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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6화)
1장 ― 타심통(6)


“이길 수 있을 것 같군.”
싸움을 관찰하던 유정군이 냉정히 평가했다.
“유 장로.”
“음, 자네는 아직도 남아 있었던가?”
유정군에게 말을 건 것은 진철이었다. 모두가 바깥으로 나가 몇 명은 도망을 치고 몇 명은 은밀히 사람들을 불러오려고 하는 때, 이곳에 있어 봐야 득이 될 일이 없었다. 인외지경에 버금간다는 절정고수끼리의 싸움이 아닌가. 유정군이 생각하기에 진철의 행동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같이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행동이었다.
“할 일이 남았으니 남았소. 황 씨 무뢰배 덕분에 아직 시험이란 시험을 받지 못하지 않았소이까?”
“황, 무뢰배?”
진철의 언사에 유정군은 얼이 빠졌다. 현재 유선영을 노리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황권은 대협이라 불리던 무인이다. 이리 쉽게 부를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호위했어야 할 대상을 노리고 검을 노리니 무뢰배가 맞지. 아니 그렇다 생각하시오?”
“허허허, 맞지. 그래, 맞다. 저 모습을 보고 누가 그를 대협이라 부르겠는가. 그저 한 명의 무뢰배일 뿐이지.”
검보다도 예리한 삼 촌 혀의 말에 유정군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자리를 피했으니 시험을 볼 사람은 본인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하오.”
“단 대협은 쓰러졌고, 저들은 싸우고 있으니 그러하겠지.”
“지금 시험을 쳐 보아도 되겠소?”
“그리하도록 하게나. 그러나 그대 또한 황 무뢰배처럼 경망스레 몸을 움직인다면 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네.”
슬며시 웃음 짓는 사이, 보이지 않는 비수가 목을 찔렀다. 살기가 유형화된 기운이 되어 전신을 쿡쿡 찔러 댔다.
“그럴 일 없을 것이오.”
그러나 진철은 싸늘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여유롭게 유선영의 앞에 섰다. 놀란 유정군을 뒤로한 채 진철이 입을 열었다.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진철이 슬쩍 손가락을 마주 걸자 유선영이 고개를 들었다. 멍한 표정,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 허여멀건한 피부. 마치 시체나 강시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누구라도 위화감과 불쾌감을 느낄 만하지만, 진철의 모습에서는 조그마한 따스함마저 느껴졌다.
“당신은…….”
유선영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동그란 눈동자가 진철의 눈동자와 마주치고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진철은 예상한 듯 잔잔한 어투로 말했다.
“호위무사로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느냐?”
“…….”
유선영은 답하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을 꿰뚫어 감추고 싶은 어두운 일면을 들추던 악마 같은 일면은 어디로 갔는지 낯선 사람을 만난 평범한 소녀처럼 슬쩍 몸을 움츠리고 눈을 내리깔았다.
“아직 판단을 못할 것 같다면 내 하나 제안을 하도록 해도 되겠느냐?”
집중해서 보아야 알 수 있을 만큼 고개가 작은 미동을 보였다.
“원하는 것을 들어 주마. 지금 이후 내가 하는 행동이 네 의도에 부합된다면, 나를 호위무사로 써주지 않겠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얼이 빠져 있던 유정군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고개 돌린 진철의 얼굴에는 또다시 싸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어째서 말이 안 된다 하는 것이오?”
“아이라 하지만 아이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요녀(妖女)를 어찌 자네 같은 필부의 머리로 재단하려 드는 것이더냐? 혹여나 심마에 들 수가 있다. 경망스레 행동하지 말라 했지 않았더냐.”
“요녀라…….”
언성 높인 목소리 속에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타심통. 결코 평범한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한 평범한 재능이 아니었다. 유선영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할 만큼 위험한 능력이었다. 별호 하나 없는 후배라 하기에는 특별한 구석이 보이므로 자신도 모르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진철은 냉랭했다.
“같은 핏줄로 보지 않는군.”
“무슨?”
“요녀라 하지 않았소. 아무리 장로라 하지만 가주의 따님께 면전에서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소이까?”
“마, 말실수이네!”
“생각 없이 한 말이야말로 평소의 마음이 드러나는 법이오.”
당황한 유정군이 변명을 더 하려 하였지만, 진철은 듣지 않았다.
“그보다 내 제안에 응할 마음이 있느냐?”
“…….”
유선영이 답하지 않자 유정군이 낯빛을 바꾸고 윽박질렀다.
“그대는 처음부터 언사가 거칠었다.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선영아, 듣지 말거라. 아니, 네 능력으로 이자의 마음을 알아보거라. 네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만 해준다면 내가 손수 처리해 주마.”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인물이라 판단되자 단숨에 돌변하는 모습이었다. 호의를 보였음에도 몰아붙이는 인물이니, 또다시 무슨 꼬투리를 잡힐지 몰랐다. 이해타산을 단숨에 계산하여 상대방을 적으로 돌변시키니, 월영대 부대주 세 명이 진철을 둘러쌌다. 그에 진철이 표정을 굳히고 유정군을 노려보았다.
평소의 친분을 생각한 유정군은 유선영이 자신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선영의 선택은 그에게 있어서 정말로 뜻밖이었다.
“……응.”
유정군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좋아, 그럼 움직이마. 네 마음에 들었다면 나를 네 호위무사로 채용하거라.”
진철이 말을 끝내고 몸을 돌린 순간, 그의 앞으로 벽진권의 비껴간 권기가 날아들었다.
“움직이려 하자마자 날벼락이군.”
바로 눈앞까지 권기가 날아드는 그 순간, 진철이 허리를 꺾었다. 왼쪽 옆구리로 몸을 굽히고 다리를 쭉 펼쳤다.
승룡각(乘龍脚), 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빠른 올려 차기가 정확히 권기와 부딪치며 기운을 죽였다.
“무슨!”
유정군이 눈을 부릅뜨고 경악의 일성을 내뱉었다. 잔재나 마찬가지라 기운이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벽진권은 격공권. 같은 절정고수라 할지라도 버티기 힘든 공격인 것이다. 진철 같은 무명의 무인이 해소할 수 있을 만한 기운이 아니었다.
“하압!”
쩌어엉!
청명의 매화검이 여섯 송이 꽃을 피우며 황권의 권로를 모두 파훼시켰다. 예리함과 정교함이 살아 있는 움직임은 그야말로 화산 진산 무공의 화신이라 할 수 있었다. 일대제자, 매화검수(梅花劍手)의 진면목이었다. 이어지는 초식은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劍)의 마지막 초식인 암향부동화(暗香不凍花)였다.
큐우우웅!
화산파의 일대제자에게만 전해지는 비전 초식이 정확한 때에 십이할 공력의 힘을 싣고 펼쳐지니 귓전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믿을 수 없는 경력이 터져 나왔다.
“끝이다!”
회심의 일격이었다. 필살의 무공이 일곱 사혈을 노리고 분열되어 쏟아지니, 청명이 일갈하며 승리를 직감했다.
“웃기는구나.”
그러나 이상했다. 낯빛을 굳히고 죽음을 직감했어야 할 황권이 코웃음을 치며 두 팔을 움직였다.
느릿느릿한 일장이 기의 와류를 이루어 내자 품이 큰 소매가 풀빛으로 빛나며 돌개바람에 휘말린 듯 펄럭이는 채 다섯 검격을 감싸 안았다.
“반선수(盤禪袖)! 소림(少林)이라니?!”
이어지는 장격. 엄지를 손바닥에 붙이고 중지를 꺾은 기묘한 손 모양이었다. 쇄비장(碎碑掌). 단단한 돌덩이마저 가루를 내 버린다는 소림사의 장법이었다. 계도가 목적이 아니라 무공의 수련이 목적인 소림의 무승(武僧) 나한(羅漢)들에게 가르치는 비인부전의 무공이었다.
쨍강! 우득! 콰직!
“커헉!”
남은 두 검로와 직접적으로 부딪친 손바닥이 그대로 매화검을 깨뜨리고 청명의 가슴을 우그러뜨렸다. 피를 토하며 공중으로 몸이 떠오르는 청명. 가슴팍에 손바닥 모양이 그대로 남았으니, 생명이 경각에 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그 말을 한 것을 지옥에서 후회하게 만들…… 네놈?”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잇던 황권이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막을 것이라 생각했던 유정군이나 월영대 부대주 셋이 아닌, 진철이 서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목숨이 아깝지가 않은 모양이로구나.”
황권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한 걸음 내딛으니 부중보로 이루어 낸 기의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일류 고수의 반열에 이른 월영대 부대주 세 명도 못 버틴 압력이니 황권은 이 한 걸음으로 진철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쪽은 죽을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나 보오?”
예상과 달리 진철은 편안한 신색으로 입술을 놀렸다.
“……범상치는 않은 놈이구나.”
“본인이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리 쉽게 판단할 놈은 아니라 생각하오.”
상대방에게 황당함을 일으키는 언사.
“그러니 그리 편하게 서 있지 마시오. 운기를 하여도 될 정도로 쉬운 상대라 생각하시오?”
진철이 앞으로 한 걸음을 옮겼다. 단숨에 바뀌는 분위기. 불안정하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느낌에 황권이 운기를 멈추고 뒤로 몸을 날렸다.
퍼엉!
화약이 터진 듯 황권이 서 있던 자리에서 바닥이 터지며 바닥재가 천장까지 솟구쳤다. 멍청히 서서 운기하고 있었다면 단숨에 목숨을 잃었을 만큼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황권이 긴장으로 온몸을 굳혔다.
“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기공(氣功)이라니…….”
“눈이 삐었나 보오.”
“큭!”
담담한 한마디에 화가 치밀어 오르니, 수준급의 격장지계였다. 그러나 진철의 모습을 보면 격장지계를 위하여 한 말은 아닌 것도 같았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기공으로 상대한다면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네놈이 과연 격공권까지도 버텨 낼 수 있는지 내 보겠다.”
황권이 두 손으로 원을 그리며 기를 모았다. 두 손이 만든 원 속으로 가공할 진력이 모였다. 주변 기물이 떨릴 정도로 축적된 경천의 경력이었다.
“가슴.”
그러나 태연하게도 진철은 그런 말을 하며 황권의 가슴을 삿대질했다.
“가슴에 문제가 있느냐?”
“조심하시오.”
“뭐……?”
말이 끝나기도 전 황권의 입술에서 주르륵 핏물이 흘렀다. 검은색으로 변색된 죽은피였다. 은은하게 헛구역질을 일으키는, 기분 나쁜 냄새가 황권에게서 풍겼다. 이어 가슴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리고 그 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독, 에다 지공(指功), 이라니. 네놈, 도대체 누구…….”
“눈이 삐었다 했소.”
진철이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롭게 황권에게 다가갔다.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황권의 바로 앞에 도착한 진철이 뒷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슬며시 가슴속에 넣어 두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알겠소?”
“……살, 수? 하, 하하하,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겠구나. 이름이, 없는, 인간을 알아보, 려 하였으니.”
“어떻게 죽였는지 이제 알겠소?”
“지공, 이 아니더, 냐?”
“말했잖소.”
진철이 두 걸음 물러서고 황권을 비웃었다.
“눈이 삐었다고.”
붙였다 뗀 엄지와 검지에서 햇빛에 비쳐 은색 얇은 실 하나가 보였다.
“어떻지?”
거목이 쓰러진다. 수많은 협행으로 이름 높았던 황산대협이 쿵! 소리와 함께 쓰러지자 진철이 유선영에게 물었다.
“응.”
유선영이 말했다.
“……합격이야.”
“선영아! 괜찮느냐!!”
유선영의 목소리는 벌컥 열린 문소리와 그 뒤에서 뛰쳐나온 문겸익의 목소리에 묻혔다.
“무림맹의 사람들을 불러 왔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까?”
대회에서 사람들을 가리던 무림맹의 인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최고수인 문겸익만 하더라도 작은 문파 하나는 홀로 부술 수 있을 만한 전력이다. 줄줄이 달려드는 인사들은 무인이라면 한 번쯤 말을 나눠 봤으면 할 만큼 유명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앞, 그들을 불러온 사람은 호접여희 모예단이었다. 절정에 이른 실력자임에도 싸움에 끼지 않는다 하였더니, 사람들을 불러왔던 것이다. 혹여나 다른 인물들이 황산대협이 시비를 걸었다 하면 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모예단 정도의 인물이 말한다면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것을 노리고 다른 무인들을 단단히 입막음한 뒤에 사람들을 불러온 것이었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별일 없었습니다. 다만, 단철호도와 청명 대협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혹시 생사신의(生死神醫)께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나 여기 있네.”
전신이 하얀, 정갈한 차림새를 한 노인이 말하며 청명과 단세명에게 다가갔다. 허리춤에 달린 침구와 화주가 든 호리병, 강퍅한 얼굴 생김새. 죽은 사람마저 살려 낸다는 정파(正派) 최고의 의원, 생사신의 화선이었다.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죽어도 한참 전에 죽었겠군.”
화선이 청명의 맥을 짚자마자 한 말이었다. 가슴이 깊이 파였으니 그리 말하는 것이 당연했다. 단련된 몸. 정신을 잃었음에도 홀로 살아 움직이는 태을진기(太乙眞氣)가 아니었다면 가능치 않은 기사였다.
“황산대협, 대협께서 어찌 이런 일을…….”
평소 그를 흠모하던 것 같은 무인의 말이었다. 황권은 무림맹의 요직에 자리를 잡아도 가능했을 만큼 유명하고 대단한 무인이었다. 어찌 여린 소녀를 노리고 일을 저지르다 목숨을 잃었을까. 이해가 가지 않아 원통하여 사무치는 슬픔이었다. 하나둘 무인들이 뚝뚝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손을 대고 황권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천륜(天倫)이라는 짐이 무거웠겠지.”
황권의 시체를 앞에 두고 진철이 중얼거렸다.
“버티기 힘들어 버렸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오.”
진철이 앞으로 누운 황권의 앞에 주저앉았다. 무슨 짓이냐며 혼을 내는 무인들을 무시한 채 그렇게 얼마간 있자 유선영이 그의 옆에 똑같이 주저앉았다.
“원하는 대로 해 줬어.”
유선영이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두 손으로 황권의 시체를 뒤집었다.
“좋겠네.”
주변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어린아이가 대협의 시체를 마음대로 농락하니, 평소 황권을 흠모하던 자들의 분노를 부른 것이다.
“죽을 자리를 찾아서.”
이어지는 말.
“아비를 죽이고도 편히 발 뻗고 살 수 있을 것 같더냐?”
“부녀자를 강간하여 나 같은 아이를 태어나게 해 놓고도 네놈이 아비라 칭하느냐!”
“그래도 아비는 아비지. 천륜이라 했다. 하늘이 점지해 준 인연이라는 것이지.”
“그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다!”
“이 아비가 네놈을 평생 저주해 주마.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해 주마. 평생토록 속죄하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거라. 네놈은 아비를 죽인 그 죄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헛소리 말아라!”
“그리고 너는 그 짐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황권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