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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6장. 예기치 않은 조우


과거의 정보와 차훈을 링크시키는 작업은 상당한 시간 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가수면 상태에서 진행되던 링크 작업이 끝난 것은 제임스 일행이 비밀 기지에서 철수하고 사흘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으음, 시간이 많이 지났나 보군.’
의식을 차린 차훈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험실을 빠져나와 육체를 활성화시키는데 이틀, 정보들과 완전히 연결되는데 거의 하루 반나절을 잡아먹었군. 일단,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한 번 살펴봐야겠다.’
생체 활성기가 작동되는 순간, 처음 있었던 곳을 기점 좌표로 삼는다. 기점 좌표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일단 기점 좌표로 간 후 워프를 진행해야 하는 탓에 지금 있는 곳에서 현재 차훈이 갈 수 있는 곳은 자신이 누워 있던 실험실뿐이었다.
아직 누군가 있을지도 몰랐기에 차훈은 정신을 집중해 생체 감응을 시도했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하겠지만 원래 있었던 곳의 아래쪽 지하다.
금제를 해제했지만 지금 사용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기에 기감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파츠츠츠츠―
생체의 존재 여부를 탐색하기 위해 마치 촉수처럼 차훈의 뇌파가 빠르게 지상으로 뻗어 나갔다.
제임스와 황충길이 자신을 관찰하던 지하 실험실을 순식간에 지나치며 남아 있는 자들이 있지 않나 검색을 했다.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자, 차훈은 인공 구조물을 따라 지상까지 뻗어 올라갔다.
‘으음, 다행이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생체 반응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완전히 폐쇄 된 것인가?’
지상에도 생체 반응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환기나 상온 조절기 등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기계들만 가동되고 나머지는 동력이 전부 차단된 상태다.
기본 동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동력이 꺼진 것을 보면 시설을 폐쇄하고 다들 떠난 것이 분명했다.
‘마침 잘됐군.’
―워프!
사람들이 없음을 확인한 차훈은 곧바로 실험실로 워프를 시도했다.
스스스…….
생체 활성기가 사라지고 암석층 내부에 공동만 남았다.
팟!
암석층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사라진 생체 활성기가 실험실 내부에 나타났다.
“해제!”
배리어에 쌓인 채 실험실에 도착한 차훈은 격자 무늬로 이루어진 천정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곧바로 생체 활성기를 해제시켰다.
스윽!
침대에 누워 있듯 허공중에 떠 있던 차훈은 천천히 다리를 짚어 바닥에 내려섰다.
“으음, 깨끗한 것을 보니 이 안에 있던 기계들을 전부 가지고 떠났나 보구나.”
실험실 안을 가득 메웠던 기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는데 어느새 다 치운 모양이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후후후, 이거 옷이 없으니 큰일이군. 이대로 나갔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한테 말이야.”
치료할 때부터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았다. 나체인 상태로 밖으로 나가기 상당히 곤란했다.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는 보안장치야 알아차리지 못하게 뚫고 나갈 수는 있지만 알몸 상태라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알몸에 검은색 백 팩 하나를 등에 매고 다닌다면 보는 사람마다 미친놈이 출현했다고 말할 것이다. 자신을 가둔 자들에게 알려질 가능성도 있었다.
―미라클!
차훈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양자 컴퓨터인 미라클을 호출했다.
자신의 의식과 연결된 인공지능 컴퓨터였다.
위잉!
가벼운 진동음과 함께 생체 감응 컴퓨터인 미라클이 반응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오랜만에 가동시키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마스터!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이 있나 찾아봐.
금제를 해제한 이상 네크워크 접속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만일을 위해 미라클에게 지시를 했다.
―알겠습니다.
미라클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마스터,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외부와 연결되지 않는 독립형 체계를 구축한 것 같은데 메인 처리 장치는 아예 없고, 보조 장치에도 흥미를 끌 만한 것들은 없었습니다.
―보안장치는?
―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되어 있는 출입자 정보도 그렇고 기존의 암호 체계도 완전히 제거되어 완전히 새로 세팅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지워 버린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혹시, 지워지거나 한 정보 중에서 복구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한 번 살펴봐.
―이미 살펴봤습니다만 불가능했습니다.
―으음,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상당한 자들이군. 그럼 주변을 탐색해서 내가 입을 수 있을 만한 옷이 있는지 한 번 찾아봐. 이대로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탐색에 들어갑니다.
탐색이 진행되는 동안 차훈은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미라클로부터 기다리던 보고가 들어왔다.
―다행히 지상에 있는 건물에 마스터께서 입을 만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러면 일단은 이 안에 있는 보안장치들부터 해제시켜 줘.
―알겠습니다. 기초적인 탐색은 이미 끝마쳤으니 5분 후면 모든 보안장치가 해제될 겁니다.
―역시, 간단하게 끝내는군.
―감사합니다, 마스터.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에 미라클은 사람처럼 응대했다.
―하지만 미라클!
―예, 마스터!
―방심은 하지 마. 시스템이 기초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자들이 절대로 알아차려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으로 기록이 될 테니 이곳을 설치한 자들에게 알려질 염려는 없습니다.
―후후후, 그래. 신경 좀 써 줘.
자신이 최후의 카드로 선택한 미라클인 만큼 역시 믿음직스러웠다.
‘좋아!’
차훈은 이제 지상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조금 흥분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온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흥미로웠다.
비록 완벽한 상태의 해제는 아니었지만 지금 시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살던 시대에서도 성능을 따라갈 수 없는 초우량 기종인 미라클이 있었기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었기에 기대감이 컸던 것이다.

* * *

미라클은 내가 복무했던 군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메르 제국에서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진에 침투했을 때 아직 생체 코드가 인식되지 않은 것이 있어서 나중에 필요하면 써먹으려고 슬쩍 해 두었던 놈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터라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빼돌려 놨었다.
유전자 생체 코드를 인식시키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해 미라클이란 이름을 붙였다.
나에게 맞도록 개조하고는 숨겨 두다가 전역을 하자마자 찾아서 튜닝을 했다.
아메르 제국산이라 자칫 발견된다면 첩자로 오인을 받아 즉결 처분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암시장에서 한 튜닝이었지만 당대 최고라는 기술자에게 받아서인지 발각이 되지 않아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놈이 없었다면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야 하니 말이다.
미라클은 소유자의 생체 감응으로 작동하고, 자체 에너지 흡수 장치가 있어 별도로 에너지가 필요 없다. 정보 저장 및 연산 처리 능력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 왔던 그 어느 인공지능보다 뛰어나다.
그뿐만 아니라, 링크되는 소유자와의 싱크로 율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울 정도로 생체 동화도도 탁월한 놈이다. 보통 인공지능의 싱크로 율은 50퍼센트 내외여서 거의 완전하게 동화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이름도 미라클이라 붙였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거의 인공 생물에 가까운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 내가 들어 봐도 아주 적당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미라클의 기능을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마지막 작전을 끝나고 두어 달 후 제대를 한 미라클에 대해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제대한 후부터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하다가 대학교에 들어간 후까지도 계속해서 군에서 파견한 감시의 눈길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미라클의 기능에 대해서는 봉인을 풀어 버린 후에만 알아볼 수 있기에 미처 살펴볼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동안 간신히 찾아낸 것이라고는 미라클이 운용되는 정보 인프라와 생체 활성기, 그리고 워프와 삼차원 입체 공간 생성 능력이 전부다.
알아낸 것들을 응용해서 군에서 배운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해 나에게 맞도록 변형을 시켜 놓기는 했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작전에 투입된 후 말소 명령대로 모두 제거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그들이 이런 기특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전투에 투입했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 텐데 적들이 미라클과 같은 인공지능 컴퓨터들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 상관은 없다. 나만 잘 써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양자가속기 안에서 살아나 과거로 오게 된 것도 다 이놈 덕분인 것 같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거나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놈임은 분명하다.
완벽하게 이놈의 기능을 알아낸다면 아직은 불안전해 어느 정도 금제하고 있는 능력들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 *

―보안장치가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알았어!
미라클이 보안장치를 해제했다는 보고에 차훈은 곧바로 실험실을 나섰다.
나서기 전에 미라클이 뭔가를 조사를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소유자의 안전을 위해 주변 상황을 체크하는 것이 미라클의 기본 임무라 일일이 확인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실험실을 나서 통로를 따라 일곱 개의 보안장치를 지나자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중력차를 이용한 튜브형이 아니고 레일을 이용하는 엘리베이터 중 가장 오래된 방식이었다.
“이건 전에 탔던 것보다 더 구형이군. 하지만 설치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아 레일이 끊어질 염려는 없을 것 같으니 일단 올라가자.”
위이잉!
차훈이 타자 엘리베이터에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둡군. 조명을 설치하지 않았나?”
엘리베이터 안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지만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구형이기는 하지만 어둠을 제외하고는 꽤나 쾌적한 것이 탈만 했다.
덜컥!
지상으로 올라왔는지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실내 공간이 나타났다.
불투명한 창문을 통해 은은한 빛이 들어오고 있어 실내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보였다.
“저렇게 큰 침대라니…….”
캡슐 생활이 일반적이었던 차훈은 커다란 침대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디.”
생각보다 큰 침실을 나서자 응접실이 나왔다.
“우, 우와! 이렇게 넓은 곳에서 산다는 말이지.”
1급 시민권을 가진 부자들만이 거주할 수 있다는 생활 공간을 본 차훈의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널따란 공간이 우선 놀라웠다. 허니콤에서 생활하던 차훈으로서는 이렇게 운동장만 한 거주 공간을 보는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