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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트라이 1권 (7화)
3. 맹수 (3)
“세르피어 님. 당장 광산에서 하루거리에 있는 농노 마을로 가셔야 합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완수하고 돌아온 리노는 곧바로 세르피어를 찾아가 상대가 칭찬할 틈도 주지 않고 재촉했다.
“방금 왔으니 숨 좀 돌리고, 무슨 일인지 천천히 말해 봐. 뭐야? 급한 일이야?”
“예. 급하고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세르피어의 질문에 리노는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최고의 사냥개를 발견했습니다. 그 상대가 누구더라도 주인을 지켜 줄 수 있는 최고의 명견입니다.”
벌떡!
세르피어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의자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냐?”
“예. 비록 지금은 그 누구도 다루지 못하는 맹수이지만, 그를 거둘 수만 있다면 세르피어 님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힘을 얻는 것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그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것입니다. 좀 전에 말씀 드렸듯이 맹수 같은 놈이라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당장 가야지. 밖에 누구 없느냐!”
그의 고함 소리에 한 하인이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당장 나가서 떠날 수 있게 마차를 준비시켜라.”
“언제 떠나시려는 겁니까?”
“지금 당장.”
대답을 들은 하인은 또다시 허둥지둥 방을 나섰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긴 여행을 위해 준비를 하려면 꽤나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리노는 하인이 나가는 것을 보며, 이번에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런데 다른 일은 어찌 되셨습니까?”
“무슨 다른 일?”
“상단 말입니다.”
그 말에 세르피어가 씩 웃었다.
“그 일이라면 걱정 마.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리노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니, 비밀에 만전을 기하십시오. 그 일은 꼭 필요하면서도 세르피어 님에게는 큰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불순한 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악용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혹시 나를 도와 상단을 꾸리는 자들을 의심하는 것이냐?”
“예.”
리노의 대답에 세르피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감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걱정 마라. 나를 돕는 자들은 노련하고 경험 많은 상인인 것은 물론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어야겠죠.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없으니, 언제나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리노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세르피어가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마치 너도 믿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군.”
농담 같지만 가시가 있는 말. 하지만 리노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게 대꾸를 하였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노예입니다. 더 내려갈 곳은 있어도 오를 곳은 없는 노예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 넌 노예지. 그 때문에 충견일 수밖에 없는 노예. 하하하!”
리노의 진지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세르피어는 시원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 * *
“소문 들었나?”
세르피어가 농노 마을로 향하던 그 시간, 레언이 검을 수련하고 있는 후원을 찾은 대머리 토란트는 부연 설명을 다 생략하고 바로 물었다. 이에 레언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검을 휘두르기를 멈추지 않으며 되물었다.
“끙. 대체 무슨 소문 말입니까?”
“세르피어가 매일 아침마다 검을 수련한다는 소문 말이네.”
“그렇습니까? 이제 그놈도 정신을 차렸나 보군요. 하긴,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도 지킬 수도 없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가 됐지. 합!”
쿵!
대검을 허공에서 한 차례 크게 휘두른 레언은 기합을 내지르며, 바닥에 놓여 있는 통나무를 내려쳤다. 그러자 검은, 장정 다섯을 묶어 놓은 것만 같은 엄청난 굵기의 통나무를 약 1/3 정도 파고들었다. 토란트는 그 어마어마한 힘과 기술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이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레언은 많이 아쉽다는 듯 쀼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쩝, 또 실패군.”
이에 토란트는 깜짝 놀라 물었다.
“실패라니? 이런 두께의 통나무를 절반 가까이 베었는데 실패라는 건가?”
레언은 나무에 아주 꽉 틀어박힌 대검을 위아래로 움직여 힘겹게 빼내며 대꾸했다.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 나무는 단칼에 베야 하는 것 아닙니까.”
토란트는 혀를 내둘렀다. 그런 능력을 가진 자들은 하나같이 전설이 되어, 현재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는 영웅들이다. 즉, 레언은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전설이 되고자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토란트를 비롯해 영지 내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푹.
레언은 힘겹게 빼낸 검을 땅에 꽂아 세워 두고는 물었다.
“그런데 겨우 그런 소문 때문에 오신 겁니까?”
“아니네.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소문이 더 있네.”
“이번엔 또 무슨 소문입니까?”
“자네가 여자 때문에 세르피어를 죽이려 한다는 소문 말이네.”
그 말에 레언이 전혀 이해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문입니까?”
“정확히는 나도 모르네. 단지 하급 기사들 사이에서 쉬쉬하면서 조용히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것밖에는…….”
토란트는 말꼬리를 흐렸다. 불같은 성질을 가진 레언이 또다시 성질을 억제하지 못하고 길길이 날뛸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레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땅에 가래침을 뱉는 것으로 끝났다.
“참네. 이젠 별 소문이 다 나는군.”
“그럼 아니란 말인가?”
“뭐, 솔직히 말하자면 로사를 죽게 만든 일로 놈의 모가지를 분질러 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놈만큼 영지 내 사업을 잘 운영하는 놈이 없지 않습니까.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냥 덮어 두기로 했지요.”
별 생각도 없고 큰 고민도 없는 레언의 대답에 토란트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자네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군. 하지만 그런 소문이 계속 도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네. 소문이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나중에는 자꾸 부풀려지면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변할 수 있으니 말일세.”
하지만 레언은 토란트의 말을 그저 웃어넘겼다.
“하하, 토란트 님도 늙으셨나 봅니다. 그런 소문 따위나 걱정하시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일세. 그러니 가끔 세르피어를 주시하게. 이런 소문과 함께 세르피어가 검을 수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좀 그렇다네.”
레언은 땅에 꽂았던 검을 뽑아 들고는, 신발 바닥에 톡톡 쳐서 묻은 흙을 털어 내며 말했다.
“전 그런 녀석보다는 오히려 가네사 영지가 더 걱정입니다. 특히, 모든 경쟁자를 다 죽이고 영주 자리에 오른 데어만 영주의 호전적인 성향을 본다면 결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토란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레언의 말마따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가네사 영지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오래 전부터 헤이나 영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광산이 양 영지 사이에 위치한 탓에 분쟁이 있어 왔고, 지금도 가네사 영지는 틈틈이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데어만 영주의 먼 친척이자 가네사 영지의 모든 경영을 도맡아 하고 있는 세드로나란 자를 잘 구슬려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과도 같은 존재라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레언이 말을 이었다.
“세르피어는 약한 놈입니다. 그런 놈이 영주가 된다면 데어만 가네사 영주는 이를 기회라 여기고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겁니다. 이런 사실은 나도 알고, 아버님도 알고, 여러 가신들도 알고, 세르피어 본인도 압니다. 이를 아는 녀석이, 영주 자리를 노릴까요? 아마 거저 줘도 사양할 겁니다. 그러니 토란트 님도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토란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레언의 모습에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쳐 나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아니면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던가.’
4. 명성 (1)
땅거미가 질 무렵.
약 오백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 주변에 활과 몽둥이를 든 검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got살에 그을린 듯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는 좀 작지만 덩치는 일반 장정보다 더 큰 괴인들은 머리를 박박 밀고 이마, 뒤통수 그리고 옆머리에 하얀색의 눈을 문신한 것이 매우 특이했다.
그들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바람을 타고 퍼지며 풍겨 오는 향긋한 요리 냄새에 코를 실룩거렸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는지 배가 요동을 쳤고, 괴인들은 점점 더 흥분 상태로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냄새를 맡기 위해 ‘킁킁’ 거리더니 곧이어 하나둘씩 울부짖기 시작했다.
―크아!
―키에엑!
그들의 울부짖음이 커지자, 마을 안에선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며 곳곳에서 횃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분주한 움직임보다 괴인들의 행동이 더욱더 민첩하고 신속했다.
일반인보다 키는 작지만 더 큰 덩치를 가진 괴인들은 비호와도 같은 속도로 마을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마을 입구를 봉쇄하기 위해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경비병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슝!
조잡하게 만들어진 활을 달리면서 쏘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가 경비병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렇게 편하게 마을 입구를 장악한 괴인들은 양 떼 우리 안에 들어간 늑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활을 쏘고 몽둥이를 휘둘러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남은 경비병들과 몇몇 사내들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고 막아 보려 노력은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들에게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은 피와 살육을 즐기는 마족이기 때문이다.
* * *
쾅!
“벌써 다섯 마을이 당했단 말인가!”
헤이나 영지의 주인인 로그의 호통에 모든 가신들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수하된 입장에서 미리 예방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 저주받은 마하마야가 감히 내 영지에 나타나다니…… 단 한 놈도 곱게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머리에 사방을 바라보는 마신의 하얀 눈을 문신으로 세긴 마하마야는, 태고에 신들에게 저주를 받고 버려졌다고 전해진다. 이런 속설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인간과는 좀 다른 외형과 타고난 전투 감각 그리고 무척이나 호전적인 성격 등을 고려한다면 결코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 부를 수 없었다.
“레언!”
로그의 호명에 레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아버님.”
“너는 당장 기사를 이끌고 가서 그 저주받은 마족을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말살시켜라. 할 수 있겠느냐?”
“맡겨만 주십시오. 그럼 감히 저희 영지를 더럽힌 그것들의 머리를 바치겠습니다.”
레언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로그는 믿음직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르피어!”
로그의 두 번째 호명에 세르피어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예, 아버님.”
“너는 레언이 이번 사냥을 잘 치를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를 해 주거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