 귀족들도…….”
아스니아의 말은 사실이다. 사실 번화가 주민들은 대부분이 마칸타스인이다. 그중, 상인들을 비롯한 대장간, 상점 등의 주인들 일부만이 몇 세대 전에나 이곳에 발을 붙인 것이었다.
그 이유도, 이미 전쟁이 종전에 끝하고 있었고, 대규모 전쟁이 없는 곳인데다가 돈을 벌기엔 전쟁터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데, 아무리 마칸타스 인이라도 앞에서 말했듯, 일개 영지전이라 한다 한들 이긴다면 같은 국민을 약탈하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이곳 번화가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마칸타스 대륙인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니 오죽하겠는가?
“해서, 피리오가 제게 방도를 묻더군요.”
“방도? 너에게?”
아크니아의 물음이었다.
“예. 아무래도 저번 전사대전 때 자신의 치욕과 레노 왕국 병사들의 사기를 일정 수준
북돋아 줬기 때문인 것 같은데, 제가 뭘 아는 게 있나요.”
“그래서 뭐라고 답해드렸냐?”
“뭐라고 말을 했겠나요. 그냥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만한 거나 말했죠, 뭐.”
특수부대를 모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들이 동료라 한들, 혹시 모를 간자가 숨어 있을 수도 있었고,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런 건 가족들에게까지 알리면 안 되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피리오와 라시온은 현의 의견을 수렴하여 특수부대를 비밀리에 모집 중에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요새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곳이라, 수십만 단위가 되는 상인, 주민 등을 성안으로 데려올 순 없었다.
‘약탈이 아무리 얼마 전 체결된 법에 위반된다 하더라도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아마 이긴다면 그들은 패자 측의 번화가 주민들을 약탈하고도 남을 것이다.’
약탈.
약탈은 지구든 이 세계든 있는 것이었다.
현이 알기로 이 세계에서는 지구보다 약탈이 더 성행한다고 한다.
같은 국가 안에 있는 국민들이라 하더라도, 이웃 간 영지전이 벌어진다면 해당 영지는 대부분 약탈을 당한다고 한다. 물론 생각 있는 영주들은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이 지금의 이익만을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흐음……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겠군.’
현이 결론을 내리며 고개를 퍼뜩 들자, 라시온과 피리오가 반색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
“한 가지? 그래, 무엇인가?”
라시온 후작의 물음에 현이 입가를 검지와 엄지로 쓰윽 닦고는 말했다.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는 것입니다.”
피리오와 라시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 그들의 걱정은 베니티아 놈들의 공격, 정확히 말하자면 병사 개개인들의 사기가 문제였다. 레노 왕국 군사들의 사기가 충만하다면야 어찌 이리 고민하겠는가?
한데 자신의 친우이자, 기사가 된 로터가 선공을 취하자니……. 살짝 실망한 피리오가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혹, 자네라면 무슨 방도가 있을 줄 알았는데, 흐음…….”
피리오의 한숨 소리에 현은 그게 아니라는 듯 눈에 힘을 주고 입을 열었다.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네. 베니티아 왕국 놈들은 현재 사기가 충만하여 선공을 취했으면 취했지, 우리가 취하리라곤 상상도 못할 것이네.”
“그거야 나와 저하도 생각했음이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시온 후작이 딴지를 걸었다. 하기야, 성인이 아닌 청소년이더라도 저런 생각은 하고도 남을 것이다.
“예. 각하의 말씀대로 우리 또한 그 수를 염두에 두고 있으니 그들도 그 수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겝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점은, 완전한 정면 돌파가 아닙니다.”
“완전한 정면 돌파가 아니다?”
“예. 먼저 부대를 편성하여 특수부대를 만듭니다. 되도록 기사들이 된다면 좋겠지만, 고귀한 그들이 이런 일에 참여할 일은 만무하니, 활을 잘 쏘는 사냥꾼 출신의 병사들, 기백과 날쌘 병사들 기백이면 됩니다. 그들로 하여금 특수부대를 만들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려, 자정이 되었을 때, 몰래 적의 진지에 잠입하여 혼란을 피웁니다. 아, 물론 그들이 어느 정도 진군을 하여 막사를 쳤을 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뒤, 특수부대는 유유히 빠져 나갑니다. 그렇다면 베니티아 왕국 측은 열이 뻗칠 때로 뻗쳤겠죠? 다음 날은 2배의 인원으로 또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그 뒤의 그들은 아마 ‘아, 오늘도 또 일개 소수 부대 쯤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리 지휘관들이 오늘 레노 왕국군들이 쳐들어올 것이다!라고 외친다 한들, 병사들은 듣지 않을 겁니다. 인간은 어렵지만 단순한 동물이니까요.
그들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 것이며, 오늘 밤 또한 그저 몇몇 레노 왕국군만 와서 지랄을 하겠지라고 생각을 할 겁니다. 물론 경계야 철저히 하겠습니다만, 그것도 일정 수준이지요. 우린 그때를 노려, 전군을 돌격시키는 겁니다.”
“……!”
“단순한 계책입니다만, 그 효용성은 사용함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습니다.”
피리오와 사령관의 눈이 부릅떠진다.
사실 최고지휘관이라는 직위에 있는 이들답게 이런 수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마 그들이 방비를 안 할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여 이런 수를 쓰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친우이자, 기사인 로터의 말이라면 자신들도 생각지 못한 허를 찌르자는 것이 아닌가?
물론 도박일 수도 있다. 병사 십수만의 목숨을 건, 도박.
하지만 지금으로선 승률이 거의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저들이 쳐들어오기로 생각한 이상, 수많은 공성무기와 지금 쉬고 있는 여타 지방의 마칸타스 대륙국의 지원병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레노 왕국이 지금에 와서야 프라마티뉴 연합군에게 지원 요청을 한다 한들,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평화시기라고 할 수 있다. 타 지방의 몇몇 주둔군들은 대부분 각 나라 간 휴전을 하였고, 다른 지방 몇몇 곳은 현재 국지전 양상의 전투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소수의 지방만이 레노 왕국과 베니티아처럼 지휘관들의 휴전하에,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일이란 자신이 겪지 않는다면 모르는 법. 아무리 연합군이라 한들, 종전이 된다면 후에는 본토에서 서로 칼을 맞대고 싸울 것이 분명한데 이들을 위해 자국의 군인을 희생시킬 지휘관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평화 시기니, 그럴 리 없다니 하며 거절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된다면 이래 하든, 저래 하든 도박인 건 마찬가지. 차라리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 곳에 그 희망을 던져 보는 것이 사람 심리였다.
“성공할 수 있을까?”
피리오의 물음에 현이 고개를 갸웃거려 본다.
“나도 장담은 못하네. 저들이 생각 외로 기강이 꽉 잡혀 있는 군대라면 이 계책은 막힐 수가 있겠지. 하나, 내 보기에 저들은 오랜 시간과 더불어 이번 전사대전을 통해 쉬이 흥분한 듯 보이네. 그만큼 그들의 기강은 본래보단 해이해진 것이 사실일 걸세. 제아무리 지휘관들이 통제한다 한들, 위에서 명령만 내린다고 무엇이 되겠는가? 난 지금 이 작전의 확률을 7:3으로 보고 있네.”
“칠대 삼이라……. 물론 칠이 우리 쪽이겠지?”
“물론.”
“사령관 각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내 보기에 로터의 말이 썩 틀린 것 같지 않고, 되려 정확한 것 같습니다만. 제아무리 그들이 방비를 한다 한들, 로터의 말대로 전사대전을 통해 그 기강이 해이해진 것은 사실일 겁니다. 이 기회를 통해 차라리 역습을 하는 것은 어떨는지요?”
피리오의 말에 라시온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나이가 든 이상 젊은 혈기의 피리오와 로터보다는 신중히 생각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번 일을 실패한다면 왕당파의 세력이 더 약화될 것은 자명한 일이오. 게다가 실패한다면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 도시의 주민들과 여행자들, 즉 유동인구와 고정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소? 자세한 통계를 낼 순 없으나, 족히 40∼50만은 잡고 있소. 거기다가 십만이 넘는 군대까지.”
“그렇긴 하지만, 본래 전쟁이 도박 아닙니까? 난 내 친구 로터를 믿습니다. 게다가 로터의 말은 일리가 있는 말 아닌지요? 사령관께서도 양치기 소년이란 이야기는 들어 보셨을 겁니다. 양치기 소년은 매번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소년과 양을 구하러 나타났지요.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고 결국 진짜로 늑대가 나타날 때는 소년을 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로터가 하는 이야기도 그런 것입니다. 확신을 내릴 순 없으나, 로터의 말대로 이미 저들은 기강이 어느 정도 해이해졌을 터, 거기다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와 같이 특수부대로 하여금 서서히 진군하는 저들을 옥죄는 훈련을 따로 하여 친다면 저들은 혼란에 빠질게 분명합니다.”
피리오의 설득 아닌 설득에 라시온은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수를 생각해 내긴 했지만, 자신도 이런 대담한 역습은 생각지 못했는데 그걸 생각해 낸 로터는 기특하긴 하나 위험도가 높았다.
농성을 한다면, 병사들의 죽음만 없다면 목숨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시간을 뻐기다가 지원 요청을 미리 보내어, 연합군에게 지원을 청한다면야 당연히 적국의 공격이 확실해진 이때에 그들은 앞 다투어 달려올 것이 뻔하다.
거기에 성안에 비축 식량을 어느 정도 쌓아 둔 뒤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면 되는 것이다. 물론 주민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로터의 말은 세 가지로 나눌 수도 있었다. 첫째는 병사들과 주민들의 희생이 적어 짐이고, 둘째는 사사로이는 공을 세울 수 있음이다. 공격을 당할 위기에서 역습을 하여 성공한다면 그것이 공을 세운 것이지 뭐겠는가? 셋째는 도박이라는 점이다.
먼저 특수부대를 편성한다는 것 자체가 도박이다. 특수부대라 함은 응당 뛰어난 병사와 기사가 구성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한순간의 실수로 잃는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안 그래도 흰머리가 조금씩 나 있는데, 이때를 기해 흰머리가 팍팍 올라오는 게 느껴질 정도인 라시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생각을 했을까? 쉽지 않을 결정이기에 조용히 지켜만 보던 피리오와 로터에게서 라시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네, 자네 말대로 하지.”
라시온의 말에 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뜻하지 않게도 부족한 자신의 의견을 택해 주어서 일 것이다.
7. 탄테의 비밀
“야, 로터. 어떻게 됐기에 사령관들께서 널 불렀냐?”
십인대장인 아스니아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현은 말할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알려지게 될 일. 일단은 말하자고 생각했다.
“제가 피리오와 친구가 됐다는 건 아시죠?”
이미 전날 밤에 들었기에 모든 부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캬! 겁나 부럽다. 누구는 왕자와 친구가 되고 누구는 이런 찌렁뱅이들하고 같이 사니 말이다.”
케일이 부대원들을 살펴보며 찌렁뱅이라 칭했다.
“아무튼 아까는 기사 작위를 위해 불려 간 거였어요.”
“기사 작위? 무슨 기사 작위를 사령관실에서 내려?”
아스니아의 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위라 함은 일단은 귀족이다. 기사, 방백, 준남작 등이 아무리 준귀족에 속하는 반귀족이라곤 하지만, 그런 작위를 사령관실에서 보는 사람도 없이 치르니, 아스니아는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아아, 지금은 전쟁 중이라 뭘 할 수가 없잖아요. 아마, 전쟁이 종전되고 본토로 돌아가면 국왕 전하께서 다시 주최하신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냐? 야, 기사 증서나 보여줘 봐라.”
아스니아의 말에 현이 품에 갈무리하여 가지고 온 방백 증서와 기사 증서를 꺼내 보인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당연지사!
“우,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케일이 말을 잇지 못한다. 평민인 그들이 언제 이런 걸 보았겠는가?
“혹시나 하고 말해 두는 건데요. 제가 기사라 해서 불편하게 대하지 말아 주셨음 해요. 우린 전우잖아요.”
현의 말이었다.
현은 기사라는 존재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번에 식당에 들어와서 식탁 위에 발을 덩그러니 올려놓는 그 개자식을 보더라도 얼마나 콧대가 높은 놈들인지 알 수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한 것이, 짧게는 십 년에서 길게는 20년 정도를 종자 생활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 누가 한 직업을 갖기 위해 20여 년간 고생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어린 나이 때부터.
해서 현은 혹시 부대원들이 불편하게 대한다면 자신 또한 개자식 기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전투를 함께한 부대원들에게 ‘기사님, 기사님’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미리 못을 박아 두는 것이었다.
그에, 부대원들도 은근히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사실 자신들도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내심 걱정했을 것이다. 로터가 바뀌면 어쩌나 하고…….
“야, 당연한 거 아니냐? 넌 영원히 내 밑에 있는 놈이야! 난 십인대장이고!”
아스니아의 말에 웃을 수밖에 없는 현이었다.
기사라 함은 능히 천인대장과 맞먹기, 아니 천인대장은 대부분이 기사단에 들어가지 않은 기사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기사단에 입단해 있지만 말이다.
“야, 근데 이거만 주고 다른 말은 안 하디? 부사령관께서는 너와 이제 친군데 그냥 이거만 주고 왔다는 건 말이 안 될 텐데? 으응?”
케일이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현의 옆구리를 찌르자 현이 하하 웃는다.
“말할게요. 말할게요, 케일 아저씨!”
그제야 케일이 간지럼을 멈추고는 현의 말을 기다렸다.
“이건 비밀이에요. 사실 형님들이니까 말해 주는 겁니다. 정말로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예요. 그렇지 않는다면 수많은 다른 병사들이 죽고 다칠 수가 있어요. 알겠죠?”
현은 말하기 전부터 쇠못을 박았다. 함부로 나불거리지 못하게 말이다.
사실 케일이 아니어도 동료들에겐 이 사실을 말하려고 했었다. 자신의 동료들에게까지 그걸 숨긴다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았기에 말이다.
하지만 일단 동료라 해도, 보안 유지는 약속받아야 했다.
“알겠다. 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네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약속하마. 비밀로 하겠다.”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탄테가 말하자, 그 뒤를 이어 다른 부대원들이 비밀을 약속하겠다고 말했고 그제야 현은 입을 열었다.
“대규모 전면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대, 대규모?”
“어, 얼마나?”
아스니아와 케일의 물음에 현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만, 아마 십만 이상이 될 것 같네요.”
“십만? 이것들이 돌았나! 씨팔, 누굴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아스니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성안 병사들은 알게 모르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지방의 연합국 군대들은 몇몇 곳은 이미 맞닿은 적국과 휴전을 맺었고, 현재는 그냥 혹시나 모를 침입을 대비해 소수의 주둔군만이 존재할 뿐,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거나, 돌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한데 자신들은 뭐란 말인가? 예전에 한창 베니티아와 맞붙을 때, 연합군들과 연합하여 공격을 할 때에나 보여질 법한 십만의 군세라니!
아스니아의 욕지거리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사실 사령관들께서는 생각은 없으신데, 베니티아 왕국 놈들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 왔더라고요. 근데 행세를 보아하니 합의를 하지 않는다 해도 밀고 들어올 요량인가 봐요. 게다가 사령관님과 피리오의 성품을 보면, 도시의 주민들을 그대로 놔두기도 뭐하시고…….”
현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아스니아가 이해가 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도시의 주민들이 문제란 거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우리야 번화가 주민들 식량을 다 징수하고 성문을 걸어 잠근다면 연합국들이 지원을 해 줄 테니까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베니티아군들에게 번화가 주민들은 못 볼꼴을 당하게 될 테지만요.”
“흐음…… 그렇긴 할 테지. 우리를 도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녀자들은 강간할 테고, 남성들은 노예로 쓸 것이 뻔하지. 이도저도 아닌 노인과 아이들은 밥벌레에 불과하니 그 자리에서 죽일 테고. 물론 귀족들도…….”
아스니아의 말은 사실이다. 사실 번화가 주민들은 대부분이 마칸타스인이다. 그중, 상인들을 비롯한 대장간, 상점 등의 주인들 일부만이 몇 세대 전에나 이곳에 발을 붙인 것이었다.
그 이유도, 이미 전쟁이 종전에 끝하고 있었고, 대규모 전쟁이 없는 곳인데다가 돈을 벌기엔 전쟁터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데, 아무리 마칸타스 인이라도 앞에서 말했듯, 일개 영지전이라 한다 한들 이긴다면 같은 국민을 약탈하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이곳 번화가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마칸타스 대륙인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니 오죽하겠는가?
“해서, 피리오가 제게 방도를 묻더군요.”
“방도? 너에게?”
아크니아의 물음이었다.
“예. 아무래도 저번 전사대전 때 자신의 치욕과 레노 왕국 병사들의 사기를 일정 수준
북돋아 줬기 때문인 것 같은데, 제가 뭘 아는 게 있나요.”
“그래서 뭐라고 답해드렸냐?”
“뭐라고 말을 했겠나요. 그냥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만한 거나 말했죠, 뭐.”
특수부대를 모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들이 동료라 한들, 혹시 모를 간자가 숨어 있을 수도 있었고,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런 건 가족들에게까지 알리면 안 되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피리오와 라시온은 현의 의견을 수렴하여 특수부대를 비밀리에 모집 중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