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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스나이퍼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주님,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차훈의 신형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스나이퍼 중 하나가 등정무에게 황급히 전음을 보내왔다.
“적외선으로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부단주님과 단원들 말고는 근처에 아무도 없습니다.”
“얼마큼 살펴봤나?”
“단원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방 30미터를 훑었는데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으음.’
차훈이 사라지고 난 뒤 곧바로 접근했다. 그 짧은 시간에 30미터를 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은 틀림없기에 등정무의 생각이 바빠졌다.
‘어디로 숨은 거지? 혹시, 이 근처에 놈이 만들어 놓은 비트나 비밀 통로가 있는 건가?’
우드득!
“컥!”
어디에 숨어 있는지 파악하려 애쓰는 사이에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답답한 신음이 들려왔다.
털썩!
조인호와 함께 접근했던 천랑단원 중 하나가 목이 반 바퀴나 돌아간 채 바닥에 쓰러졌다.
목뼈가 단번에 뒤틀려 버린 탓인지 더 할 나위 없이 크게 뜬 두 눈에는 놀람만 있을 뿐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적이 다가와 죽음을 선사하는 직전까지도 몰랐다는 증거였다.
경계하고 있던 수하들이 적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놈이 옆에 있다. 모두 산개해서 찾아라.”
갑작스럽게 당한 터라 등골이 서늘해진 등정무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스스스…….
명령과 동시에 천랑단원들이 꺼지듯 자리에서 이탈했다.
천랑단원들은 자리를 피하는 것과 동시에 모습을 감춘 것이다. 암영(暗影)이라 불리는 천랑단원만의 은신법이었다.
암중에 숨은 화살을 잘못 상대했다가는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기에 우선 자리를 피한 후 모습을 감춘 천랑단원들을 차훈을 찾기 위해 주변을 주시했다.

천랑단원 중 하나의 목을 꺾어 버린 후 광학 굴절 모드로 모습을 감춘 차훈도 비산하는 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제법 잘 숨은 터라 모르고 있었다면 정신을 집중해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철저하게 훈련된 자들이었다.
‘호오, 제법인데.’
내심 만만치 않은 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법이나 살법을 전문적으로 익힌 자들이라 잘못하면 제거하는데 꽤나 애먹을 터였다.
‘으음, 그렇다고 미라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뭣하고. 어디 보자…….’
상대가 숨박꼭질을 청해 왔다. 인내심이 약한 자가 지는 게임이기에 차분하게 주변을 살폈다.
처음부터 종적을 쫓아 확인을 했음에도 어느새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인지 기척을 찾는 것이 까다로웠다. 정말 쉽지 않은 자들이었다.
‘어쩔 수 없군.’
보통의 방법으로는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차훈은 감응파를 펼쳤다.
잠시 후, 미약하지만 숨어 있는 자들의 기운이 하나둘 느껴졌다. 예상한 대로 신형을 감춘 후, 곧바로 다른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후후후, 모습을 감춘 줄만 아는 모양이로군. 하지만 인간에게서 나오는 신호는 기척뿐만이 아니지.’
차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척을 일체 감추었다고는 하지만 특유의 기운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산하는 뇌파의 파장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주변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제 감응파에 잡힌 이상 어디로 숨든지 머리를 박고 숨었다고 생각하는 꿩이나 마찬가지였다.
‘후후후, 변경된 위치는 모두 파악했고. 알아서 신형을 감추어 주니 나로서는 조금은 편해지겠군.’
적들이 모습을 감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숨어 있는 천랑단원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응파를 통해 몸에서 나오는 일체의 신호를 지우면 자신은 완벽하게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이동한 후 음파를 차단하고 그대로 목을 꺾어 버리거나 뇌를 곤죽을 만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적의 눈에도 동료들이 보이지 않기에 한 번에 한 명씩 각개격파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럼, 저격을 맡은 놈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숨어 있는 모기들에게 신경을 쓰다가 다른 놈들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
스스스스스…….
천랑단원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는 차훈이지만 장내의 누구도 종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천랑단원들과는 비슷한면도 없지 않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은신법을 사용하고 있는 차훈의 행적을 알아보기에는 장내에 있는 자들이 수준이 너무 낮았다.
움직이면서도 소리는 물론 일체의 기척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고유한 기운까지 차폐한 상태로 신형을 이동시키고 있는 차훈이었다.
거기에 더해 광학 굴절 모드를 사용해서 장내를 주시하는 자들의 눈에 자신을 투과한 영상만 비치도록 했으니 투명인간과 같은 상태였다.
시야의 사각을 따라 움직인다고 해도, 교차하며 은신해 있는 천랑단원의 눈길을 피할 수 없건만 차훈의 이런 조치 때문인지 아무도 주시하는 자가 없었다.
‘광학 굴절 모드가 아직은 꽤 쓸 만하군.’
유령처럼 변해 버린 상태라서 그런지 포위망을 빠져나오는 동안 완벽히 신형을 감출 수 있었던 차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외곽 지대에 있는 스나이퍼를 찾아서 움직였다.
말라붙은 풀들로 전신을 위장하고, 바닥에 배들 바짝 붙이고 있는 스나이퍼 모습은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으로 위장한 채 주변의 시선에서 피해 나가고 있었다.
잘 훈련된 자들이라도 시각만으로 위장한 자들을 찾아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차훈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장막을 쳐 놓았군.’
차훈은 찾아 낸 스나이퍼를 중심으로 3미터 반경에 온갖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은신한 곳을 보호하기 위해 그물망처럼 엮어놓은 부비트랩을 뚫고 곁에 섰지만 스나이퍼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이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는지 스코프에 눈을 갖다 붙인 채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정말 잘 배운 놈들이다. 은신을 하더라도 사로 간의 교차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철저히 훈련 받았구나.’
서로가 서로를 느낄 수 있도록 배치가 되어 있었다. 스나이퍼는 감각이 뛰어나다. 무공까지 익힌 자들이니 감각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 제거하다 흔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조용히 처리를 해야겠지. 후후후, 소리 없는 죽음의 전율은 너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첫 번째 대상을 제거하면서는 적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기 위해서 일부러 기척을 드러냈었다.
각자가 느끼는 감정의 파고를 파악해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서다. 이제부터는 조용한 죽음의 그림자를 선물할 차례였다.
차훈의 손이 은밀히 뻗어져 스코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스나이퍼의 뒷덜미를 천천히 잡아 갔다.
퍼석!
닿았다는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스나이퍼의 생기가 급격히 빠져나갔다.
접촉하는 순간 차훈의 손바닥으로부터 침투한 힘에 뇌가 곤죽이 되어 버려 급속하게 사후강직이 일어난 스나이퍼는 비명 소리조차 없이 그대로 굳은 석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다른 놈이다.’
잠시 후, 유령처럼 신형을 이동시킨 차훈은 천랑단원들이 은신한 인근을 스코프로 바라보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다른 스나이퍼도 석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후후후,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피의 축제를…….’
흩어지듯 사라진 차훈은 신형이 천랑단원들이 은신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스나이퍼들의 죽음을 시작으로 사신의 그림자가 자신들에게 드리운 줄도 모른 채 등정무는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놈은 분명 너희들 사이에 있다. 방심해서 당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삼형은(三形隱)으로 그물을 치고 놈을 사로잡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뭔가 있는 놈 같으니 제거보다는 생포하도록 해라.”
천란당원들은 등정무의 지시에 포진을 하며 포위망을 확장했다. 단번에 그물을 조이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등정무는 생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환사의 정보대로 지킴이들을 제거해 왔지만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던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자라 생각했지만 유인을 한 것을 보면 제거해 왔던 자들과는 달리 진짜 실력자로 보였다. 자신이 제거했던 자들이 진짜 지킴이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지금까지 제거해 왔던 자들이 진짜 지킴이가 아니라면 이제야말로 다른 지킴이에 대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크기에 생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되니 상관을 없을 것이다.’
방원 100미터 이내에 그물을 까는 포진법이 삼형은이다. 각자 세 군데의 거점을 두고 망을 구축한 후 적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면 모든 것이 완료되는 진이다.
자신이 은신한 곳을 제외하고 두 군데는 적에게 의혹을 심어 주는 흔적이 만들어져 있는 탓에 안에 들어온 자는 이 흔적을 제거하거나 피해 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제거를 택하면 곧바로 걸리고, 피해 간다고 해도 주시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니 반드시 그물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고기가 그물에 걸리면 삼형은이 곧바로 삼살형(三殺形)으로 바뀌고 삼재를 형성한 칼날이 안에 들어온 자를 갈가리 난도질해 버리니 살아남을 수가 없는 절대 살진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난다.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그물인 것이다.
생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기에 죽음을 선사할 수는 없지만 팔다리 하나는 떨어트릴 것이다. 어차피 정보를 캐내기 위해 사로잡는 것이니 목숨만 붙어 있으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정보를 캐낸 뒤에는 천랑단원들이 살점을 하나하나 발라 낼 것이다. 자신들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포진이 완성됐다.’
삼형은을 완성하는 것과 동시에 등정무는 외곽을 포위한 수하들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혹시나 만에 하나 그물에 걸린 고기가 삼형은을 벗어날 수 있기에 탈출이 예상되는 경로에 천랑단원들이 자리를 잡게 했다. 포진으로 범위가 넓어진 만큼 저격수들도 보다 멀리 떨어져 장내를 주시하도록 했다.
완벽한 포위망이 구축됐다고 확신한 등정무와 그를 호위하는 수하들과 함께 적이 빠져나갈 경로로 택할 확률이 가장 높은 계곡의 입구에 신형을 숨겼다.
모든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면서도 도주로를 차단할 수 있으니 최적인 장소였다.
등정무도 삼형은을 사용해 두 개의 거점을 주시했다. 안쪽에서 삼형은을 구축한 수하들과 외곽에서 포위망을 구축한 수하들을 향해서다.
‘후후후, 제대로 천라지망이 구축됐다.’
그 누구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포진이 됐다는 뜻이었다.
삼형은은 모습을 감춘 채 세 개의 거점을 수시로 이동하며 주시점을 바꾸기에 지금 현재로는 등정무도 자신의 수하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 되겠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숨어 있는 자를 사로잡을 자신은 있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아직까지도 실체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지킴이들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는 이상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등정무로서도 좋았다.
전방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며 일단 한 점에 집중했다. 부단주인 조인호가 있는 자리로 삼형은의 중심이 되는 곳을 기점으로 시야를 확장시켰다.
은신법을 펼쳤기에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등정무 자신도 삼형은을 익혔기에 지금 어떤 상태로 숨어 있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후후후, 어디 있느냐? 슬슬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느냐? 슬슬 압력이 가해질 테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천랑단원 각자가 삼형은을 시전했다. 개인이 행하는 은신법이지만 또 다른 효과가 있다.
삼형은을 펼친 자가 세 사람이 넘을 경우 진법의 영향으로 영역 안에서는 살기가 넘실거리게 된다.
심장을 후벼 팔 정도의 강렬한 살기가 천랑단원들의 위치를 흐리게 만들고 적에게는 공포와 함께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그물망 안에 들어온 자는 종적조차 알 수 없는 살기의 공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압박하는 불안감과 초조감에 절대 오래 머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표적이 된 자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순간 천랑단도 움직임을 개시한다. 걸려드는 것과 동시에 곧바로 죽음을 선사할 수 있기에 등정무는 차훈이 강력한 압박을 못 이기고 뛰쳐나올 때를 대비하며 침착하게 기다렸다.
차훈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등정무가 이상을 알아차린 것은 삼형은이 펼쳐진 뒤 10여 분이 지난 후였다.
‘으음, 대단한 놈이로군. 아직까지도 견뎌 내다니. 더 기다려야 하는 건가? 어디…….’
상당한 시간을 버티고 있는 차훈이 대단하다 느끼며 등정무는 삼형은을 살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등정무는 진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넘실거리던 살기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곡에는 소리 없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스으으으으!
살기 대신 죽음의 기운이 계곡 안을 뒤덮고 있었다. 삼형은을 따라 계곡에 퍼지는 죽음의 기운에 부지런히 움직이던 야행성 동물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뭐, 뭐지?’
주변을 잠깐 살피다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서늘한 느낌에 지금까지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던 부단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럴 수가!’
삼형은이 풀려 있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부단주의 모습이 지금은 시야에 들어왔다. 목이 완전히 뒤틀려 뒤로 돌아가고, 혀를 빼물고 있는 흉측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능력이었다.
삼형은 안에 갇혀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자신이 시선을 돌리는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 부단주에게 소리 없이 참혹한 죽음을 선사했다. 부단주가 반항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은밀히 접근한 후 제거한 것이 분명했다.
‘정말 무서운 놈이다.’
자신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부단주를 소리 없이 제거한 차훈의 능력에 등정무는 소름이 끼치는 불안감을 느꼈다.
‘으음, 이건!’
심혼을 짓누르는 정적과 불안감에 당황하던 등정무는 피비린내가 자신의 코끝을 스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전부 당한 건가?’
부단주에 이어 수하들의 모습이 시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유지되던 삼형은이 완전히 풀려 버린 것이다.
엎드려 있었던 자세로 얼굴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패대기쳐진 수하들의 주검은 모두가 한 사람의 소행이 분명했다.
‘노, 놈은 삼형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이상을 느꼈을 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세 명이 한꺼번에 제거된 것이 틀림없었다.
삼형은의 진형과 살기를 유지시키기 위해 끝까지 남겨 두고 있으면서 수하들을 제거한 후 마지막에 단번에 손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수하들은 이미 예전부터 제거되고 있었지만 자신이 하나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과 적이 자신의 가장 큰 패였던 삼형은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에 등정무는 오한이 들었다.
부단주가 죽어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살의가 느껴졌다. 지킴이는 죽은 부단주의 시신에 보란 듯이 자신의 뜻을 담았다. 살의에 가득 찬 자신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저, 저건 단순한 경고 같은 것이 아니다. 죽음을 확정했다는 표시다.’
건드렸으니 죽인다. 결코 용서란 없다.
자신에게 죽음을 선사하겠다는 경고였다.
맹수가 영역을 침범한 적들을 응징함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듯 피의 흔적을 자신에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우욱!’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살인에 미친놈이다.’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는 모두 헛것이었다. 지킴이가 자연을 벗 삼아 심신을 단련하고 보다 높은 무도를 추구한다는 말은 말짱 개소리였다.
삼형은 안에 갇혀 있던 적은 마인조차 꺼려 하는 방법으로 살인을 했다. 지금까지 파악한 지킴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자였다.
“누, 누구 없나?”
등정무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하들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중 일부를 사용해 수하들을 불렀다.
약속된 전음 대신 텔레파시를 사용한 것은 혹시라도 적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
혹시나 살아남은 자가 있을지도 몰라서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하나도 없다. 한 명이라도 보고를 해 올 만도 하건만 대답이 전무했다.
예상대로였다. 주변은 아무런 소음 없이 오로지 막막한 정적뿐, 남아 있는 수하들의 생사 여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크으… 모두 죽었군.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어.’
대답이 없는 것을 보면 전부 죽음을 당했다고 봐야 했다. 삼형은을 펼친 수하들은 물론, 가장 외곽에서 전황을 살피던 저격조도 모두 죽은 것이 확실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형을 숨기고 자신을 보호하던 호위조도 모두 당했다. 10여 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수하들이 전멸을 당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무리 전면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숨어 있던 수하들이 당했다.
극한의 수련을 거치고 특별히 마련된 시험을 통과해 본 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수하들이다. 지킴이들과의 전면전을 위해 길러진 존재들이 소리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모두 잠식되어 버렸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나, 나 혼자밖에 남지 않은 건가?’
혼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공포라는 감정이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느끼는 등정무였다.
한순간에 입이 바짝 말랐다.
한두 명도 아니고 자신을 제외 천랑단 전원을 참혹하게 몰살시켰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역시,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었어…….’
맹에서는 될 수 있으면 지리산 인근으로의 접근을 금지했다. 어쩌면 이런 자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던 것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경악에 가까울 정도로 지킴이는 공포스러운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왜,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거지? 이 정도라면 맹에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런 존재가 아직까지 맹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의문이었다. 세계를 한눈에 바라본다는 맹의 눈이 놓칠 리가 없었다.
‘혹시, 내가 지킴이를 시험하기 위한 미끼였던 건가?’
지리산으로 오면서 지킴이라는 목표물을 지정해 주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지시를 해 주지 않았었다.
그저 목표물이 있는 위치와 될 수 있으면 탈취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까지 간과했지만 맹의 행보를 볼 때 너무 간단한 명령이었다.
자신과 천랑단을 통해 지리산을 근간으로 하는 지킴이들을 확인하고자 하는 뜻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맹에서도 이 정도까지 피해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를 예상했다면 절대 우리들만 이곳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할 때 경험을 쌓게 할 망정 절대로 죽을 자리로 보낼 수가 없는 것이 맹의 입장이고 보면 이건 예상 밖의 사고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별도의 지원은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나만 남은 거구나. 제기랄!’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맹에서의 지원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수호위들이 죽은 것을 보면 자신의 위치는 이미 노출이 됐을 것이 분명했다. 혼자라는 고립감과 함께 적에게 모든 것을 드러냈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등정무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이, 이대로 있다간 놈에게 죽는다. 나 혼자서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놈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놈이 손을 쓰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자리를 이탈해야 한다. 놈은 이미 내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기다리는지는 모르지만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극도의 위기의식을 느낀 등정무는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노출된 이상 벗어나는 것이 무산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최대한 기척을 감춘 채 숨어 있는 곳에서 슬며시 몸을 빼냈다. 자신을 능가하는 은신법을 지닌 자이기에 지면에 최대한 몸을 밀착하고는 한번에 반 걸음씩 지렁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이동을 했다.
‘젠장! 이런 꼴로 도주를 해야 하다니, 놈이 몸을 숨기기 전에 곧바로 공격을 했어야 했는데.’
선제공격만 했어도 이렇게 참담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었다.
‘모두가 내가 어리석은 탓이다.’
물건의 행방을 잃어버린 탓에 기운을 잃은 수하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