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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어렸을 적부터 저잣거리에서 살다시피 하였으므로 관량은 제법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이나 냉막해 보이는 교관의 표정을 보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때 교관이 입을 열었다.
“전원 동작 그만! 원위치!”
다들 갑작스런 교관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내 직감은 틀리는 법이 없구먼. 젠장!’
관량은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이 설마 했던 그대로임을 느꼈다.
이어서 교관의 미간이 꿈틀거리며 다시금 노성을 발하려고 하였고 관량은 일이 더 이상 틀어지지 않게 재빨리 움직였다.
관량이 움직일 때쯤 같이 움직이는 자들도 여럿 보였다.
그들도 관량과 같이 제법 눈치가 빠른 자들일 것이다.
둔한 축에 드는 이들은 그제야 움직였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밖에서 교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원 복장 해제한다! 실시!”
관량은 대강 뭐 하려는 짓인지 파악되기 시작했다.
환복 훈련이라……. 이거 무슨 똥개훈련도 아니고 이따위 걸로 초반 분위기를 잡으려 하다니. 우습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이만큼 초반 분위기를 압도할 것도 없다 여겨졌다.
어차피 달리 방법도 없었기에 장삼을 벗어 던지고는 침상에 누웠다. 일수유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교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전원 기상! 셋 셀 동안 내 앞에 집결하라. 하나…….”
그 같은 일이 백 번이 넘어갔을 때 드디어 교관은 만족하였고, 훈련위사들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문에서 교관이 서 있는 공터까지는 오십여 장 거리, 다른 자들의 숙소 또한 동일한 구조였으므로 마찬가지였다.
이 거리를 자그마치 백 번이 넘게 왔다 갔다 했다. 말이 백 번이지 족히 오천여 장에 이르는 거리였다.
일신에 지닌 무예가 뛰어나 금의위사에까지 뽑힌 자들이었으나 개중에는 벌써부터 숨을 헐떡이는 자들도 보일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관량은 애써 거친 숨을 들이마시며 태연한 척 대열에 합류하였다. 관량 또한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이들보다도 더욱 힘들 것이었다. 비록 금의위에 들기 위해 하후평으로부터 호되게 수련을 받았다 하나 저잣거리에서 보낸 유년기의 허송세월은 그의 몸을 폐인으로 만들어 생각만큼 몸이 따라 주지 못하고 있었다.
관량은 그러한 자신의 몸에 화가 치밀었다.
가만히 있어도 사시나무 떨리듯 부르르 떨어 대는 다리를 거칠게 두드려 진정시켰고 한 발, 한 발 떼어 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밀려드는 고통을 참아 내며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하였다.
참으로 지독한 독기라 할 만했다.
관량에게 있어서 이 독기 하나만은 장점이라 할 만했다.
무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권각술과 창술을 배웠기에 머리가 제법 익어 갈 때쯤부터 제법 실력 좀 있다 하는 또래는 찾아가 꺾어 주곤 하였다. 그러던 것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열다섯 살 때부터 아예 그쪽으로 뛰어들어 뒷골목을 전전하며 오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친우인 하후평을 만나게 되었다. 하후평은 아버지와는 동향 친우로 죽마고우라 할 만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 홍무제 주원장의 부대 십호장으로서 전쟁에 참여했던 터라 명제국이 안정되기 시작할 즈음에서나 찾아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하후평은 가끔씩 찾아와 무예를 전해 주었다. 비록 어릴 적부터 기초를 닦았다 하나 오 년 동안의 뒷골목 생활은 그를 오히려 퇴보시켰고 그로 인해 지난 오 년간이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뒷골목에서도 ‘미친개’로 통했던 독기로 그는 무예를 어느 정도 닦아 꿈에 그리던 금의위에까지 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편 교관은 그들을 데리고 한참을 돌아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깊은 암굴로 안내했다.
훈련위사들에게 나눠 준 규율집에 쓰여 있듯이 질문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저 묵묵히 따라갈 따름이었다.
어둑어둑한 암굴로 들어서자 오히려 눈앞이 훤히 밝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땅굴의 벽면과 천장에는 무수한 야광주가 붙어 있어 암동을 밝혀 주고 있었다.
돈깨나 들였겠다 생각하며 한참을 뒤따른 후에야 암굴이 끝이 났다. 밖으로 나서자 보이는 것은 울창한 수림이었다.
남경 토박이인 관량의 경험상 아마도 동남쪽에 있는 야산 지대로 온 모양이었다.
진회하(秦淮河)를 경계로 동남쪽의 야산 지대와 서북쪽의 번화가가 나뉘었다.
아마 여기는 야산 지대의 얼마쯤일 것이었다.
한참을 더 가서야 목적지가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높디높은 산중에 인력으로 만든 듯한 널따란 초지에다가 삼 층짜리 누각이 서 있었다.
널따란 초지도 초지려니와 그 누각은 딱 보아도 명장의 손길이 닿은 듯 웅장하고도 장중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어찌 이런 산중에 이런 누각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넋을 잃고 누각을 바라보는 훈련위사들의 앞에 교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들 중 두 명은 안면이 있는 자들이었다.
한 명은 이곳까지 관량과 훈련위사들을 인도해 온 냉막한 삼십 대 장한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입문관에서 본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그들은 차례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먼저 냉막한 인상의 삼십 대의 장한은 역시 예상대로 체력 훈련을 담당하였고 이름은 가전(賈殿)이라 했다. 다음으로 입문관에서의 사십 대 중년인의 이름은 공손후(公孫譃)로 정보 요원으로서의 지식과 소양의 교관을 담당했다.
이어서 십팔반무예를 담당하는 삼십 대의 우람한 체격을 지닌 교관이 목염(木炎)이었고 교관 중 유일한 여성인 삼십 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농염한 여인이 바로 암기술(暗器術)의 교관인 취설(醉雪)이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십 대의 미소 띤 중년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네. 나는 훈련위사들의 총교관을 맡은 엽우(葉虞)라 하네. 금의위사는 임무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분류가 되네. 일반적으로 대외적으로 알려진 금의위인 무력 단체로서의 황무위사(皇武衛士), 특수 단체 월영(月影)으로 대표되는 첩보위사(諜報衛士), 그리고 요인 암살 등의 임무를 부여 받게 될 암행위사(暗行衛士)가 그것이네. 앞으로 짜여진 계획에 맞게 1년 동안 훈련을 하게 된 후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곳으로 배정될 것이네. 아무쪼록 아무런 사고 없이 모두 무사히 통과하길 바라겠네.”
그의 인자해 보이는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을 주었다. 관량은 적이라면 저자가 가장 위험 인물이라 생각되었다. 그의 웃음 뒤에 감추어진 잔뜩 벼린 칼날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적일 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 같은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듯했다. 그는 자신을 훈련시킬 총교관이니까.
관량은 전신을 타고 흐르는 기대감에 가볍게 몸서리쳤다. 이제부터 자신은 금의위사였다. 그렇게도 되고자 했던 금의위사.
하나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생각보다도 더 자신의 체력은 약해져 있었고 주변에 늘어선 자들은 어느 하나 경시할 자가 없어 보였으니 말이었다.


제2장 금의위(錦衣衛) 훈련(訓練)


1

타타타탁!
마치 비조와 같이 빠르고 날쌘 놀림으로 수십의 인영이 숲 속을 스쳐 지났다. 그들의 오감은 극도로 단련되어져 전력으로 험준한 산을 오르면서도 나뭇가지 하나, 넝쿨 하나 닿는 일이 없었으니 기사라 할 만했다.
불과 달포(약 한 달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따름인 금번 금의위 훈련위사들의 변화된 모습이었다.
어느덧 그들의 눈에서는 독기 어린 날카로운 눈빛이 흐르고 있었고, 보보마다 힘이 넘치고 빨랐다.
그들에게는 이제 이 정도의 야산쯤은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때였다. 산등성이에서 우르릉! 하는 괴음이 들리며 거대한 무엇인가가 훈련위사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족히 장정 둘은 합친 크기만 한 큰 돌덩이였다. 산비탈을 따라 굴러 내려오며 그 속도는 종잡을 수 없이 빨라져 훈련위사들의 지척에 이르렀을 때에는 가히 벽력암전과 같았다.
하나 그들의 눈에서 당황의 빛은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낸 그들은 비쾌하게 움직여 갔다.
“산개하라!”
타타탁!
중앙에 자리한 사내의 외침에 순식간에 횡으로 자리하여 이동하던 대열이 크게 일렁였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순식간에 나누어진 훈련위사들은 어느새 수십여 개의 돌덩이를 피해 내고 있었다. 놀랄 만큼 빠른 대처였고 또한 침착한 모습이었다.
종전의 목소리의 주인공인 체력 훈련교관 가전은 내심 흡족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여 갔다. 생각보다도 이번 기수의 훈련위사들은 뛰어났다. 특히나 그중 몇몇은 지금껏 배출해 낸 위사 중에도 단연 돋보이는 자들이었으니 그렇게 흡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뛰어난 실력들이다. 반 수 이상이 이전 기수의 실력을 웃돌고 있고 그중 몇몇은 발군이구나. 특히 23호는…… 천고의 무골이라 불릴 만한 자다. 이런 자가 금의위에 든 것은…… 과연 행운일까? 아니면……?’
가전은 의혹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23호의 능력은 출중하여 강호의 명문대파의 제자 중에서도 쉬이 찾아보기 힘든 기재였으니 비록 근자에 이르러 천하제일세를 구가하는 금의위라 하나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3호의 재능은 전형적인 무인의 그것, 첩보와 암행으로 대표되는 금의위사와는 궤를 달리하는 탓이었다.
‘지켜보면 알겠지, 어떤 자인지……. 그리고 의외의 인물은 38호다. 관부 무장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라던가? 한때 한량으로 저잣거리를 전전했다 들었다. 과연…… 한 마리 거친 늑대와도 같은 자구나. 그리고 생각보다 더욱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이고……. 기대되는구나, 이번 기수들은!’
강렬하게 빛나는 가전의 시선은 어느덧 산등성이에 이르러 절벽암벽을 손과 발로 비쾌하게 오르는 관량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다.

또다시 한 달여가 지나 훈련위사가 된 지 두 달여가 지났을 무렵이 되었으나 그동안 훈련에 변화는 전혀 없었다. 단지 그 이동 반경이 더욱 광범위해졌고 몸에 가한 제약이 더 늘었을 뿐이었다.
두 달 동안 다른 교관들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단지 체력 훈련교관인 가전만을 지겹도록 봐 왔을 따름이었다.
가전은 연일 훈련의 강도를 높였다.
하루에 5리씩을 더하더니 종래에는 산 십여 개를 범주로 정하고 해가 지기 전에 왕복하였다. 그리고 거리를 늘릴수록 몸에 제약 또한 더욱 가해졌다. 그 제약이라는 건 다름 아닌 몸에 짊어진 돌덩이의 무게였다. 무척이나 질긴 천으로 만든 등에 멜 봇짐을 하나씩 주더니 그 속에 차곡차곡 돌덩이의 양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산을 타자니 죽을 맛이었으나 두 달 동안의 강훈련은 관량을 비롯한 여러 훈련위사들의 체력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집중력과 끈기까지 향상시켜 포기란 그들에게 허용치 않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암굴을 지나 초지에 도착하자 오랜만에 보이는 교관들이 있었다.
총교관을 제외한 모든 교관이 모여 있었는데 오늘부터 조를 편성하여 시간을 짜 돌아가며 교육을 받는 식으로 한다 하였다.
총 여덟 개 조로 짜였는데 여섯 조가 다섯씩, 나머지 두 조가 넷씩이 편성되었다.
관량은 넷이 한 조인 조에 편성되었다.
같은 조에 배속된 자들은 4호와 7호, 23호였다.
4호는 덩치가 산만 한 자로 척 보기에도 힘이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눈망울이 크고 선하여 어딘지 모르게 금의위사로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7호는 38명의 훈련위사 중 단 두 명뿐인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박꽃같이 흰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다 매우 미인이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눈빛이 너무도 냉막하여 마치 찔러도 피도 안 나올 듯싶었다.
마지막으로 23호는 지금까지 훈련 도중 가장 우수한 실력을 자랑하였던 자로 길게 기른 머리가 두 눈을 가리나 언뜻 비치는 그 눈빛이 매우 깊었다. 게다가 그는 항상 검을 지니고 다녔는데 척 보기에도 전신이 날 선 검과 같아 오랜 수련을 한 것으로 보였다.
칠 일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조별로 돌아가면서 4개의 과목을 수련하였고 그 기간에 훈련위사들은 저마다의 장기를 드러냈고 취약한 부분 또한 드러내었다.
그 와중에 점차 두각을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자는 역시 23호로 십팔반무예, 암기술, 신법, 정보 분야 할 것 없이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다. 이에 같은 조인 관량 또한 그를 의식하여 더욱 수련에 매진하였고 어느새 관량 또한 수위에 오른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첩보 요원으로서 가장 적합한 기량을 보이는 자는 7호였다. 7호는 여성으로서의 섬세한 장기를 살려 암기술에 부쩍 재능을 보였고 정보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도 천부적인 능력을 보였다. 다만 십팔반무예와 체력의 부분에서 중간 이상을 겨우 유지하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었다.

거부(巨斧)를 든 곰 같은 사내의 앞으로 협봉검을 치켜든 흑의경장녀가 쇄도해 왔다.
“이얏!”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휘둘려진 거부는 웅웅 소리를 냈고, 반월의 궤적을 그리며 눈앞의 흑의경장녀를 횡으로 쪼개 갔다.
하나 그 순간 마치 땅으로 꺼지듯 사라진 흑의경장녀의 빠른 몸놀림에 거부를 든 거한의 일수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마치 하늘을 유영하는 선녀의 움직임과 같은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어느새 순식간에 거한의 뒤로 날아든 흑의경장녀는 등 뒤의 요혈(要血)을 노리고 득달같이 찔러 들었다.
찻!
뻗어 가는 검봉에는 유려한 힘이 실려 있었고 이를 지탱하는 두 다리는 종적을 알 수 없을 만큼 괴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흑의경장녀의 이 한 수의 날카로움은 비범한 구석이 있어서 장내의 중인들은 다음 순간 거부를 든 거한이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나 그 순간 놀랍게도 거한은 훙! 하고는 앞으로 번쩍 뛰쳐나갔다. 등 뒤의 날카로운 기감을 느끼고 다급히 임기응변으로 앞으로 뛰쳐나간 것이었다. 하나 이 한 수는 흑의경장녀의 의표를 찌르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그녀는 칫! 하고는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퉁망울만 한 큰 눈을 부릅뜨며 거부를 든 거한이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진일퇴의 공방에 중인들의 신색에 감탄이 어려 갈 때 교관 목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4호와 7호의 승부는 무승부다.”
서로를 향해 예를 표한 후 대열 속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목염은 말을 이었다.
“7호는 난영무형보(亂影無形步) 특유의 장점을 잘 살려 유려하고도 은밀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7호가 보여 준 모습이야말로 첩보위사와 암행위사로서 가장 적합한 모습일 것이다. 하나 그 힘이 아직 미약하니 좀 더 검술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4호는 타고난 신력이 실린 진천십팔부(震天十八斧)법의 강맹함이 일절이었다. 능히 강호에 나가도 행세를 할 수준이라 할 만했다. 하나 그 힘을 받쳐 줄 보법의 조예가 떨어지니 좀 더 보법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4호는 앞으로도 황무위사에 목표를 두고 정진하길 바란다.”
7호가 펼친 보법은 난영무형보라 하여 금의위의 독문보법이었다. 이는 모든 금의위사들의 대표적인 보법으로 훈련위사 시절에 배우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7호는 가장 난영무형보에 적합한 형태의 무예를 펼치고 있었고 4호는 상극인 셈이었다.
이런 이유로 4호가 진천십팔부(震天十八斧)와 함께 익힌 것이 황무위사들의 보법인 복호노보(伏虎怒步)였다. 복호노보는 엎드린 호랑이의 노한 걸음이란 이름답게 무척이나 호쾌하면서 장중한 보법으로 4호에게 적합한 것이었다. 하나 그 화후가 떨어져 부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은 38호와…….”
자신의 번호가 불리자 그제야 관량은 졸린 눈을 비비며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신형을 일으켰다. 계속되는 대련에 지겨움을 느낀 나머지 고목나무에 기대어 졸던 터였다.
그런 관량의 모습을 잠시간 살피던 목염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갔다.
‘38호…… 네 녀석이 얼마나 성장하였는지 한번 봐야겠구나!’
짐짓 눈매를 번뜩이던 목염은 반대편을 바라보며 호명하였다.
“31호!”
목염의 말에 장내는 소란스러워졌다. 관량과 31호의 결전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였다. 둘 모두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출중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고 평소 그들 중 누가 나을 것인지 갑론을박이 오갈 정도로 화제를 모아 왔으니 말이었다.
‘31호라…… 좋군. 네놈과는 한 번쯤 창을 섞어 보고 싶었다!’
관량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전신을 관통하는 짜릿한 흥분에 도취되어 갔다. 그만큼 31호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상대였다.
훈련위사 중 가장 강한 도객(刀客)이었으니 말이다.
31호는 여섯 척 오 촌이 넘는 거한으로 훈련위사들 중 4호 다음으로 큰 사내였다. 그의 도법은 천신신력에서 비롯되는 강맹함이 장기로 연환되어 다가드는 그의 도는 바위를 쪼개고 집을 허물 만하였다.
31호 또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장내로 걸어 들어왔고 중간에서 맞대어진 창과 도가 떼어짐과 동시에 그들의 승부는 시작되었다.
차앗! 먼저 움직인 것은 31호였다. 평소 말수가 적고 행동이 조심스러운 그답지 않은 선공이었으나 그만큼 그가 느끼는 긴장감이 큰 것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38호…… 녀석은…… 맹수다! 선공의 묘를 놓친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이야!’
붕!
거대한 장도(長刀)를 갈지(之) 자로 휘두르며 31호가 쇄도해 들었다. 도라는 병기는 본래 거센 힘으로 상대를 베어 내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였다. 이러한 특성에 맞게 도법(刀法) 또한 강맹함과 흉포함을 담았다. 그리고 31호가 펼치는 관부의 반양의도법(反兩儀刀法)은 도의 장점을 극대화한 실전적인 형태라 할 만했다.
차차창!
관량의 삼 장 앞 공기를 찢어발기며 흉포한 도세가 들이닥쳤다. 이에 신형을 돌려 피해 내는 관량의 움직임에 마치 독사의 움직임처럼 도세가 독랄하게 따라붙어 왔다. 상체의 열두 개 요혈을 점하며 달려드는 도세는 흉맹하기 그지없었다.
투두둑!
어느새 도세에 스친 주변의 수풀이며 나뭇가지 따위가 장내에 흩날렸다.
관량 또한 이에 감히 경시할 수 없음을 느끼며 비로소 손에 쥔 창을 들어 올려갔다.
“좋군. 하면 한번 받아 보라! 이야앗!”
관량은 상대의 강함에 절로 신명이 났다. 강한 상대를 대하는 것만큼 무인의 투혼을 자극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관량은 눈앞의 31호라면 마음껏 자신의 창술을 펼쳐 볼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따다다당!
갈지 자로 다가선 도세를 강맹한 찌르기로 맞아 갔다. 창에 실린 힘은 흡사 바위를 꿰뚫고 땅을 허물 정도! 31호는 대경하여 급히 막아 갔으나 위태로이 네 걸음이나 물러서고 말았다.
“치잇!”
네 걸음이나 물러선 자신의 신색에 일순 수치심을 느낀 31호의 도세가 급변하며 훙훙! 하는 바람을 가르는 거센 소리를 동반하며 득달같이 다가들었다.
반양의도법의 살초라 할 수 있는 만겁불복(萬怯不復)을 펼쳐 가는 것이었다. 일순 관량의 전신을 난자할 듯 수십의 도영(刀影)이 면전으로 날아들었다. 한 자루 장도에서 뻗어 나오는 도세는 과연 하늘에서 내리는 만겁과도 같은 재앙이었다.
관량의 입매가 더욱 올라갔다.
생각보다도 31호의 도세는 강력하였고 이 정도라면 그간 뼈를 깎으며 해 온 고련의 성과를 견주어 볼 만하다 여겨졌다.
순간 관량의 창세는 찌르기에서 무한의 원의 궤도를 그리는 휘창식으로 변환되어졌다. 이는 관량이 익힌 관부의 24로창식 중 후반 12로상의 연강휘창식(軟剛揮槍式)의 재주였다.
창대의 중앙을 엇갈려 잡은 두 손의 휘돌림에 수천, 수만의 벌 떼가 날갯짓하는 듯한 소리가 일어나며 31호의 도세와 부딪혀 갔다.
쩌엉!
마치 거대한 망치로 바위를 두드린 소리와 같이 거센 충돌음이 일어나며 31호는 마치 거대한 벽에라도 막힌 듯 나아가지 않는 자신의 도를 바라보며 신음을 삼켰다.
‘도대체 이 무지막지한 힘은 무엇이란 말인가?’
관량의 창세의 강맹함은 자신의 도세에 비견될 만하였다. 본래 창이란 병기가 전장에서 말과 함께 적장을 베어 넘기는 무기라 하나 거도(巨刀)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한데 전력을 다한 자신의 도세를 힘으로 막아 간 것이다.
‘혹여 내공을 익힌 것인가?’
외공으로 이만한 힘을 낸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문득 상대가 내공심법을 익힌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하나 이내 고개를 저어 가는 31호였다. 금의위의 훈련위사에게는 내공심법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도 38호는 내력을 지니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순전히 단련된 신력으로 자신의 거구에서 나오는 도세를 막아 갔다는 것이 아닌가?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십수 번의 창과 도의 부딪힘이 있은 후 관량은 문득 상대의 도에 밀리는 자신의 창세를 느끼고 입술을 질끈 깨물어 갔다.
‘칫! 그렇게 고련하였건만 아직 힘이 미치지 못하는가?’
문득 속에서 휘몰아치는 투쟁심을 느꼈으나 강(鋼)이 막혔다면 쾌(快)로 상대하는 것이 이치였기에 하는 수 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공세를 전환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