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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마치 일창(一槍)에 꿰어 낼 듯 만월을 응시하던 관량은 이내 자조적인 표정을 짓고는 시선을 돌렸다.
‘비록 싸움에 패했다고는 하나 그로 인해 밝게 비추는 달빛마저 시기하였단 말인가? 아…… 나 관량이 고작 이 정도 사내에 불과하였단 말인가!’
깊은 장탄식을 터뜨린 관량은 무섭게 머리를 저으며 마음을 다스려 갔다.
‘어차피 그에게 질 게 뻔한 싸움이 아니었던가? 그와 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곱절은 실력의 차이가 난다. 실력이 낮다면 더욱 정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이렇듯 한탄만 한다면 사내대장부가 아닌 것이다!’
자신을 타일러 가자 순간 가슴속에 불이 지펴지며 다시금 한 줄기 호승심과 함께 불길이 일었다.
이에 창을 가져온 관량은 그때부터 고고한 달빛 아래 한 폭의 창무(槍舞)를 펼치기 시작했다.
무엇을 펼칠지 생각하고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창을 뻗고 휘두르고 또한 찔러 갈 따름이었다.
24로 관부창법과 적사창법은 그 속에서 본래의 것이되 본래의 것이 아닌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뻗어 내는 창에 웅혼한 진력이 담겨 갔다. 이는 관량이 가진 공력의 효능이 아니었다. 극의에 이른 창법의 묘용이었다. 달빛에 버금가는 은빛 서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가며 관량의 일 수, 일 수에 주변이 한 움큼씩 패여 나갔다.
하나 정작 펼치는 본인은 전혀 이를 알지 못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내뻗는 관량의 마음은 마치 너른 평원을 질타하는 듯 유쾌하고 즐거웠으니 절로 호탕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와하하하!”
이는 마치 창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으며 또한 눈앞에 무엇이 닥쳐온다 해도 모조리 베어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자신감을 주었다.
이윽고 창무를 끝내고 멈춰 선 관량은 순간 자신이 지금 상상치 못할 엄청난 무엇인가를 펼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금 펼쳐 보려 하였으나 어찌 된 셈인지 펼치고자 하니 도저히 제대로 동작이 이어지지 않았다.
하늘은 관량에게 그와 같은 천우신조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음이었다. 비록 머릿속과 가슴속에 지금의 창무에 대한 선연한 모습이 깊숙이 간직되어졌지만 무슨 하늘의 조화인지 이를 펼쳐 낼 수 없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관량은 이에 다시금 탄식하였다.
비록 한순간에 불과한 값진 경험이었으나 그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무학의 새로운 길을 보여 주었다. 한데 이를 펼칠 수 없다니…….
그 뒤로 몇 번을 더 펼쳐 보던 관량은 이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다행히도 그 순간의 기억이 머리와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따름이었다.
방에 들어 유등 불을 켜자 공교롭게도 유등 불마저 다 떨어져 가는지 그 빛을 위태롭게 일렁이며 마지막 심지를 태우고 있었다.
척 보기에 채 일각도 못 가서 그 빛을 다하리라.
이에 유등불을 끄고 새로이 기름을 채워야 했으나 관량은 마음이 납덩이를 짊어진 듯 무겁고 심란하여 아무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저 서탁에 손을 뻗어 습관적으로 여암진경을 펼칠 따름이었다.
수십 번을 읽어 머릿속에 한 자, 한 자 모조리 외운 지 오래이건만 다시금 관량은 읽어 나갔다.
관량은 이미 여암진경상의 운기토납법의 연정화기(練精化氣)의 단계마저 이룬 후였으므로 신공절학을 익히지 않는다면 백여 년을 연공하여야 겨우 그다음 단계인 연기화신(練氣化神)의 단계에 이를 터였다.
이에 연공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최근에 그로 인한 실망감이 적지 않게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근자에 이르러 이렇듯 머릿속에 외운 지 오래인 여암진경상의 운기토납법을 정독하는 것은 근자에 생긴 관량의 습관 중 하나였다.
어느덧 전반부를 모조리 읽어 나갔고 연기화신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자 다시금 누르스름한 종이로 된 부분이 나왔다. 역시나 먹물이 번진 듯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득 호기심이 인 관량이 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어떠한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에 서책을 덮으려는데 그 순간 공교롭게도 생명이 다한 유등불이 꺼지고 말았다.
게다가 유일한 방의 통로라 할 수 있는 작은 창과 문을 모두 빛 한 점 새어 들 수 없게 닫아 놓은 상태였던지라 유등불이 꺼지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들었다.
하는 수 없이 방문을 열어 빛을 드리우려는데 일순 손에 든 서책에서 이상한 빛이 흘러나왔다.
의아심에 유심히 들여다보자 누르스름한 종이에 먹물이 번지듯 퍼져 있는 것들이 어떠한 형태를 띠며 빛을 내고 있었다.
이에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았으나 무언가 형태가 있기는 하되 그것이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낙담하고 다시금 방문으로 손을 뻗던 관량은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아! 탄성을 터뜨린 관량은 즉시 눈에 의념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지금 일전에 호가장에 야행을 나설 때 사용했던 그 암로명안(暗路明眼)의 비술을 시전하려는 것이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몸에 익어 버린 운기법이 동시에 일어났고 단전에 모인 내력이 두 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량은 이전에 펼치던 암로명안의 술법보다 시야가 몇 곱절은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을 느끼며 깜짝 놀랐다.
‘내력의 효용이란 것이 무궁무진하구나. 한낱 어두운 밤을 밝히는 재주에 불과하다 여겼던 술법조차 공력에 힘을 더하니 그 위력이 상상할 수 없이 증대되는구나!’
다시금 마음의 공부의 무궁무진한 효용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여암진경으로 돌렸을 때 깜짝 놀란 관량은 순간 손에 든 서책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서책을 집어 들자 놀랍게도 누르스름한 종이에 먹물이 번지듯 펼쳐졌던 형태는 수많은 글자로 바뀌어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여암진경(呂岩眞經)은 나의 진신절학을 담은 것으로 나는…….

전반부의 운기토납법의 마지막에 이어지던 말에서 후반부는 시작하고 있었다. 절로 입에 고이는 침을 꿀꺽 목울대로 넘겨 낸 관량은 긴장한 채 한 자, 한 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 한다. 속세에서의 이름은 경(瓊)이고, 자(字)는 백옥(伯玉)이며 또 다른 이름은 소선(紹先)이다. 출가 이후에는 이름을 암(岩)으로 고쳤고, 자는 동빈(洞賓)이라 하였었다.
이를 일컬어 한때 세상을 내 것인 양 철없이 주유하던 때 사람들은 나를 여동빈(呂洞賓)이라 하였다.

관량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암진경을 지은 이가 다름 아닌 여동빈이었던 것이다.
여동빈이 누구던가? 팔선(八仙)이라 칭해지는 선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선계에 들기 전 그는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드높았던 자였다.


4

남경성의 서남쪽에 있는 삼산(三山).
세 개의 용머리가 높이 솟아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삼산의 한 귀퉁이에는 하늘을 우러르고 높이 솟은 하나의 대(臺)가 있었다.
그 이름은 금릉봉황대(金陵鳳凰臺)!
이곳은 그 유명한 당대(唐代)의 시인 이백(李白)이 대에 올라 아래를 굽어본 데 이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른 후 건곤(乾坤)에 걸친 그 절경에 장탄식을 터뜨리고는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대라는 한시를 지어 이를 칭송한 걸로 널리 이름을 얻은 바 있었다.
봉황대의 끄트머리 천장단애(千丈斷崖)!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디뎠다간 그대로 절벽으로 곤두박질칠 듯 위태로운 그곳에 한 봉두난발의 괴인이 한 자루 고색창연한 장검을 지닌 채 우뚝 서 있었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인해 괴인의 용모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언뜻 스쳐 가는 바람에 일순 괴인의 눈매가 드러났다.
길고도 큰 눈 안에는 구름이 있었고, 강이 있었고, 또한 세상천지를 담고 있었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더할 수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며 또한 끝없는 경외심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내 잦아든 바람에 제자리를 찾은 길게 드리워진 머리카락에 다시금 가려지는 눈이었으나 청옥(靑玉)과도 같던 신묘한 눈빛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도저히 잊히지 않을 듯했다.
어느 순간 구름 한 점 없이 평온한 하늘에 먹구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 움직임이던지 금세 한낮의 삼산을 짙은 어둠으로 물들였고 곧이어 추적추적 내리는 장대비와 함께 우레와 같은 천둥이 쳐 오기 시작했다.
우르릉! 꽈광!
마치 구름 위에서 한 마리 성난 적룡(赤龍)이 분노를 토해 내는 듯하였고 종래에는 수십, 수백 가닥의 백색뇌전(白色雷電)이 땅(地)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흡사 세상의 종말(終末)이라도 찾아온 듯한 그때 서서히 괴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인의 움직임은 너무도 느렸다. 마치 한 동작, 한 동작에 억겁의 세월이 담긴 듯한 괴인의 움직임은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둬 둘 듯 손에 고이 모시던 검파(劍把)에 청사(靑蛇)라 음각된 장검을 들어 이윽고 한 폭의 검무(劍舞)를 빚어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춤이되 또한 춤이 아니었다.
반개한 괴인의 눈에서 뻗어 나오는 짙은 안광과 고색창연한 장검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검기(劍氣)는 하늘을 가둘 듯하였고 괴인의 주위 반경 오 장여는 빗물조차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먹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마치 용트림을 하듯 귀청을 찢어발기는 창룡거성(蒼龍巨聲)이 들리며 그 노화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뜻에 반하는 괴인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는 듯하였다.
꽈과광!
수십, 수백 가닥의 뇌전은 동시에 괴인을 향해 내리치지 시작했다. 너무나도 밝아 눈을 멀게 만드는 백색의 뇌전들은 금세라도 괴인을 꿰뚫을 듯 경세무비하고도 두려웠다.
하나 일순 고개를 들어 이를 올려다본 괴인은 마치 미소를 짓는 듯 입매를 들어 올리며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한데 다음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 자루 장검에서 뻗어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구름이었다. 맑디맑은 흰 구름들이 수도 없이 검에서 뻗어 나오며 먹구름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욱 노한 하늘에서 뇌전과 폭우로 위협하였으나 괴인은 끄떡도 하지 않은 채 더욱 많은 구름을 피워 낼 따름이었다.
어느덧 뇌전에 대항하던 괴인의 싸움은 먹구름에 대항하는 괴인이 낳은 맑은 구름과의 싸움으로 변해 갔고 서서히 먹구름은 그 수가 줄어들어 종래에는 온 하늘이 맑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그 순간 맑은 구름 사이로 드러난 하늘에는 한 마리 거대한 적룡이 노화 띤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이내 힘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쳐 댔다. 적룡이 괴인에게 패한 것이었다.
이를 무심히 바라보던 괴인은 자신이 만들어 낸 구름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적룡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괴인이 손을 뻗자 적룡은 그 떨어짐을 멈추고 괴인의 앞으로 딸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적룡을 바라보던 괴인은 조용히 뇌까렸다.
“몹쓸 악룡(惡龍)이로구나. 내 그간 속세에 정을 끊지 못해 선로에 들지 못하였으나 네놈을 인세(人世)에 둔다면 연이어 화를 일으킬 것! 네놈을 봉인하기 위해 선계에 들리라! 청사(靑蛇)!”
그 순간 괴인의 장검에서 한 마리 거대한 푸른 뱀이 튀어나왔다. 뱀은 뱀이로되 용과 닮은 이무기란 놈이었다. 푸른 이무기는 힘을 잃은 적룡을 휘감아 갔고 이내 붉은 용을 푸른 이무기가 칭칭 감아 버렸다.
이를 바라보던 괴인은 손짓과 함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오르는 괴인의 입에서는 뜻 모를 말들이 뻗어 나왔다.
“하늘마저 가두는 것이 바로 진정한 천둔검법(天遁劍法)이라!”
괴인은 무엇인가 뒤이어 말을 하고 있었으나 짙은 구름 속으로 사라져 그 여운만 주변을 아스라이 맴돌 따름이었다.

짙은 어둠 속을 꿰뚫는 한 줄기 밝은 빛에 손으로 눈을 가리며 관량은 눈을 떴다. 벌써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대략 시각은 진시(辰時) 초로 미루어졌다.
진시 중엽까지 연무장에 들어서야 했으니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이에 급히 몸을 일으키던 관량은 순간 아차! 하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일주일간 무술대회에 대비해 특별히 자유 시간을 주었으므로 연무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터였다.
이에 마음이 여유로워지자 다시금 생각은 좀 전에 꾼 꿈에 미쳤다. 참으로 인상 깊은 꿈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잠에 들기 전 여암진경상의 전반적인 내용을 읽고 영보부법(靈寶符法)을 수련했었다 하나 참으로 영묘한 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아마도 꿈속에서의 괴인은 여동빈(呂洞賓)이었으리라.
그의 손에 들린 장검이 바로 그가 지니고 다녔던 절세의 보검인 청사검(靑蛇劍)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가 펼친 검술이 바로 그가 검선(劍仙)이란 칭호를 듣게 한 천둔검법(天遁劍法)이리라.
관량은 다시금 꿈속을 떠올리자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꿈속에서 본 무학은 참으로 고절하여 감히 한낱 인간의 몸으로는 펼칠 수 없는 천외천(天外天)의 것이었다.
어찌 인간이 검으로 비를 막는 무형의 강기를 만들고 또한 구름을 불러낼 수 있단 말인가?
하나 비록 꿈이었다 하나 여암진경 속에 든 무학의 고절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영보부법을 수련한 것만으로 순식간에 곱절은 늘어난 자신의 공력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비록 그 네 단계 중 고작 한 개의 단계를 넘어섰을 뿐이지만 말이다.
흐뭇한 마음에 관량은 다시금 간밤의 수련하던 때를 떠올렸다.

여암진경을 쓴 이가 여동빈이라는 사실에 관량은 흥분에 들끓어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두 눈을 부릅뜬 채 읽어 나갔다.

여암진경(呂岩眞經)은 선로에 들기 전 인간이었을 당시의 나의 무학(武學)을 적어 놓은 것이다. 책에는 모두 네 가지의 무학이 담겨 있다. 이는 모두 귀일(歸一)하는 것이나 어느 한 가지만 익히더라도 경지에 이르는 고학이라. 그것은 도가비전의 양생술인 현결(玄訣), 영보부법(靈寶符法),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之法), 그리고 천둔검법(天遁劍法)의 네 가지이다. 전반부의 현결에는 나의 스승 종리권(鍾離權)께서 전수해 주신 도가비전의 양생술을 담고 있다. 이는 선로에 들기 위한 가장 정순한 내공을 쌓게 하는데 영보부법과 함께 익힌다면 더욱더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이다.
영보부법은 스승께서 종남(終南)산 학정(鶴頂)봉 위 동굴에서의 십 년 수련을 명하시며 주신 비전의 심공서이다. 이를 통해 나는 수도하여 몸속에서 음의 기운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영보부법은 나의 무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
일월교병지법은 십 년의 수련을 마친 후 악양루에서 스승을 봬 온 후 사조가 되는 고죽진군(苦竹眞君)을 만나 전수 받은 비전이라.
하나 이것은 사실 무학이되 무학이 아니다. 영보부법의 경지에 들기 위한 무리(武理)이되 또한 등선을 위한 도가의 진언(眞言)인 까닭이다. 선(善)을 행하여 육신을 벗으려 한다면 다른 것보다 앞서 일월교병지법을 극성으로 수련함이 옳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둔검법은 가히 천외천의 무학이라. 스승과 헤어져 천하를 주유하던 중 장강(長江) 하류 지역에 있는 천하명산 여산(廬山)에 놀러 갔다가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수련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이때 화룡진인에게서 배운 것이 바로 천둔검법(天遁劍法)이었다. 이를 배운 후 나는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는데 선로에 들기 직전인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화룡진인은 다름 아닌 원시천존(元始天尊)께서 분(扮)하신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친히 나를 선로로 안내하기 위해 항마(降魔)의 효능이 담긴 도가 비전의 검술인 천둔검법을 전수하신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선로에 들고 사특한 무리를 척결할 수 있었으나 이는 너무도 고절한 무학으로 경지에 들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

천둔검법에 대한 부분을 보자 관량은 천외천의 무학이라는 그것에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수십여 장의 책장을 넘기며 천둔검법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넘기자 마지막 장에서 드디어 짧은 글귀로 천둔검법이 쓰여 있었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제일식, 둔검영(遁劍影). 검의 그림자를 가두다.
제이식, 둔검의(遁劍義). 검에 뜻을 가두다.
제삼식, 운둔검(雲遁劍). 구름을 가두는 검.
제사식, 천둔검(天遁劍). 하늘을 가두는 검.

관량은 어안이 벙벙하여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 네 줄뿐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단 네 줄로 대체 무엇을 익히란 말인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설마 하는 한 가닥 의구심이 일어 그 아래 써진 글귀를 읽어 나갔다.

후인은 보라. 단 네 줄의 짧은 글귀로 인해 혼란하였을 것이다. 하나 화룡진인께서 나에게 전수한 것도 바로 이 네 줄이었을 따름이다. 그에 앞서 한차례 시범을 보인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후인은 이에 너무 섭섭해 말아라. 이는 천둔검법의 경세무비한 위력을 경계하여 행한 것인 바이다. 혹여나 악인(惡人)의 손에 이 서책이 들어간다면 인세는 화마(火魔)에 휩싸인 지옥(地獄)으로 변할 것임이 자명하기에 이를 경계함이라.
그래도 인연이 닿는다면 결국은 얻게 되리라. 다만 후인에게 일러 줄 말은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 속내를 살피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서책은 끝을 맺고 있었다.
안타까웠지만 관량은 이내 단념했다. 어차피 자신은 평생을 창을 수련한 바 다시 검으로 병기를 바꾸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소요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생각이 미치자 오히려 천둔검법을 얻을 수 없음이 복이 될 수도 있다 여겨졌다.
관량은 얻을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은 채 즉시 앞으로 다시 넘겨 영보부법(靈寶符法)을 익히기 시작했다. 서책을 통해 그간 익혀 온 운기토납법이 현결이라는 네 가지 비전 중 하나임을 알았으므로 그와 더불어 영보부법을 익히고자 한 것이었다.
영보부법은 현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미 현결의 연정화기(煉精化氣)의 단계까지 연성한 관량은 한 번 읽자마자 이를 이해하게 돼 곧바로 수련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보부법상의 운기법을 통해 서서히 운기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관량의 몸속에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지백해를 떠돌던 기운들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기운들끼리 드잡이질이라도 벌이는 듯 서로 옥신각신해 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에 호기심이 일어 몸속을 관조하자 놀랍게도 아래로 치우쳐 있던 화기와 위쪽에 있던 수기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채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극심해져 갔고 이에 정신마저 아찔해진 관량은 한 가닥 의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무의식적으로 더욱더 운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운이 점차 사지백해로 용솟음칠 때마다 양의 기운들이 승하면서 종래에 서서히 음의 기운들은 줄어들었고 결국에는 확연히 수적 열세가 된 음의 기운들이 위쪽으로 일패도지(一敗塗地)하더니 결국엔 구석으로 숨어들어 흩어지게 되면서 다시금 내식이 안정되어 갔다.
어느새 명치뼈와 배꼽 사이의 중간에 있는 중완혈(中脘穴)까지 치고 올라온 양의 기운들은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며 안정되어져 갔다.
내식을 다스리며 영보부법을 한차례 대주천(大周遷)한 후 눈을 뜬 관량은 온몸이 날아갈 듯 개운함에 깜짝 놀랐다.
혹시나 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단전을 관조해 보니 손톱 마디만 하던 내공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게다가 지금껏 유하기만 한 몸의 기운이 마치 염화(炎火)의 불길처럼 극강하였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본래 여동빈의 별호가 순양자(純陽子)이듯 영보부법은 음을 멸(滅)하여 잡념을 없애 극양의 순양지체(純陽之體)를 만드는 비전이었다.
이에 절로 마음이 들뜬 관량은 밤을 쉽사리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새벽까지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5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치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나 동시에 문득 의아심이 들어 밖을 바라보자 두 눈[目] 가득 들어오는 눈[雪]으로 가득 덮인 설경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벌써 때는 입동(立冬).
겨울에 들어서는 초입이라 하나 세상을 수북이 덮어 버린 눈은 과한 것이어서 조심스럽게 올 겨울의 폭설을 예상하게 하였다.
과연 남경성의 설경(雪景)은 아름다웠다. 저 멀리 보이는 삼산(三山)의 높이 솟은 준봉들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탓에 어둠이 옅게 깔린 아래 하얗게 내리운 흰머리들로 연륜과 함께 정취를 느끼게 하였고 그 주위를 담장 치듯 둘러싼 종산(鐘山)의 모습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어서 이를 본다면 하늘에 오른 신선조차 지상에 내려 머물러 갈 듯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