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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11화)
2장 ― 괴뢰(傀儡)의 혼(魂)(4)


“합!”
기합을 내뱉으며 도를 내친 강시가 은사 십여 가닥을 끊어 냈다. 이어서 그의 머리 왼쪽을 창이 스쳐 지나가며 돌개바람을 일으켰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은사에 양날의 겸이 회오리쳤다. 뱀처럼 꿈틀대는 채찍은 그들이 만들어 낸 틈을 타 진철에게 향했고, 한 자루 봉은 진철이 숨겨 놨던 마지막 한 가닥의 은사를 휘감고 끊어 냈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오.”
강시라 무시하던 진철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일렁였다. 평범한 강시라고 하기에는 탁월한 합격술이었다. 이십 년을 같이 수련한 사형제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깔끔한 합격술을 보여주진 못하리라. 고개를 까딱여 채찍을 피한 진철이 손을 들고 검지를 내밀었다.
“가슴.”
“허리.”
“목.”
“머리.”
“배.”
진철의 손가락이 피어오른 분진을 화폭으로 물흐르듯 수려한 그림을 그려 냈다. 이어진 손가락의 끝은 겸을 든 무인의 배였다. 무형의 기운이 진철이 말한 부위들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푸욱!
눈 깜빡할 사이, 강시들의 몸에 구멍이 하나씩 뚫렸다. 사람이라면 무릎을 꿇고 목숨을 잃을 만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자들에게 어찌 목숨이 따로 있을까. 그들은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다섯 걸음이면 끝이오, 말코. 목 닦고 기다리시오.”
도사가 영문을 몰라 부적을 든 채 잠시 주춤한 사이, 강시들이 다섯 걸음을 움직였다.
쿨럭!
그리고 강시들은 푸르죽죽한 피를 칠공에서 쏟아 내며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어떻게?”
도사보다도 먼저 경악한 것은 단세명이었다. 강시의 사혈을 노린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속으로 어리다며 비웃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자 놀랄 수밖에 없던 탓이다.
“간단한 일이오. 비전의 강시술이라고 해 봐야 별거 없지. 그저 사술을 통해 강시의 몸에 피를 주입하고 흐르게 했을 뿐이오. 그 정도만으로도 저렇게 일반적인 강시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지. 그러나 피가 없는 강시에게 피를 흐르게 하였으면 그만한 단점도 있는 법이오.”
진철의 왼손 검지와 중지가 미미하게 마찰하고 있었다. 도사가 그것을 보고는 경악하며 재빨리 두 개의 부적을 앞으로 던졌다.
녹색 불빛을 뿜어낸 부적이 불타 사라지며 연기 속에서 안개를 뿜어냈다. 이어서 붉은색 불빛을 뿜어낸 부적이 불타며 바람을 일으켰다. 연못과 바람, 부적술(符籍術) 팔괘(八卦) 태괘(兌卦)와 손괘(巽卦)였다.
“피가 흐르므로 독이 통하지. 완전히 죽지 못했으므로 몸이 그 영향을 받지. 발상은 좋았으나 이래서야 실책일 뿐이오.”
단세명이 꿀꺽 침을 삼켰다. 눈앞에서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진철은 강하다.
그리고 교활하다.
절대로 자신이 위험해질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정파의 인물로서는 비겁하고 치졸하다 할 수 있으나 생존이 최우선인 낭인에게는 개안을 했다 할 수 있을 정도의 행동 방침이었다.
“그나저나 안개에 바람이라니, 도망치려나 보오?”
놀란 단세명을 뒤로하고 진철이 사위를 빠르게 훑었다. 자욱하게 퍼지는 안개가 한 치 앞까지도 눈을 현혹시켰다. 안력을 최대한 발휘해 보아도 바늘 하나의 틈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완벽한 부적술이었다.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邪道)라 하지만, 일가를 이뤘다 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실력이었다.
“…….”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그러나 미세하게 또 한 개의 부적이 불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도망치지 않은 건가? 지금 달리면 쉽게 잡을 수 있다. 판단을 마친 진철이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파칫!
“윽?!”
다리에서 느껴지는 열기와 따끔함에 진철이 다급히 발을 회수했다. 무릎 아래까지의 옷이 모두 타 버렸다. 드러난 피부에도 화상을 입은 흔적이 있었다.
번개, 부적술 팔괘 진괘(震卦)다.
“칫.”
완벽하게 말려들었다. 강시를 잡을 때 같이 잡았어야 하는데, 그만 기분이 나빠져 놀려 버리고 만 것이 패착이었다. 이래서 싸움에 사적인 감정이 이입되어서는 안 된다 몇 번이나 들었는데, 아직도 멀었나 보다.
“꺄아아아악!”
“선영아!”
어찌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사이, 유선영의 비명이 들렸다. 위기였다. 호위무사로서 곁에서 지켜야 할 대상을 지키지 못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단세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기상천외한 술법을 쓰는 자에게는 얼마나 높은 경지의 무인이든 인외의 무신이 되지 않는 이상은 모두가 평등했다. 단세명이 유선영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진철이 한 팔을 휘적거리며 앞으로 달렸다. 진괘의 번개에 맞는 것 정도는 각오했다. 지금은 유선영의 안전이 더욱 문제였다. 그러나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철의 앞을 비껴 나가고 눈앞의 정경을 비추었다.
“…….”
등 뒤에서 나타나는 어두운 그림자. 검사인 강시의 검을 든 도사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진철의 가슴을 찔렀다.
“크크큭.”
도사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고수라 할지라도 일개 무인이 싸움을 즐기는 도사와 만나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도사는 특이한 자였다. 이런 방법으로 이미 이름을 한 성에 떨친 고수를 죽인 적도 있었다. 진철 또한 특이한 무인이긴 하지만, 역시 이 암습에 버티는 것은 무리였으리라.
“……왜 웃으시오?”
“어, 어떻게?”
그러나 칼에 찔렸을 진철의 목소리가 평탄한 어조로 들려오자 도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어 가는 사람이 낼 만한 목소리가 아니었던 탓이다.
“선영이가 저리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아이라면…….”
눈이 바람에 휩쓸리듯 진철의 신형이 흩어졌다. 눈을 부릅뜬 도사의 앞에서 진철이 허깨비처럼 그의 손목을 붙잡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형환위(移形換位), 보법이 극에 이르러 눈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가 이리 고생을 하고 있지도 않겠지.”
서걱!
“끄아악!”
소매를 타고 흘러내린 단검이 유려한 반월을 그렸다. 일월(日月)의 호부(護符)가 빛을 발했으나 단검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는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의 손목을 잘라 냈다. 손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끔찍한 고통에 도사의 정신이 흔들려서인지 여전히 단세명과 유선영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말끔히 사라졌다.
“네놈, 네놈, 네놈, 네노오오옴──!!!”
손목을 감싼 채 도사가 울부짖었다. 도술이 파훼되자 그 여파가 그의 상단전에까지 미쳤는지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피로 온몸을 물들인 채 괴성을 지르는 도사는 꿈에 볼까 두려운 모습이었다. 단세명이 슬쩍 비껴 서며 유선영의 눈을 가렸다.
그러나 금세 작은 손이 올라와 그의 소매를 밀쳐 냈다.
“선영아?”
아무리 마음이 죽은 아이라 하지만 보기에 좋은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만이 더욱 다칠 뿐이었다. 걱정한 단세명이 다시 한 번 막아서려 들었지만, 진철이 그에게 눈짓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켜만 보시오.”
한마디를 덧붙였다. 단세명이 그에 우뚝 멈추자 유선영이 무릎을 꿇은 채 절규하는 도사의 앞에 섰다.
“어째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겁니까!”
탁한 목소리. 하지만 듣기 거북하거나 괴롭다고는 느껴지지 않고, 가슴이 메어질 만큼 비통하고 애통한 감정이 가득 억눌린 목소리였다.
“죽어도 끝이 아닙니다. 우리 도사들은 영혼을 봅니다. 영혼을 보고, 제를 치러 한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 영혼을 속박할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죽은 자들의 한을 풀어 줄 줄만 알고 산 사람들의 슬픔은 단호하게 저버리는 겁니까!”
유선영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변했다. 냉정하고 단호하며 깊은, 정심(正心)이 깃든 목소리였다.
“네가 말한 산 사람들의 한이란 부질없는 것이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이고, 산 자는 산 자이다. 순리를 거스른다면 그들의 운명이 참으로 참혹해지기 마련이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삿된 미련은 버리는 것이 정도다.”
어느새 도사의 비명 소리가 잠잠해졌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희미한 초점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참혹한 운명은 이미 겪고 있습니다! 그녀가 없다면 제가 아니요, 제 삶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녀가 있다면 불행마저도 축복입니다! 도대체 왜 그것을 몰라주시는 것입니까!!”
흐려진 눈동자가 있을 리 없는 상을 붙잡았다. 멍하니 들으며 회상하던 도사의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찢어진 분홍 경장, 그녀를 묻은 모래, 볼 수 없는 얼굴, 들리지 않는 사랑의 밀어(密語). 그리는 자는 누구인가.
“한순간의 치기로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네 삶은 너의 것이다.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녀가 없는 삶 또한 네가 감내해야 할 일이다. 네 삶을 겨우 그 정도의 것으로 한정 짓지 말거라.”
안타까운 목소리. 이어지는 말은 도사의 것이다. 도사의 입술이 격하게 떨리며 달싹였다.
“겨우 그 정도가 아닙니다! 어째서, 어째서 그녀가 저에게서 ‘겨우’라는 한마디로 한정될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제 운명은 그녀의 것이었고, 그녀의 운명은 저의 것이었습니다! 옥황상제도, 원시천존이라 하더라도 이리 가혹하게 저를 내몰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어찌할 길 없는 분노가 깃든 목소리로 그는 절규했다.
“갈(喝)!! 헛소리를 하는구나! 네 어찌 여인 하나 때문에 신을 욕하느냐! 너는 도사다! 하늘의 도를 따르고 순리를 지키며 법을 탐구하는 구도자다! 이제 이야기는 그만해라! 네 눈에서 미혹의 안개가 흩어질 생각을 하질 않는구나!”
고함 속에 깃든 걱정. 그러나 그것이 닿으려면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까.
“아니요,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사부님이 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영혼을 붙잡고, 사람을 살려내겠습니다! 남은 자들의 슬픔 따위 이해하지 못하는 하늘이라면, 제가 역천(逆天)을 수도(修道)하겠습니다! 그런 하늘이라면 제가 무너뜨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됐다.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로의 여행. 본말이 전도되어 무엇을 바라는지도 몰랐던 그의 방황. 소원을 찾고, 순수함을 바라며 한 걸음, 한 걸음 그 당시의 빛 속을 헤맸다.
“네 이놈!! 네놈이 정녕 이 사부의 말을 거역할 셈이냐!!”
“제자를 몰라주는 사부가 어찌하여 사부란 말입니까! 저에겐 더 이상 사부가 없습니다!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제 소원을 이루겠습니다!”
“하운아! 하운아!! 하운아─!!!”
귓전을 울리고 가슴을 흔들던 애증 어린 대화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났다. 한 편의 연극을 본 것만 같은 공허함이 차오른다. 여운을 즐기듯 입술을 달싹이며 곱씹던 도사가 말을 내뱉었다.
“……어찌하여 몰랐을까요, 사부님.”
흐르는 피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창백해진 얼굴과 작아진 심장의 박동은 이미 죽은 사람과도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버티는 것은 한 줄기 원망과 희망, 애증 때문이었다.
“사부님이 그리도 저를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제가 어찌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힘을 써서 억지로라도 붙잡고 싶던 것을 꾹 참아내고 홀로 제자만 기다리셨다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초 제자는 어찌 그때 저를 잡지 않았을까 원망만 하였, 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져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하해와도 같던 사부의 사랑. 천애고아였던 자신을 그저 동정과 연민만으로 집에 들여 친자식처럼 애정만으로 키우셨던 그대. 투박했지만 여느 부모보다도 따뜻하게 바라봐 주던 당신이여.
“미혹이 사라지니 보입니다. 제 걱정을 얼마나, 얼마나 하셨을지 생각하면 한마디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불민하여 이리 그대의 일생을 망쳐 놓았습니다.”
무너진 초가, 누구 하나 찾지 않아 묻히지조차 못했던 시체. 그럼에도 원망의 말만을 내뱉으며 뛰쳐나온 자신. 어떻게, 어떻게 그리하였을까. 받았던 사랑을, 넘치던 기대를, 맑은 눈동자 가득했던 연민을 어찌 저버렸을까.
“결국 역천의 흉내만을 내었을 뿐, 그 어느 것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 그녀의 인형밖에 만들 수 없자 저도 모르게 화가 나더랍니다. 몇 번의 실험 끝에 그녀의 운명은 비틀어졌고, 영혼은 갈가리 찢겨 나갔습니다. 연인조차 보이지 않던 저를 어찌 그리 사랑하셨습니까.”
제방 터진 강처럼 그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가득 흘러넘쳤다.
“결국 그 원망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흘러갔습니다. 인형을 보여 주고,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으며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 죄를 어찌 갚을까요? 그대의 사랑을 어찌 보답할까요? 하늘의 천벌을 어찌 감내할까요?”
떨리는 목소리는 이미 끊어질 듯 희미했다. 흐려지는 시계에 희미하게 한 인영이 잡혔다. 손을 뻗지만 손이 없고, 부르고 싶지만 목이 타들어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사부님, 사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만, 웃고 계시지 않는군요. 더 이상 당신의 사랑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적처럼 친근하게 대하지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단 한마디. 단 한마디 정도는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원망을 하셔도 좋습니다. 저주를 하셔도 좋습니다. 그저 당신과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빛 속에 선 그림자를 향해 휘적거렸다. 닿지 않는 손이 안타깝고, 움직이지 않는 발이 애처로웠다.
더 이상 인영이 보이지 않을 즈음, 도사의 눈동자가 더 이상 빛을 담지 않을 즈음, 바닥에 닿는 그의 손을 붙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을 하느냐?”
퉁명스러운 목소리, 투박한 어조. 하지만 그 안에 가득 담긴 애정.
“나를 찾아서 무엇을 하려 하는 것이냐? 사부가 되어 놓고 제자 하나 챙기지 못했는데, 어찌 그리 나를 생각해 주느냐? 필요 없다. 그만 떠나거라.”
멈추었던 도사의 심장이 요동쳤다. 고개를 젓고 싶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한마디, 단 한마디를 하고 싶다. 당신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부의 온기가 전신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나를 따라와 줬으면 좋겠구나.”
흐려지는 미소, 마음으로 파고드는 따스함.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감사합니다, 사부님.”

도사의 얼굴에 어린애처럼 환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후화(後話)


“다 보고 계셨을 것이라 압니다.”
유선영이 도사의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무릎을 꿇은 채 행복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난 도사. 그의 눈을 고이 감겨준 진철이 말했다.
“유차정 대감.”
단세명의 도가 십자를 그리자 벽이 무너지며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유차정과 멍한 유변이 보였다.
“안 돼…….”
유차정의 손이 파르르 떨리며 들렸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가까스로 움직여 도사를 삿대질했다.
“안 돼…… 어찌 그리 가는 것이냐! 내가 너에게 쓴 돈이 얼마인데! 내가 어떻게 사람들을 죽여 너에게 전달해 줬는데! 어떻게 그리 혼자 갈 수가 있느냐! 내 아들을 계속 살려 줘야 할 것 아니냐─!!”
유차정이 온 마을에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유변의 얼굴이 점차 흩어진다. 인형과도 같이 딱딱해지는 몸의 변화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미 끝났소. 더 이상 헛된 미련을 바라지 마시오. 어차피 인형일 뿐이란 것을 잘 아시지 않소?”
진철의 말은 참으로 냉정하고도 가차 없었다. 좋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말하지 않는다. 단세명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인형이 아니다!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이라고! 내 잘못으로 내가 죽인, 나의 아들이란 말이다!!”
유차정이 유변의 몸을 끌어안고 절규했다. 사람과도 같던 질감은 사라지고, 목각 인형의 신체가 드러났다. 눈동자 하나와 입술의 반절만이 남은 얼굴을 붙잡고, 그는 진철에게서 유변을 지키려는 듯 뒤로 발을 질질 끌었다.
“부적이 보이지 않으시오? 그것은 당신의 아들 유변이 아니오. 그저 그를 본 모두에게 그리 보이게 하였을 뿐인 사술이지.”
목각 인형의 가슴 부분에서 부적 하나가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희생자의 피로 쓴 원념의 부적이다. 부적의 황지에서 그 피가 흘러내리며 원형을 잃어 갔다.
“그래도 나의 자식이다! 누가 뭐래도 나의 아들이란 말이다!!!”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유차정은 인정을 하려 들질 않았다. 진철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아직도 그딴 헛된 희망을──!”
사라진 신형.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양 유차정의 눈앞에 나타난 진철이 한 손으로 유차정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부적을 떼어 내고는 목각 인형을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래도 이것이 아직 네 자식으로 보이느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야!! 이 세상에서 너만 힘든 줄 아는 것이냐?! 사람을 한 명도 떠나보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불같은 분노를 토해 냈다. 눈동자 속을 스치는 한 여인. 어찌 그라고 유차정의 마음을 모를까. 하지만,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럴 방법도 없었다.
“사람을 살리지는 못해!!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같이 있지 못해!! 나라고 너처럼 방법을 찾아보지 않은 줄 알아?! 나라고 너처럼 사술이라도 써서 그 사람을 내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줄 알아?! 안 되니까 이런 거야!! 안 되니까 그 사람을 가슴에 품고, 힘들더라도 살아가는 거란 말이다!!”
진철이 유차정과 목각 인형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허리의 뼈가 부러진 것인지 유차정이 신음을 흘렸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유변이 더욱 중요했다. 두 손으로 땅바닥을 기어 목각 인형을 잡은 뒤 얼굴을 쓰다듬었다.
“당신, 끝까지……!”
진철의 얼굴이 악귀나찰처럼 일그러졌다.
“아버지.”
그러나 작은 손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전기가 흐르듯 짜릿한 느낌. 진철이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유선영을 바라보았다.
“소자 변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란 것은 유차정 또한 마찬가지인 듯 그가 유선영을 바라보았다.
“소자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여 이리 아버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만큼 불효가 없다는데, 소자는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군요.”
하하, 하고 억지로 웃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히 유변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진철은 자문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변아……! 변아……! 변아……!”
유차정이 목각 인형을 받든 채 유선영을 향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듣고 싶었던 목소리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 같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하지만 소자는 괜찮습니다. 저의 잘못인데 어찌 제가 감내하지 못할까요. 제가 죽은 것도 전부 저의 탓입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아비가 너를 몰라줘서 그리된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제가 몰랐던 것인데, 어찌 아버지가 저를 몰라줬다 하십니까. 그런 말은 됐습니다. 저는 그저 마지막 가는 길에 아버지와 몇 마디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무슨, 소리를. 또다시 가려는 것이냐?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너는 내 곁에 있어야 한다!”
유차정의 애원에도 유선영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나십니까, 아버지? 제 이름은 유 씨 성에 변, 자는 공인입니다. 아버지의 친우께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 하여 지어 주신 이름이지요. 하지만 아버지, 저는 과연 제 공인이라는 자대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나요?”
유차정의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는 죽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피해를 미친다면 그건 악귀지요. 저는 악귀가 되기 싫습니다. 아버지는 어찌 저를 악귀로 만드시려 하시는 겁니까?”
“악귀가 아니다! 악귀가 아니야!!”
“악귀입니다. 저는 남과 마찰을 빚지 않고 안빈낙도하면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함없지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연명해 봐야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이제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순리가 무슨 상관이더냐! 너만 있으면 역천이라도 상관없다!!”
“아버지.”
슬픈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죽은 사람들의 남겨진 가족이 겪는 슬픔을 아시면서 어찌 그리 남에게 똑같은 아픔을 주십니까?”
반박하려던 유차정의 입술이 정지했다.
“아버지와 도사가 죽인 대부분이 마을 사람입니다. 저와 말동무를 하던 육 할아버지, 언제나 빵 한 조각이라도 챙겨 주시던 영 아줌마, 같이 커 온 의아. 모두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가족이 겪을 슬픔은 어찌 생각해 주지 않으십니까?”
“아…….”
한 줄기의 새된 목소리.
“역지사지라 하였습니다. 언제나 아버지께서 제 자와 함께 같이 말씀하시던 성어이지요. 그런데 소자가 없어졌다고 어찌 아버지는 자신의 가르침마저 잊어버리신단 말입니까?”
“아아……! 아아아아아아──!!”
죄책감에 짓눌린 비명 소리.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야단을 맞은 아이처럼 유차정은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완벽히 사술에서 벗어난 목각 인형의 머리가 동강 나 떨어졌다.
“울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선영의 작은 손이 유차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의 모든 죄는 전부 저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모두 제가 이고 갈 터이니, 아버지는 모두 잊으십시오.”
희미해지는 목소리.
“희생된 모두에게 죄를 이고 간다 말하더라도 어찌 위로가 될까요. 속죄라 하더라도 자기 위안일 뿐, 죄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버지만이라도 편안히 계세요. 벌은 제가 받을 터이니 걱정 마세요.”
마지막 한마디.

“사랑합니다, 아버지.”

더 이상 유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남은 것은 울고 있는 유차정과 눈물을 참는 단세명, 멍한 유선영과 진철뿐이었다.
“진철.”
유선영이 불렀다.
“왜?”
“마음이란 뭘까?”
마음이 없는 아이의 한마디. 진철이 하늘을 바라본 채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유선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형조차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유선영은 아직도 뭔지를 모르겠어. 유선영은 인형보다도 못하네.”
“그리 말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저…….”
떠오르는 한 사람을 흘려보내고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해주었다.
“그것을 희미하게라도 알게 될 무렵이면, 너는 어른이 될 거다.”
“어른이 되면, 뭐든지 아는 거야?”
어린아이의 순진한 물음. 진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른이라 뭐든지 아는 게 아니야. 많은 것을 알게 되면 그제야 어른이 되는 거지.”
인형에 깃든 사람의 마음. 자신의 마음이 깃들지 않은 사람의 몸. 희미한 자극이 마침내 갈라진 황무지에 시원한 물을 뿌리고 꽃씨를 심었다.
언제쯤 발아할 수 있을까?
언제쯤 그 떡잎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 희망은 보인다. 기다리면 언젠가 활짝 꽃을 피우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진철은 그때를 기리며 유선영을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