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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14화)
3장 ― 호부견자(3)


“찾아라!!”
“여기, 여기에는 한 번도 안 가 봤어!”
“산동유가의 저택인데?”
“알 게 뭐냐! 같은 오대세가이니까 분명 도와줄 거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여러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어 서로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었다.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일까? 몇몇 무인이 용기를 내 유가에 내준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오는군.”
남궁수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어 바닥에 튕긴 침이 볼에 묻었다. 한숨만 나오는 꼴이었다. 왜 하필 이런 곳에 들어와 저런 놈과 싸워 이따위 꼴이 되어야 했던 걸까? 하늘만이 원망스러웠다.
“당신을 찾으러 오는 것이란 건 알고 있지 않소?”
“그래서 침 뱉었잖아. 짜증난다고.”
“수행원으로 왔으니 같은 남궁세가의 가족일 텐데, 그리 못마땅할 일이 무에 있소?”
“같은 성씨만으로 이루어진 가문이라…… 허울만 좋을 뿐이지. 가족이 가족이 아닐 수 있단 생각은 하지 않는 거냐?”
증오와 분노가 뚝뚝 떨어질 듯 목소리에 묻어났다. 무슨 사정이 있던 걸까? 가주의 총애를 받는 삼공자가 이리 가문에 원한을 가질 일도 흔치 않을진저, 본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으리라.
“어떻게 하겠소?”
“뭘?”
진철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한쪽을 접으며 말했다.
“첫째, 저들에게 잡혀간다.”
마지막 하나를 접으며 말했다.
“둘째, 숨겨 줄 테니 잡혀가지 않는다.”
남궁수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첫 번째는 남궁세가의 삼공자를 때렸다는 것으로 우리를 곤욕 치르게 할 수 있을 것이오. 물론 산동유가의 건물 내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불문에 부쳐지겠지만.”
끌리는 조건이었다. 불문에 부쳐지더라도 그동안에 있을 저들의 마음고생을 생각한다면 구미가 당겼다. 혀로 할짝 마른 입술을 훑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그대를 숨겨 주어 저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소. 다만, 그렇기에 우리는 무림맹에 그대를 때렸다는 사건을 알릴 이유가 없고, 그대는 저들에게 잡혀가지 않을 수 있소. 선택의 시간을 줄 테니 어느 쪽을 고를지 선택해 보시오.”
“두 번째.”
대답은 거침없었다.
“네가 곤욕을 치르는 것도 괜찮지만, 그보단 저 녀석들이 더 싫다. 골탕 좀 먹어 보라지. 키키킥.”
악동과도 같은 웃음이나 처량한 느낌도 들었다. 아이가 타락한다면 이렇게 된다고 본보기로도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단세명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주변을 청소했다.
“그럼 이쪽으로 옮기겠소. 잘 숨어 있으시오.”
무릎 뒤쪽과 등에 손바닥을 대 들어 올린 뒤, 큰 장롱 속에 넣었다. 크다고는 하지만 사람 하나를 넣으면 금세 비좁아지는 공간이었다. 무릎을 가슴에 댄 채 꾸겨진 남궁수가 진철을 원망스럽다는 듯 올려다보았지만, 같은 남자인 진철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눈빛이었다.
“혹시 강경하게 들어온다면 잡지 못할 터이니, 그때는 어떻게든 숨어 보시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하라고!”
“그걸 생각하는 것이 그대의 일이오.”
걸려 봐야 좋을 것 하나 없을 텐데도 당당한 언사.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불리하다는 양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를 하니, 할 말도 목구멍에 걸려 채 나오지를 않았다. 진철이 장롱을 닫자 희미하게 흘러나오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를 않았다. 숨소리조차 사라져 갔다. 귀식대법의 일종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문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단세명이 문을 열었다. 연한 쪽빛의 무복, 가슴께에 한 마리 청룡이 구름을 타고 노닌다. 정련된 기도와 날카로운 눈빛은 그야말로 명가에서 수련받은 무인의 표본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냐?”
단세명이 입을 열자 두 무인이 모두 포권을 취하였다.
“단철호도 단 선배님을 뵙습니다.”
누구에게도 예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드높은 자존심과 위명을 고고함으로 감싸니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천하제일의 세가가 가진 장점이기도 했다.
“선배는 무슨. 낭인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됐으니 용건이나 말해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가문의 삼공자께서 사라지셨는데, 이쪽으로 오지는 않으셨나 해서 묻겠습니다. 혹시 이곳에 삼공자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지나가는 삼공자를 보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보지 못했다. 이곳으론 오지도 않았어. 같은 오대세가라고는 하나 자제들끼리 서로 교류를 할 만큼 친하지도 않은 남궁세가와 산동유가다. 무림맹에서도 산동유가에게 주어진 이곳은 유명하다.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무슨 염치가 있어 이곳으로 올 마음이 들겠느냐.”
“그, 그렇군요.”
말의 중간 중간 은밀하게 솟아난 가시가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강압적으로 들이닥친다면 이곳에 남궁세가의 자제가 있다는 의심이 강하다는 말이요, 만일 정말로 있다면 남궁세가의 자제는 아는 것도 없고 염치도 없는 바보라는 소리였다. 아무리 삼공자의 진실을 알고 있는 그들이라도 남궁세가의 자존심 때문에 이곳에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삼공자를 뵙게 되신다면 알려주기 바랍니다. 실례했습니다.”
말문이 막힌 무인을 뒤로 밀어내고 나머지 무인이 말하며 문을 닫았다. 두런두런 서로 말을 주고받더니, 이내 소리가 저 멀리로 사라졌다. 기감을 펼쳐 주변을 살핀 단세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철이 장롱의 문을 열었다.
“……숨 막혀 죽을 뻔했잖아.”
“미안하게 됐소.”
몸이 죽어 가는 판에 귀식대법을 썼으니, 생각해 보면 정말 죽기 일보직전이었을 것 같았다. 진철은 그것을 인정하여 이번만은 순순히 사과했다.
“그런데 그 녀석들, 진짜 그 말만 듣고 간 거야?”
“그래, 갔다. 남궁세가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안 가곤 못 배겼겠지.”
“큭큭큭, 바보들 같으니라고. 꼴에 천하제일세가의 무인이라고 자존심만 세 가지고는.”
남궁수가 음울한 웃음을 흘렸다.
“삼공자가 이렇게 아는 것 없고 염치없는 녀석이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움직이지도 못하다니, 정말 천하제일의 세가라는 이름값이 그렇게도 무거웠나 보지. 알고도 못 움직인다니, 그야말로 외통수잖아.”
“네 가족들을 그리 괴롭혀서 좋더냐?”
단세명이 한심하다는 듯 말하자 남궁수가 웃음을 그치곤 무표정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시지, 영감.”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이 살아온 가족인데, 그리 행동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느냐.”
가족의 따스함을 누구보다도 바라는 단세명이었다. 가족을 잃은 후의 그 슬픔을 잘 알기에 남의 사정이라고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사라진다면 기뻐할걸? 영감이 생각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야, 남궁세가는. 서로 경쟁하고, 서로 험담하고, 서로 드잡이하고, 서로 희생되는, 그런 곳이지. 가족이기에 더욱 남보다도 악랄하게 대하는 곳이라고.”
남궁수가 이를 으득 갈았다.
“그런 의미에서 쓰레기 같은 삼공자가 사라진다면 좋아서 잔치라도 열겠지. 남궁세가의 치부라 할 수 있는 새끼가 죽었으니 더 이상 그 이름에 먹칠을 할 바보가 없어지고, 일공자와 이공자의 입지만 강화되는 꼴이니까. 두 녀석의 줄에 선 인간들은 신경 쓸 일이 없어졌다고 안심할 거야.”
사실이라면 안타까울 뿐이었다. 가족으로서 어찌 서로를 돕지 못하고 서로를 괴롭히는가. 하나 남은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인간 백정이 되었던 단세명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거대한 가문의 비정한 일면이었다.
“그런데 치료는 어떻게 할 예정이오? 그 얼굴로는 분장도 못할 텐데. 의원에게 간다면 들통 나는 것이 당연하잖소.”
“의원에게 갈 필요 없어. 알아서 할 테니 방이나 하나 내줘.”
“방은 아무 곳이나 하나 골라잡으면 되오.”
“그럼 저쪽으로 간다. 내일 아침까진 찾지 마.”
“부축해 줬으면 하오?”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남궁수는 정말 자기가 알아서 하였다.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이후로는 털썩 주저앉아 고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듯 여러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골치 아픈 망아지로구나.”
단세명이 남궁수가 들어간 방 쪽을 바라보며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이 그리도 맘에 안 드는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불만에 가득 찬 녀석이었다. 조금은 그 부러운 삶을 즐겨도 되거늘 거부하고 나쁜 길로만 빠져들려 하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영이랑 붙어 다니더니, 부성애라는 것이 생긴 것 같소.”
“내 나이 벌써 이립(而立)이다. 선영이만 한 딸이 하나 있어도 될 나이이니, 그리 되었나 보다.”
평생 전장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자신으로 인해 잘못된 가족, 하나 남은 여동생만을 위하여 살아온 인생이다 보니 여자 손 한 번 붙잡아 보지 못했다. 나이는 찼으나 마음에 드는 이 없고, 그 악명 때문에라도 들러붙는 여자 하나 없었다.
“…….”
생각하던 도중 단세명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러시오?”
“아니, 그냥 갑자기 떠올려서는 안 될 녀석을 떠올려서 그렇다. 신경 쓰지 마라.”
오히려 자신이 더욱 신경 쓰는 모양새면서 그런 말을 한다. 단세명은 고개를 도리질 쳐 상념을 털어 냈다.
“저 녀석은 언제까지 이곳에 놔둘 참이냐?”
“자기가 마음에 들 때까지 놔둘 생각이오. 괜찮지?”
유선영은 문제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생각 없는 애한테 뭘 묻고 있냐? 오늘 정도까지야 괜찮지만, 내일까지도 보이지 않는다면 비상사태다. 남궁가의 직계가 하나 사라진 것이니 무림맹도 면목을 못 감출 테고, 강압적인 수단으로 찾아 나설 터이니 들키는 건 시간문제가 될 터다.”
남궁세가에게 얼굴을 떳떳이 내밀기 위해서라도 무림맹은 분명 강압적인 수단으로 나설 것이다. 추적의 전문가를 수소문하여 흔적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남궁수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들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유선영과 산동유가가 치를 곤욕은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그리 걱정할 필요 없소. 어차피 우리가 알리지 않아도 남궁세가가 먼저 찾을 테니까.”
“뭐라 했느냐? 그럼 우리만 곤욕을 치르는 것이잖느냐!”
“곤욕을 치를 일도 없소. 그쪽에서 비밀리에 찾아올 것이고, 알려져 봐야 서로 간에 득될 것이 없는 일일 테니 말이오.”
“또 그놈의 너만 알 수 있는 불청객 이야기냐? 너 혼자 알고 있지 말고 좀 알려줘라. 무슨 비밀이 그리 많아?”
“말했잖소, 알고 싶으면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나 있는 목숨보다 호기심이 크다면야 말리진 않겠지만 말이오.”
“성격 더러운 놈.”
단세명이 투덜거렸지만 진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인데 저런 불만에 양심이 찔려서야 될 일인가. 아니 될 말이다. 그러나 나이 서른 넘은 남자가 투덜거리는 것도 볼만한 광경은 아닌지라 이번만은 말해 주기로 했다.
“반룡이 올 것이오.”
“응? 반룡? 남궁세가 일공자를 말함이냐?”
“그렇소. 가족이 엇나가면 부모가 아닌 형제가 잡는 법이지. 무엇보다 막내의 일 아니오. 큰형인데 설마 모른 척하겠소?”
“그것도 모를 일이지. 선영이의 얘기를 들었잖느냐.”
“이제는 몇 마디 해 준 것만으로도 그 정도는 알게 됐나 보오?”
“겪은 일이 있는데 설마 모를까. 그리고 이번 것은 쉬웠잖느냐. 단서도 많았고.”
남궁세가, 일공자, 동생, 가주에게서 받는 총애. 모든 것이 남궁세가의 속사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깊이 파고들어 가면 실제와는 다른 부분도 있긴 하겠지만, 드러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확연했다.
“올 것이오. 안 올 리가 없지. 어리광은 받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오.”
“아까부터 어리광, 어리광 그러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알 필요 없소. 보면 다 알게 되니까 말이오.”
“매번 그딴 소리나 하고…….”
아는 놈이 빙긋 웃으며 알게 된다고 말하면, 모르는 놈에게는 그만큼 화가 나는 일이 없었다.
“밤이나 기다리시오. 이번 사건은 오늘 밤이면 다 해결될 것이오.”
“선영이가 말도 못하게 했으면서 하루는 무슨 하루면 끝낸다는 소리냐?”
“밤에는 선영이를 부를 것이오.”
“그건 또 무슨 청개구리 심보냐?”
“청개구리가 아니라 맞는 수순을 따랐을 뿐이오. 혼자 있으면 혼자 상처받지만, 둘이 있으면 둘 모두가 상처받소. 그리고 상처받은 인간들은 서로를 보듬기 마련이지. 쉽게 도출될 수 있는 결론 아니오?”
“……과연 네놈의 생각대로 될까?”
진철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안다는 듯 단세명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대의 집안 사정은 특수한 경우요. 그대가 여동생을 먹여 살렸으니 형제라기보다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가깝지. 기실 형제 사이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서로에게 주는 것은 흔치 않소. 애증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 주는 특이한 관계지.”
진철이 유선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관계도 해결해야 될 날이 곧 올 거야.”
“…….”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인지, 이해를 안 하는 것인지 유선영의 반응은 없었다.
“그럼 이제 그만 들어가 쉬는 것이 좋겠소. 비무를 끝내고 씻지도 않았잖소? 안 찝찝하오?”
“그래, 먼지 하나 안 묻은 너와는 달리 만신창이인 나는 씻으러 나가마. 저녁이라 했겠지? 네놈의 말대로 될지 기대하고 있겠다.”
진철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기대하시오. 볼만한 장면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