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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2장. 비밀 기지 속의 미이라


전시가 되면 특전팀은 가장 빠른 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전장에 투입된다. 이러한 임무의 특수성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으로 내몰릴 때가 많다.
적진 깊숙이 침투하거나 임무 자체가 워낙 위험한 것들이 많아서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죽음이라는 수렁에 한 발 담근 것이나 마찬가지인 위험한 보직이 바로 특전팀이다.
팀원들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에 투입되어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전쟁이나 전투에 대한 불안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초조에서 오는 불안감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달라져 버렸던 것이다.
달관에서 오는 자신감과 함께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몰랐던 소치에서 비롯된 오해와 착각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임무를 하달받은 특전팀원들이 세상을 속이기 위해 오랫동안 뒤집어썼던 가면을 벗고 있는 중이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작전에 투입되기 직전, 모의 훈련 때 나는 특전팀원들의 진실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특전팀원들의 능력을 보면서 나는 알았다. 군대라는 것이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군대라는 것이 비슷할 것이라고들 말하겠지만 웃기는 소리다.
특전팀의 진정한 실체를 알게 된다면 결코 그런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않을 정도로 그들은 타고난 군인이자 상상을 불허하는 전사들이었다.
특전팀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비밀에 가려진 특수부대다.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져 있다. 팀원들의 진면목은 물론, 어떻게 선발하는지조차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장막 속에 가려진 존재다.
그래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자들이 몇몇은 있다. 전쟁 시에 특전팀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들이다.
그러나 명령권자인 그들도 빙산의 일각밖에는 알지 못한다. 자신이 맡은 임무와 관련 된 것밖에는 모른다.
자신이 지휘하는 작전에 투입되는 특전팀원들에 대해서만 대충 어떤 종류의 능력을 가졌는지, 작전 중 어떤 일을 하는지만 아는 탓에 실체에 대해서는 접근할 수가 없다.
특전팀원들에 대해서는 제국의 최고 실권자인 황제와 이들의 선발 권한을 가진 마스터라 불리는 사람만이 알도록 되어 있는 특급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전팀이 이런 부대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특무부대나 특공대처럼 그저 각 부대에서 전투에 뛰어난 자들을 골라 특수한 훈련을 시킨 후 조금 위험한 특수 임무에 투입되는 부대라고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특전팀은 전시가 아니라면 결코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평상시라면 모든 능력을 감추고, 조금은 특별한 군인 신분으로 지낸다.
그러니 세상에 알려진 것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절대로 진실이 아니다. 그동안 황실과 군부가 조직적으로 철저히 은폐해 왔기에 특전팀의 정체는 세상의 이목에서 철저히 가려져 있었기에 그렇게 알려졌을 뿐이다.
내가 훈련 때 본 것도 그들이 가진 진실의 일부분이었다. 작전 수행 전에 자신들의 능력을 점검했기에 그들이 특이 능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뿐이다.
특전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괴물들의 집합소라고 말할 수 있다. 맡고 있는 임무의 특수성만큼이나 그 구성원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들이다.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가진 존재들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밝혀진 바가 없다. 작전 명령권자들도 대략적인 능력만 알 뿐, 전부는 알지 못한다. 그들도 특전팀원들이 아주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는 것만 대충 짐작할 뿐이다.
나 또한 특전팀원 중 가장 능력이 떨어졌던 말단 하사관이 싸이킥에너지를 사용하는 일급 능력자였다는 것을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을 정도로 이들은 베일에 싸인 존재였다.
이렇게 하나같이 평범한 자들이 아닌 만큼 맡게 되는 임무도 특수하다. 적진에 침투해 들어가 중요한 군수 시설을 폭파하거나 요인 암살 같은 작전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아니다.
간혹 수행하기는 하지만 특전팀은 사실 이런 임무들은 잘 맡지 않는다. 그저 본격적인 작전 투입에 앞서 몸을 풀기 위해서나, 특전팀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일면 이목을 흐리게 할 목적으로 투입될 뿐이다.
진짜 특전팀이 수행하는 임무는 따로 있다.
바로 적국에 존재하는 전사단을 상대하는 일이다.
특전팀원들이 정보를 토대로 그동안 상대해 왔던 상황을 살펴보면 적국의 전사단도 특전팀 못지않은 괴물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특전팀원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향방까지 바꿀 정도의 굉장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
하지만 전사단도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들 전사단 또한 적국의 군부에서 장막을 치고 보호하고 있는 비밀에 가려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특전팀과 전사단이 일반적인 전투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나설 경우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런 위험 때문인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특전팀도 전사단도 서로가 서로를 상대하기 위해서만 전투에 참여해 왔다.
전쟁이 발발하면 이면에서는 그들만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불쌍한 면도 없지 않다.
특전팀원들이나 전사단원이나 전투 시에 전사하게 되면 죽음조차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투에서 시신을 남기게 되면 적에게 이용당할 확률이 높다.
잘 정련되어 강철 검처럼 특화된 육체, 한계를 초월하는 반응 속도를 가진 신경망 등 비록 시체라도 거두어서 쓸 것이 너무 많아서다.
무엇보다 뇌세포 속에 잠재한 기억을 흡수하면 군사 정보는 물론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전투 기술까지 알아낼 수 있으니 있으니 전략적인 가치가 매우 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사자들이 발생하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보이는 족족 수거해 피 한 방울, 세포 하나까지 알뜰히 재활용했다.
그래서 제국의 군부에서는 아군의 시신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했다. 적에게 이용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전투 슈트에 특별한 장치를 장착한 것이다.
생명 반응이 끊어지고 난 후에 시신을 수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면 입고 있는 전투 슈트에 담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작동을 시작한다.
프로그램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강력한 플라즈마가 투사되어 시신을 소각해 버린다. 육체는 물론 그가 가졌던 무기류까지 없애 버려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시신이 회수가 되어도 그렇다. 이용하지는 않지만 담겨 있는 정보를 전부 수거한 후, 마찬가지로 소각 처분하기에 시신을 남기지 못하게 된다.
시신들의 소거 방법은 다르지만 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사단도 죽으면 시신을 남기는 경우가 없다.
특전팀원들은 그래서 전투에 나서기 전에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내는 유언장을 쓴다. 시신조차 거두지 못하니 유언장은 그들이 세상에 남기는 유일한 흔적인 것이다.

* * *

조도를 낮추었는지 약간 어두워 보이는 방 안에 환자나 누워 있을 법한 침상이 보였다.
조금은 이상한 방이다. 병실이라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침상을 중심으로 사방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장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을 보면 병실이라기보다는 실험실이라는 분위기 물씬 풍기는 곳이다.
삐―이!
위이이잉!
뭔가를 알리려는 듯 기이한 소리들이 장비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중이다.
자기공명장치를 비롯한 숱한 첨단 의료 장비들이 중앙에 위치한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무엇인가를 측정하면서 나는 소리다.
침상을 제외하고 실험실처럼 보이는 방 안에 비치된 것들은 모두 의료 장비다. 하나같이 아직 출시조차 되지 않아 시중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첨단 장비들이었다.
장비들은 모두 디지털로 된 액정화면을 가지고 있었고, 기계음과 함께 계측한 수치들이 액정에 디지털로 표시되고 있었다.
스르르!
천정에 매달린 CCTV카메라가 나직한 소음을 내며 침대 위에 있는 물체를 향해 움직였다. 사방 모서리에 달려 있는 4대의 CCTV가 한 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풀 HD버전으로 촬영되고 있는 CCTV는 실험실 안의 전경을 한곳으로 전송하고 있는 중이다.
머리카락 하나하나 셀 수 있을 것처럼 선명한 화면이 나타난 곳은 실험실 안의 장비들을 통제하고 있는 관측실 안의 모니터였다.
웨이브를 살짝 준 머리에 알이 작아 보이는 금테 안경을 낀 남자가 모니터를 뚫어지듯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이 없군.”
끼익!
관측실에서 CCTV를 통해 실험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한우민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듯 실망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의자를 돌렸다.
설치되어 있는 첨단 장비들과는 달리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지 인상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제길!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하는 건지…….”
한우민은 입을 삐죽이 내민 채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무인도나 마찬가지인 외로운 관측실이다.
더군다나 거의 하는 일 없이 지루한 나날들이 지속되는 탓에 짜증이 더해졌다.
“오늘도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기는 했지만 밥값은 해야 하니까 일단 보고서나 마무리해야겠다.”
삐이!
한우민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개인용 노트북을 켰다. 매일같이 하는 일로 지루하기 그지없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다.
몇 달을 계속해서 같은 상태니 보고서를 써 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고, 이 일을 하기 위해 많은 돈을 받았으니 값은 해야 했다.
제일 먼저 간단하게 관측된 사항을 쓰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각종 계측 기록을 연결, 파일로 만들어 보고서에 첨부시켰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나? 그럼, 변동 사항 없음!”
탁! 타타타탁!
한우민은 입으로 중얼걸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보고서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성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다.
“이제 출력해 놓고 커피나 한 잔 마실까.”
오늘도 서둘러 의미 없는 보고서를 완료한 한우민은 출력 버튼을 눌렀다.
드르르!
프린터의 진동음과 함께 출력을 토해 내는 것을 바라보며 한쪽 구석에 있는 커피포트를 들었다.
코끝을 간지럽게 하는 아라비카향이 그나마 마음 한쪽 구석을 다독인다.
향이 진한 커피를 음미하듯 마시며 한우민은 관측실을 바라보았다.
삐이!
은은히 퍼지는 커피 향을 즐기던 그는 경고음이 들리자 책상 위 모니터에 나타난 화면을 바라보았다. 보고서를 검토하기 위해 온 것이 분명하다.
탁!
짜증이 난 듯 커피 잔을 책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쳇! 오늘도 어김없구나. 그나저나 어디에 갔었나? 오랜만에 저 사람이 왔군.”
자신에게 처음 일을 맡긴 자의 상관이 되는 자다. 근 한 달간 다른 자가 오더니 오늘은 직접 온 모양이다.
“오늘은 처우를 좀 개선해 달라고 해야겠군. 기호식품이라고는 달랑 이 커피뿐이니…….”
물주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해 줄 사람이니 인상을 찌푸리면 손해였기에 한우민은 재빨리 표정을 바꿨다.
지이잉!
출력된 보고서를 챙긴 후 출입 버튼을 눌렀다. 관측실의 한쪽 벽에 만들어진 자동문이 열리며 환한 불빛과 함께 방문객이 들어섰다.
다부진 체격에 강인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백발의 사나이가 관측실 안으로 들어왔다.
‘완전 시체로군.’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백발의 사나이가 보여 주는 무뚝뚝한 표정을 보면 밥맛이 없어진다. 돈이 떨어져 힘들 때 일을 맡겨 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마치 가면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애써 내보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헤헤, 오랜만입니다.”
접대성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우민이 먼저 인사를 했다.
‘영 밥맛이군.’
사나이는 인사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가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실험실 안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정리를 한 보고서를 달라는 소리였다.
“오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실험체에 대한 분석 보고서로 세포 변이에 관한 실험을 끝마쳤기에 뒤쪽에 계측된 자료를 첨부시켜 놨습니다.”
보고서를 내밀며 설명이 이어졌지만 사나이는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천천히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맨 뒤에 첨부된 세포 변이에 대한 보고서를 보더니 그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딱딱한 목소리였다.
‘이상하군. 아무리 봐도 변화라고는 없는데… 내가 놓친 것이라도 있는 건가?’
이번 실험에 참여한 후 사나이에게 두 번째로 듣는 목소리였다. 처음 만나 설명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마디 말이 없었던 사나이가 오늘은 웬일인지 말을 꺼낸 것이 의아했다.
“그렇습니다. 실험체의 세포 변이는 일어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저기 있는 실험체는 그저 온몸에 수분이 빠져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저런 모습을 하고도 살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정한 체액만 확보될 수 있다면 아마도 미이라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보게 될지도 모를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보고서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들르시지 않을 동안 분명 다른 분이 오셨을 때 드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미 자신은 규정에 따라 보고를 했었다.
돈이 들어가는 일에는 철저하리만치 따지고 들어가는 조직이기에 이상하다는 듯 한우민이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수고했습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 간단히 대답한 사나이는 실험실 안을 힐끔 보더니 보고서를 접었다.
“으음, 역시나 별다른 변화가 없군.”
침상 위에 놓인 미이라를 한 번 훑어본 사나이가 실망한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한우민이 우물쭈물거리며 사나이를 불렀다.
“뭡니까?”
“죄송하지만 하루만 쉬고 싶습니다. 벌써 일주일째 꼬박 지켜보고 있었더니 무척 피곤한 상태라서 말입니다.”
보고서도 제출했고, 그다지 특이한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는 터라 휴식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맡으신 일이 끝났으니 돌려보내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한우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 집으로 가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일이 완결되지 않았으니 순순히 보내 줄 일이 없었기에 한우민은 사나이의 말을 되물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당부하거니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기억 속에 지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비밀이 새어 나갈 경우 우리가 할 행동이 어떨지는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믿습니다.”
‘진짜로 아르바이트는 끝난 건가?’
휴가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이 끝났음을 설명하는 사나이의 눈빛을 보니 사실이 분명했다.
‘이제는 백수로군. 돈이 좋기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되니 끝내는 것이 낫겠다. 그들에게 알려야 할 시점이기도 하고.’
아쉬움과 시원함이 교차했다.
돈이 들어올 구석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끝내야 할 때였다. 더 하겠다고 한다면 의심할 가능성도 있기에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으음, 알겠습니다. 입을 다물도록 하지요.”
학비 때문에 미국 유학 시절부터 협력해 온 곳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기는 하지만 일처리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하기에 한우민의 자신이 한 서약대로 비밀을 지킨다고 대답했다.
“그럼 나가 보십시오. 차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사나이의 축객령이 떨어졌다.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한 번 물어나 볼까? 뭐, 전처럼 계좌로 넣어 주겠지. 떼먹을 사람들도 아니고.’
사나이에게 이번 일에 대가가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 물어보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사나이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이내 마음을 돌려 먹은 후 벽에 걸린 겉옷을 집어 들었다.
‘후후후, 그럼 오늘은 때 좀 벗기러 가 볼까.’
돈도 생겼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지이이잉!
탁!
한우민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사나이는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돌려 실험실을 비추는 CCTV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실험실 중앙에는 놓여 있는 침대 위에는 마치 미이라처럼 뼈에 가죽을 붙여 놓은 것 같은 앙상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자신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당사자를 바라보는 사나이의 눈에는 기이한 열기가 맺혀 있었다.

수백 개의 침이 꽂혀 있었다. 전류가 흐르도록 고안된 침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장작처럼 바짝 마른 미이라 같은 몸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수많은 침들이 꽂혀 있는 모습은 도저히 사람의 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아직도 파악이 되고 있지 않으니…….”
비밀을 감추고 있는 미이라를 바라보는 제임스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CIA의 정보력으로도 침대 위에 누운 자의 정체를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험실 안을 지켜보고 있는 제임스는 조금은 특별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토종 한국인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리고 정보 세계에 있어 세계 최강의 힘과 조직력을 자랑한다는 CIA의 동북아지부장이다.
그가 침대 위의 미이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모종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베트남에 갔을 때였다. 미국으로 대규모로 유입되는 마약상의 거점을 소거하는 작전을 진행하는 도중에 오래된 유적지 근처에서 우연치 않게 발견한 것이 지금 실험실 안에 누워 있는 미이라였다.
사실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실험은 상부에 전혀 보고가 되지 않은 극비 사항이었다. 제임스가 보고하지 않은 채 이렇게 극비리에 미이라를 관찰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체액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도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과 함께 발견된 기계들이 그의 계획을 실현시켜 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지금까지 침대 위의 존재를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신음과 지난날을 생각하는 듯 제임스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후후후, 그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헬리콥터로 이송 중에 갑자기 눈을 뜬 미이라를 보고는 무척이나 놀랐던 자신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에일리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입지가 좁아지지는 않았을 텐데.”
처음 미이라를 발견하고는 외계인으로 오인을 했다. 그와 함께 발견된 지금 시대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기계들 때문이다.
나중에 유전자 감식을 통해 동양계 지구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 것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자신으로 하여금 조직의 규칙을 수도 없이 위반하도록 만든 미이라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자와 함께 발견한 기계들의 기술을 완벽하게 밝혀내 앞으로 닥칠 상황을 타개하는 수밖에…….”
미이라가 소지하고 있던 기계들은 수많은 정보를 다루는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도저히 이 시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최첨단의 기계들이었다.
그중 제임스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레이저절단기였다.
헬리콥터로 발견된 것들을 이송하는 도중에 우연치 않게 버튼을 눌러 버리는 바람에 정체가 밝혀진 것으로 그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었다.
스타워즈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라이트세이버와 비슷한 형태의 레이저절단기라는 것을 확인한 후 미이라와 기계들에 대한 비밀을 감추기 위해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을 베트남 작전에 함께 참여했던 자신의 수하들을 모두 지워 버리는 것이었다. 뒤를 이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그 시간 베트남 상공에 떠 있던 모든 첩보 위성의 자료를 조작했다.
몇 번에 걸쳐 확인하고 비밀리에 진행된 일이라 CIA에서도 미이라가 발견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상당수의 요원들이 사라진 것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만 자신만의 비선을 이용했기에 지금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었다.
자칫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미이라가 우주에서 온 에일리언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상태였고, 그가 가진 것으로 보이는 기계들의 비밀을 캐낸다면 자신이 평생 살아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험을 한 것이다.
구조를 알 수 없는 합금 재질로 만들어진 조각도 같은 레이저절단기의 출력량은 현재의 기술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것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최소 30년 후에나 겨우 개발될 기술로 만들어진 도구를 가진 자와 용도를 알 수 없지만 비슷한 수준의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 기계들이라는 결론이었다.
유전자 조사 결과 나중에 지구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제임스는 후회하지는 않고 있었다.
레이저절단기에 이어 함께 들어 있는 기계들의 용도가 점차 밝혀지고 있는 지금, 오히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덕분에 같이 일해 온 동료들의 피를 묻히기는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내가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안 됐군. 잔뜩 기대하고 있을 텐데…….”
미이라를 바라보며 앞날을 생각하던 제임스는 조금전에 나간 한우민에 대해 생각이 났다.
기대감에 부풀어 나가고 있겠지만 처리 대상에 포함되어 있기에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우민은 CIA에서 붙여 놓은 자다.
모든 일들이 자신이 베트남에서 한국에 도착한 후에 벌어진 터라 처음엔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어 있었지만 동남아시아 인근의 조직이 괴멸된 사건과 관련해 이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금쯤 밖으로 나갔겠군. 어떻게 됐는지 확인을 해야겠지. 자칫 이번 일이 새어 나간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니까.”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한우민이 기지를 떠나는 것과 동시에 처리를 하라고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려두었던 터라 결과를 확인을 해 봐야 했다.
치익!
집게손가락으로 귓가를 문지르자 기계음이 들려왔다.
“어떻게 됐나?”
보안 회선으로 무전기를 켠 제임스가 한우민을 처리하고 대기하고 있을 수하에게 물었다.
―조용해졌습니다.
“쥐새끼는?”
―목을 부러트리고 계곡 밑으로 굴렸으니 하산하던 도중 실족사로 처리될 겁니다.
“혹시 모르니 의혹이 일지 않도록 잘 처리하게.”
―예!
치익!
“후후후.”
수하의 대답을 들고 무전기를 끈 제임스는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얼마 벌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만족할 만한 처리였다.
“그동안 원하는 대로 살았으니 이제는 민족을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우민.”
그동안 한우민으로 변장하고 바깥에서 활동하던 자가 등산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가 사고사로 처리가 됐으니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한우민은 국책연구소에 있으면서 미국에 연구 기밀들을 팔아먹고 있던 자이니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번 일에 합류시킨 것은 그저 현 상태만 유지하기만을 바랐기 때문이다. 한 번 쓰고 버려질 자였지만 민족의 미래를 위해 사죄하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리고 그 의미는 충실히 이행되었다.
실험실의 비밀을 알고 있는 한우민도 이제는 지워졌다. 온전히 자신의 수족인 사람들만 알게 됐으니 얼마 동안은 비밀을 지키기가 더욱 수월할 터였다.
“내일 그 양반이 오면 머지않아 어찌 된 일인지 알아낼 수 있겠지. 저자가 어디서 온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저런 상태가 되었는지 말이야.”
자신과 오랜 세월 뜻을 같이하고 있는 동지가 미이라를 부활시키기 위해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본격적인 치료는 내일 오게 될 그의 동지가 하게 될 것이다.
미이라를 다시 되살리기 위한 진짜 연구는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원래는 다른 연구였지만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번에 쓰일 치료법으로의 변경이 완료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다시 살려 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었기에 제임스는 오래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실험실 안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어서 일어나게. 그리고 자네의 비밀을 나에게 보여 주게, 미래의 비밀을 말이야.”
소지하고 있던 기계들을 통해 유추해 본 결과 누워 있는 자는 미래로부터 온 자가 분명했다.
민족의 염원을 위해서라도 누워 있는 미이라는 반드시 살아나 자신에게 비밀을 말해 주어야 했다.
미이라를 지켜보며 제임스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