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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후후. 그놈이라면 이렇게 하고도 남지. 날 퇴학시키기 위해 아예 작정을 한 모양이로군.’
이번 일을 꾸민 유력한 용의자를 생각해 낸 차훈은 인상을 구겼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종수가 꾸민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으드드득!”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그리고 퇴학시키기 위해서 작정을 하고 일을 꾸민 것이 분명해보이자 차훈은 이를 갈았다.
양자가속기를 시간에 맞추어 고치려면 적어도 사흘 낮밤을 꼬박 새워야 할 터였다.
당연히 일주일 후부터 시작되는 시험에 영향이 없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기술공여로 들어온 터라 일을 끝마치지 못하면 학교를 다니는데 어려움이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더러운 새끼! 고작 주먹 몇 대 맞았다고 수작질을 하다니, 네놈이 그런다고 내가 눈이나 깜짝할 줄 아냐? 이번 일 끝나고 보자. 아주 박살을 내줄 테니까.’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자식이 일을 꾸며 자신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는 실에 열이 받았다.
이번 일에 관련이 있다면, 아니, 틀림없이 손을 썼을 것이기에 차훈은 종수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러 줄 것이라 다짐했다.
‘곧 도착하겠군.’
지이이잉!
계기판을 보니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거의 당도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딩동!
스르르―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난 뒤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선 후 우선 주변부터 살폈다.
위이이잉!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아직 작동은 하는가 보구나.’
지하 2,000미터 깊이에 위치했지만 온도 조절기가 작동하는지 그리 덥지는 않았다. 기본 시설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후우! 일단 그놈에 대한 것은 다음 문제고, 양자가속기나 고쳐 보도록 하자. 일을 마치지 못하면 그걸 빌미로 그놈이 아주 지랄을 떨 테니까.’
사무국에 책을 잡히지 않으려면 일단 양자가속기를 고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크크크, 이런 초기 시설은 눈 감고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눈이 뒤집히겠군.’
양자가속기를 고치는 일은 차훈에게 있어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있었다.
군 입대 전 차훈은 전문기술학교에서 전자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군에 있으면서 양자가속기를 응용한 최신형 무기들을 숱하게 다뤄 본 경험이 있었다.
지하 깊숙이 만들어진 양자가속기가 구식이나 다른 없는 기계라 다루는 것은 눈감고 헤엄치기였다.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나종수나 학교 측에서는 고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군에서 얻은 능력을 사용한다면 약간 시간이 걸리는 일일 뿐이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자. 아예 고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할 때 빨리 마무리하고 이곳에서 공부나 좀 하다 시간을 맞춰 나가면 될 것이다.’
차훈은 빨리 끝내자는 생각에 바쁘게 걸어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끝내고 나가 봐야 또다시 방해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 혼자뿐이니 방해받지 않고 공부하기에는 통제실 안이 최적격이었다.
혹시나 해서 먹을 것을 담아 가지고 왔는데 다행이었다.
통로를 걸어 통제실 앞에 도착한 차훈은 보안을 위해 설치된 홍채 인식기 앞에 섰다.
시대가 차이 나는 것인지 사람 머리통만 한 것이 아주 투박해 보이는 인식기였다.
‘지랄이군. 이것도 구식이구나. 작동이나 할지 모르겠구나.’
혹시나 아예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며 차훈은 홍채 인식기에 눈동자를 가져다 댔다.
요즘 주로 쓰는 보안 솔루션은 유전자 감식기다.
가만히 서 있어도 식별자를 통해 출입 여부를 판단하는 시스템이지만 이런 구식이라니 예상한 것보다 수리하는데 꽤나 시간을 걸릴 것 같았다.
이 정도로 노후된 시스템이라면 생각보다 양자가속기도 많이 낡았을지 모르기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들었다.
‘잘못하다가 뺑뺑이 도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부딪치고 보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지 않으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수리를 서두르는 길밖에는 없었다.
삐이!
―사용자 코드 확인! 문을 엽니다.
인식기에서 보안을 통과했음을 알리는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르르…….
사용자에 대한 인식이 끝났는지 통제실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조용히 열렸다.
탁!
치이이익!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히며 에어 샤워기에서 바람이 쏟아졌다. 몸에 붙은 먼지와 이물질을 털어내기 위한 과장이다.
시간이 지나 미세 먼지에 대한 청소가 끝났음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차훈은 가만히 서 있었다.
움직임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뭔가를 음미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다행이 감시 로봇은 없는 것 같군. 도망갈 곳도 없고, 에워 샤워 때문에 망가질 수도 있으니 철수시킨 모양이로군.”
꾹!
기감을 이용해 군에서 자신에게 붙인 미세 감시 로봇이 철수했음을 확인한 차훈은 에워 샤워실의 출입 버튼을 눌렀다.
스르르르―
출입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통제실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휴우, 역시 예상한 대로구나.”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한 것이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종 구식 장비들이 버려지듯 한쪽 구석에 가득 차 있었고, 중앙에 위치한 통제컴퓨터의 전원이 꺼져 있었다.
“동력을 넣고 가동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동력이 안 들어오면 줄곧 죽치고 있어야 하니까.”
통제컴퓨터의 작동 여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에 차훈은 중심부로 다가갔다.
크리스털 패널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책상처럼 생긴 콘솔박스를 이리저리 확인한 후 시스템의 구조를 대충 확인하고는 중앙 부분에 있는 동력 주입 버튼을 찾아서 눌렀다.
꾹!
우우웅!
콘솔박스의 제어 기능이 살아 있는지 동력이 들어오고 통제컴퓨터가 가동을 시작했는지 열기를 배출하는 워터쿨러의 진동이 통제실 안까지 전해져 왔다.
“으음, 다행이 동력은 이상이 없고, 컴퓨터는 어떤지 모르겠군. 컴퓨터!”
동력을 확인한 차훈은 곧바로 음성인식을 통해 컴퓨터를 가동시켰다.
―사용자를 인식합니다.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딱딱 끊어지는 것 같은 기계음이 통제실 안을 울렸다.
별로 듣기 좋은 음색은 아니었지만 통제컴퓨터가 제대로 가동되는 것 같아 일단은 안심이지만 기분이 편한 것은 어니었다.
“이것도 구닥다리로군. 아무리 50년 전에 설치된 것이라지만 양자 기반의 인공지능을 설치할 만도 한데 말이야.”
슈퍼컴퓨터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인공지능은 가미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용자가 좀 더 많은 부분을 커버해야 하기에 한숨만 저절로 나올 뿐이었다.
“윤! 차! 훈!”
성문인식을 위해서 차훈은 이내 자신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혹시나 인식하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몰라서였다.
―삐이! 사용이 승인되었습니다.
“좋아, 컴퓨터! 양자가속기의 설계도를 삼차원 시뮬레이션으로 보여 주고, 곧바로 자체 점검을 시작해 봐.”
사용이 승인되자 차훈은 컴퓨터로 하여금 자체 점검을 실시하도록 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확인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문제가 나타난 부분부터 먼저 수리할 생각에서였다.
위이이잉!
콘솔박스 정면에 홀로그램이 나타나며 양자가속기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눈앞에 나타난 녹색의 홀로그램이 양자가속기의 모습을 자그맣게 형상화해 갔다.
삐! 삐!
전체적인 모습이 만들어지고 난 뒤 내부 점검이 진행되고 있는지 신호음이 울리며 하부부터 단계별로 푸른색으로 변해 갔다.
이상이 없는지 대부분 푸른색으로 변했지만 몇 군데 붉은 점이 시뮬레이션상에 나타나며 점검된 내용을 알려 주고 있었다.
“으음, 생각보다 큰 고장은 아닌 것 같군.”
붉은 점으로 나타난 곳을 중심으로 점검된 자료를 살펴보니 큰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정도밖에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그동안 그냥 방치하지는 않은 것 같구나.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실제 고장이 난 곳을 한 번 점검해 봐야겠다.”
이상이 있는 것들은 대부분 가속기 내부에서 나타난 것들이라 안으로 들어가서 점검을 해야 했다.
수리 도구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도 공구가 있을 것 같으니 아무래도 그걸 쓰는 것이 낫겠다.”
수리해야 할 양자가속기는 구형에 속하는 것이라 수리 도구 또한 그에 맞추어야 했다.
자신이 백 팩에 담아 가지고 온 공구들은 거의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차훈은 통제실 안을 살피며 공구함을 찾았다.
“저기로군.”
이내 한쪽 벽면에서 공구를 보관하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비치되어 있는 공구들을 하나하나 살펴 나갔다.
“으음,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레이저절단기를 비롯해 파장측정기 등 상당수 필요한 도구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수리하는 데는 충분할 것 같았기에 손에 들고 다니는 공구함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 넣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이곳에서 시험 준비나 하자. 시간이 돈이다. 아자!”
기합을 지른 후 공구함을 들고 가속기 내부를 점검하기 위해 통제실을 나와 양자가속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대한 튜브가 지하 공간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거의 10여 미터 높이의 거대한 구조물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왜소하게 만들었다.
“컴퓨터! 내부로 진입한다.”
―내부 진입을 승인합니다. 입구를 열겠습니다.
컴퓨터로부터 출입 절차를 승인받은 차훈은 계단을 올라갔다.
치이익!
유압으로 작동되는 출입문이 열리며 김 빠지는 소리를 냈다.
수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문을 열리자 양자가속기 안으로 들어섰다.
은은한 푸른빛 조명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차훈은 공구함을 열고 검은색의 고글을 썼다.
“어디 보자!”
고글의 왼쪽 부분에서 다운받은 자료들이 나타났다. 시뮬레이션상에 나타난 이상 부위들에 대한 자료였다.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부터 고쳐 나가는 것이 났겠다.”
입구부터 시작해 체크하며 천천히 안으로 이동을 했다. 가장 많이 고장이 난 부분은 동력주입구와 입자출력장치로 두 장치 모두 제일 끝 쪽에 있기에 고칠 수 있는 부분은 먼저 고치며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들고 온 공구들을 이용해 고쳐 나가기는 했지만 대부분 까다로운 것들이기에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당초 예상한 것보다 수리할 부분이 적어 빠른 시간에 마지막으로 수리할 부분에 당도할 수 있었다.
“으음, 지금까지는 이상이 없이 고쳐 놨고, 제일 문제가 되는 곳이 여기인가?”
동력주입구와 입자출력장치를 살폈다. 여기까지 오면서 살펴본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시뮬레이션에 나타났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까다롭기는 하겠지만 고치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차훈은 자기장의 변화를 체크하기 위해 일단 공구함에서 파장측정기를 꺼냈다.
틱!
쿵!
파장측정기를 켜자마자 신호라도 되는 듯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정말 위험하다.’
예전부터 자신을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준 특유의 예지력이 발동한 것을 알았다.
지잉!
파지지지직!
스파크가 튀면서 내부에 정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방근 전 그 소리는…….’
짐작이 맞는다면 방금 전 둔중한 소리는 가속기 안으로 들어올 때 열었던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누군가 지금, 양자가속기를 가동시키려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삐삐삐!
파장측정기가 격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패널에 나타난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제기랄!”
타타탁!
차훈이 욕을 내뱉으며 빠르게 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양자가속기의 가동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달렸다.
‘크으, 아직은 시간은 있다.’
매뉴얼대로라면 본격적으로 가동이 시작되려면 아직 3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양자가 가속되기 전에 자신이 안에 있음을 바깥에 알리거나 빠져나가야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내부를 감시하기 위한 창 너머로 엄청난 정전기가 커다란 튜브를 감싸는 중이다. 머지않아 엄청난 양의 양자 입자들이 내부에 휘몰아칠 것이 분명했다.
“이런, 개새끼! 으드득!”
며칠 전 면상을 박살 내놨던 나종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대로 죽는다니 억울했다.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놈 때문에 이런 사태까지 오다니 이가 갈렸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 자식아!”
번쩍!
살아나간다면 이번 일을 꾸민 것이 분명한 나종수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엄청난 빛이 덮쳐 왔다.
예상한 것보다 이른 시간에 강렬한 파장을 가진 입자들이 몰아닥쳤다.
“크아아악!”
처절하고도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의식이 또렷한 가운데 몸이 점차 분해되어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으니 인간이 겪을 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의식을 잃어버린 탓인지 점차 비명 소리가 잦아들었다.
바람이 흩날리는 먼지처럼 섬광의 속으로 스러져 가고 있었다.
번쩍!
육체는 물론 신외지물인 옷가지 등이 거의 분해가 되어 갈 무렵 다시금 빛의 폭풍이 터져 나왔다.
처음과는 달리 이번에 빛이 시작된 곳은 차훈의 등 뒤였다. 자신의 몸처럼 언제나 등에 매고 다니던 백 팩에서 터져 나온 빛이다.
섬광은 이제 거의 자취가 사라진 육체는 물론, 가속기 안에 가득 찬 빛의 입자들을 휘감았다.
우르릉!
쩌―저저저적.
거대한 구조물인 가속기가 일순 흔들리며 거대한 금속 튜브에 금이 가고 있었다.
콰쾅! 콰콰콰콰쾅!
거대한 빛의 폭풍과 함께 양자가속기가 폭발했다.
폭발물이나 인화물질에 의한 폭발과는 달랐다.
양자가속기가 위치한 구조물 위로 빛의 폭풍이 뻗어 나가며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아니, 모든 것을 지워 버렸다.
양자가속기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도, 지하 2km에 이르는 암반과 토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상에는 반경 3Km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싱크홀이 생겨 버린 것이다.
싱크홀이 생긴 지상 위에 있던 대학교도 그 안에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무려 1만여 명이 넘는 사람이 거대한 구멍과 함께 사라진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