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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7화)
1장 ― 타심통(7)


후화(後話)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모예단의 물음이었다. 대협이라 불리던 황권과 새로이 오대세가에 올라선 산동유가의 싸움. 어린아이를 죽이려 들고, 그를 막아서던 무인들을 죽기 일보직전까지 놓이게 만들었던 이유를 알 수 없는 전투가 끝나고 난 후의 일이었다.
유선영은 가주의 장중보옥. 무엇보다도 산동유가의 현재를 만들어 냈다는 소문이 있는 중요한 여식이다. 본디 그녀의 사촌인 유정군이 그녀를 다독였어야 하나 무림맹 내부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수습해야 했고, 진철이 흘리듯 내뱉은 몇 마디의 말로 인해 그는 유선영에게 잠시간 접촉할 수 없게 되었다.
단세명은 의식불명, 청명은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태. 진철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유정군은 접근할 수 없게 되자 그녀를 다독이는 것은 모예단의 일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같은 여자가 아닌가. 자신 또한 바라던 일이고, 많은 이들이 수긍하자 모예단은 유선영을 데리고 한적한 정자에 도착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어찌 이리 험한 운명일까? 산동유가 가주의 여식이니만큼 호화스럽게 살아도 될 텐데…….”
모예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유선영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백옥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는 하얀 분이 묻어날 듯 보드라웠다. 성장하면 분명 소문난 미인이 될 터. 미인박명의 고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한 배경도 있으나 타심통이라는 악마 같은 능력이 있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혹시나 마음을 읽어도 말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니? 네 마음속에만 묻어 두고 혼자 비밀로 간직한 채 있는 거다. 어떻겠니?”
물었다만 모예단 또한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중원무림에 떠도는 산동유가에 대한 소문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유선영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 그리고 과거 또한 읽는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도가나 불가도 아니요, 기득권을 취해야 하는 속가의 오대세가가 그녀를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 세력의 머리란 자고로 냉정하고 비열해야 하는 법. 딸이라 하더라도 이용할 만한 가치가 없어진다면 그저 보고 예뻐할 뿐인 새장 속의 새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새장 속의 새에게 자유란 없고, 누군가의 핍박이 있기 마련이었다.
“앞으론 내 다른 무인들과 함께 네 호위무사가 되어주마. 같은 여자로서 너와 같은 여아를 두고 볼 수만은 없구나. 언제든지 힘들 때면 내게 기대려무나. 이 품은 그럴 때를 위해 있는 법이니.”
모예단이 가녀린 팔로 유선영을 꾸욱 껴안았다. 멀리서 보면 사정이 있어 떨어져 있던 가족이 재회한 듯 애틋함이 묻어났다. 모예단의 섬섬옥수가 유선영의 작은 등에서 깍지를 끼듯 가까이 마주했다.
“모예단.”
두 손이 점차 가까이 다가가고 손톱끼리 딱 부딪쳤을 무렵, 유선영이 말했다.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
“언제 죽이려고?”
가슴속에 얼굴을 묻었던 유선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두 눈은 심연처럼 침전되어 어떠한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죽여.”
마주 본 모예단이 가면과 같던, 동정심 어린 표정을 지우고 유선영을 비웃었다.
“과연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진짜네. 마지막으로 의심을 지우기 위해 행동하였건만, 전혀 통하지 않았어. 무림맹의 인사들조차 깜빡 넘어간 연기였는데 말이야.”
“유선영을 암살하기 위해 황권의 사태에서조차 그의 편에 들지 않고 사람들을 불러왔지.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믿음을 샀고, 이렇게 누구도 없는 한적한 공간으로 왔어. 누가 죽였는지 모르게 암매장할 수 있다는 말이지.”
“잘 아는구나. 내가 할 말을 대신 해 주다니, 편하기도 하지.”
모예단이 배시시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에 깃드는 살기였다. 소리장도(笑裏藏刀). 여인의 몸으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였다.
“마음을 읽었을 테니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테지. 무림맹 무인들의 순찰 시간상 현재 이곳 근처엔 누구도 없다는 것도 알았을 테고. 그럼…….”
모예단의 두 손이 유선영의 등에서 하얗게 빛났다.
“죽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짐승이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안 사냥꾼이 음침하게 쾌재를 토할 때의 음성이 이러할까? 모예단의 소마진기(素魔眞氣)가 위협을 느끼고 그녀의 손을 움직였다.
쨍! 촤라락!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 후, 그녀의 손가락을 무언가가 감았다. 동시에 그것은 앞으로 더 몸을 빼내 다른 한 손 또한 감아 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파고들어 오는 거친 기운, 모예단은 손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구냐!”
“호위무사.”
딱 잘라 말한 인영이 정자의 지붕 아래에서 스르륵 내려왔다. 냉정한 얼굴, 진철이었다.
“이 무슨…… 위라니?”
정자 지붕의 아래, 위치상으로 모예단과 유선영의 바로 위였다. 언제고 그녀들을 죽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절정고수라 하는 자신의 기감에 전혀 걸려들지 않은, 뛰어난 은신술에 모예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부터 증거만 잡길 원했는데, 이리 예상대로 움직여 주니 감사를 해야 하나? 하지만 호위무사로 온 것이니만큼 호위 대상의 안전이 우선이지. 선영아, 이리로 와라.”
“응.”
진철의 말에 유선영이 몸을 일으키고 진철에게 쪼르르 걸어갔다. 다리를 붙잡고 뒤로 숨으니 어미를 쫓는 새끼의 모습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바로 앞에서 놓친 목표의 목숨에 모예단이 뿌득 이를 갈았다.
“내가 저년을 노릴 걸 어떻게 알았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알 수가 없었을 텐데? 나는 황산대협에게는 모자라지만, 사천에서만큼은 협명으로 한 성을 떨친 무인이야. 제대로 말해.”
“말 그대로요.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으면 이렇게 증거를 잡기만을 노릴 리가 없지.”
진철이 품속을 뒤지더니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어 기를 이용해 모예단의 정면에 종이를 띄웠다.
무슨 짓인가 의심하던 모예단의 얼굴이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딱딱하게 굳어 갔다.
“마교(魔敎) 사천 지부 지부장이자 소녀궁(素女宮) 소궁주(小宮主) 모예단. 참으로 잘도 천하인들을 속여 넘기셨더군.”
“이, 이것들을 어찌……!”
모예단의 눈과 목소리가 거세게 흔들렸다.
“당문을 노리던 마교인을 죽이고 당문의 힘을 얻어 많은 마인들을 참살해 협명을 얻었다던가? 하지만 진실은 다르지. 당문을 노리던 마교인이 그대고, 당가 가주에게 사로잡혀 가주와 타협을 보았다. 마인에게 당문의 무인 두엇이 죽었다는 소문이 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당가의 명예를 위해 좋았겠지. 좋은 소문을 내 줄 터이니 당가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죽여라. 그대는 정파인을 죽여서 좋고, 나는 당문의 적을 죽여서 좋지 않은가. 그대는 동의했고, 당가가 죽여 달라는 인물들을 죽였지. 그중에는 협명을 떨치던 인물도, 사천에 자리 잡은 거대 문파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자들도 있었지. 죽이고 난 후 은원 관계를 맺을 일은 없어. 어차피 당문에서 그들이 마인이었다고 소문을 내 주면 그만이니까. 어때, 틀린 부분이 있소?”
“…….”
모예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틀림이 없다. 과장된 부분 하나, 사실이 아닌 부분 하나 없었다. 모두가 사실이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진실이다. 협명을 날리던 호접여희가 마인이고, 그녀가 죽인 인물들이 투철한 정파인이며, 뒤를 봐주던 오대세가의 당가가 마교와 손을 잡았던 것이라니.
“다 알았다면 변명할 말은 없어. 죽여.”
모예단이 결박된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눈을 감았다. 조금도 반항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진철은 사양 않고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지금!’
그 순간, 방심한 틈을 타 모예단이 소수마공(素手魔功)을 극성으로 발휘하여 은사(銀絲)를 끊고 달려들었다. 두 손이 별빛을 담은 듯 하얗게 빛나더니, 잔영을 남기며 유선영의 머리를 노리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의 유선영이었다. 이대로라면 죽일 수 있다. 확신한 모예단이었지만, 구름이 걷히고 유선영의 얼굴 바로 앞에 빛이 쏟아지자 속으로 감탄을 마지않을 수 없었다.
‘또다시 은사라니!’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이 이리 행동할 것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 방비를 철저히 해 두었다. 그러나 모예단은 그대로 수도(手刀)를 오른쪽으로 그어 버렸다. 유선영이 안 된다면 진철을 죽이면 그만이었다. 살수는 어차피 어둠 속에 있을 때가 무서운 법이지, 밝은 빛 아래 나타난다면 조금도 두려워할 바가 못 되었다. 사공(邪功)을 주로 배우기에 진실한 무공 싸움에선 맥을 못 추는 것이다.
하지만 하얀 손이 자신의 손을 막아 내는 것을 본 모예단은 일이 뿌리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소수마공!!”
같은 교(敎)의 무공이었다. 자신이 극성까지 배워 낸 무공의 진실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나 당혹스러운 상황에 긴박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고수라 칭할 수 없다. 자신의 성취를 믿은 모예단은 진철의 손을 밀치고 다른 손으로 진철의 가슴을 찔렀다.
죽였다, 생각하는 순간, 손목이 절단되고 가슴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손을 움직였는지 심장에 단검이 깊이 박혔고, 은사가 손을 칭칭 감고 있었다.
“고, 수…….”
모예단이 입에서 울컥 피를 토했다.
“교인이, 어찌 명을 듣, 지 않고 나를…….”
“글쎄?”
진철은 은사를 회수하고 천천히 말했다.
“눈이 삐었나 보오.”
모예단이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절명했다. 진실은 어찌 되었든 중원의 협사가 또 하나 졌다.
“괜찮지?”
모예단을 뒤로한 채 진철이 물었다.
“너는 누구야?”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게 할 만큼 당돌한 말이었다.
“마음을 읽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안 읽혀. 가족이 아닌 사람이 안 읽힌 적은 처음이야.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진철은 다시 손을 움직여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렇다면 가족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모르는 사람이야.”
“하하하.”
진철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정체가 무엇이든 한마디는 해줄 수 있어.”
유선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진철이 진중하게 선언했다.
“네게 위협을 가하는 자는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게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고 있는 유선영. 진철은 잠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 정자에서 내려왔다.
“가자. 또 하나 설명할 일이 있어 바쁠 거다.”
유선영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