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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관량은 어제의 일이 있기 전부터 그의 무로(武路)에 어떠한 벽이 닥쳐왔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 몸과 창은 떨어질 수 없는 지기와도 같아 초식의 수발을 능숙하고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게 되어 마치 물이 흐르듯 잔잔한 강물도, 세찬 파도도, 회오리치는 소용돌이도 창술에 녹아들어 갔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것으로도 사실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으나 광노의 노도와 같은 천외천의 무학을 접한 후 그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그와 같은 무공을 펼치고 싶은 타들어 가는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 실마리가 되는 것이 몸속에 모아 놓은 공력(功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그 길은 관량에게는 요원한 것이었다. 희뿌연 안개에 가려져 그 길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관량이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밖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장원의 원(元)주인들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호! 신참이 왔나 본데? 어이! 안에서 궁둥이 처박고 있지 말고 잽싸게 어르신들 앞으로 튀어나와라∼잉! 왔으면 선배님들한테 신고를 해야지. 이거 개념이 덜 잡힌 놈이로구먼!”
장원의 정원을 지나 소연무장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모두 세 사람이었다.
그중 걸쭉하게 말을 건네는 비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거한은 녹저(祿猪)라고 하였는데 백타(白打)의 고수로 그 분야의 교관을 맡고 있는 십호장(十戶長)이었다. 그 뒤에 선 비쩍 마른 중키의 냉막한 인상의 장발한 사내가 능한(凌寒), 머리를 산발한 채 퀭한 눈빛으로 염주만 굴려 대는 통에 파계승으로 미루어 보이는 자가 광불(狂佛)이란 자였다. 그 둘 또한 십호장들로 각기 검(劍)과 봉(棒)을 담당한 교관들이었다. 이들은 누구 하나 평범한 자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능한이란 자가 그나마 범인처럼 보일 뿐 모두들 잠깐 스쳐 가도 뇌리에 박힐 만한 독특한 외모였다.
모옥의 문이 열리고 관량이 무심한 눈길로 걸어 나왔다. 하나 그의 눈은 금세 눈앞의 사내들의 해괴한 모습에 휘둥그레졌다. 삼십 줄에 이른 나이로 그리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접해 본 관량이건만 눈앞의 이자들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로 인해 그도 모르게 슬쩍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고 이를 본 녹저가 노성을 발하며 팔을 걷어붙이며 다가왔는데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쿵쿵! 울리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쭈! 이 포를 떠도 시원찮을 놈이 감히 우리 면전에서 비웃었어?! 네 이놈! 오늘 한번 제대로 신고식을 열어 주마!”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서던 녹저는 어느 순간 가볍게 발을 놀리며 세찬 바람과 함께 면전으로 다가섰다.
그 큰 손바닥을 곧게 펴고 육장을 쭈욱 뻗어 오자 부웅! 소리와 함께 만만치 않은 경력이 들이닥쳤다. 그의 장법은 독특한 방식으로 펼쳐졌는데 팔목과 손바닥이 동시에 뻗어졌다. 보통의 백타술이 관절 마디마디의 끊어짐과 유연함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데 반해 그의 백타술은 하나의 큰 흐름에 의해 동시에 펼쳐지니 여간 난감할 수 없었다.
오른손과 왼손의 육장이 연환되어 펼쳐지자 장내에는 육장의 잔영(殘影)들로 가득 찼고 관량은 이에 물러서지 않고 땅에 다리를 고정시킨 채 굳건히 마보 자세를 취한 후 타(打)의 수법으로 하나하나의 잔영을 모조리 쳐 나갔다.
육장과 잔영이 부딪힘에도 퍽! 하는 타격음이 들렸으니 괴이한 일이었다. 순간 관량의 마음은 납덩이를 짊어진 듯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음! 이자도 내공력을 익힌 자인가?’
상대인 비대한 자와 순식간에 수십 번의 공수를 주고받으며 잔영과 부딪힌 육장이 시큼하게 아려 오는 것을 느끼며 관량은 상대가 비록 그 화후는 떨어지나 내외공을 두루 익힌 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관량은 오히려 전력을 다해 공격해 갔는데 이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자에 대한 어떠한 시기심과 함께 형(形)과 식(式)을 한계에 다다르게 익혔다 생각되는 자신의 진정한 무위를 확인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일순간 변한 관량의 분위기에 잠시 이채를 발하던 녹저는 이내 코웃음을 치며 육장에 더욱 힘을 실어 갔다.
“와하하! 이거 신참치고 대단하구만! 그럼 이것도 받아 보거라. 이 어르신의 절기인 파혼장(破魂掌)이니라.”
대성일갈과 함께 녹저의 분위기는 몹시 흉흉해졌는데 손에서는 둥둥! 거리며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막강한 경력이 엄습해 왔다. 혼을 깨뜨리는 장법이라는 이름답게 참으로 거침없는 장력이었다. 이에 관량의 무복은 일진광풍(一進狂風)에 휩쓸려 마치 낙엽이 바람에 속절없이 나부끼듯 위태롭게 나풀거렸으나 그 중심에 선 관량은 극히 여유로운 신색이었다. 가볍게 권장을 뻗어 가는 관량의 머릿속으로 숙부인 하우평에게서 전수 받은 사격타법의 오의가 스쳐 지나갔다.
‘사격타법(四擊打法)이란 타(打), 퇴(腿), 솔(率), 나(拿)의 간단한 수법을 연환하는 백타술이다. 백타술의 근간이 되는 두 다리는 굳건히 천지(天地)간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깊이 뿌리 박은 다리는 정(停)하되 끊임없이 동(動)해야 하고 이때 비로소 백타술을 펼칠 기본을 이루게 됨이라. 뻗어지는 타(打)는 느리되[緩] 나태함이 없어야 하며[無懶怠].’
이미 녹저의 파혼장은 관량의 지척에 이르러 있건만 관량은 무척이나 가볍게 일 권을 뻗어 갈 뿐이었다. 일 권은 그 속도도 극히 느려 제대로 뻗어지기도 전에 관량이 피곤 죽이 될 판이었다.
‘빠르되[速] 조급함이 없어야 하고[無躁] 상대의 빈틈[隙穴]을 자연스럽게 찾아 들어가[訪赴].’
순간 관량의 여유롭게 직선으로 뻗어 가던 권장이 빛살 같은 속도를 띄고 날아갔는데 공교롭게도 녹저의 잔영의 빈틈을 절묘하게 뚫고 들어갔다.
‘한 번 뻗어진 타(打)는 굳건한 두 다리에서 끌어올린 전신의 잠력을 폭발시켜 단번에 상대를 격살시킨다. 후발선지(後發先至)의 묘리를 더한다면 그 순간 사격타법은 완성되리라.’
관량의 권장에서는 어느새 쉭쉭!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육중한 힘이 실려 있었고 순식간에 마혈 중 하나인 어깨뼈와 양팔의 뼈가 만나는 거골혈(巨骨穴)을 강타했다. 늦게 발출하여 먼저 이르는[後發先至] 고절한 수법이었다.
마혈에 극심한 타격을 입은 녹저는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눈알을 까뒤집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손속에 사정을 둬서 망정이지 사혈을 노리고 전력으로 펼쳤다면 이미 녹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리라.
놀라운 관량의 무위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능한과 광불은 관량의 시선이 향하자 얼른 포권을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반갑소. 이거 대단한 무공을 지니셨구려! 그래도 녹저 하면 천무단의 십호장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인물인데 일 수에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허. 대단하오. 나는 능한이라 하오.”
능한이란 자는 냉막한 첫인상과는 달리 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미소를 띠며 말했는데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자였다. 저런 부류의 인물들이 항시 뒤통수를 치는 걸 보아 온 관량이었기에 건성으로 받은 후 시선을 돌렸다.
“아미타불! 광불이오.”
광불이라 한 사내는 정말로 파계승이었던지 연방 불호를 외우며 합장하였다.
오히려 능한이란 사내보다는 이자가 더 신뢰가 갔다. 사연이 있어 보이나 악한은 아닌 듯 보였으니 말이다.
“나는 관량이라 하오. 새로 온 십호장으로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텐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오. 뭐 걸어오는 싸움이야 받아들일 의향은 있으나 그건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
“하하. 여부가 있겠소이까?! 그나저나 얼른 녹저부터 치료해야겠소. 광불! 같이 좀 드세나.”
“아미타불! 그러세.”
마치 뒷골목의 하오배처럼 거칠게 경고성을 발하는 관량의 말에 능한이 너스레를 떨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녹저를 들쳐 멘 광불과 서둘러 의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데 이때 떠나가는 능한의 시선은 연방 관량과 들쳐 업힌 녹저를 향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이로구나. 녹저는 본시 심성이 악독하여 자신이 받은 치욕을 쉽게 넘기지 않는 자인데 말이야. 아마도 관량이란 자를 죽여야 직성이 풀릴 텐데 관량이란 자의 실력이 저리도 높은 데야……. 하나 녹저의 독심이 쉽게 포기할 것이 아니니 문제구나.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에이! 모르겠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 아니던가.’
의방으로 향하는 능한은 애써 수심을 지우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관량은 녹저와의 일전을 다시금 짚어 보고 있었다.
사실 방금 전의 일전에서 관량이 손속을 과하게 쓴 구석이 없지 않았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는데 무력 집단의 특성상 온갖 거친 자들이 죄다 모이는 곳이다 보니 첫인상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래서 과하게 힘을 써서 진면목을 보인 동시에 자신의 실력 또한 알아본 것이다.
하나 덕분에 그동안 빠져 있던 심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로서는 득이 많은 결과였다.
‘틀리지 않았다! 내 무예는 바른길을 걷고 있음이야. 이제는 반드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야!’
관량의 마음은 안개처럼 뿌옇던 시야가 어느덧 걷혀 가는 듯하였다.
그 시각, 호유용은 조반을 든 후 그가 평소 즐겨 마시는 용정차(龍井茶)를 음미하고 있었다. 소박한 것이나 호유용은 평소 아침을 들고 마시는 용정차를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묘약(妙藥)이라 아낌없이 말할 정도로 이를 즐겨 왔었다.
한참 용정차의 향에 취해 그윽한 표정을 짓던 호유용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수하로 인해 얼굴을 찌푸렸다.
“어떤 놈이냐?!”
“신 진녕이옵니다.”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그의 심복인 진녕이었다. 진녕과는 평소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인지라 비록 시기심이 많고 의심이 많은 그로서도 믿고 아끼는 유일한 수하였다. 뻔히 자신의 이 같은 취미를 아는 진녕이기에 무언가 중요한 일인 듯싶었다.
“무슨 일인 게냐?!”
이에 진녕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깊이 부복하며 말했다.
“주군! 성공했습니다. 전서를 보내는 즉시 북원의 투구스테무르[脫古思帖木爾]가 20만 몽골군을 일으키기로 하였고 또한 동영(東瀛)의 오가사와라 막부의 천황(天皇) 유타나리[小笠原寬成]로부터도 일천여 채의 함선과 5만 수군을 지원하기로 약조를 맺었습니다.”
이에 호유용이 너무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들고 있던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챙그랑!
파편이 바닥에 널리 퍼져 어지러이 널렸으나 그 따위는 호유용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했고 그는 한달음에 걸어가 부복한 진녕의 등을 두드리며 대소(大笑)하였다.
“와하하하! 천군만마(千軍萬馬)가 따로 없구나! 이것으로 무대는 서서히 갖춰지는구나. 주원장!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무슨 수를 써서 막을 것이더냐! 와하하하!”
주인의 기뻐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진녕 또한 크게 웃음 지으며 좋아하니 마치 당장에라도 천하를 통일한 분위기였다.
왜 안 그러겠는가? 이선장과 규합하며 용과 봉이 만나 명실 공히 명제국 최고의 권세를 지닌 데다 이제는 다른 지방 맹수들마저 끌어들였으니 가히 천하를 손에 쥐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온 방 안을 가득 채운 격앙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덩그러니 바닥을 뒹구는 찻잔 조각들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아침 햇살에 반사된 사기 조각들은 시리도록 불길한 요요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5
태양이 중천(中天)에 이르지도 않은 이른 아침.
종산(鐘山)의 아침을 깨우는 고성이 산야를 뒤흔들었다.
종산을 뒤로하고 진회하에서 뻗어 나온 물줄기를 면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천애의 요새, 호가장의 대연무장에서는 웃통을 벗어젖히고 뜨거운 땀을 흘려 가며 수련을 하는 기천에 달하는 장정들의 기합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제1식, 적사유수(赤巳流水).”
지면보다 이 장여의 높이로 쌓아진 단 위에서 목청을 돋우는 중년인의 구령에 맞춰 대연무장에 집결한 수백 장정들의 동작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핫! 한목소리처럼 동시에 쩌렁쩌렁 기합성이 울려 퍼지며 그들의 손에 들린 봉이 유선의 궤적을 그려 갔다.
수련무사들인지라 아직 창을 들지 않고 봉을 사용 중인 것이었다.
도합 팔방을 점하며 이어지는 유선의 움직임 속에서 봉은 마치 강물을 유영하는 뱀의 그것처럼 꿈틀대었고 튀어오른 땀방울마저 그 속에 가둘 듯했다.
“제2식, 적사비천(赤巳飛天).”
이어진 구령에 마치 앞의 1식과 이어지는 하나의 초식처럼 자연스럽게 수백 장정들은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친 뒤 전후사방, 팔방을 무한(無限)의 원을 그리며 베어 갔다. 작게는 팔꿈치를 축으로 크게는 허리를 축으로 하여 끊임없이 원을 그리는 무한의 궤도는 반경 이 장여에 이르는 공간을 장악하듯 하였다.
이에 단 위의 중년인 또한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목청을 높였다.
“제3식, 적사혈아(赤巳血牙).”
따다다당!
수백 장정들은 땅에 내려서기 무섭게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잔뜩 힘을 모으더니 각자의 앞에 세워진 표적을 향해 극강의 찌르기를 펼쳤다.
그 찌르는 횟수는 개인차가 있는 듯 많게는 서너 번, 적게는 한두 번에 그치는 자들이 태반으로 각양각색이었다.
본래 이 적사혈아라는 초식은 방어를 도외시한 극강의 찌르기로 상대의 요혈을 여덟 번 찌르는 초식이었다. 하나 아직 그 화후가 지극히 낮은 수련무사들인지라 서너 번 찌른 것이 가장 뛰어난 축에 들었다. 이 적사혈아라는 초식이 특이하게도 찌르는 횟수에 비례해 점점 그 위력이 늘어났는데 여덟 번을 모두 찔러 가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로 가장 적사창법의 화후가 높은 천무단주 임현(臨縣)도 겨우 일곱 번 찌를 따름이었으니 실용성에 바탕을 둔 관부의 무예치고는 고절한 무학이라 할 만했다.
비록 단 세 번의 차이지만 네 번을 찌르는 것과 일곱 번을 찌르는 것은 위력이 천양지차여서 보통 뛰어난 장정들은 네 번 정도까지는 가능하였으나 다섯 번 이상부터는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마지막 적사혈아를 시전한 장정들은 온몸의 기력을 소진한 듯 온몸을 부르르 떨어 댔고 이에 단 위의 중년인은 목소리를 높여 휴식을 명했다.
“일각 동안 휴식하겠다. 모두들 편하게 앉아 쉬도록 하여라. 일각 후 바로 다시 시작할 것이니 온몸의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이에 수백 장정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단 세 식의 창법을 수련한 것치고는 과하게 힘을 소진한 모습이었는데 이것만 보아도 적사창법이 예사 관부의 창법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량 또한 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대단한 창법이 아닌가. 내가 익힌 관부의 24로 창술과 내 독문절기인 섬전창 또한 이에 뒤지지는 않으나 창술에 이러한 변화와 위력을 담을 수 있다니, 내 오늘 제대로 안계를 넓히는구나!’
관량이 감탄하는 적사창법은 모두 7초식으로 이루어진 창법으로 송나라 때의 유명한 창술가인 서문휘(西門輝)의 독문창술인 제6식, 적사창법(赤巳槍法)을 호유용의 무장 중 가장 강한 천무단주 임현(臨縣)이 제5식, 적사이이(赤巳痍离)를 더해 완성시킨 터였다.
이는 반년도 되지 않은 일로 그전에 가르치던 12로 관부창법에서 새로 들여온 적사창법으로 바꾼 지는 그 반도 되지 않았다.
관량은 짐을 풀고 아침을 간단히 든 후 상부에서의 호출로 이곳 대연무장에 이르렀다. 이곳에 들어서자 이미 수백의 장정이 열과 오를 맞추고 절도 있게 정렬해 있었고 관량은 열 명의 다른 창술 부교관들과 함께 단 위의 창술교관 흠패(欽覇)의 뒤에 시립한 채 수백 장정들의 호쾌한 창법을 지켜보았다.
지켜볼수록 강맹하고 호쾌한 창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흥취가 동함을 느끼며 자신의 창법에 더해 익힌다면 더욱 수련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한편 일각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교관 흠패는 다시금 목소리를 가다듬고 쩌렁쩌렁 외쳤다.
“흠! 다들 다시 정렬! 지금부터 적사창법 후반부 세 초식을 배워 보겠다. 시범교관 앞으로 나오시오!”
“예!”
관량의 좌측 두 번째에 있던 무뚝뚝해 보이는 삼십 대 장신의 장한이 기다란 창을 꼬나 쥐고는 단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큰 키에 비해 마른 체구였으며 두 다리와 두 팔이 유난히 긴 무척이나 특이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윤자겸(倫柘兼)이란 자로 천무단주 임현, 총교관 흠패 다음가는 적사창법의 고수였다.
그로부터 한 시진 하고도 반시진에 걸쳐 후삼식 제4식, 적사속보(赤巳速步), 제6식, 적사유변(赤巳流變), 제7식, 적사출세(赤巳出世)를 연달아 펼쳐 보이며 부분 동작으로 끊어 가르친 후 반복하였다.
하나 적사창법 7식 중 최후 초식인 제5식, 적사이이(赤巳痍离)는 수련에서 제외하였는데 그 이유는 죽기 직전의 마지막 상황에서 펼치는 최후 초식인지라 한 줌의 잠력이라도 끌어 모으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외에 별다른 수련이 필요 없는데다 그 수련마저 극도로 위험한 것이어서 제외시킨 것이었다.
천무단주 임현이 이 최후 초식을 새로 창안할 때 그는 주원장과의 힘든 싸움이 될 것을 예상하고 부상을 당하거나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까지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 힘을 보탤 수 있게 이 초식을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잔인한 발상에 의한 것이었으나 그 위력만은 최후 초식이라 이름 지어질 만하였다.
관량과 나머지 아홉 명의 부교관들은 대열 사이사이로 뛰어들어 수련무사들의 동작들을 바로잡아 주는 일을 하였는데 지도를 하던 중 관량의 눈에 한 십대 후반의 어린 소년이 들어왔다.
사실 그 소년의 창법은 그 화후가 지극히 낮아 겨우겨우 동작을 따라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 그리 눈에 들어올 수준이 아니었으나 관량의 관심을 끈 것은 창술이 아니었다.
바로 그 소년의 독기 어린 정열이었다.
연방 입술을 앙다물고는 한 수, 한 수 비지땀을 흘려 가며 단 하나의 실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였는데 그 재능은 그리 뛰어난 것이라 할 수 없었으나 독기 하나만은 칭찬해 줄 만하였다.
특히나 그 소년의 모습을 보자 자신의 유년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며 시선이 자연 소년에게서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게 아니다! 창을 힘껏 쥐되 창을 손에 가두려 하면 아니 되며 창이 호흡을 할 수 있게 숨통을 열어 줘야 한다. 너는 지금 창과 호흡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을 지배하려 함이니 어찌 창과 하나가 될 수 있겠느냐.”
관량은 마음이 일자 성심성의껏 세세한 자세에서부터 창을 대하는 마음가짐까지 가르쳐 갔다. 그가 창법의 대가라 하기에는 그 스스로도 부끄러운 마음이 있을 것이나 무학을 대하는 자세만은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는 눈앞의 어릴 적 자신을 빼다 박은 듯한 소년에게 무학의 기본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싶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해가 중천에 떠올랐고 교관 흠패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전 수련은 이것으로 마치겠다. 오후에는 권장술을 수련할 것이니 미시(未時)가 되면 이곳으로 다시 모이도록 하라. 모두 해산!”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 장내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고 저마다 전신의 땀방울을 닦아 내며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정들이 저마다 움직이기 시작하였지만 관량의 앞에 선 소년은 우물쭈물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였다.
“네놈의 이름이 무엇이냐?”
이에 관량이 넌지시 물었다.
“양화운(楊華雲)이라 합니다.”
소년은 우물쭈물거리던 좀 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당차게 말했다.
“혹여 양가(楊家)의 후예인 게냐?”
“방계일 따름입니다.”
이에 관량은 은연중 상당히 놀랐는데 양이라는 성을 지녔기에 혹여나 창법으로 유명한 양가인지 물었음인데 방계이나 양가라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양가는 송나라 때의 유명한 무가(武家)로 양가창법(楊家槍法) 하면 아직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뛰어난 창술 중 하나였다. 하나 송이 망하며 남송으로 옮겨 갈 때 양가의 후예들 또한 근거지를 잃고 천하 곳곳으로 흩어져 근자에는 간간이 양가창법을 쓰는 자가 등장하여 겨우 그 명맥이 유지될 뿐이었다.
“한데 어찌하여?”
양화운은 그저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으므로 관량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엇인가 좋지 않은 사연이 있음이니라.
양화운이 고개를 숙여 읍을 하고는 물러가자 관량 또한 점심을 먹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첫날인지라 일행이 없이 혼자 식사에 전념하던 관량의 옆에 한 사내가 털썩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무척이나 호방한 성격으로 보였는데 눈 밑이 거뭇하고 얼굴이 홍조를 띤 것이 평소 주색에 빠져 있는 자로 보였다.
“하하. 반갑소. 나 설군(泄君)이라 하오.”
호탕하게 말을 걸어온 사내는 설군이라는 자로 관량과 함께 창술의 부교관을 맡고 있는 십호장 중 하나였다.
그는 비록 인상이 험악한 편에다 그 행실이 바르지 않아 보였으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자는 아닌지라 오히려 마음이 갔다.
“관량이라 하오.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되었소. 잘 부탁드리오.”
관량은 마주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했고 그 후로 잠시 대화를 나누자 설군이라는 사내의 시원시원하며 호방한 성격에 절로 호감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