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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군에 입대하자마자 그것도 고작 3급 시민 주제에 특전지원단에 들어갔다.
특수기술여단에 근무하는 자라 하더라도 아무나 갈 수 없다는 곳에 배치가 됐으니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정말이지 재수가 좋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최상의 결과였다.
‘젠장할! 봉은 무슨 봉?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비행정이 무사히 이륙하고 궤도에 무사히 진입했다가 곧바로 지상으로 낙하하는 꼴이었지.’
특전지원단에 배속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컥 전쟁이 나 버렸다. 그것도 세계대전으로 번지는 엄청난 전쟁이 발발해 버렸다.
전쟁이 났으니 당연히 전역은 허가되지 않았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는데 졸지에 전투에 참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동안 계획해 왔던 것들을 전부 산산조각을 내 버렸다.
‘후우, 미련하게도 그때는 희망은 있다고 생각했었지…….’
전투에 나가서 전사하거나, 운 좋게 불구가 되어 의가사제대를 하기 전에는 절대 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음에도 차훈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들이 죽음을 안고 산다고는 하지만 남달리 눈치가 빠른 편이라 잘만 노력하면 살길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살 수 있다. 반드시 무사히 제대를 할 것이다. 첫 번째 전투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로 믿었었지. 크크크!’
철없던 시절이 떠올라 차훈의 입가로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철부지 같은 생각이고, 오산이었다.
최첨단 기술이 담긴 무기들을 개발하고 직접 다루기도 하는 탓에 특전지원단의 위상은 높은 편이다. 전문성도 높고 난이도가 있는 보직인 만큼 근무 환경도 무척이나 좋았다.
지옥으로 가는 특급 열차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특전지원단에 들어왔다고 시시덕거리며 좋아만 하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한심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만약 전시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예상한 대로 시간이 흘러갔을 것이 틀림없지만 인생의 오묘함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는 격언처럼 차훈은 꼬인 인생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문제는 특전팀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몰랐단 것이었지. 그런 사람들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단원들 중에서 특전팀의 현장 지원 임무에 내가 차출된 것도 재수가 없는 일이었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내뺐을 텐데 말이야.’
특전팀!
물론 최고였다. 차훈이 보기에 그야말로 최강의 부대였다.
군인라고 부르기에 뭐할 정도로 사람들도 좋은 편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편의도 봐주고 아들 같은 막내라고 귀여워해 줬을 정도로 인간적으로도 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람 좋다고 생각했던 특전팀원들이 전쟁이 나자 분위기가 달라져 버렸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위험한 느낌을 곳곳에 간직한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후후후, 특전팀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처음으로 안 것이 작전 투입 직전에 받았던 훈련 때였지 아마…….’
차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특전팀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상상을 불허하는 능력을 지녔던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 * *

2개의 제국과 5개의 연합 사이에서 벌어진 7차 세계대전의 시발이 됐던 제국간의 전쟁이 2312년 발발했다.
처음 전쟁이 시작된 것은 옛날 아메리카라 불리던 대륙에 위치한 아메르 제국과 극동아시아라 불리는 곳에 자리 잡은 채니아 제국 사이에서였다.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는지 아직까지도 이유가 불분명하지만 두 제국의 전쟁은 무척이나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국지전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워낙 많은 전쟁을 치러 왔던 터라 그저 그렇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종내에는 세계대전으로까지 비화가 된 전쟁이었다.
간단하게 끝날 국지전에 세계대전이 된 원인은 초반의 불균형과 채니아 제국 수뇌부의 무리수가 원인이었다.
전쟁 시작 후 초반전은 차훈이 속한 채니아 제국의 참패였다. 기습을 받아 전력의 일각이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탓에 집중된 힘을 투사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아메르 제국의 기습적인 전격전으로 인해 채니아 제국은 전쟁 초기부터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나중에야 어느 정도는 회복을 할 수 있지만 정말이지 엄청난 피해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력을 가다듬어 반격을 가하기 위해 제국 수뇌부는 이해관계에 따라 연합을 불러들였고, 아메르 제국도 자신들의 우방을 불러들여 세계대전까지 번진 것이다.
당시 전쟁에서 채니아 제국은 제국이 무너지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무능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채니아 제국의 동맹국이라고 할 수 있는 연합들이 가세했음에도 전세를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슬론 연합이 제국을 배신했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제국의 수뇌부는 무능한 자들이었다.
나중에 특전팀의 활약으로 전황을 되돌릴 수 없었다면 채니아 제국은 이로 인해 패배는 물론이고, 멸망 직전까지 갔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슬론 연합의 교묘한 배신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수뇌부가 일으켰던 문제 중 가장 컸었던 것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연이어 무리한 작전들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방어선이 무너지자 제국 수뇌부는 슬론 연합의 권고를 받아들여 즉각적으로 특전팀을 투입했다.
요인을 암살하는 것과 함께 전사단을 타격해 아메르 제국의 예봉을 꺽어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자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국 수뇌부의 작전 의도와는 달리 투입된 특전팀들 대부분이 적의 유인책에 휘말려 처참히 괴멸하면서 채니아 제국은 많은 수의 상급 능력자들을 잃어야 했다.
채니아 제국으로서는 방어선이 무너진 것보다 더 큰 피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만약 슬론 연합 파견군의 최고 사령관인 이바노프가 이상하다는 것을 제국 수뇌부에서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면 입지 않을 피해였지만 제국 정보부가 눈이 멀기라도 한 것처럼 당시에는 아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채니아 제국 수뇌부는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뼈아픈 실수를 하게 된다. 전력을 가다듬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해 대안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특전팀의 운용을 이바노프에게 맡겨 놓고 피해를 입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상급 능력자들을 전투에 투입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전쟁의 열세를 만회하고 제국의 위기를 구하기 위한 극단의 조치라고 했지만 황제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던 것뿐이었다.
수뇌부는 이바노프의 제안으로 이른바 물량 공세 작전을 시작하게 된다. 능력이 활성화되지 않은 자들까지 전부 전장에 투입하는 극단적인 전략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는 작전이었다.
전쟁 발발 시 임무에 투입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차훈도 이바노프의 의도에 따라 군부에서 입안한 물량 공세 작전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교묘한 명령으로 인해 새롭게 꾸며진 특전팀과 합류한 후 전투에 투입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차훈은 두 번째 특전팀과 합류했지만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던 전사단에 의해 전멸을 당해야 했다.
무사히 귀환을 했지만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도 차훈이 속한 특전팀은 마치 의도한 것처럼 하나같이 전멸을 당했다. 일반적인 임무를 제외하고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특수 임무라고는 하지만 투입될 때마다 차훈 혼자만 살아남고 나머지 특전팀원이나 지원단원은 전멸을 당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전멸당한 특전팀이 모두 아홉 개!
군 수뇌부에서는 차훈이 속한 특전팀을 지옥특급이라 부를 정도로 살아서 돌아올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기적이라 말하던 자들이 차츰 차훈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팀을 이루던 동료들이 모두 죽어 나가니 누구도 차훈이 들어가는 특전팀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는 자들이 같은 팀에 소속되기를 꺼려할 정도로 차훈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당사자는 기적을 만들어 갔지만, 나머지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임무의 특성상 지원단원인 차훈이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들 말했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밝힌 적은 없지만 죽어 나간 특전팀원들과의 인연으로 몇 가지 기연을 얻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음을 물론, 살아남기 위해 악바리처럼 버텨 낸 결과였다.
처음 임무에 투입된 이후부터 자신이 얻은 기연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나갔다.
특전팀원으로 참여한 일급전사들의 전투 기술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익혔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끌어 모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사선을 건널 수 있었다.
각성을 하기 전까지 별 볼일 없는 능력밖에는 없던 차훈으로서는 위험을 피해 내는 특유의 감각과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성한 이후, 네트워크 접속과 관련한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했다.
융합된 정보 전달 체계라면 그 어느 것이든지 접속이 가능하고 정보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차훈의 성장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
몇 번의 죽을 위험과 수뇌부에 있는 배신자의 검은 손을 피해 가며 차훈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전쟁 발발 불과 1년 만에 아홉 개의 특전팀을 잡아먹었다는 악명을 얻은 후에 차훈은 승진과 함께 전보 명령을 받았다.
팀장이 되어 특전팀을 구성하라는 명령도 함께였다.
첫 번째 임무를 비롯한 아홉 번의 작전에서 비록 홀로 살아 돌아오기는 했지만 맡은 임무를 성공시켜 어려운 전황을 되돌릴 정도의 전공을 세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특전팀을 구성하는 것을 어려운 일이었다.
다들 차훈의 탁월한 생존 본능과 능력에는 두려움과 경의를 보냈지만 혼자만 살아서 귀환했기에 능력자들이 합류하기를 꺼려 했기에 특전팀을 꾸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어차피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이 편했기에 차훈은 특전팀을 꾸리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서도 충분히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뜻을 상부에 전달했다.
어느 정도 전황이 회복된 탓에 상급 능력자들이 희생을 줄일 필요가 있어 수뇌부에서 허락을 했다.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군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단독 임무에 투입된 차훈은 맡은 임무를 깨끗이 성공시켰다.
단독 작전의 성공으로 보여 준 전과로 인해 채니아 제국 군부에서는 차훈의 남은 군 생활 기간 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투입된 임무에서도 성공률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간혹 적정에 대한 중요한 정보까지 가져오니 차훈이 원하는 사항은 대부분 들어주었다.
차훈이 부여받은 임무의 난이도는 계속해서 높아져만 갔다.
혼자 임무에 투여되면서도 항상 완벽하게 수행하고 돌아오곤 했다.
수련과 전투, 그리고 배신자를 찾으며 지내는 동안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마침내 화려한 복수를 끝에 얻은 족쇄를 찬 채 전역을 맞을 수 있었다.
복수라는 이름하에 황실일가 하나를 전부 지워 버리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지만 제국 수뇌부에서는 지난 공을 참작해 군을 떠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지난 시절의 공을 인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전쟁이 확산되어 대부분의 연합들이 참전한 가운데 전선이 확대되면서 차훈의 활약은 계속됐고, 능력자들과 각국의 수뇌부 사이에서는 전설로 회자될 정도로 위대한 전사가 되어 있었기에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투신(鬪神)이라는 이름이 아군은 물론 아메르 제국 연합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전설로 회자되고 있었다. 제국 수뇌부는 물론, 적국인 아메르 제국조차도 차훈을 경이롭게 바라볼 정도로 전략적 가치가 크기에 훗날을 생각한 제국 수뇌부는 차훈을 함부로 제거할 수 없었던 것일 뿐이었다.

* * *

삐이!
차훈은 신경을 거슬리는 마찰음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모니터를 보니 아직 절반도 내려오지 못했다.
‘이제는 잊어야 할 일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어둡게 하는 기억일 뿐이니까.’
수많은 임무와 싸움 속에서 마주쳤던 얼굴을 하나하나 지워 나갔다. 아직은 기억해 내야 할 시기가 아니었다.
군에서 겪었던 일에 관해서는 꿈에서라도 입 밖에 내지 않아야 하는 까닭에 차훈은 기나긴 상념을 지우고 현실로 돌아왔다.
“구식은 구식이군. 양자가속기가 워낙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속도가 느려서야.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일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역시. 후후후, 이 녀석도 나와 같은 모양이로군. 엉망이라는 것도 그렇고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 아직은 모르니 말이야.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제대를 하기는 했지만 사회로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지.”
대부분 죽어 나가는 통에 특전팀에서 천 명 중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하다는 전역자가 되어 제대를 했지만 현실에서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전팀의 복무 경력이라면 특수 경력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인정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특별 관리가 되니 누가 인정을 해 줄까.’
당시 참전했던 모든 전투는 군에서도 특급 기밀사항으로 분류해 특별히 관리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군 사무처에서 받은 전역 증명서에는 특전단이 아닌 일반 보병으로 참전해 전역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경력 인정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군을 관할하는 국무성에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항의를 하는 순간,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족쇄를 차고 제대한 몸이라 잘못하면 신분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처지이기에 차훈은 항의는 고사하고 그저 가슴에 묻어 둘 수밖에 없었다.
군에 들어가 기술을 연마하고 제대 후 취직하려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으로 변해 버렸다.
더군다나 은밀히 따라붙은 감찰국의 눈길 때문에 취업은 커녕 사회에서도 반겨 주는 이가 없었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투신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차훈은 점차 폐인으로 변해 갔다.
전쟁에서 겪은 지옥 같은 상황들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정신적 공황이 찾아왔고, 그동안 계획했던 것들이 말짱 공염불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을 해야만 했다.
“그때 그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차훈은 자신을 회생으로 이끈 한 장의 포스터가 기억이 났다.
“후후후! 그 아이, 잘 있으려나 몰라.”
방황을 하다가 정신을 차린 것은 지금 들어온 대학교에서 광고로 내보낸 모집 공고를 보고 나서였다.
어렸을 적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자 친구가 모집 공고의 광고 모델로 나온 것을 보고 불현듯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불현듯 정신을 차린 것이다.
이대로 망가져 간다면 완전히 폐인으로 전락해 쓸쓸히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차훈은 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그나마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한 것이다.
참전 용사에게 주는 가점이 있어 대학에 원서를 넣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없었지만 학비가 길을 가로막았다.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치료로 그동안 모아 놓았던 돈을 거의 다 써 버린 후였지만 배짱 좋게도 지원을 했다.
다행이 서류 전형에 합격을 하고 면접 시험을 보았다.
어떻게 학교를 다닐 것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하소연하는 심정으로 학비를 벌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면접관으로부터 가지고 있는 기술을 학교 측에 공여하면 학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면접관의 말에 당장 기술 공여를 신청했다. 전문기술학교 출신이라는 것 때문인지 다행스럽게도 입학이 허가가 돼서 지금까지 학창 생활을 이어 오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우…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학교에 들어왔건만 아직도 요 모양이라니…….”
지난날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어 있던 차훈은 열이 받기 시작했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자신을 학생이 아닌 그저 노동자로 본다는 것이 큰 상처로 다가왔다.
“이건, 사환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대니… 학교에서 혹시 내 이전 경력 때문에 차별을 하는 것인가? 개새끼들!”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오르며 화가 났다.
전에는 3급 시민으로 분류되어 대학조차 들어가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전쟁에 참전한 후 전역과 동시에 2급 시민권을 당당히 따냈으니 다른 학생과 차별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그 말이 사실이었어.”
전역증을 받을 당시 2급 시민권자로 승격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군무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맞는 말이었다.
입학한 이후 모든 것을 다 감수하더라도 공부는 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학업에 매진하기보다는 학교에서 시키는 작업에 매달리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전자기역학 강의를 듣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호출을 받았다. 수업을 하다 말고 일을 하기 위해 가는 중이다.
2급 시민권자로 승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겪었던 보이지 않는 차별이 눈앞을 스쳐 갔다. 자신의 출신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차별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과 같은 동이 출신은 제국에 아무리 공을 세우더라도 정당한 대우를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항의했다가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게 할지도 모르니 그저 감내하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런 차별은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뿌리 깊게 박힌 인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동이족들을 보이지 않게 서서히 고사시키는 것이 제국의 비밀스러운 정책이라는 것을 알기에 차훈은 일단은 자신의 처지를 잊기로 했다.
“후후후, 참자! 지금은 감수해야 하는 처지니까. 정 안 되면 그만두고 다른 길로 나가도 되고.”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더라도 용병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기만 한다면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기에 그냥 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조금 이상하군. 예전하고는 조금 다르니 말이야. 사무국에서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분명히 양자가속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었는데…….”
생각을 정리하고 작업에 대해 생각하니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작업 지시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지금까지 해 왔던 작업은 대부분 자신의 전공과 관련 있는 것들이었는데 오늘은 난데없이 양자가속기를 고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을 보면 정말이지 뜬금이 없는 일이었다.
사실 학교 지하에 있는 양자가속기는 이제 구닥다리다.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실험에 간혹 쓰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거의 고물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간혹 양자역학의 원리를 알아보기 위해 구경 삼아 학생들이 방문할 뿐, 거의 사람이 출입하지 않는 곳이라 이제는 한낱 유물로만 남아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가동을 멈춰서 고쳐 봐야 하등 쓸모가 없는 고철더미나 마찬가지인 것을 수리하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시를 받으러 사무국에 갔을 때 전공한 분야와는 다르기에 수리는 어렵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기술전문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고는 해도 양자가속기를 고치는 것은 무리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학교 측에서는 막무가내로 수리를 맡겨 버린 것을 보면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예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일을 시키는 것을 보면 퇴학시키려고 작정을 한 건가? 군에서도 이미 완전히 덮은 것을 학교에서 알 리도 없고, 커리큘럼에도 사라진 지 오래고, 벌써 사람들 출입이 금지된 지 오랜데 말이야.’
차훈은 자신이 가는 곳이 몇 년째 사람이 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누군가 꾸민 일이거나.’
사무국에서 자신에게 수리를 자신에게 맡겼다는 사실이 새삼 의심스러워졌다.
사무국에서 양자가속기가 이제는 전시물일 뿐이라 작동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닥다리 양자가속기를 고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실력이 우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이번 일을 맡겼다는 것은 누가 일부로 그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그 자식인가?’
의심이 생기는 순간 차훈의 뇌리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사건건 자신을 물고 늘어지며 괴롭히는 녀석의 얼굴이었다. 같은 과 학생이자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는 나종수라는 녀석이었다.
화족 출신으로 지독한 배타주의자인 그가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사무국의 직원들을 사주했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