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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5장. 금제를 깨다


워프가 진행된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거의 숨 한 번 쉴 시간밖에는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예상한 것과는 달리 워낙 짧은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한 차훈은 자신이 있는 곳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이런, 바로 아래쪽이었군. 그런데 이곳이 원래 특별한 곳인 건가? 상당한 양의 하이드내츄럴포스가 있는 것을 보면 보통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놀랍게도 실험실이 있던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다. 실험실에서 직선으로 지하 3킬로미터 지점이었다.
백 팩을 생체 활성기로 변환한 후 은신 모드를 사용해 움직이는 반경은 기본적으로 반경 50킬로미터 안쪽이다.
그 안에서 자연지기라 불리는 하이드내츄럴포스가 가장 밀집해 있는 곳을 찾도록 세팅되어 있었는데 곧바로 아래로 이동한 것이다.
‘으음,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나를 가두었던 자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모르지만 이런 곳이 지하에 있다면 심상치는 않을 것이다.’
지하에 있는 시설도 그렇고, 곧바로 이동해 올 정도라면 보통 장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디! 으음, 전부 암석층이군. 상당량의 하이드내츄럴포스도 함유된 암석이라. 후후후! 재미있군. 비록 암석과 섞여 있지만 유형화된 하이드내츄럴포스가 존재할 줄이야. 오히려 이런 곳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놀라운 일이나 순도가 높을 것은 자명하기에 이곳을 온 것은 손해 나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래 시대에 나타난 적이 없는 유형화된 에너지라면 예상한 것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가동이 잘 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자리한 공간만큼 암석을 분자 단위로 분해한 후 잔해물을 기점 좌표로 보내고 빈 공간만큼 생체 활성기가 자리를 잡았다. 한마디로 생체 활성기의 크기만큼 암석층과 자리를 바꾼 것이다.
젤 상태지만 압력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고, 공간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시스템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을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누군가 파고들어 오면 금방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암석층 내에 있다면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들어선 공간도 상당히 넉넉하고 생체 활성기도 특이한 이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작동시킬 준비가 끝나 있었기에 차훈은 생체 활성기를 향해 의지를 보냈다.
―회복 시스템 가동.
지이잉!
진동음을 내며 생체 활성기는 프로그랭밍된 대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실 같이 가는 수많은 촉수들이 뻗어 나와 암석에 달라붙었다. 차훈의 회복을 돕기 위해 필요한 하이드내츄럴포스를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위한 조치였다.
우우웅!
생체 활성기가 천천히 하이드내츄럴포스를 흡수하며 밝은 광채를 내기 시작했다.
우유빛 투명한 광채가 촉수를 따라 흐르고 그 빛은 생체 활성기 안으로 유입되어 곧장 차훈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촉수에서 발산되는 빛은 강렬함을 더해 갔다.
태양을 능가하는 빛을 발산하면서도 열기를 발산하지 않는 특이한 빛이었다. 사방에서 넘실대는 빛의 향연이 지상에서 펼쳐졌다면 누구나 주목할 일이었다.
지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암석층!
누구도 이런 현상이 지하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콰르르르르르!
‘뭐지?’
생체 활성기를 가동시키고 난 뒤 얼마 안 있어 차훈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지금까지는 겪어 본 적이 없는 고순도의 에너지가 해일처럼 밀려들어 왔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전투 중 부상을 입을 때마다 생체 활성기를 사용해 봤던 차훈이다. 여러 가지 에너지를 흡수해 봤지만 이 정도로 순순하고 밀도가 높은 에너지는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다.
회복 시스템과 에너지 패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해 왔건만 인식의 범위를 벗어난 현상이다.
‘내가 있는 곳 주변에 있는 에너지가 보통의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에너지가 있는 거지? 역시, 이곳이 전설로 전해지는 7대 성지 중 하나라는 말인가?’
6차 세계대전 이후 모습을 감추고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성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특급 능력자를 넘어서 초월자에 이르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성지가 아니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리 만무했다.
‘으음, 가능성은 높지만 지금 상대로는 확인하기 힘들다. 회복이 끝나고 나면 살펴봐야 하니 우선 샘플만이라도 채취해 두자.’
특이한 경우가 아닌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나 모르기에 일단 암석층의 샘플을 채취하고 몸을 회복한 뒤에 살펴보기로 했다.
분석기를 가동하고 싶지만 확인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들어가 있는 생체 활성기는 현재 모든 기능이 회복과 은신에 맞추어져 있어 다른 기능으로 에너지를 돌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차훈이 암석층의 형태를 직접 볼 수 있었다면 아마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당장에라도 회복을 뒤로 미루고 전력을 다해 성분을 알아내려고 했을지도 모를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생체 활성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암석층은 모습부터가 달랐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회백색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화강암층과는 달리 붉은색과 푸른색이 교차하고 있었고, 모양 자체도 기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암석층이 이런 특이한 형태를 띠는 것은 내부에 특수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보통은 무형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하이드내츄럴포스가 이 암석층에는 결정화되어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나로서는 최고의 조건이다. 이 정도의 양이면 예상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다.’
빠르게 흡수되는 것도 그렇지만 워낙 순도가 높아 거의 폐인이나 다름없는 몸을 완벽하게 복구하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차훈에게 있어 지금은 시간을 얼마나 버느냐에 따라 생존이 달려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단기간 내에 몸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에게도 생존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에 최대한 이용을 해야 했다.
차훈은 기회라는 생각에 하이드내츄럴포스의 흡수 속도를 급가속시켰다.
우우웅!
격렬한 진동과 함께 촉수들은 화강암층에 섞인 기운들을 아주 빠르게 흡수해 차훈의 몸으로 보냈다.
워낙 많은 양을 한꺼번에 흡수하는 탓에 촉수들을 따라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 * *

“박사님! 그것이 사실입니까?”
황충길과 연락이 된 제임스가 사실 여부부터 물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로 인해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제임스였다.
회수된 물품 중 용도를 알 수 없는 물체가 사라지고 난 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황충길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가뜩이나 마음을 심란했던 제임스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실험실에 있었던 자가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다는 황당한 소식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서 이곳으로 오게. 그리고 며칠 휴가를 더 내게. 아주 급한 일이네.
“무슨 일이 또 있는 겁니까?”
목소리가 급박했다. 거기다가 약간은 흥분한 것 같았다.
문제의 인물이 사라진 것 말고도 다른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전화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네. 그러니 최대한 서둘러서 오도록 하게.
평소 침착함을 유지하는 황충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수많은 감시 속에서도 연구를 진행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조직에 보내 온 이답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떠 있으신 것을 보면 그자가 사라진 것 말고 다른 일이 있으신가 보구나.’
떨리는 목소리 속에 약간 흥분한 기운이 있는 것을 보면 그다지 나쁜 일 같지는 않았다.
의문의 인물이 사라져 버린 것 말고 황충길을 흥분시킬 만한 일이 있는지 생각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흥분할 정도로 상당히 급한 일이 발생한 것이 분명했기에 일단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곧 가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네.

미래기술연구소의 상황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제임스는 곧바로 지리산으로 떠났다.
평소에 침착한 황충길의 성품상 웬만한 일로 자신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기에 곧장 지리산으로 차를 몰았다.
제임스는 35번 고속도로를 타고 무주를 지나 지리산으로 향했다. 엑셀레이터를 최대한 밟은 탓에 3시간이 넘는 거리를 거의 2시간 만에 올 수 있었다.
지리산에 도착한 후 곧바로 비밀 기지의 통제실로 향한 제임스는 흥분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황충길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리산으로 오는 동안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던 탓에 제임스는 황충길을 보자마자 물었다.
“저기로 들어가세.”
황충길은 다짜고짜 실험실 안으로 제임스를 이끌었다.
‘완전히 먼지투성이군.’
의문의 사나이가 누워 있던 침대와 바닥에는 붉은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이 섞인 가루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난장판이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험실이 이 모양이 되다니, 무슨 일이 있었군요?”
“그렇다네. 그자가 사라지고 난 뒤에 이것들이 갑자가 나타났네.”
“이 가루들이 실험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 이곳에 나타났다는 말입니까?”
“맞네.”
“도대체 그자는 어디 가고 이런 돌가루만 남아 있다는 말입니까?”
“행방은 모르겠네. 그자가 이곳에서 나간 흔적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야. 이 안을 촬영하고 있던 CCTV는 완전히 먹통이고, 밖에 있는 CCTV에도 잡힌 것이 아무것도 없네. 시간상 딜레이가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안에서 사라진 것이 분명하네.”
“저 가루들을 남기고 그럼 이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실험실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여섯 겹의 보안장치를 뚫어야 한다. 거기다 고화질로 녹화되는 100여 대가 넘는 CCTV를 지나쳐야 했다.
이런 겹겹의 보안장치들 사이를 지나 아무런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깜쪽같이 사라진 거지?’
황충길의 말대로 이 안에서 사라진 것이 분명하지만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상황을 정리하려 애쓰는 제임스는 황충길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제임스, 충분히 가능한 일이네. 그자가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갔다면 말이야.”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갔다는 말씀입니까?”
시간여행이라는 황당한 설명이었지만 제임스는 그다지 동요하는 하는 빛이 없었다.
이미 미래에서 온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터였다. 과거로 왔다면 다시 미래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었기에 그다지 틀린 의견도 아니었다.
“그렇다네. 우리는 그자가 미래에서 왔다고 예측하고 있었던 중이었지 않았나? 만약 그자가 의식을 회복하고 난 뒤 곧바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갔다면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으니 말이네.”
“그렇지만 그자는 아무것도…….”
완전히 알몸이었다. 가지고 있던 장비들을 모두 회수했었기에 미래로 돌아갈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으음, 혹시…….”
미래로 돌아갔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던 제임스는 미래기술연구소에 있던 정체불명의 물체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같은 시간대에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전화가 왔을 때를 생각하면 약간의 시간 차가 나기는 하지만 동시에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CCTV가 확인되지 않아 직접 내려와서 확인을 했다고 했으니 틀림없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남아 있는데… 그자와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것만 사라졌다면 그건 분명 시간 이동과 관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공구들로 보이는 물건들은 남아 있었다. 오직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물건만 사라졌다. 사라진 물건과 동시에 사람도 사라져 버린 것을 보면 확실했다.
“박사님, 같은 시간대에 그자의 등에 매어져 있던 백 팩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기공명장치로 내부를 촬영하려는 준비를 하는 도중에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고 하더군요.”
생각을 정리한 제임스는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을 황충길에게 설명했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그 물건 말인가?”
“그렇습니다. 다른 것들은 그대로고 오직 그것만 박사님께서 전화하시기 바로 얼마 전에 사라졌습니다.”
제임스의 설명에 황충길의 눈이 깊어졌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로 상황을 유추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으음…….”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것인지 잠시 후 황충길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더 확실하네. 아마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시간여행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 강력한 보호 장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네. 자네 말대로 그것이 그자와 동시에 사라졌다면 미래의 시간대에서 다시 호출한 것이 틀림없네. 모르긴 몰라도 시간여행을 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들 테니 중요한 것들만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높네.”
제임스의 설명에 확신을 가진 듯 황충길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말했다.
“저도 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정체불명의 물건이 시간여행과 관련이 있다면 황충길의 말대로 미래에서 다시 호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에도 한 번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제임스는 황충길의 설명대로 미래의 시간대로 돌아갔음을 믿기 시작했다.
“이제 상황이 정리된 것 같으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차후에 더 조사해 보기로 하세.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차훈이 사라진 일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리자 황충길이 무거운 안색으로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런 것 같아서 연구소에서 급하게 오기는 했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제임스의 물음에 황충길은 실험실안에 널려 있는 돌가루들을 가리켰다.
“저것을 좀 보게. 어쩌면 사라진 것들보다 이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니 말이네.”
황충길의 말에 제임스의 시선이 돌가루로 돌아갔다.
‘저것이 박사님을 흥분시키게 만든 것인가?’
침대와 그 주변에 수북이 쌓여 있는 돌가루가 황충길을 흥분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임을 확인한 제임스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이 돌가루가 무엇이기에…….’
아무리 살펴봐도 색깔만 특이할 뿐 돌가루에 지나지 않았기에 제임스의 시선이 황충길에게 향했다.
“이 돌가루가 무엇이기에 중요하다는 말씀입니까?”
“후후후, 자네도 잘 모르겠나 보군. 제임스, 내 짐작이 맞는다면 어쩌면 우리 염원이 저 돌가루 때문에 훨씬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르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특이해 보이는 돌가루지만 저런 것이 어떻게 자신들의 염원을 이루어 줄 수 있을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제임스였다.
“자네도 우리가 왜 이곳에다가 이런 비밀 기지를 지었는지 알고 있지 않나?”
제임스의 질문에 황충길이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곳에 비밀 기지를 건설했던 것은… 아! 그렇다면!”
황충길의 말에 제임스는 오랜전 기억에서 지웠던 지리산 비밀 기지의 원래 목적이 생각났다.
‘그,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말인가?’
황충길의 말대로라면 눈앞에 보이는 이상한 돌가루는 정말 엄청난 물건이었다.
“맞네. 바로 우리가 찾는 것이 확실하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이렇게 우리 눈앞에 나타나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
“바, 박사님!”
절망 끝에 찾아오는 환희였기에 제임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제임스의 흥분에 황충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 이제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하네. 이것들을 모두 옮기고 이곳은 전부 폐쇄하도록 하게. 그리고 아직 다른 공구들이 남아 있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접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야 할 걸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이번 일을 완벽히 처리하려면 말씀하신 대로 휴가를 더 내야겠군요.”
제임스는 황충길이 휴가를 내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인원을 준비시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질 것이기에 CIA로 복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걸세. 하루 이틀로는 마무리하기 곤란하니까 말이야.”
“그럼 전 사람들부터 동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나도 연구진들을 전부 불러들여야 하니 위로 올라가서 어떻게 할지 의논해 보세.”
“예, 박사님.”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기에 두 사람은 황급히 지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이 그토록 찾고 있던 것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훈과 백 팩이 사라진 시간이 동 시간대가 아니라 약간이나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 * *

크으으…….
미련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여기가 성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생체 활성기 안으로 들어오는 하이드내츄럴포스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얼마 전 겪었던 것이 폭포수라면 지금 흡수되고 있는 하이드내츄럴포스는 대해가 일으키는 쓰나미다.
점점 더 많은 양이 들어오고 있어 통제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라 겁이 난다. 이대로 가다가는 에너지 포화로 인해 자칫 육체가 공중분해 되어 소멸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어떤 용기든 차게 되면 넘치게 마련이니 버틸 수 있을 때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어쩌면 금제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제대하기 전에 군에서 금제를 가한 후, 나도 모르게 힘을 발휘하게 될지도 몰라 이중, 삼중으로 잠가 버린 봉인을 해제하지 못하면 이대로 소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군에서 사용하는 금제에 대해서는 특전단의 한 전사로부터 배웠다. 사실 군에서 걸어 놓은 금제가 난공불락이라고는 하지만 방법이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풀 수가 있다.
일부러 적진에 잡혀 정보를 캐내곤 하던 미친 녀석이기는 하지만 그가 알려 준 방법만큼은 확실한 것이다. 적에게 포로로 잡혀 능력을 제압당했을 때 자신의 정보를 감추는데도 유용하지만 금제를 해제하는 데도 탁월하다.
군에서도 만약 내가 그 녀석에게서 이런 방법을 배웠다는 것을 알았다면 능력을 금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살을 시켰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난 그저 그들에게 있어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약간의 하이드내츄럴포스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금제를 풀려고 하니 마음이 떨린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가지게 된 능력이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되어 군의 힘을 빌려 봉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살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풀어야겠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를 일이니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과거로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상, 앞으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
나를 억압하는 모든 족쇄들을 풀고서 말이다.

* * *

“할 말은 없나? EP0001!”
어두운 공간에서 딱딱한 음성이 목적지를 향해 조용히 퍼져 나갔다. 음성의 주인공이 주시하는 반으로 잘라진 원구를 향해서다.
지이이잉!
반구의 아래로부터 누군가가 올라왔다. 불빛에 비치자 차훈의 얼굴이 드러났다.
차훈은 누워 있었다. 양팔과 허리, 다리에 밴드가 채워져 있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된 상태였다.
“아프지는 않은 겁니까?”
“적진을 폐허로 만든 자네가 할 소리가 아니로군.”
“이제는 일반인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다시 생각할 수는 없겠나?”
음성의 주인공은 안타까운 듯 차훈을 설득했다.
“이미 결심을 굳혔습니다.”
차훈의 목소리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확고했다.
“자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가 끝났네. 정상참작이 되는 일이라 자네의 공과 상계하기로 했으니 이대로 군에 남아 있겠다고 해도 문제는 없네.”
“그냥, 보내 주십시오.”
“많은 불편을 겪을 것이네. 우선 출신 성분부터 문제가 되겠지. 견디기 힘들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용병으로밖에는 써 줄 수가 없네. 그들이 자네가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 그러니…….”
“상관없습니다. 전 돌아갈 겁니다.”
차훈이 듣기 귀찮다는 듯 말을 잘랐다.
“으음, 알았네.”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음성의 주인공이 포기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차훈에게 벌어질 일들을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자네의 능력은 봉인될 걸세. 봉인이 해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트랩도 설치되니 이점 양해하게. 이것은 다른 자들도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네. 자네가 다른 자들과는 달리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니 트랩도 특별하기는 하지만 억지로 해제하려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을 걸세.”
“빨리 시행하십시오. 전역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두르는 것을 보면 군이 꽤나 싫었던 모양이군.”
“내가 원하지 않는 일만 했으니까요.”
“알겠네. 마음 급한 사람에게 잔소리가 길었군. 그럼 이제부터 자네의 능력을 봉인하겠네. 아프더라도 참게.”
차르르르르―
음성이 사라지기 무섭게 반구 안에서 검은색의 촉수들이 나타났다.
촉수들은 차훈의 전신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귀를 후벼 파는 것 같은 처절한 비명이 반구 안에서 흘러나왔다.
양자 컴퓨터의 처리 속도를 능가하는 융합신경망이 갈가리 찢어지며 평범하게 바뀌어 가고, 미세함 틈조차 없는 초경도의 근육들이 밀도를 잃으며 물렁살이 되어 갔다.
비명이 그치는 순간, 차훈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능력을 모두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