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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밤이 깊은 시간 차훈은 기감을 확장하며 실험실부터 시작해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느껴 보려 해도 올라갔던 자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꽤 늦은 시간이라 다들 자나 보군.’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리벽 너머에서 인체 반응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다.
‘휴우∼ 그것만은 금제하지 말 걸 그랬나? 후후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놈들이 그것을 알게 되면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 그리웠다.
특전팀원들이나 전사들과 비교한다면 하잘것없는 능력이지만 제대하기 전에 금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지게 된 그 모든 힘들이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그 능력에서 비롯됐으니 차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군 수뇌부에서 자신이 남들보다 특이한 네트워크 접속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날로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을 머금고 금제한 것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어 깜깜한 암흑 속을 헤매는 느낌에 지금처럼 네트워크 접속 능력을 갈구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외기를 이용해 기감과 감응파를 사용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자. 나머지 능력들은 금제를 풀고 다시 되찾으면 되니까.’
후회에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군의 조사를 피해 감출 수 있었던 기감 사용법도 감지덕지다.
‘시간이 어느 정도 됐는지부터 알아보자.’
자동으로 조절이 되는 터라 대기의 변화와 온도로는 시간 예측이 어려워 기감을 더 퍼트렸다.
‘차갑군. 봄인지 여름인지 모르지만 겨울과 인접한 시기다. 어디!’
지반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으로 계절이 느껴졌다. 아직은 불확실하기에 기감을 더 확장시켰다.
‘꽤 깊은 곳이군. 지하에 건설된 기지인가?’
뻗어 나가는 기감을 통해 상당히 깊숙한 지하에 위치한 시설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지하를 벗어나 보자.’
기감을 더욱 확장시켰다.
‘아! 어떻게 이런 에너지 패턴이…….’
지반을 벗어나자 믿을 수 없는 생명 에너지가 느껴졌다. 분명히 풀과 나무들이 풀어 내는 생명 에너지였다. 집에서 애지중지 가꾸던 이름 모를 풀에서 느꼈던 생명 에너지와 비슷했다.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기감에 걸려든 생명 에너지가 풀과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터였다.
‘이렇게나 많은 양이라니, 믿을 수가 없구나.’
재벌이나 권력의 상층부만이 기를 수 있는 것이 풀과 나무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만이 가득한 세상이라 이런 종류의 생명 에너지를 느낀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생명 에너지라면 한두 개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풀과 나무들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재벌이나, 권력자라 할지라도 결코 가질 수 없는 양이다.
먼 옛날 숲이라는 것이 곳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차훈은 자신이 과거로 왔음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조금은 흥분했다.
‘진정하자.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대지의 기운을 느끼며 시간을 예측했다.
‘점차 생명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것을 보면 계절은 봄이 오는 시기가 분명하다. 시간은… 한밤중이로군. 다들 잠이 들 시간이라서 이렇게 조용했나?’
기감으로 느껴지는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 오는 시간이었기에 어디에선가 자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기감을 이용해 인간들을 찾았다.
인간의 반응이 느껴졌다.
에너지 패턴이 안정적이고 규칙적이다.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 분명했다.
‘역시, 깊이 잠들었군. 지금이 기회이기는 한데… 만약 이것이 함정이라면 피할 곳이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얻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망설여졌다.
좋은 기회이기는 하나, 만약 자신이 가진 비밀을 얻기 위해 군에서 이런 상황을 조작한 것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어쩌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라클을 불러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이 함정이 아니더라도 날 잡고 있는 자들이 허수아비는 아닐 테니까.’
제대를 한 후에 정보요원의 감시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챙겨 놓은 물건들을 비밀리에 모두 회수했다.
혹시나 몰라 사용했던 최신형 공구들과 함께 백 팩에 넣어 가지고 항상 등에 매고 다녔다.
수업은 물론 일상생활을 할 때도 곁에서 떨어트리지 않았다. 양자가속기 안에 들어갈 때도 매고 있었기에 자신과 같이 시간을 거슬러 이동했을 가능성이 컸다.
백 팩에는 생체 감응을 통한 워프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외기를 이용하는 감응파를 사용해 곧바로 소유자에게 돌아오게끔 세팅되어 있었지만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정신 감응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싶지만 상황이 문제다.
미라클은 차훈에게 있어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다. 지금 이 위기 상황을 타파할 유일한 수단이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상당한 자들이다. 황충길이 살았던 시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첨단을 걷는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치밀하기 그지없는 조직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조사하지 않을 리 없다. 조사한다고 무엇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감시를 게을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물건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자명하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주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불러들인다면 제일 먼저 자신을 찾아올 것이기에 깨어났다는 것을 들킬 수도 있는 일이다.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위험이 닥쳐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느낌이 들면 언제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으니까.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할 것 같다. 기회가 있을 때 움직이지 않는다면 기회를 영영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불안감이 들 때면 항상 문제가 생겼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맞닥트리지 마라!
회피하지 않으면 죽는다.
예지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차훈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신을 자극하자 견딜 수가 없다.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사라졌으니 어쩌면 소환해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겨도 어쩔 수 없다. 일단 내가 과거로 왔다는 것을 믿자. 그리고 백 팩이 같이 왔는지, 같이 왔다면 지금 어떤 상태인지부터 확인해 보자. 불러들이는 것은 그 다음이다.’
밀집된 하이드내츄럴포스로 인해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상태로는 백 팩이 어떤지 살펴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백 팩이 자신과 같이 과거로 이동해 온 것인지 일단 확인부터 해야 했기에 차훈은 감응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CCTV라고 했던가? 알려지면 곤란하니 우선 저것들부터 먹통으로 만들어야겠다.’
감응을 시작하면 신체를 고착화시킨 것이 깨질 수도 있다.
사방 천정에 매달린 영상기록장치를 먼저 처리해야 했다.
‘부신다.’
차훈은 감응파를 변형시켜 물리력을 발휘했다.
정신력만으로 물체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염동력과는 달리 외기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감응파는 차훈을 배신하지 않았다.
콰직!
콰지직!
CCTV 안에 있던 렌즈들을 완전히 부시지는 않고 힘을 조절해 잘게 금이 가게 만들었다.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기는 하겠지만 렌즈가 잘게 금이 간 상태라 제대로 된 화면은 송출할 수 없게 됐다.
‘이제 됐다. 외기를 터트린다.’
콰쾅!
인간의 감각은 물론이고 현재 사용됐을 법한 측정 장치로는 감지할 수 없는 폭발이 실험실에서 발생했다.
쏴아아아아―
잔잔한 수면 위에 돌이 던져진 것처럼 감응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갔다.
‘분명 반응을 할 것이다. 아니, 반응해야 한다.’
정신을 최대한 집중했다.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감응파를 통해 백 팩의 위치를 찾아야 했다.
‘으음, 근처에는 없는 것 같군. 좀 더 크게 터트려 보자.’
집중을 해 봐도 잘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근처에는 없는 것이 분명했다.
위이잉!
외기를 순환시키며 더 강하게 압축해 나갔다. 처음 시도했을 때보다 몇 배나 강력하기에 폭발할 때 약간의 소리가 날 수도 있지만 거리가 상당한 이상 백 팩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콰쾅쾅!
폭발과 함께 감응파가 퍼져 나갔다.
거리로는 대략 200km 정도, 반응파가 돌아오기까지는 1분 정도가 걸린다.
치리리…….
잠시 후, 희미하지만 반응파가 느껴졌다.
‘느, 느껴진다. 같이 이동했구나.’
존재감이 확인됐다. 백 팩이 있다면 미라클도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군. 내부 접속은 불가능하겠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먼 거리에서 반응파가 돌아왔다.
‘일단 파장만 연결시키자.’
반응파를 감응파와 연결하며 동기화시켰다. 감응파를 크게 일으키지 않더라도 충분히 백 팩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됐다. 연결이 끝났다. 어디…….’
동기화가 완료된 것을 확인하고 백 팩을 통해 감응파를 내보냈다. 주변이 어떤지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다.
‘응?’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던 자의 기운이다. 혹시나 해서 자신을 감시하던 자의 파장을 인식해 놓았는데 예상대로 백 팩을 조사 중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여길 떠난 거였군.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자신에 관한 책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이상,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손을 쓰기 힘들었다.
차훈은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곧바로 백 팩을 소환했다.
‘일단, 소환부터 하자.’
―리턴, 미라클!
곧장 이동 명령을 내렸다.
감응파를 이용해 동기화를 마친 이상 소환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감응파와는 다른 파장이 뻗어 나갔다.
자신의 의지를 실어 사용자임을 확인하는 파장이다.
등록된 사용자의 의지를 통해야만 명령이 작동하는 터라 곧장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터였다.
스스스!
무사히 워프가 끝났는지 차훈의 배 위 백 팩이 나타났다.
‘크흐흑, 왔구나.’
자신의 모든 것이자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 상황을 탈출시켜 줄 존재가 눈앞에 보였다. 목이 메어 왔다. 죽은 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이럴 때가 아니다, 정신 차려라. 윤차훈!’
백 팩이 갑자기 사라진 이상 반응이 시작될 터였다.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르기에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상황을 알아차리기 전에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사용자 승인! 코드 넘버 EP0001! 오픈!
백 팩은 감응으로 동기화가 끝났을지라도 생체 코드가 확인되지 않으면 백 팩을 열 수 없는 탓에 차훈은 승인 절차를 서둘렀다.
차르르르르―
승인 코드 요청이 있자 차훈의 배 위에 놓여진 백 팩이 반응을 보였다. 마치 성게가시처럼 가늘지만 무척이나 기다란 촉수가 튀어나왔다.
푹!
촉수는 살과 맞닿은 부분을 뚫고 들어갔다.
‘크으!’
신음을 애써 삼키는 차훈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 팩은 유전자 정보를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치익!
유전자 정보를 통해 소유자의 신원을 확인한 백 팩은 이내 자신의 몸체를 열었다.
빈공간이 없이 검은색 금속체로 가득 채워져 있다. 중앙에 오각형, 주위로는 면을 맞댄 삼각형을 은백색 선이 그어져 있을 뿐이다.
―크으윽, 생체 활성기 활성화, 은신 모드 세팅!
생각과 동시에 반응이 일어났다. 정신 감응이다.
찰칵!
은백색 선이 틈을 벌렸다. 상단부는 검은색, 옆면은 은백색의 오각형 금속체가 서서히 솟아오른다. 세팅이 끝난 것이다.
몸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고통을 참으며 생체 활성기를 우선적으로 가동시켰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 쓰다가는 옴짝달싹 못하기에 가동과 동시에 은신 모드까지 세팅을 했다.
은신 모드까지 활용하면 생체 활성기는 사용자를 안에 담은 후, 하이드내츄럴포스가 가장 밀집된 지역으로 곧장 워프를 진행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렇게 은신 장소에 당도하면 자신을 감지할 만한 모든 감응파를 차단한 채, 사용자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 모드가 가동이 된다.
다른 기능은 모두 중지한 채 소유자를 보호하면서 회복을 최우선적으로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드가 동시에 진행되는 탓에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드는 일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기회가 생긴 이상 차훈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GO!
세팅된 모드를 작동시키자 오각형의 금속체가 점차 커졌다.
처음엔 단단한 금속체였는네 백 팩의 크기를 넘어서자 출렁거리며 젤 상태가 되더니 차훈의 전신을 단단히 감쌌다.
변환체에 가까운 생체 활성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우우웅!
진동과 함께 젤 상태의 생체 활성기가 빛에 휩싸였다.
팟!
눈을 찌를 것 같은 한줄기 섬광이 감싸고 난 뒤 생체 활성기가 실험실 안에서 사라졌다.
삐잉! 삐잉!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압력 감지 장치가 되어 있는 침대에서 차훈이 사라지자 곧바로 압력이 해제되면서 비상벨이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