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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아마, 이번 특수부대에는 기사와 중기병들도 많이 참가하리라. 위험은 따르지만 공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축하한다. 이제 진짜로 기사님이라고 불러야겠네? 킥킥.”
아스니아가 기사가 된 걸 축하해 주며 장난스런 웃음을 머금었다.
“하하하! 아스니아의 말처럼 이제 우리도 기사가 뒤를 봐 주게 됐네? 로터 님, 잘 부탁합니당!”
역시나 케일이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허리를 구부려 인사까지 하자, 막사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길 한 시간가량 되자, 모두 질리는 걸 느꼈는지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현은 그들을 엄마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밖으로 검을 챙겨 가지고 나왔다. 현이 이곳 부대에 온 뒤, 아침마다 하는 운동이었다.
현은 예의, 멧돼지를 잡은 작은 공터로 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검을 가다듬었다.
현은 상상속의 적을 만들어 내었다. 본국검법은 33세(勢)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격법(擊法)이 12수(首), 자법(刺法)이 9수로 치고 지르는 것이 모두 21수로 이루어진 신라 고유의 무예이다.
현이 듣기로 요즘은 검도관에서 단 심사를 볼 때에 필요로 하는 본국검법이라고 나오는데, 그들이 배우는 것은 보여 주기 위한 검법일 뿐이고, 현이 배웠던 것은 전통 무예인에게 배운 실전용이었다.
사실 21세기에 사는 사람이 실전 무예가 무에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사람이 있긴 있었지만 현은 꿋꿋이 배워 나갔다.
처음엔 ‘멋’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차츰차츰 우리 고유의 무예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고, 무인으로의 삶이 얼마나 재밌고 신명나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상대의 검과 검이 맞대는, 상대와 창을 맞대며 상대의 거칠어진 숨소리를 듣는 것은 대련 중 매우 큰 낙(樂) 중 하나였다.
현은 눈앞의 상대에게 지검대적세(持劒對賊勢)를 취했다.
지검대적세란, 글자 그대로 검을 들고 상대와 마주한 자세라는 뜻이다.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라는 대표적인 유파가 있는데 그 유파의 좌음세가 이와 같다고 한다.
현대 검도에서는 이 자세를 승급 심사가 아니라면 잘 쓰이지 않는다.
뭐, 설명이 길어 뭔가 있어 보이는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했듯 그냥 검을 들고 상대를 노려보는(?) 자세를 어렵게 뜻풀이 한 거라 할 수 있다.
아무튼 현은 칼을 마주 들고 눈앞의 상상의 적을 노려보았다. 현이 설정한 상상의 적은, 체구는 자신보다 약간 크고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라 할 수 있었다.
‘후우…….’
눈앞에 상상의 적이 나오자,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 무렵 상상의 적인 기사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 시대는 지구 중세 유럽의 그것과 달리, 어떻게 철을 제련하는지는 모르지만, 풀 플레이트 갑옷이 지구 중세 유럽의 그것보단 가벼웠다. 그래서 더욱더 비쌌고.
현은 칼을 높이 쳐들고 달려오는 적기사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사의 검로(劍路)를 예측한 다음, 슬쩍 검을 들어 막아 내었다.
그 뒤, 칼날을 밑으로 하여 안으로 스친 뒤 몸을 돌리며 그 힘을 이용하여 공세를 취했다.
기사의 손이 반동에 못 이겨 하늘로 치솟는다.
현은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로서 반원을 그리듯 기사의 뒤쪽으로 향했다.
“후일격세(後一擊勢)!”
현의 몸과 검이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기사의 투구를 두 쪽으로 내 버린다.
“후우, 녹슬진 않았군.”
사실 현은 내심 걱정을 했었다.
자신이 배운 본국검법은 여타 현재 검도 체육관에서 배우는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라서, 조금만 훈련을 게을리 해도 실력이 다른 무술과 다르게 팍 줄어든다.
한데 하루에 한두 시간을 한 것 치고는 실력이 그대로였기에 현은 마음이 흡족했다.
그때였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리며 놀랍다는 듯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다가오는 이가 보인다.
“탄테 형님!”
다름 아닌 탄테였는데, 그 표정이 실로 가관이었다.
“그건 또 무슨 무술이냐? 난 네가 창법만 능한 줄 알았는데…….”
탄테의 말에 현이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부대원들에게 검술을 보여 준 건 람스 빼곤 없었고, 람스에게도 검술이 아닌 격전의 현장에서 적을 베는 용으로만 보여 줬기에 인식을 못했을 것이다.
“하하하! 본국검법이라고 하는 무술입니다.”
“보르구검법?”
‘본국’은 고유명사로 발음했기에 한국식 발음이 어려운 이 세계인들에겐 보르구라고 발음되나 보다.
현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보르구검법입니다.”
웃으며 말하는 현을 보자니, 약간 의심스럽긴 했지만 당사자가 그렇다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탄테였다.
“그나저나 대단하구먼. 전에 보았던 창법보다 대단한데 말이야. 내 예전에 기사들이 하는 이야길 들었는데, 검과 창 등을 쓰는 이들은 서로 상이한 무술은 배우면 안 된다고 하더군. 한데 자네는 창과 검까지 익혔다니…… 그것도 절정의 지경까지 말이야.”
“하하! 형님, 절정이라뇨. 아직 이릅니다. 그리고 검과 창 등, 상이한 무술을 배우면 이상해지는 건 맞습니다. 검과 창을 동시에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도저도 아닌 무술이 되어버리지요. 하지만 절 가르치신 스승님들이 뛰어나신 탓인지, 제가 능력이 뛰어난 것인진 모르지만,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현의 말이 맞다. 아무리 신라 화랑의 본국검법과 고구려의 기상을 잇는 창무지를 동시에 익힌다 하더라도, 천재가 아닌 이상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된다.
하지만 현은 그걸 성공시켰고 어렸을 적부터 무재가 타고났다는 소리를 매번 듣고 자랐기에 자신은 별로 내색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무튼 대단하구먼. 보르구검법이라고 했지? 매우 느린 듯하면서도 순간을 노려 적을 베어 넘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먹이를 기다리는 호랑이와 같군.”
“하하하! 멋쩍게 그런 소리는…… 그나저나 처음부터 보신 건가요?”
탄테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처음부터 다 보았다는 뜻이리라.
“미안하네. 자의는 아니었네, 다만 자네가 밖으로 검을 들고 나가는 것이 수상하여 나와 보았네. 하하!”
“저라도 꾸준히 수련을 해야 동료들을 지키지, 누가 지키겠습니까?”
로터의 장난스런 말에 탄테가 호탕하게 웃는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어린 나이에 뛰어난 경지에 있는 로터가 자신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어 씁쓸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탄테를 바라본 뒤, 현이 뒤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런 현을 보고 탄테 또한 웃음을 멈추고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뒤늦게 자리에 앉은 탄테가 조용히 읊조리듯 물었다.
“너는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냐?”
“마칸타스 대륙이요? 아니면 이곳 전체요?”
현이 손짓으로 성안 전체를 가리키자 탄테는 고개를 끄덕인다. 성안 전체라는 의미리라.
“나쁘다곤 생각지 않아요. 예전이라면 싫겠다라고 단호히 말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제게 지금은 형님과 같은 여러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만난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전 확신할 수 있어요. 전장에서는 그들과 등을 맞대고 싸울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삶 또한 나쁘진 않아요. 얼떨결에 전사대전에 나갔지만, 그걸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또, 피리오와 친구가 되었다는 것 또한 좋은 일이지요. 물론, 그가 왕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는 여타 귀족들하곤 다르거든요.”
탄테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어떠세요?”
현의 물음에 탄테가 잠시 회상에 잠긴 듯한 눈을 하고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

지옥도.
그래, 지옥도. 지옥도라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참담한 이곳.
온몸이 불에 타 그을린 시체와 옆에선 어린아이들이 이미 식어 버린 제어미의 젖을 빠는 모습, 거기에 사지가 절단된 노인, 강간을 당하다 죽임을 당한 듯 보이는 여인, 여인의 그곳에 칼이 들어간……. 한마디로 지옥도가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 사람이 지나가긴 지나가는 모양이다.
“우웨웩!”
한 청년이 앞에 보이는 머리가 잘린 시체와 몸통이 헤집어진 시체를 보고는 자신의 뱃속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게워 낸다.
“이봐, 괜찮나? 앞으로 몇 개 부락이 더 있을 것이다. 그곳도 이곳과 다르진 않겠지. 망할 베니티아 놈들…….”
팔에 십인대장을 표시하는 마크를 찬 걸 봐서는, 아마 이곳을 걷고 있는 십인대의 대장이리라.
“괘, 괜찮습니다.”
방금 음식을 게워 낸 청년이 괜찮다고 말하자 대장은 시체들을 한 번 쓰윽 훑어본 뒤, 청년에게 말했다.
“말했다시피 앞으로 이런 부락이 얼마간 더 있을 거다. 차라리 많이 봐 둬라. 그래야 익숙해져서 망자들을 욕보이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
“시, 시정하겠습니다.”
청년에게 살짝 시선을 준 뒤, 대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 죽음의 마을을 다시 돌아보았다.
대장의 이가 절로 갈렸다.
“망할 베니티아 왕국 놈들…….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이리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앞서 말한 바보다 마을 안으로 진입할수록 그 풍경은 진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몸통이 잘린 아이들, 남녀 아이들 할 것 없이 목이 베인 아이들, 거기에 여인이 부족했던 것인지 어린 여아들까지 강간을 당한…….
십인대원들 모두가 이를 갈았다.
“개새끼들 어떻게 자신들을 도와준 부락민들을 이렇게 만들 수가 있는 거지? 게다가 이들은 따지고 보면 우리 지배하에 있긴 하지만 마칸타스 대륙인이잖아. 안 그래?”
병사 하나가 동료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들은 모두 따지자면 마칸타스 대륙인.
동족들조차 이리한다는 것이, 영지전도 아닌데 자신의 동족들을 이리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들은 피해자일 뿐이야. 우리 때문에 생긴…….”
방금 음식을 게워 낸 청년이 눈앞의, 강간을 당한 여아에게 시선을 주고 말했다.
“야, 우리 때문? 우리 때문이라고? 무슨 개소리야!”
퍼억!
다른 병사 하나가 다가와 청년의 배를 발로 차 밀었다. 다른 병사들이 말리기 시작했지만, 청년을 때린 병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라고! 저길 봐, 저길 봐 새끼야. 저기 네 가족들이 있다고 생각해 봐. 병신 새끼야, 우리 때문이라고?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엉? 우린 잘못이 없다고! 잘못이 있다면 위에 있는 귀족 새끼들 때문이지, 우리가 뭔 잘못이 있냐고! 씨팔!”
사내의 눈에서 급기야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걸 본 넘어진 청년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툭 쏘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탓이란 거다. 아군은 저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좆같은 소리 말라 해. 너도 상황이 닥친다면 이렇게 될 것이 뻔하다.”
눈물을 흘리던 사내가 음식을 게워 내던 청년에게 다가가 멱살을 쥐어 잡았다. 십인대장이 보건 말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다시 말해 봐, 병신새꺄! 우리 탓? 우리 탓이라고? 아군도 저 짓을 할 것 같다고? 봐, 저 어린 여자아이를 똑바로 쳐다봐. 우리가 저 짓을 할 것 같아? 응?”
멱살을 잡은 병사는 잡힌 청년의 고개를 억지로 여아의 시체에 보게 한다. 멱살이 잡힌 병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피해자는 우리야 새꺄! 그런 엿 같은 말은 꿈에서도 하지 말라고!”
병사는 급기야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병사들도 그에 의해 전이되었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 대장이 나섰다.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다. 다른 마을들도 살펴보아야 하니 자리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너, 탄테. 앞으론 그 따위 망발을 지껄이지 마라. 듣는 나도 매우 심기가 불편했으니…….”
탄테!
그랬다. 방금 음식을 게워 내고, 멱살을 잡힌 청년은 탄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매우 젊은 것을 보아하니, 소싯적 탄테인 모양이다.
아무튼 탄테는 대장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잘 못한 게 뭐가 있다고…….’
탄테는 자신이 무얼 잘못한지 몰랐다. 스스로 생각하기로 자신이 한 말은 모두 정답이었다. 이 전쟁은 프라마티뉴 대륙인들이 일으킨 것이지, 마칸타스 대륙인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자신을 포함해 여기 있는 모두가 눈앞에 있는 시체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모든 걸 싫어하는 이들이, 이걸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이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곤 상명을 거부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있겠는가?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러는 것이긴 하겠지만…….
‘망할 놈들.’
옳고 그름은 나중에 해도 좋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시체들은 정말 절로 이가 갈렸다.
자신들이 잘못을 했듯, 하지 않았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죽이다니…….
게다가 이곳까지 진입하면서 얼핏 본 것에 따르자면 피를 흘리며 끌려간 것처럼 보이는 혈흔도 보였다. 그들은 아마, 젊은 처녀들일 것이다.
“됐다. 모두 일어나라. 우린 이곳 말고도 다른 곳도 해가 지기 전에 수색해야 한다. 가자.”
대장은 주저앉아 흐느끼는 병사를 일으켜 세운 뒤, 슬쩍 탄테를 노려보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탄테가 속한 십인대가 본 마을은 다섯 군데였다.
모두 불에 그을리고 약탈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한 곳도 빠짐없이…….
마지막 수색 지역인, 익스켄 마을에 도착한 십인대였다. 이곳은 처음 온 곳보다도 심했다.
이곳 마을은 사람이 조금 되었는데, 하나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고 여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발가벗겨져 봉긋 솟은 그 두 곳이 잘려 있었다.
그리고 남정네들 또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자의 세 다리 중 한 곳이 잘려 있었다.
잘려 있는 남자들의 몸 상태를 보자면 피를 범벅한 것이, 즐기기 위한 고문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 듯 보였다.
“이 씨발 새끼들, 이 새끼들은 사람이 아니야! 짐승이라고!”
방금 첫 마을에서 탄테와 시비가 붙었던 병사가 소리쳤다. 다른 이들도 소리치지 않았을 뿐이지 같은 맘이리라.
아무튼 그런 그를 보고 십인대장이 타이르려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 할 때였다.
쉬이익!
푸욱!
빠른 속도로 뾰족한 화살촉이 날아와, 병사의 머리에 꽂혔다.
“매복이다! 적의 매복이 있다!”
십인대장은 화살 꽂힌 병사를 어찌할 틈도 없이 무기를 빼 들고 매복임을 알렸다. 그에 탄테도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스르릉!
아버지가 준 검이었다. 자신이 전쟁터인 마칸타스 대륙으로 넘어올 때 마을의 유일한 대장장이셨던 아버지가 주신 검이었다.
검의 손잡이 부근엔 ‘탄테’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단조로우면서도 화려한. 알 수 없는 멋이 깃든 검이었다.
“이봐, 탄테! 이리로 들어와!”
십인대장이 말을 하며 탄테의 손목을 이끌고 민가 하나로 들어갔다.
“젠장할! 이곳에 적이 매복했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십인대장의 중얼거림에 탄테는 정신이 번뜩 드는 것이 느껴졌다.
‘미끼.’
미끼!
그랬다. 자신들은 미끼였던 것이다.
이곳을 흽쓸고 간 베니티아 왕국 놈들의 뒤를 칠 계획이었던 레노 왕국군들. 지휘관들은 자신들 말고도 다른 부대를 다른 지역에 보냈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단지 수색이라는,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것 때문에.
하지만 당시 사령관의 성품상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의 수하가 눈앞에서 죽어 간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이가 일개 평민들을 위해서……?
그렇다면 드는 생각은 하나. 자신들을 미끼로 하여금 그들이 경계를, 혹은 어느 정도에 있느냐를 알아채려는 것이리라.
‘젠장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탄테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일그러졌다.
하지만 생각은 길게 할 수 없었다. 눈앞에 적군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익숙한 베니티아 말투가 들려왔다.
프라마티뉴 대륙과 마칸타스 대륙이 언어학으로는 대부분이 통일되었기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은 거북한 말투였지만.
“웬 놈들인지 정체를 밝히거라!”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였는데, 우렁창 목소리를 보아하니 백인대장인 듯싶었다. 아마도 이곳에 탄테의 십인대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이 나온 것이리라.
아무튼 잠시 망설이던 탄테의 십인대장이 바깥으론 들리지 않도록 모기 소리마냥 말했다.
“지금 밖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죽을 것은 뻔하다. 잡혀서 씻을 수 없는 치욕과 고문으로 뼈아픈 고통을 당할 바엔 몇이라도 죽여서 깨끗이, 레노 왕국민답게 죽는 것이 어떠냐?”
충격 같은 십인대장의 말이었다.
탄테는 고개를 저으려고 했었다.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싸운다면 그것은 개죽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