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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17화)
4장 ― 자매의 입장(1)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는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낮에도 조금은 쌀쌀한 기운이 감도니,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돌돌 싸매고 뒹굴거리는 것이 아이들의 낙이 되었다. 유선영 또한 특수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 아침마다 밥을 먹으라 깨우는 단세명과 더 자게 내버려 두라는 진철이 실랑이를 벌인 지도 일주일을 넘었다.
아직은 초록색 생명의 기운을 간직한 정원 속 한 그루 단풍 고목(古木). 바람에 휩쓸려 떨어진 나뭇잎 한 장이 나풀나풀 날아와 유선영의 콧등에 앉았다.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한 다섯 세가를 뽑으라면 누구라도 쉽게 열거할 수 있으리라. 안휘의 남궁세가, 하북의 팽가, 절강의 모용세가, 사천의 당가, 그리고 산동의 유가. 이렇게 다섯을 한데 묶어 오대세가라고 부른다. 그중 특이 사항을 말하자면, 산동의 유가는 오대세가에 포함된 지 십 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파무림은 구대문파와 사대세가가 대표였다. 하지만 산동유가의 세력이 이십 년 전부터 점차 커져 결국 사대세가의 제일이라는 남궁세가를 위협할 정도가 되자 사대세가는 오대세가가 되었다. 산동유가의 조력자는 배신하지 않고, 마치 가족처럼 지낸다. 그들은 그들을 견제한 다른 문파의 공격은 있었어도 그들과 관계된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산동유가는 신생 세력이 으레 겪는 권력 암투를 겪은 적이 없어 자신의 세력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건 어찌 된 일인가. 그에 관한 소문이 있는데, 산동유가 가주의 딸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한다.”
수십, 수백 번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닳고 닳은 양피지. 손때가 묻어 본래의 색과 질감을 잃은 양피지를 활짝 편 채 진철은 낭랑하게 내용을 읊었다.
“그건 또 왜 읽고 난리더냐?”
단세명이 조금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내공 없이 순수한 근력 단련을 한다며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였기에 그런 것이었다. 진철은 다섯 손가락만으로 나무 몸통을 타고 내려오는 단세명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거, 조용히 풍류를 즐기면 어디 쥐가 나시오? 남아는 반드시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운치 좋은 곳에서는 몸을 쉬고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이 예의요.”
“그러는 네놈도 선영이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제야 양피지 하나를 읽은 것뿐이잖으냐. 네놈도 책이라곤 가져오지도 않았으면서 누구한테 지적을 하는 것이냐.”
“본인은 그래도 조금씩 활자라도 읽지, 내 지금껏 그대가 책 한 권 읽는 것을 본 적이 없소.”
“……어차피 무인이 무공을 배울 뿐인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느냐?”
단세명이 고개를 돌리곤 변명하듯이 중얼거렸다. 얼굴이 붉어진 것이, 확실히 변명이었다. 진철이 더욱 쏘아붙였다.
“쯧쯧, 그러니 그대 같은 낭인들이 뭣 모르고 날뛰는 멧돼지라 불리는 것이오. 강호 정세에 대해 기술한 서적, 전투의 기본에 대해 기술한 병법서, 풍류를 알려 주는 옛 시인들의 시집 등등. 하다못해 고급스런 주루에라도 들어가려면 시 한두 소절은 읊을 줄 알아야 되지 않겠소?”
“…….”
저렇게 말하니 변명을 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패배를 느낀 단세명이 뚱한 표정으로 나무 반대편에 철퍽 주저앉았다. 나이 서른 먹고 말싸움에 졌다고 삐치다니, 저 사람이 과연 낭인왕 후보라는 단철호도인지 어린애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지금 질문에 답할 건데, 안 들을 거요?”
“듣는다.”
곧바로 들려온 대답에 숨죽여 웃은 진철이 눈물을 닦고 말을 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어서 그렇소.”
“이상한 점이라니? 강호에 퍼진 소문을 그대로 받아 적어 읊은 건데, 뭐가 이상하단 것이냐? 과장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엔 그런 것도 없지 않느냐?”
강호의 소문이란 것이 보통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며 살이 붙어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산동유가에 대해 평가한 소문에서는 과장된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부분을 믿지 않긴 하지만, 오히려 사실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실에 가까웠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이상하다는 것일까? 단세명이 참을 수 없는 궁금함에 삐쳤다는 것도 잊고 길게 질문하였다.
“이 구절이오. 잘 들어 보시오. ‘그중 특이 사항을 말하자면, 산동의 유가는 오대세가에 포함된 지 십 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응?”
단세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소? 짐작이 가오?”
“아니, 전혀 모르겠다. 거기가 뭐가 이상하단 거냐? 산동유가가 오대세가에 포함된 지 십 년도 되지 않았단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
“그 부분만 보자면 그렇소. 하지만 본인이 지금부터 읊을 문단과 그 구절을 이어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오. ‘산동유가의 조력자는 배신하지 않고, 마치 가족처럼 지낸다. 그들은 그들을 견제한 다른 문파의 공격은 있었어도 그들과 관계된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산동유가는 신생 세력이 으레 겪는 권력 암투를 겪은 적이 없어 자신의 세력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건 어찌 된 일인가. 그에 관한 소문이 있는데, 산동유가 가주의 딸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한다’.”
“……도대체 뭐가 이상하단 것이냐?”
아무리 들어도 알 수가 없었다. 단세명이 진정 궁금하다는 듯 깊은 의문을 표하자 진철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런 머리로 도대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 절정고수가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소. 아니, 낭인으로서 정보를 얻어 일해야 할 때가 많았을 텐데, 왜 이런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오? 대회에 참가하여 낭인 일을 몇 달 쉬었더니 능력이 퇴화하여 돌머리가 된 건 아니오?”
진철의 혀는 신랄했다. 그러나 아무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던 소문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는 몇 구절만 읽어 준 뒤 정보를 조합하라면 누가 있어 해낼 수 있을까. 단세명으로서는 답답하고 억울하여 땅을 치며 한탄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저 웬만한 냉혈인간 저리 가라 할 진철이 미안하다 사과할 리가 없었다. 어차피 알려 주려 마음을 먹었던 것일 테니, 대들어서 욕먹느니 가만히 있는 것이 답이었다. 몇 달간의 생활로 진철을 대하는 법을 깨달은 단세명은 참으로 현명한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로서 진철은 단세명에게서 반응이 없자 곧바로 답을 이야기하였다.
“선영이의 나이가 올해로 아홉이오. 태어난 지 십 년도 채 되지 않았지.”
“혹시 선영이를 이용해 유가가 득세하여 오대세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냐? 하지만 시기적으로 문제가 안 되지 않느냐? 십 년도 되지 않았다 하였으니 나이와 비교하자면 문제될 것이 없는…….”
말하다 말고 단세명이 입을 다물었다. 그 또한 진철의 진정한 의문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었다. 진철이 수고를 덜었다는 생각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깨달은 것 같소. 그대의 생각대로요. 십 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 팔구 년을 뜻하지. 하지만 그것과 선영이의 나이를 대조하면 선영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유가에 기여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오.”
“아니, 그것도 표면만 본 거겠지. 오대세가가 되기까지 산동유가는 힘을 키웠을 거다. 적어도 오 년에서 십 년은 힘을 키웠겠지. 그리고 힘을 키운 것은 유가 장중보옥의 타심통을 이용했다고 소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니 유가에서 타심통을 이용한 시기는…….”
“최소한 15년 전이오.”
말이 안 되는 시기였다. 유선영이 없었던 시기에 어떻게 타심통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타심통이라는 소문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우연찮게 유선영이라는 아이가 태어나 거짓이 진실이 되어 거대한 힘을 키웠다? 우연도 정도껏이다. 저 정도면 기적이라 불러야 마땅하리라. 그리고 현실에서 기적이 이뤄지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것도 나쁜 방향으로 바라던 기적이라면 불가능에 한없이 가까웠다.
“뭔가 있군.”
“그리 진지한 얼굴을 한 채 내가 큰 것 하나 알아냈다 자랑하려는 투로 말하지 않아도 되오. 어차피 본인이 알아낸 것이고,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까지도 전부 다 알아냈으니까 말이오.”
“벌써 알아냈다고?”
앞의 말은 깡그리 무시하고 궁금한 것만 물었다. 단세명의 처세술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벌써라니? 본인은 십 년도 더 전부터 왜 그런지 알고 있었소.”
“네놈 잘난 건 알겠는데, 과장도 도가 있는 법이다.”
단세명이 쯧쯧,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진철을 내려다보았다.
“믿든 안 믿든 그대의 자유요. 그저 본인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일이 없다는 것만 말하겠소.”
바람이 점점 더 싸늘해지고 있었다. 경관 좋은 정원에 가만히 누워 있자니 졸음이 몰려온 유선영에게 자신의 겉옷을 입힌 진철이 그녀를 업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된 건지는 말 안 할 예정이냐?”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물으시오? 좀 더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시오.”
안 알려 준다는 소리였다. 단세명의 짜증이 한계에 달하여 노발대발하기 전에 진철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뭐라 할 때를 놓친 단세명은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느낌에 머리만 벅벅 긁으며 화를 내다 진철을 따라갔다. 어차피 물어봐야 이런 말이나 하겠지.
‘기다리면 다 알게 될 거요.’
하루 정도를 참지 못할 만큼 단세명의 인내심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무림맹에서 매일 파견을 나오는 숙수가 밥을 하고 있을 시간대가 되었다.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모양 연기, 뜨끈한 공기를 타고 구수한 밥 냄새가 콧속을 파고드니 잠자고 있던 유선영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코를 벌름거렸다.
“당과가 먹고 싶구나.”
유선영이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응?”
진철이 놀라 가던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 유선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직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확립을 해내지 못한 유선영이었다. 호기심이란 감정을 깨닫긴 했지만 갈 길은 멀고 바라는 미래는 요원했다. 하지만 어느새 여기까지 성장한 것일까? 먹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자신의 의지가 생겼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흐뭇하게 웃으며 밥 먹기 전에 몰래 달콤한 당과를 사 먹이려고 마음먹은 순간, 진철은 보았다. 유선영이 단세명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
“…….”
진철이 단세명을 보았다. 동공에 빛이 사라졌다. 입이 헤 벌려졌다.
단세명이 시선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
“…….”
“…….”
“……크흠.”
단세명이 결국 헛기침을 하며 자포자기한 듯 빠르게 말하였다.
“가, 갑자기 단게 먹고 싶어졌을 뿐이다. 당과는 내가 원래부터 좋아했던 음식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없소. 전혀 없소. 눈곱만큼도 없소. 문제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소.”
긍정이 더 무서웠다. 비꼬는 것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더한 충격으로 심장에 비수처럼 꽂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세명이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어정쩡하게 뒤돌아 바깥을 향해 걸어갔다.
“나, 나는 밖에 나가 알아서 먹고 올 테니, 너희들은 여기서 숙수가 해 주는 밥을 먹어라.”
꼬르륵!
단세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배에서 소리가 울렸다. 단세명의 것도 아니고 진철의 것도 아닌, 유선영의 배에서 난 소리였다. 감정의 전이. 자신이 먹고 싶지 않더라도 단세명이 먹고 싶어 했으므로 유선영 또한 당과가 먹고 싶어진 것이었다.
“죄책감 느끼지 않으시오?”
“내가 당과 몇 십 개든 몇 백 개든 마음대로 사 주마! 마음껏 골라라!!”
단세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그리고 어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탁월한 선택이시오.”
진철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유선영이 당과를 먹고 싶다 하여 떠올려 보니 군것질을 안 한 지가 꽤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 또한 먹고 싶어진 것이었다. 무림맹 숙수의 실력이 별로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잣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먹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었다. 숙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저 밥을 먹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림성의 거대함은 널리 알려져 있듯 하루를 돌아도 다 보지 못할 정도이니, 그 속에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인부들이 살고 무림맹의 인사들이 거주하니 자연 물류가 오가고 시장과 같은 시설들이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시장에서는 담당 인사에게 패(牌)를 받은 상인들만이 물건을 팔 수 있었다. 매번 패를 받을 때마다 일정량의 금액만 내면 더 이상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 파락호나 흑도의 무리에게 위협을 받을 일도 없으니, 무림성 내부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남는 장사였다.
수많은 인구가 오가는 시장 거리. 진철과 단세명, 유선영은 인파들 사이를 헤치며 원하던 당과를 파는 상인을 찾고 있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소.”
인파에 밀려 가끔씩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오늘은 사람이 많았다. 무림성 내부에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비정상적일 정도였다. 그래도 사람이 불편함 없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은 시장 내부에 났던 것이 평소인데, 어찌 된 이유일까? 궁금해진 진철이 물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감안해야지.”
“특별한 날? 남궁세가에서 또 오기라도 하는 거요?”
“오대세가에서 오는 건 아니다. 오대세가가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무림성 구석구석이 꽉 찰 정도로 인파를 몰고 올 순 없지. 무림맹 내부의 단체가 돌아올 예정이라 그런 거다.”
보호해 주고는 있다지만, 유선영이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뎌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사람들이 빠질 때까지 조금 쉬기로 한 진철은 단세명과 유선영을 불러 구석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누가 돌아올 것이기에 그렇소?”
“문 선배와 함께 임무를 수행 나갔던 숭검단이 돌아온다.”
숭검단. 몇 번 이야기를 나눈 기문쌍검 문겸익이 단주로 있는 무림맹 제일의 무력 단체였다. 나이를 고려치 않고 그저 무공 실력과 바른 심성만을 보고 단원을 뽑는 것으로 유명했다. 평균적인 무공이 무림맹 내부 단체들 중에서 제일 뛰어나기도 하거니와, 수많은 협행과 완벽한 임무 완수 능력으로 평판 또한 좋으니 단원들에게 무림맹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주고 있었다. 단원 백오십 명, 조장 열 명, 조장 중에서 뽑히는 부단주 한 명, 단주 한 명. 모두가 이름만 대도 알 정도이니, 대단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단체였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구파의 제자들, 오대세가의 후계자들, 문파의 기대주 등등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인맥은 완성된다 할 수 있는 곳이다. 혹시나 싶어 몰려드는 어중이떠중이들도 있겠지.”
철검 한 자루를 허리춤에 찬 채 이곳저곳을 헤매는 무림인 몇 명을 보며 단세명이 중얼거렸다. 실전으로 능력을 키워 온 그가 보기엔 일확천금을 노리는 그들이 못마땅하고 탐탁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오대세가의 인물들이 있다면, 산동유가의 인물 또한 있지 않소?”
“있던 걸로 기억한다.”
“누구요?”
진철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눈을 빛냈다.
“냉심소화(冷心素花) 유선아라고 한다. 문 선배가 가장 아낀다는 일조의 조장이자 부단주를 맡고 있는, 대단한 여류 고수지.”
“그리고?”
“별호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다른 무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싹싹하게 구는 편은 아니다. 말을 걸면 무공에 대한 일이 아니고는 찬바람이 쌩쌩 분다고 하더군. 무인이라지만 여자의 몸이니, 그 치열한 곳에서 버티려면 그 정도 독기는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그에 대해 나쁜 평판은 없다.”
“그리고?”
“산동유가 가주의 딸이다. 그러고 보니 선영이의 언니가 되겠군.”
단세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산동유가 가주의 딸. 북방에서 마음을 읽는다는 산동유가의 장중보옥이 호위무사를 뽑는다고 하여 독자적으로 알아보았을 때, 유선아가 원하던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떠올리지를 않았기에 잊고 있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니 무림성, 그리고 중원무림인 중 산동유가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산동유가 가주의 딸. 널리 알려진 것은 유선영이 아니라 숭검단 부단주 유선아였다. 여성임에도 본신의 무공 실력만으로 그 정도 직위에 올랐으니, 타심통이라는 능력을 썼을 리가 없다고 사람들이 지레짐작하고 무시하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