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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게. 허면 보타문의 무공 중에 자네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비록 여미려가 함께 있지만, 제자인 그녀가 들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양곤이 입을 열었다.
“네. 보타문의 무공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검후께서 수련하신 주산흑운검법(舟山黑雲劍法)이 유명합니다. 주산흑운검법은 모두 일곱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무생흑운(無生黑雲), 흑운투뢰(黑雲投雷), 뇌파난파(雷破亂波), 운변흑룡(雲變黑龍), 흑룡비천(黑龍飛天), 폭운멸도(暴雲滅島), 산운개천(散雲開天)의 초식입니다. 각 초식은 모두 일곱 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잠깐! 모두 육 초식이 아닌가? 내가 알기로 산운개천 초식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마지막 초식이라는 산운개천이 금시초문인지라 검후는 궁금함을 금치 못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일곱 초식입니다. 아!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사대 검후가 마지막 초식을 만들고 육대 검후까지만 전해졌다고 하더군요.”
검후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기억을 찾을 수 없었다.
‘장로전에 계시는 사부님께 여쭤 봐야겠네.’
“조부께서는 어떤 분이시기에 다른 문파의 무공을 그리 자세하게 아시는가?”
“할아버지께서는 아무에게도 자신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까 했던 양곤의 말을 기억한 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럼 내가 아는 초식에 대해 설명해 보게.”
여미려도 자신이 아는 초식에 대한 설명을 하려 하자 귀를 쫑긋 세우고 다가앉았다.
“네. 먼저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뒤로 디딘 상태에서 상체를 틀어 비스듬히 전방을 향하는 게 기수식입니다. 첫 초식인 무생흑운은 발검과 동시에 공격하는 초식으로 단전의 내기를 끌어올려 기운을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으로 인도합니다. 물론 쾌를 위주로 하신다면 수궐음심포경으로 흘리면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파지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잠시 말을 멈추었던 양곤은 보법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수태양소장경은 육기로는 수(水)이며 오행은 화(火)에 속하기에 등파보(登波步)를 펼칠 때는 보통 때와 달리 내기를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으로 흘리면 안 됩니다. 신형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육기가 풍(風)이고 오행도 풍(風)인 까닭입니다. 족소음신경으로 내기를 흘리게 되면 수태양소장경과 상충하는 기운인 탓에 내기의 흐름이 불안정해지고 자멸하는 기운이 많아져 위력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족궐음간경으로 흘리면 신형이 가벼워져 더 빠른 동작을 취할 수 있기에 발검이 빨라지고 위력이 강해집니다.”
양곤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부연 설명을 붙였다.
“그 이유는 족궐음간경이 육기로도 목이오, 오행으로도 목인 탓에 상생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목의 특성인 풍의 기운이 큰 도움이 됩니다. 빠르고 강해지는 요령이 이것입니다. 기운을 바르게 인도한 후 검병을 파지할 때는 새끼손가락을 중심으로 파지하며 검을 떨칠 때 손목을 이용해 가볍게 펼칩니다. 초식의 동작을 설명드리면…….”
양곤의 설명은 길게 이어지고 두 사제는 그의 말에 점점 빠져들었다.
미처 자신들도 몰랐던 자신들의 무공에 대한 설명에 사제는 입을 딱 벌리고 멍하니 양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여미려는 제쳐 두고 검후조차 그렇게 오래 수련했으면서도 겉모양만 훑었지 내기의 흐름은 그냥 사부가 전수해 주는 구결을 억지로 따라 했었다. 보통 무인들이 경맥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구결에는 기운을 흘리는 방법을 자세히 전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보법을 밟으며 펼치면 그냥 펼칠 때보다 위력과 속도가 많이 줄어들었었다. 자신은 단지 수련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양곤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검후는 그의 능력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소협이 내공을 수련할 수 있었다면, 천하제일의 고수는 따 놓은 당상인데 정말 아깝구나.”
“그만 되었네. 소협의 식견에 내가 놀라 기절하겠네. 머리가 어질거리니 그만 하시게.”
양곤은 검후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멈추었다. 이미 검후가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신이 나 설명하던 양곤은 그녀의 어지럽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여미려는 이미 앉은 채 기절했다.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 자네는 이제 무얼 하려는가?”
“그냥 천하를 떠돌며 유람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딱히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아! 북해에는 꼭 들러야 합니다. 할아버지들께 드릴 것을 구해야 하거든요.”
세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촌장이 양곤의 집으로 들어섰다.
“훈장, 계시는가?”
“촌장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식사 시간이 되어 들렀는데 손님이 계시는구먼.”
노회한 촌장은 두 여인이 무림인인 것을 단박에 눈치 챘다.
“안녕하세요. 전 여미려예요. 이분은 보타문주이신 검후 요소령이세요.”
“안녕하십니까. 요소령입니다.”
“안녕하신가. 이 마을 촌장이네.”
검후는 작은 어촌의 촌장이 무림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선들의 가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촌장은 세상에 두려울 게 별로 없는 간 큰 인물이었다.
“내가 며늘아기를 시켜 음식을 이곳으로 가져오라 하겠네. 훈장은 오늘 이곳에서 식사하시게.”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아닐세.”
촌장이 떠나고 잠시 기다리자 촌장 댁 며느리가 음식을 들고 찾아왔다. 그녀는 양곤이 구입해 둔 부엌의 살림살이를 이용해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 두고는 돌아갔다. 세 사람이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다시 단소운과 포천룡, 도소미가 양곤의 집을 방문했다.
“어서 오게. 안 그래도 막 식사를 하려는 참인데 같이 들게나.”
그들은 검후가 있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리려다 양곤의 음성에 조심스레 자리했다. 음식은 조금 모자란 듯했지만, 포천룡이 따로 가져온 음식도 조금 있었기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여미려와 도소미가 상을 치운 후 차를 내왔다.
“손님을 부려 먹다니 대단한 주인이군.”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에 단소운이 슬며시 농을 던졌다.
“미안하이. 혼자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하하하.”
검후는 젊은이들만의 시간을 주리라 생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나머지도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나중에 오너라.”
검후가 손짓을 하며 그들이 따라나서는 것을 말리고 보타문으로 돌아갔다. 남은 이들은 검후를 배웅하고 다시 모여 앉았다.
“여 사매, 문주님께서 기분이 좋으신 듯 보였는데, 일이 잘 풀린 모양이네?”
“네. 잘 풀린 것 같아요.”
“그럼 우리가 여기 오는 것도 허락 받은 것인가?”
“아뇨. 그건 모르겠어요.”
“좋다 말았네.”
단소운의 투덜거림을 보던 포천룡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품속에서 술병을 꺼냈다.
“천하의 뇌영필협 소협께서 무얼 그리 걱정하시나. 자자. 이거나 마시세.”
“역시 절강일도 소협이군. 하하하.”
단소운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양곤은 그들의 격의 없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래, 수련할 장소를 찾는다더니 마땅한 장소가 있던가?”
“아직 못 찾았다네. 자네 혹시 아는 장소가 있는가?”
“나도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딱히 아는 것이 없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도소미가 양곤에게 전음을 보냈다.
“소협, 저도 물어볼 것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헉.”
자신의 귀에 도소미의 음성이 울리자 부지불식간에 놀란 양곤이 헛숨을 들이켰다.
“왜?”
“왜 그러세요?”
다른 이들이 놀라며 이유를 묻자 양곤은 도소미를 바라보았다.
“도 소저께서 방금 제게 뭐라 하셨습니까?”
얼굴색도 변하지 않은 도소미가 입을 열었다.
“네. 제가 전음(傳音)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아! 네.”
양곤은 전음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몸으로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전음을 들어 놀랐습니다.”
모두들 무공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양곤이 처음 전음을 들었다는 말에 놀랐다.
“무공의 식견이 남다른 소협이 전음을 처음 듣는다니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여미려가 호기심이 가득한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사실 아는 지식은 머리에 담긴 것이지요. 할아버지들이 무공을 펼치는 것은 본 기억이 있지만, 전음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어서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도 소저, 뭐라 하셨습니까?”
자신들에게 숨기고 싶어 전음을 보낸 것을 알지만, 은근히 장난기가 발동했던 포천룡이 입을 열었다.
“제 무공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네.”
무공에 관한 일이라면 다른 이에게 밝히고 싶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초식을 펼치는 것을 보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양곤이기에 도소미는 말을 이었다.
“제 무공은 월천냉검(月天冷劍)입니다. 초식을 수련하면서 가끔 내기가 끊어지는데 왜 그렇습니까? 특히 세 번째 초식에서 네 번째 초식으로 넘어가며 자주 그렇습니다.”
“음…….”
잠시 기억을 더듬은 양곤이 입을 열었다. 모두 눈을 초롱초롱하며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월천냉검은 불교의 신장 중 달(月)을 담당한 천자인 월천자(月天子)의 가르침에서 창안된 검법입니다. 아주 광명정대한 검법이지요. 하지만 달을 주관하는 주신답게 냉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련하면 할수록 달의 밝고 깨끗한 신광, 지광, 사광, 리광이 일어나고 그 밝은 빛으로 수련자의 심상을 밝혀 지혜광명(智慧光明)을 얻게 합니다. 일종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련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저도 사부님께 그렇게 들었어요.”
도소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곤을 바라보았다.
“초식 이름을 모두 깨달음에서 가져온 열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초식 이름은 생략하고 세 번째 초식인 중묘정광(衆妙淨光)과 네 번째 초식인 안락세간심(安樂世間心)을 보겠습니다. 중묘정광초식은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갖가지 만연하는 것을 다 알아 깨닫는 것에서 창안된 초식이라 변초(變招)가 많습니다. 일종의 변검(變劍)이지요. 안락세간심은 즐거움을 얻어 깨닫는다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기쁨을 바탕으로 한 초식입니다. 네 번째 초식은 즐거운 마음을 바탕으로 넓고 빠르게 펼쳐야 하는 초식입니다.”
양곤은 도소미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변검을 펼치면서 수많은 변화를 머리에 떠올리며 펼치다가 사초식에서 돌연 즐거움을 바탕으로 하는 초식을 펼쳐야 하는 까닭에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내기의 움직임도 변검을 펼치기 위해서는 수양경(手陽經)으로 흘려야 하지요. 내기가 세 가닥으로 흩어져 있기에 공격력이 많이 약해집니다. 하지만 네 번째 초식을 펼칠 때면 양경(陽經)으로 흐르던 내기를 음경(陰經)으로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겉과 안이 뒤집히는데 그것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 없지요.”
원인을 짚어 낸 양곤이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도소미는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단초를 생각하느라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양곤의 입술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빙그레 미소 지은 양곤이 입을 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내기의 운행은 조금만 신경 쓰면 연결할 수 있지만,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초식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마음가짐이 초식에 맞아야지요. 쉬운 방법은 이렇습니다. 삼초식의 변화를 마무리 지을 때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을 이용한 변화로 마치세요. 그리고 바로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으로 내기를 유도하세요. 그러면 끊어짐이 없어지고, 위력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수소양삼초경은 육기로 화(火)이며 오행으로도 화(火)입니다. 수소음심경도 마찬가지고요. 보법은 아마 월천보(月天步)를 사용하실 테니 내기를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으로 흘리시면 초식의 날카로움이 더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마음이 중요한 무공입니다. 무심(無心)의 무공도 중요하지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르고는 무심의 경지에 이를 수 없지요. 가져야 버리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도 소저도 마음을 편히 가지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말 이해하시겠습니까?”
양곤의 간곡한 음성이 흘러나오자 도소미는 무엇인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 산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단소운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깨달은 것을 바로 시험해 볼 모양이네. 자자, 우리는 술이나 마시세.”
“그러세.”
포천룡이 동의하고 잔을 들었다. 모두 조금씩은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그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여미려는 완전히 콩깍지가 씌어 눈이 풀려 있었던 것만 달랐다.
* * *
제자들을 남겨 두고 보타문에 돌아온 검후는 회의를 열었다. 전대검후 화서연(華瑞蓮)을 비롯해 당주 급 이상 모두 모이는 대회의였다. 갑작스런 회의에 모두들 웅성거리며 무슨 사안인지 궁금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이렇게 대회의가 열린 적이 없었다.
“모두들 조용하세요. 이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비연당주(飛燕堂主)인 매화검(梅花劍) 화조령(禾朝鈴)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문주님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매화검의 말이 끝나자 검후는 자리에서 일어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번에 이렇게 대회의를 연 것은 결정해야 할 사안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제가 이번에 알게 된 인물이 있는데 그를 보타문에 모셔 무공사부로 삼고 싶어서입니다. 사람의 진실 됨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는 아직 연치가 어리나 무공에 관해 해박한 지식이 있고, 제자들을 가르칠 충분한 역량이 있습니다. 지금 무림의 사정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각 문파가 세력을 넓히기 위해 서로 눈치를 보며 자파의 무력을 기르고 있습니다. 보타문도 스스로 지킬 힘을 길러야 할 이 시점에 그의 도움을 받아 제자들을 가르친다면 보타문의 발전이 더 빨라질 것입니다. 나를 믿고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검후의 말이 끝나자 해경당주(海鯨堂主)인 비경도(飛耿刀) 차서경(車西鯨)이 우람한 덩치를 일으켰다.
“문주님, 그 사람이 이곳에 있습니까?”
“아직 데려오지 않았네. 의견이 모아지면 그를 이곳으로 데려오려 하네.”
“사람도 보지 않고 어떻게 결정을 하겠습니까?”
“내가 보증하겠네.”
검후가 보증한다는 말에 토를 달지 못한 차서경은 자리에 앉으며 구시렁거렸다.
“문주님, 저희 보타문의 무공이 타인에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해구당주(海狗堂主)인 난파해검(亂波海劍) 마시우(馬示牛)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그 사실을 아네. 하지만 그는 내공을 수련할 수 없는 체질이네. 우리 무공을 배운다 하더라도 펼칠 수 없을 것이네.”
“그래도 다른 이에게 전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을 사람이네. 식견이 높아 우리 문파의 무공을 타인에게 이야기할 사람이 아니네.”
검후는 자신이 아는 바를 속 시원히 밝힐 수 없었기에 그들을 이해시키기가 힘들었다. 전대검후인 화서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후, 그렇게 일일이 답해서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네. 그냥 가부를 손을 들어 표하도록 하게. 난 찬성이네.”
“네.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군요. 매화검, 진행을 부탁하네.”
비연당주가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좌중을 향했다.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손을 든 사람의 수를 헤아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반대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결과를 얻은 비연당주가 발표했다.
“찬성 육에 반대 구로 이번 안은 부결되었습니다.”
검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양곤을 보타문에 데려오려는 것은 그의 안전을 염려한 생각이었지만, 문파의 수장으로서 문파의 발전을 위해 그의 능력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정말 문파에 꼭 필요한 인재를 그들이 몰라 주는 까닭이었다. 사실 그들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양곤에 대해 모르는 탓에 문파의 절기가 유출되는 것을 염려했을 것이 분명했다.
다수결로 하기로 하고 문주인 자신이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사파나 마교라면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겠지만, 불문(佛門)을 표방하는 보타문에서는 모든 것이 다수결이 원칙이었다.
“검후, 아쉽지만 내게 다른 방도가 있으니 걱정 마시게.”
이미 속사정을 들은 전대검후는 어깨가 처진 제자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네.”
회의장의 모든 이들이 자리를 떠나고 검후의 측근인 비연당주와 전대검후만 그녀의 곁에 있었다.
“사부님, 다른 방도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한 문파의 수장 자리에 앉아서도 여전히 여린 마음을 지닌 검후를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던 화서연은 입을 열었다.
“검후가 개인적으로 문파에 초대하는 것은 문규에 어긋나는 일이 없네. 그리고 그 청년을 대사부로 맞아들이게.”
“대(大)사부요?
“아니네. 대(代)사부네. 대신 가르치는 사부라는 뜻이네. 본래 사부가 바쁘거나 일이 있으면 사부의 사형제 중 한 사람이 대신 가르치지. 그것을 대(代)사부라고 한다네. 그런 대사부로 삼아 자네가 정한 제자들을 가르치게 하게. 직전제자가 없는 무늬만 사부인 대사부로 삼으면 다른 사부들도 그를 질시하지 않을 것이고, 그 청년도 부담이 적어질 것이네. 그러다 그 청년의 능력이 인정받으면 자네의 면목도 서고.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 청년에게 세상의 이목이 쏠릴 것이고 능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긴 하다만, 낭중지추라 했네. 그 청년의 능력이 검후가 이토록 욕심낼 만큼 뛰어나다면, 계속 감추어질 수 없는 일이야. 대사부로 초빙해서 자네가 잘 보호하면 되지 않겠나?”
“좋은 생각입니다, 사부님.”
“비연당주, 내일 당장 그 소협을 문으로 모셔오게. 아! 무공을 모르니 매란국죽에게 교자를 가지고 가서 정중히 모셔오라 이르게.”
“네, 문주님.”
“그런데 검후, 그 소협의 동의는 얻었는가?”
일순 검후의 몸이 굳어졌다.
“아……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