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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장원이 완성된 다음 날, 양곤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양곤이 장원이 세워진 기념으로 잔치를 열기 때문이었다.
“대사부, 축하하네.”
전대검후는 보타문주가 이미 양곤을 대사부로 삼은 것을 공식적으로 문도들에게 알렸기에 드러내고 대사부로 불렀다.
“감사합니다.”
전대검후의 인사를 필두로 축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축하합니다, 대사부님.”
“축하드려요, 가가.”
“나도 대사부님이라 불러야 하나? 축하하네, 대사부님.”
“축하하네, 대사부. 헐헐헐.”
무림인들이 그를 대사부라 부르자 훈장보다는 대사부가 더 높아 보였던 촌장은 자기도 그의 호칭을 바꿨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 모두 그를 대사부라 불렀다.
“축하드려요, 대사부님.”
“축하드려요. 아이들을 맡기고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사부님.”
한참을 이어지던 인사가 끝나자 양곤이 그들을 훈육관으로 안내했다. 자수신니와 마을 아낙들이 새벽부터 준비한 상에 푸짐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각자 자리 잡고 앉은 이들은 크게 칭찬하고 차려진 음식을 즐겼다. 잔치 분위기는 떠들썩했고, 모두 자신의 집을 지은 양 함께 기뻐했다. 부족한 음식은 계속 채워졌고, 오랜만에 마을 사람들은 포식하며 즐거워했다. 흥겹기만 하던 잔치가 늦은 저녁에야 파하고 사람들은 양곤을 크게 치하하고는 각자 돌아갔다.
자신의 거처에 돌아와 겨우 한숨을 돌린 양곤은 가슴 뿌듯한 여운을 즐기며 차를 마셨다.
‘어쩌다 보니 장원까지 만들게 되었네. 할아버지들께 드릴 청린빙어를 구하러 북해에 가야 하는데 일이 자꾸 꼬이는 게 아닌지 몰라.’
처음 나올 때 할아버지들께 드릴 청린빙어를 구할 목적이었던 양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잠시 머물겠다고 생각한 이곳의 일이 자꾸 커지자 조금 난감한 생각도 들었다.
‘약속을 했으니 그냥 조금만 도와주고 최대한 빨리 북해로 가야겠다.’
마음을 정한 양곤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의 깜깜한 공간에 다시 여미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얗고 고운 얼굴의 여미려가 미소를 짓자 양곤은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스르르 위로 말려 올라갔다.

* * *

“그 대사부란 작자가 장원을 세웠다고?”
“네. 제법 번듯한 장원을 세웠고, 잔치도 벌였습니다. 전대검후가 그곳에 참석했었습니다.”
아구는 저녁에 먹은 푸짐한 음식이 기억나는지 파장걸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배를 슬슬 쓰다듬었다.
보고를 들은 개방의 녕파 분타주 파장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타문의 대사부란 이가 조그만 어촌에 장원을 세웠다는 말은 그가 새로운 문파를 세우거나 보타문의 세력을 넓히려 한다는 말로 들렸다. 더군다나 그곳에 강호의 절대고수 중 한 명인 전대검후가 나타났다는 것은 보통 사안이 아니었다.
‘음……. 아무래도 그곳에 사람을 심어 두어야겠군.’
“야, 아구.”
“네, 분타주님.”
“너 거기 가서 살아라.”
뜬금없는 분타주의 말에 아구는 ‘앗 뜨거워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분타주를 바라보았다. 어제 잔치 음식을 챙겨 오지 않아서 분타주의 눈 밖에 난 모양이라 생각한 아구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분타주님, 소인은 개방에 충성을 다하고, 한 번도 분타주님의 명을 거역한 적이 없는 착한(?) 개방문도입니다. 제게는 개방이 생명과 같습니다. 제발 저를 쫓아내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거지 생활을 하겠습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분타주님. 흑흑흑.”
어깨를 들썩거리며 안 나오는 눈물을 대신해 침을 눈가에 바르는 등 별 희한한 짓을 다 하는 아구를 멍하니 바라보던 파장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뭐 하는 짓이야? 누가 널 쫓아낸대? 거기 가서 보타문의 대사부란 작자를 감시하란 말이야. 어휴, 귀신은 뭐 하누. 저런 넘 얼른 안 잡아가고.”
그제야 분타주의 의중을 깨달은 아구가 벌떡 일어서 호기롭게 말했다.
“넵. 신명을 다해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알았으면 나가 봐!”
“저…… 근데 전 어디서 잡니까?”
작은 어촌에는 당장 머물 장소가 없었던 아구가 분타주의 눈치를 봤다.
“거지가 무슨 잠자리가 따로 필요해? 알아서 아무 데서나 업어져 자!”
파장걸은 덜떨어진 아구가 짜증이 나 옆에 있던 바가지를 던질 듯 자세를 잡다가 깨지면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빨리 안 가?”
눈치를 보던 아구는 더 대꾸하다간 눈먼 주먹맛을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꽁지가 빠져라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저런 놈을 수하라고 데리고 있는 내가 불쌍하네.”
중얼거리던 파장걸이 턱을 고이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대사부가 뭐 하는 거지?’

* * *

“아버지, 대사부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요.”
“그래, 뭐 어떻게 된 일이냐?”
“그 대사부가 문주님께서 선별한 제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거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지금은 전대문주님과 여미려 사고를 먼저 가르친다고 하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누가 누굴 가르쳐?”
“대사부가 전대문주님과 여미려 사고를 가르치신다고요.”
“전대문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배우신다고?”
“네. 소문이라 신빙성이 좀 떨어지지만, 제가 사숙들이 하는 이야기를 슬쩍 들어 보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해요.”
“그렇단 말이지.”
“네. 그리고 그 대사부가 작은 어촌 마을에 장원을 지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요.”
“장원을 지었다?”
연검장의 장주인 연화검은 딸의 이야기에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알았다. 내가 손을 써서 너를 그곳에 보내 줄 터이니, 가서 자세히 알아보아라.”
“네, 아버님.”
연영경이 방을 나가자 하인을 불러 총관을 들라 이른 연화검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뭔가 있어. 뭔가 큰 것이 있어.’
자신의 직감으로 상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직감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장주님, 부르셨습니까?”
“어서 들어오게.”
연검장의 총관인 천수금노(千手金奴) 천연갑(千然匣)이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장주님.”
지금 딱 그날 수입을 계산하던 터라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을 방해한 장주에게 곱게 대할 수 없었다. 연검장을 이만큼 키우는 데는 장주의 힘도 컸었지만, 일취월장 성장한 것은 천수금노를 얻은 후부터였다.
그의 과거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의 이재(理財)가 뛰어난 것을 안 장주가 이례적으로 총관으로 발탁한 후로 그의 능력이 세간에 알려졌다. 그는 재물을 너무 사랑해 이익이 되는 모든 것에 손을 뻗었기에 사람들이 그를 천수금노라고 불렀다. 물론, 야상(夜商)들의 영역은 건들지 못하도록 장주가 잘 통제했기에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는 그가 그날 이익을 계산하는 것을 방해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주 긴한 일이네.”
비록 자신의 아랫사람이기는 하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말씀해 보십시오.”
장주가 긴한 일이라 한 것이 돈에 관련된 일이라 생각한 천수금노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보타문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 모양인데, 그게 무슨 일인지 알아봐 줬으면 하네.”
“음, 대충이라도 짐작 가는 일이 없습니까?”
“최근에 보타문에 대사부란 직책이 생겼네.”
“대사부요?”
“나도 정확히 어떤 직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대검후에게 무공을 가르칠 정도의 무위를 가진 모양이야. 그리고 그 대사부가 장원을 지었다는구먼.”
“음……. 최소한 확인은 해 봐야 할 사안인 듯합니다.”
“그렇지? 나도 그리 생각하네. 그래서 자네가 사람을 시켜 확인을 좀 해 주었으면 하네.”
“알았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네.”
“쉬십시오, 장주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 천수금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전대검후를 능가하는, 아니 가르치는 고수가 나타났다? 반드시 알아봐야 할 일이군.’
그날 깊은 밤, 총관의 방 근처에서 검은 인영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새벽에 눈을 뜬 양곤은 자신의 침상이 조금 낯설었다.
‘참! 새집을 지었었지.’
잠자리를 정돈한 양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수주를 외우며 선기를 수련했다.
“목간중청기는 종좌이출하야 화위청룡재좌하고, 금폐중백기는 종우이출하야 화위백호재우하고, 수신중흑기는 종족하출하야 화위현무재호하고, 화심중적기는 종정상출하야 화위주작재전하고, 토비중황기는 종구중출하야 화위황룡재중이라.”
잠시 참오하는 사이 따사로운 햇살이 그의 창을 스치며 안으로 내려앉았다. 방이 훤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낀 양곤이 자세를 풀고, 굳은 몸을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일의 이보가 들려왔다.
[어젯밤에 누가 이곳을 둘러보고 갔다.]
[그래? 그런데 왜 나를 깨우지 않았지?]
[그냥 둘러보기만 하기에 내버려 두었지.]
[알았다.]
‘누가 이곳을 주시하는 모양인데 누굴까?’
방을 나선 양곤은 곳곳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아침을 즐겼다.
“대사부님, 식사 준비가 다 됐습니다.”
자수신니의 맑은 음성이 깨끗한 아침 공기를 뚫고 들려왔다.
“네. 지금 갑니다.”
달려가는 양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양곤의 오전은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순식간에 지나가고 오시가 되자 아이들이 서책을 옆구리에 끼고 삼삼오오 집으로 돌아갔다.
“대사부, 아이들이 글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구먼.”
아이들이 나감과 동시에 전대검후와 여미려, 단소운, 도소미, 그리고 포천룡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의 손엔 각각 보퉁이가 들려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잘 지냈는가?”
“안녕하세요, 가가.”
“안녕하십니까, 대사부님.”
아이들을 가르치던 훈육각에 앉은 그들에게 자수신니가 차를 대접했다.
“그런데 보퉁이는 무엇입니까?”
“무공을 수련하려면, 이곳에 머물러야죠. 그래서 당분간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 왔어요, 가가.”
여미려가 찻잔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보퉁이를 쓱쓱 쓰다듬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수련할 생각이네.”
포천룡의 말에 모두들 합창하듯이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끼리 이미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알았네.”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양곤이 빙그레 웃으며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옆에 앉은 자수신니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안함을 표했다. 군식구들이 늘어 그녀가 고생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대사부님. 그저 숟가락 몇 개 더 올리면 되는걸요.”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미리 이곳에서 너를 도와줄 아이들을 보내라고 일러두었다. 좀 있으면 그들이 올 테니 너는 그들이 할 일을 잘 일러 주기만 하면 된다.”
전대검후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자수신니를 바라보았다. 무공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그녀의 고운 심성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사조님.”
“저도 감사드립니다.”
양곤은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져 주는 보타문의 행사가 고마웠다.
“빨리 숙소를 정해 주게. 수련을 시작해야지.”
이미 양곤의 덕을 톡톡히 본 단소운이 재촉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른 수련을 시작해 그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따라오게. 따라오시지요.”
양곤이 그들의 방을 하나씩 배정해 주었다. 그들은 새로 지은 양곤의 장원이 크게 마음에 들었다. 검소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한 기분을 갖게 해 주었다.
그들은 짐을 두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양곤이 연무장에서 기다리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양곤이 그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아주 궁금했다. 방법이야 어떻든 자신들의 성취가 더 올라갈 것임은 분명했다.
포천룡을 필두로 해서 속속 도착했다. 그들의 시선은 온통 양곤에게 고정되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포천룡이 양곤을 향해 물었다.
“우리 먼저 점심을 먹을 게 아닌가?”
“밥 없네.”
포천룡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단식 수련인가?’
“하루에 두 끼만 먹는 것이 좋네. 굳이 꼬박꼬박 세끼를 먹을 필요가 없다네.”
“너무하는 거 같은데. 군식구라고 일부러 굶기는 거 아닌가?”
그제야 안색이 펴진 포천룡의 너스레에 모두 크게 웃었다.
“나도 안 먹네. 객쩍은 소리 말고 이리 와 보게.”
양곤이 무련각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원에서 제일 큰 건물인 무련각의 내부는 안으로 들어서자 더 넓어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연무장에 와서 바로 무련각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곳은 오운(五運) 육기(六氣)와 태극(太極)의 원리를 이용해 지은 곳이네. 내가 지정해 주는 곳에서 수련하게 되면 더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전대검후께서는 주산흑운검법(舟山黑雲劍法)의 후반부를 수련하실 터이니 건(乾)이라 쓰인 방을 이용하십시오. 그리고 미려는 감(坎) 방을 사용하고, 운 형 자네는 진(辰) 방에서 수련하게. 도 소저는 곤(坤) 방에서 수련하십시오. 용 형은 간(艮)이라 적힌 방에서 수련하게. 수련은 유(酉)시까지네.”
각자 수련 방을 배정한 양곤은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무인들이 자신의 수련하는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양곤이 무련각의 구조를 벌집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혼자 수련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진 방에서 오운육기와 태극의 기운을 더해 주도록 기관(機關) 진법(陣法)을 펼쳐 두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을 최적의 환경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자신이 일일이 지도하기에는 너무 일이 많았기에 생각해 낸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양곤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새로 구입한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겼다. 보타문에서 자수신니를 도와줄 사람들이 도착했는지 약간은 소란스러워졌지만, 금세 자수신니가 그들을 인솔해 숙소로 데려갔다.
이윽고, 유시가 되자 무련각에 들어갔던 수련생(?)들이 상기된 얼굴로 양곤의 서재로 모였다. 그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이 쉬지 않고 계속 수련을 한 모양이었다.
“대사부, 정말 대단했네. 내 살아오면서 이렇게 수련이 즐거웠던 적이 없는 듯하네.”
전대검후는 무련각에서 수련하면서 자신의 무공이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양곤이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이 내심 괘씸하게 생각되었지만, 수련을 시작하자 즉각 초식이 더 부드럽고 빠르게 펼쳐지는 것을 알았다.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그녀는 그동안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던 부분을 펼치며 양곤이 일러 준 곳으로 진기를 도인(導引)했다. 보타문에서 수련할 때보다 더 순수한 기운을 초식에 불어넣을 수 있었고 초식의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자신이 아는 무공을 모두 하나씩 펼치며 자신의 몸을 흐르는 내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더 뚜렷하게 느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잠시도 쉬지 않고 수련을 하던 전대검후는 무련각 자체가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무슨 짓을 해 뒀기에 그런 신비한 효능을 나타내는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양곤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건물을 지을 때 무공을 수련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수 있게 진법에 따라 지은 것뿐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겠나?”
단소운이 더 알고 싶었던지 눈을 빛냈다.
“음……. 일단 아까 설명했듯이 오운(五運) 육기(六氣)와 팔괘(八卦)의 원리를 이용해 지었습니다. 각각의 방은 팔괘의 원리에 따라 방위를 잡았고, 중앙의 방은 자연의 기운을 모으는 작용을 하도록 오행의 원리에서 토(土)의 기운을 이용했지요. 거기다 모인 자연의 기에서 오행의 원리에 따라 기운이 나뉘어져 팔괘의 방으로 흘러들도록 했습니다.”
양곤의 시선이 전대검후에게로 옮겨졌다.
“전대검후께서 수련하셨던 방은 건(乾) 방이었는데, 서북쪽에 앉은 방입니다. 수련하시는 후반부의 검법은 깨달음의 여부에 따라 성취가 달라지는데, 일단 육기(六氣)의 태양한수(太陽寒水)의 기운인지라 수(水) 속성인 검법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건괘(乾卦)가 가지는 오행의 강금(剛金)의 속성이 위력을 더하게 했을 겁니다.”
호기심을 가득 담고 자신을 쳐다보는 여미려에게로 시선을 옮긴 양곤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려에게 같은 육기의 감(坎) 방을 배정한 것은 감(坎)이 가진 소유(少柔)의 기운으로 초식의 수련을 도와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감괘 자체가 가지는 수(水) 속성과 육기의 수(水) 속성, 팔괘가 가진 부드러운 소유(少柔)의 기운이 초식의 운용을 원활하게 했을 것입니다. 나머지 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무공에 따라 방을 배정했지요. 아마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효과가 있는 정도가 아니었네.”
여전히 상기된 얼굴의 포천룡이 큰 목소리로 따지듯 외쳤다.
“난 수련하면서 여태 이렇게 뚜렷하게 초식에 따라 변하는 기운의 움직임을 느껴 본 적이 없었네. 도법을 펼치는데 글쎄 너무 신명이 나서 멈추고 싶지 않았었네.”
“자네가 들어간 방이 동북방에 있는 간(艮) 방이네. 간괘(艮卦)는 칠간산(七艮山)이라 하며 산을 뜻하고 양명조금(陽明燥金)이네. 거기다 기운으로 간태강(艮太剛)이라고 하지. 강함을 위주로 하는 자네의 도법에 힘을 더 실어 주었을 것이네. 금(金)의 오행 기운이 단단함과 강함이고, 양명(陽明)의 기운이 강함인데다가 태강(太剛)의 간괘(艮卦)까지 더해졌으니 위력이 대단했을 걸세.”
“그럼 무련각에서만 그렇게 효과를 나타내는 것인가?”
“아닐세. 지금 당장이야 밖에서 초식을 펼칠 때 무련각에서 나타난 기세로 초식을 펼칠 수 없겠지만, 수련할수록 무련각의 기운이 몸에 자리할 것이네. 종래에는 다른 곳에서도 무련각의 기세를 살릴 수 있게 되네. 그리고 무련각에서 초식에 따른 기운의 흐름을 느꼈을 것이네. 그 흐름을 잘 기억해 두면 나중에 초식이 위력을 더할 때도 초식의 강약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네.”
양곤이 빙그레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모두들 무련각의 신묘한 효능을 놀라워하면서 이곳에 와서 수련하기로 한 자신들의 선택을 잘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니 다들 씻으시고 객청으로 오시지요.”
모두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몸을 씻고 객청으로 모였다. 이미 자수신니가 식사를 모두 준비해 둔 터라 그들은 떠들썩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도 자신들의 놀라운 경험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