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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금제가 걸리던 때를 생각하니 차훈의 온몸에 식은땀이 저절로 나왔다.
금제를 할 당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전신 근육이 뒤틀려 전역 후 한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끔찍했다.
군부의 경고와 함께 경험해야 했던 끔찍한 기억은 평생 각인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을 상처였다.
‘후우, 설마! 그때만큼 아프지는 않겠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차훈은 자신에게 걸려 있는 금제를 풀기로 결심을 굳히고 하이드내츄럴포스를 뇌로 끌어들였다.
금제를 풀기 전에 봉인된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 곧바로 터지도록 되어 있는 트랩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뇌 속에 설치된 트랩은 제대 전 군에서 심어 놓은 것이다. 특정한 정보를 발설하거나 제한되어진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곧바로 터져 버리는 무지막지한 놈이다.
스르르…….
자연지기라 불리는 하이드내츄럴포스가 차훈의 의지에 따라 뇌 쪽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뇌혈관 벽에 붙어 있는 나노폭탄을 순식간에 감쌌다. 건드리는 순간 곧바로 터져 버리는 터라 나노폭탄은 일체 접촉을 하지 않고 배리어를 이용해 둘러싸 버린 것이다.
자신을 직접 건드리는 파장이 있으면 무조건 폭발하도록 되어 있는 나노폭탄이 이렇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제압을 당했다.
‘후우∼ 됐다. 다행이 기폭장치를 건드리지 않았다.’
폭발하지 않음을 확인하며 차훈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사실 차훈이 시도한 일은 무모한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군부가 그리 허술한 집단이 아니기에 트랩 또한 차훈이 고심해야 할 만큼 상당한 수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건드리는 것도 문제지만 제거를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터져 버리니 시도했다가는 그야말로 죽음뿐인 공포의 트랩이다.
아무리 능력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보다 빨리 해체할 수 없는 노릇이니 뇌 속에 설치된 트랩을 해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에 나와 능력을 되찾기 위해 트랩을 해제하려 했던 많은 능력자들이 한 명도 예외 없이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머리가 부서지고 녹아내려 목불인견의 참상을 연출하는 죽음을 끝으로 마약 같은 능력에 대한 욕망을 멈추어야 했다.
정신 감응만으로도 터져 버리기에 뇌 자체가 폭탄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아예 그런 생각 자체를 봉인하고 지내는 것이 금제를 당한 능력자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차훈은 사전 조치를 간단히 끝내 버릴 수 있었다.
특전단원 중 정보 분야에 일가견을 이뤘던 사람으로부터 배웠던 기술을 사용했다.
전역하면 능력을 되찾아 떵떵거리며 살겠다고 별렀던 그는 전사단과의 전투 시 전사하지만 않았더라도 전역 후 금제를 해제한 최초의 인물이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가 알려 준 기술을 실행하기 위해선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했다. 일종의 기만술이지만 뇌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인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음을 수백 가지로 나눠야 한다. 그리고 생각 자체를 모든 것이 실제라고 인식해 한다. 이때 폭탄을 제거한다는 생각을 따로따로 나누어 불특정하게 삽입하게 된다.
이때 뇌는 폭주하는 정보로 인해 폭탄이 제거된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처리가 딜레이 되는 것이다.
알게 되더라도 문제는 없다.
나노폭탄이 가지고 있는 감응 능력으로는 교차하는 생각을 읽어 내는데 시간이 걸린다. 다중으로 분산시킨 정신으로 인해 폭탄이 터지는 시간이 딜레이 되기 때문에 생각을 완성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나노폭탄이 인식을 끝냄과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빠른 시간 내에 하이드내츄럴포스로 배리어를 형성해 폭탄 주변을 감싸 버리면 끝나는 일인 것이다.
결코 간단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지만 군에서 싸이코매트릭스의 능력을 얻었던 차훈은 비교적 손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터트리기만 하면 된다.’
준비가 되자 차훈은 배리어에 강하게 압력을 가했다. 이미 반응 직전까지 갔던 나노폭탄이 폭발했다.
쾅!
충격파가 빠르게 지나갔다.
‘머리가 띵하군.’
뇌 속에 있는 탓에 그다지 강한 화력은 아니지만 폭탄이 터지자 머리가 울렸다.
나노폭탄이 터지며 발생하는 충격 에너지는 배리어에 의해 대부분 흡수되기는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골이 약간 아파 왔다. 뇌세포는 고통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지나가는 신경망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 피해를 확인했다. 충격파를 잘 막아 낸 것 때문인지 신경망을 약간 건드려 머리가 아픈 것을 빼놓고는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구나. 일단 위험한 물질들부터 빼내도록 하자.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진짜 골치가 아파지니까.’
폭탄이 터져 뇌를 곤죽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트랩이 해제되는 것이 아니다.
나노폭탄 안에 담겨져 있는 유독 물질이 폭발과 함께 동시에 분출되어 뇌 자체를 녹여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정신 감응 능력이 있는 자가 발견하면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에 나노폭탄은 강력한 폭발력 이외에도 예비 조치로 강력한 유독 물질을 함유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억을 소거하기 위해 독극물로 뇌 세포를 완전히 녹여 버리는 것이다.
스르르…….
준비가 끝나자 뇌 속에 있는 배리어를 움직였다.
유독 물질을 가두고 있어 배리어가 해제되면 위험하기에 정신을 집중해 아주 느리게 이동시켰다.
좁쌀보다 작은 크기의 배리어가 뇌 주변을 따라 옮겨지는 터라 골이 지끈거리고 눈이 빠질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뇌혈관과 같이 지나가는 시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크으, 더럽게 아프군. 그렇지만 의지를 잃으면 안 되니 더 집중해야 한다.’
의지로 구현한 배리어는 집중이 흐트러지게 되면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유독 물질로 인해 뇌가 녹아 버릴 것이기에 고통을 참고 최대한 집중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배리어가 천천히 움직이며 드디어 눈을 통해 빠져나왔다. 보이지는 않지만 허공에 뜬 배리어가 느껴졌다. 또 다른 배리어를 만들어 낸 후 곧바로 육체를 감쌌다.
‘휴우, 끝났다. 이제부터는 생체 활성기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스으으으…….
배리어를 약간 열자 희미한 푸른빛의 유독 물질이 빠져나왔다. 이를 인식한 생체 활성기가 차훈이 빼낸 유독 물질을 몸에 안 닿게 감싸더니 분해하기 시작했다.
유독한 물질을 흡수해 필요한 것은 흡수하고 나머지는 중화시켜 버리는 방식이라 해독은 빠르게 끝났다.
‘이제는 해독이 끝났으니 하이드내츄럴포스를 본격적으로 흡수하는 일만 남았다. 분명 봉인된 기억 속에 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있을 것이다.’
제대하기 전에 금제가 해제되면 1단계 봉인이 해제되도록 암시를 걸어 두었다. 위험을 제거한 차훈은 의식의 한편에 묶어 놓았던 봉인이 저절로 풀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봉인 해제의 키워드인 금제가 풀리자 숨겨져 있던 봉인도 풀리면서 안에 담겨 있는 정보들이 빠져나와 의식 속에 빠르게 안착했다.
차훈은 봉인 속에 들어 있던 정보들을 검색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았다. 이미 예전에 사용하던 정보들인 만큼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으음, 다행히도 지금 들어오는 하이드내츄럴포스를 다룰 수 있을 만한 기술이 있구나. 그래, 이 정도의 양이라면 그 양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다른 것은 폭주를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으니 위험하더라도 그 양반 것으로 하자.’
전투 기술 중 마침 하이드내츄럴포스를 다룰 수 있는 알맞은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처음 자신이 속해 있던 특전팀의 팀장이 죽음을 예감하고 유언처럼 자신에게 전해 준 유진에서 우연치 않게 얻게 된 특수한 기술이었다.
특전팀장이 준 유진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은 보통의 인간을 단숨에 초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특별한 전투 기술들이었다.
한때의 인연으로 우연치 않게 얻게 된 것이지만, 차훈은 그로 인해 여러 차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정도로 군이 보유하고 있던 그 어떤 극상의 전투 기술보다 뛰어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시작하자. 이것이 다시 한 번 내 목숨을 구해 줄 것이다.’
지금 휘몰아쳐 들어오고 있는 하이드내츄럴포스를 무사히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차훈은 지체 없이 시도했다.
* * *
마신환령(魔神環靈―데빌트랜스포머)!
고풍스러운 이름이다. 마신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 운용법이라니 말이다.
달리 데빌트랜스포머라 불리는 이 에너지 운용법은 이름이 풍기는 이미지 그대로 고대로부터 전승된 것이다.
마신환령은 수천 년 전에 봉인된 에너지 운용법이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유래도 알 수 없고 사용법도 알 수 없어 그냥 봉인된 채 오랜 세월을 전해져 내려왔다.
봉인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것이 있지만 내 생각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마지막 봉인자가 바로 나와 같이 전투에 참여했던 특전팀원이다. 그는 전신이 갈가리 찢기는 참혹한 생애 끝자락에서 나에게 마신환령을 전했다.
봉인을 이어받았지만 결코 봉인 안에 들어 있던 마신환령을 쉽게 얻은 것은 아니다.
이걸 얻자고 죽음의 강을 한 번 건너야 했으니 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비밀에 묻혀 있다가 피의 인연으로 나에게 전해지고 난 뒤에 나는 죽음의 강을 건너야 했다.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 강제적인 죽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면서 끝내 살고자 하는 미련을 떨치지 못했던 나는 비밀의 끝자락을 쥘 수 있었고, 전율을 불러오는 마신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마신환령은 사용하는데 여러 가지 난제가 있어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 여파가 지금도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딱 한 번 죽음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을 했다가 정신이 돌아온 후에 보았던 참상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선하다.
적들은 물론 아군조차 피로 절여 놓은 듯한 그 모습을 보면서 난 그 끔찍한 위력만으로도 마신환령이 봉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가공스러운 위력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흡정(吸精―석션스피릿)!
지금 이 상태에서는 초자연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마신환령의 1단계 에너지 운용법인 흡정만이 살길이다.
마신의 고리라 일컬어지는 마신환령의 흡정만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오는 막대한 양의 하이드내츄럴포스를 안전하게 흡수할 수 있을 뿐, 나에게는 이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상의 에너지 운용법이자 전투 기술인 마신환령의 최초 단계인 흡정은 강체(剛體―하이퍼바디)라는 최상의 신체를 만드는 미래에서도 몇 없는 최상의 에너지 운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에너지라도 빠르게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상의 육체를 만들어 주기까지 하니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별로 없기도 하다.
만약 군 수뇌부에서 내가 이런 에너지 운용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기라도 했다면 아마도 눈에 불을 켜고 잡아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스으으으―
흡정이 운용되자 일곱 개의 차크라가 깨어나 하이드내츄럴포스를 흡수해 나간다. 예상대로 마치 폭식자처럼 무리 없이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말은 잘 듣지 않는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기운을 흡수한 차크라들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차크라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대로 흡정에 사로잡히니 말이다.
그냥 두면 끝없이 빨아들이는 흡정의 힘이 끝내는 나까지도 흡수할 테지만 차크라가 움직였으니 한 시름 놀 수 있을 것 같다.
지속적으로 흡수되는 하이드내츄럴포스가 차크라 내부에서 회오리처럼 휘돌다가 이내 뫼비우스의 띠처럼 변해 가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운행 코스다.
위이이이이잉!
점점 굵기가 더해지던 띠들이 어느 순간에 눈알이 핑핑 돌 정도로 고속 회전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에너지 이동 경로가 바뀌었다.
일곱 군데에서 벌어진 회전 현상 때문에 발생한 인력으로 인해 이제는 하이드내츄럴포스가 전신으로 흡수되는 것 같다.
강체라 불리는 하이퍼바디로의 진행이 시작됐는지 피부를 따라 흐르는 혈관은 물론, 근육 내부에 흐르는 모세혈관들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내 몸은 잘 부풀어 오른 찐빵처럼 변해 있을 것이다. 포화 상태까지 흡수된 하이드내츄럴포스가 세포 하나하나에 흡수되고 있었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차크라 안에서 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점점 두꺼워지고 회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그와 함께 모세혈관으로 빨려드는 하이드내츄럴포스의 양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중이다.
스으으으…….
하이드내츄럴포스가 모래에 물이 스며들 듯 세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있다. 세포 단위 차원의 회복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회복 과정이 진행될수록 폭풍처럼 강렬했던 하이드내츄럴포스의 폭주도 점차 가라앉고 있다. 할 일을 끝낸 듯 일곱 개의 차크라에 머물고 있던 뫼비우스의 띠들도 점차 회전 속도가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지 압력이 가신다. 부풀어 올랐던 육체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예상대로 의식 속에 봉인되어 있던 마신환령공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 분명하다.
후후후, 마신환령은 무지막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운을 단번에 잠재우다니 말이다.
잠시만 늦었어도 포화 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자칫 잘못했으면 아예 골로 갈 뻔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다.
아직은 불완전하게 익히고 있는 것이라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 또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대비를 해야 한다.
* * *
타타타타!
별장 앞에 마련된 잔디밭에 헬리콥터가 내려앉자 풀들과 먼지가 휘날렸다.
군용기와는 달리 위장색이 없는 것을 보면 민간 항공기임이 분명하지만 소속된 표기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누가 운행하는지 알 수 없는 헬리콥터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제임스는 잠자리가 내려앉는 것처럼 사뿐히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관처럼 생긴 검은색 케이스를 안에 싣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은 검은색 케이스는 모두 세 개였다.
“박사님, 다 실었습니다. 어서 타시죠.”
“그러지.”
케이스를 다 실은 제임스는 황충길과 함께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타타타타!
헬리콥터가 천천히 이륙하자 지상의 산장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끝나 다행이네.”
이륙한 헬리콥터가 대전 방향으로 기수를 틀자 황충길이 무전으로 말을 건네 왔다.
“그런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올 일은 별로 없을 것 같군요.”
“그렇지. 이것들이 없어지고 나서 산이 급격히 죽어 가고 있으니 말이야.”
“대략 산출해 봐도 산을 중심으로 2킬로미터 반경 안에 있는 나무들이 말라 죽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임스의 말대로 헬리콥터에서 바라보는 산야가 이상했다. 이제 막 파릇하게 새순이 돋아났던 산 중 일부가 나무들이 죽어 가고 있는지 빛 바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산장으로 위장한 인근만 그러더니 이제는 점점 더 지역을 넓혀 가며 나무들이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나무를 다시 식재하고 시간이 지나면 숲이 다시 우거지기는 하겠지만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리산의 정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없어진 탓에 제일 먼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곧 복구될 테니 염려 말게. 자연의 힘이란 인간의 생각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니까 말이야.”
안타까운 눈으로 별장 주변을 살펴보는 제임스를 향해 황충길이 위로의 말을 던졌다.
“그래야겠지요. 자연의 자정작용으로 빨리 복구되길 비는 수밖에요.”
이대로 그냥 두는 수밖에 없다.
손을 써 녹화사업을 할 수도 있지만 자칫 자신들의 행적이 드러날 수도 있는 일이다. 자연이 주는 위대함이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을 복구해 주기를 기원하는 것밖에는 자신이 할 일이 없었다.
“그나저나 박사님!”
“왜 그러나?”
“더는 없겠지요?”
최대한 손실이 없도록 회수는 했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많이 부족한 양이었기에 제임스가 아쉬운 듯 물었다.
“우리가 얻은 양이라면 거의 전부라고 해야겠지. 저렇게 나무들이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고. 그나마 이것을 얻은 것만도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니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게.”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것을 알기에 제임스는 황충길에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요.’
완전히 포기한 것이었는데 이렇게나마 찾은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기에 아쉬움을 삼켰다.
“그나저나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그자가 사라진 것이 오히려 복이 된 것 같습니다.”
차훈이 사라지고 난 뒤 미래 기술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제임스는 거의 절망적일 수밖에는 없었다. 상당 기간 차훈을 지켜보며 기대감을 키워 온 그였기에 실망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직도 의문이네. 어떻게 갑자기 사라지고 우리가 그토록 찾던 저것이 나타났는지 말이야.”
정보를 얻기 위해 관찰하던 차훈이 사라지고 엉뚱하게 자신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것이 갑자기 나타난 것에 대해 황충길은 아직도 의문이 아닐 수 없는 모양이다.
“저도 그것이 의문이었습니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면 그자가 사라지고 난 뒤 나타났으니 아마도 미래에서 보내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미래에서 말인가?”
“그렇습니다. 처음 우리에게 단서를 주었던 자가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방법을 마련해 놓겠다고 했었으니 그의 안배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맞는 말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제임스의 추측에 황충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네. 하지만 어떻게 미래에서 저것을 현재로 보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네. 상당한 에너지를 포함 것이라 시간여행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인데 정확하게 보내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
“어찌 되었던 우리로서는 천만다행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기댈 만한 것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네.”
우연의 일치로 벌어진 일을 나름대로 해석한 두 사람은 흥분되는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해를 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자신들이 얻게 된 물질로 인해 향후에 벌어지게 될 전쟁에서 약간이나마 승산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들을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제임스, 하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네. 놈들이 전쟁을 시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들이 결실을 맺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큰 힘이 될 원천도 얻었기에 황충길은 앞으로 준비해야 될 일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알고 있습니다. 유 박사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모두 한국으로 들어오신다면 미래에서 온 물건들에 대한 연구성과도 빨리 얻을 수 있을 테니 준비할 시간은 충분할 겁니다.”
조직 상층부에서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동지들이 불러 모았다.
준비가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외국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동지들이 함께 작업을 시작하면 최후의 전쟁을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동지들이 들어와 합류한다면 큰 힘이 될 걸세. 하지만 각국에서 비밀리에 감시를 붙여 놓았을 테니 자네가 힘을 많이 써야 할 것이네.”
“이미 그들의 눈을 속을 계획이 철저히 수립되어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흥분은 어느새 사라졌는지 제임스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 분명했다.
“역시, 자네로군. 그런데 이곳에 대한 정보가 일부 새어 나간 것 같은데, 그 일은 어떻게 됐나?”
이번에 발견된 것들을 헬리콥터까지 사용해 옮긴 것은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마련한 지하 기지를 폐쇄하고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지운 것도 그 때문이었기에 황충길이 대비 상황을 물었다.
“조금 서두르기는 했습니다만, 놈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우리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겁니다.”
“모르는 일이네. 10여 년 전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던 자들이니 철저히 대비를 해야 할 걸세.”
“후후후, 아무리 인간 같지 않은 자들이라고 해도, 이번에는 힘들 겁니다. 사실 놈들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있었지만 혹시나 경각심을 심어 줄지도 몰라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제임스, 반격까지 생각했다면 혹시 그들이 나온 건가?”
황충길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는지 놀라 물었다.
“예, 일부는 출관을 했습니다. 몇 명 되지 않지만 놈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을 만한 전력입니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기에 지켜만 보라고 했지만 유사시에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수고했네. 그들이 출관했을 줄이야.”
믿음직한 대답에 황충길은 마음이 놓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제임스는 언제나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역시,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다. 제임스, 자네와 자네 부모님의 희생은 영원히 기억될 걸세. 그리고 명예로서 보답을 받을 걸세.’
사실 민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이가 제임스였다. 그의 부모 또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 희생을 자처한 터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민족의 생존이라는 훌륭한 보답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네가 한 만큼, 나도 최대한 노력하겠네. 그것이 내게 재주를 내려 준 하늘의 소명이니 말이야.’
자신 또한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뒤쳐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황충길이다.
“제임스, 자네가 추진하고 있는 일이니 어련하겠나만 시간이 없으니 모든 준비는 10년 안에 모두 끝내야 하네. 그리고 정치권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하네. 민족의 앞길을 막는 자들을 철저히 제거해야 그나마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으니까 말이야.”
“방해하는 자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될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박사님.”
대답을 하는 제임스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넘쳤다.
수천만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기에 앞길을 가로막고 방해가 되는 자들을 황충길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야겠지. 썩어 버린 부위를 도려내지 않는 한 새 살이 나지는 않는 법이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조차 품을 수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으음…….”
맞는 말이었기에 황충길은 깊은 신음을 흘렸다. 제임스 또한 굳은 안색이었다.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은 침묵에 잠겼다.
조직의 전력을 극대화할 물질을 얻은 이상 앞으로의 계획에 많은 변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나 오랜 세월 동안 민족의 부흥을 좀 먹는 자들에 대한 처리는 상당 부분 변할 것이 분명했다.
계획의 완성 단계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하루 빨리 처리하는 것이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단시간 내에 전력을 최고를 끌어 올릴 수 있을지 고민에 잠겼다.
타타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지리산을 떠난 헬리콥터는 어느새 미래기술연구소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 * *
받아들인 하이드내츄럴포스가 마신환령에 따라 전신을 돌기 시작한 후 신경망이 제일 먼저 복구를 마쳤다.
이미 군에서 건 금제와 함께 1단계 봉인이 풀린 마당이라 차훈은 거칠 것이 없었다.
우드득!
신경망 복구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육체의 변이가 시작됐다. 에너지 변이 수준에 따라 육체를 최적화시키는 작업이다. 관절과 뼈가 최적의 상태로 이완되고, 근육의 밀도가 급격이 증가했다.
차훈을 투신으로 만들었던 비장의 절기이자, 초인이라 불리는 자들과 버금가는 육체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강체가 완성되는 것도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차훈의 육체가 급격히 변하는 것만큼 생체 활성기 주변에 있던 기이한 암석들도 빠르게 변화를 맞이했다. 하이드내츄럴포스를 빼앗기는 만큼 청적백, 삼색의 암석들이 회색으로 변해 가며 제 모습을 잃었다.
‘대충 회복을 끝낸 것 같으니 이제는 이 시대의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다.’
과거로 온 것이 거의 확실한 이상 현 시대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위험만 자초하기에 제일 먼저 할 일이다.
현재로서는 직접 정보를 얻을 방법이 전무하다. 미라클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때 저장해 놓길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곤란할 뻔했구나.’
마지막 임무 수행 시 적의 메인 인공지능에 침투해 얻은 정보가 있었다. 몇 겹의 방화벽이 쳐져 있어 중요한 정보인 줄 해킹을 했었다.
별 볼일 없는 기록물들만 잔뜩 들어 있는 자료라 적지 않게 실망했는데 저장해 놓은 것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적이 기록해 놓은 것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활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그때 저장해 놓은 자료라면 이 시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자료들도 전부 개방해야 한다. 특히나 군사 정보는 더더욱!’
단편적인 정보들이지만 이 시대의 군사력에 대한 정보도 상당수 보관되어 있다.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활동의 반경을 정할 수 있기에 개방하기로 했다.
두 가지 정보를 가장 빠른 시간에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야 하기에 미라클을 활용하기로 했다. 링크를 활용한 정보 인식이다.
두 가지 정보는 인간의 두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다.
직접 입력했다가는 감당하지 못하고 뇌혈관이 터져 버릴 수 있는 것이라 정보 인식을 생각한 것이다.
지금 차훈이 시도하고 있는 정보 인식은 일종의 링크 작업이다. 개방하는 정보는 백 팩 안으로 전송되어 인공지능이 가미된 양자 컴퓨터에 보관되고, 차훈은 이 정보와 자신의 의식을 연결해 주는 인덱스 코드를 주입받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덱스 코드를 통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각종 정보를 순식간에 불러올 수 있게 된다.
미라클과 링크되는 인덱스 코드를 입력하는 것은 생체 활성기에서 의식으로 직접적인 주입이 되는 형태다.
생체가 극도로 활성화된 상태에서 전달받는 것이 제일 효율이 높았기에 곧바로 시도하기로 했다.
―일반 정보 개방!
먼저 일반적인 정보부터 개방했다. 이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이 우선이었기에 문화, 역사 등과 관련된 정보부터 파악하는 것이 좋았다.
‘크으으, 죽이는군.’
뇌압의 상승으로 머리가 아파 왔지만 차훈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얼마 후 잦아들었다.
―군사 정보 개방!
주입된 정보를 사용해 관련 자료들을 차분히 정리해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링크 정보의 주입이 끝나는 순간, 곧이어 군사 정보도 방했다.
군사적인 정보는 적의 정보뿐만이 아니라 아군 내부의 정보도 있었다. 적의 메인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침투한 것에 자극받아 아군의 메인 시스템에도 몰래 들어가 빼낸 것들이다.
정보감찰부의 시선을 피해 제대하기 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빼돌렸던 것이라 상당히 양이 많았다. 일반 정보를 링크할 수 있는 코드의 거의 서너 배는 되는 양이지만 빠르게 의식 속으로 주입됐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이번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일반 정보를 주입받는 동안 느낀 고통으로 인해 군사 정보를 개방함과 동시에 마신환령을 가동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링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차훈의 의식은 고요의 상태에서 머물고 있었다.
불가에서 말하는 삼매경과 비슷한 상태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링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