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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무림맹의 정문에서부터 진화로를 따라 수많은 청년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청년들은 대부분이 검, 도, 곤과 같은 무기들을 각자 휴대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 표정엔 긴장하고 있는 빛이 역력했다. 이렇게 수많은 청년들이 무림맹으로 몰려온 것은 이번에 있는 무림맹의 신입 위사와 무사 시험에 지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청룡무사가 되려는 꿈을 안고 정주를 떠나온 장거운도 그 무리들 속에 섞여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접수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이동을 하자 장거운도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줄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장거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앞쪽에서 소요가 일며 대열이 흐트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동의 원인은 한 명의 백의를 입은 아리따운 소저였다. 눈부신 미모를 지닌 백의 소저가 갑작스럽게 출현하자 지원자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몰려가는 바람에 대열이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소동을 일으킨 백의 소저는 바로 맹주인 화중혁과 담소를 나누던 매화옥녀 냉가혜였다. 그녀는 몇몇 대문파의 제자들과 함께 무사 시험을 지원하기 위해 무림맹의 정문에 마련된 접수대에 찾아온 것이다.
어느새 장거운도 그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장거운이 보기에도 냉가혜는 조금은 도도하고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명화루에서 수많은 기녀를 보았던 그로서도 처음 볼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그녀가 접수를 마치고 다시 무림맹 안으로 사라지자 지원자들은 각기 흩어져서 접수대로 향했다. 장거운도 다시 두리번거리며 무림맹 정문 앞에 마련된 다섯 개의 접수대들 가운데 무사 시험 접수대를 찾아보았다.
장거운은 어느 곳에서 무사 시험을 접수하는지 알 수가 없자 결국 조금 전 냉가혜 등이 다녀간 접수대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래도 그녀의 모습을 봐서는 무사를 지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원자들의 접수를 받느라 정신이 없는 다른 곳들과는 달리 장거운이 찾아간 접수대는 한산했다. 그곳이 바로 무사 시험을 접수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사 시험 접수대를 맡은 사람은 외당 위사인 곽호였다. 고참 위사인 곽호는 오 년째 거의 지원자가 몰리지 않는 무사 시험 접수만 맡고 있었다.
곽호는 정신없이 냉가혜 등의 접수를 받고 나자 다시 아무도 찾지 않는 접수대에서 무료하게 귀를 후비고 있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거운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하나 오는군. 근데 뭘 그리 두리번거려? 저거 위사 지원하는 놈이 엉뚱하게 이리로 오는 거 아냐?’
모든 무사 지원자들이 구대문파나 세가의 제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은 대부분 접수대로 올 때 당당하다 못해 거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오는 청년은 행색도 초라할뿐더러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는 것이 촌놈 티가 팍팍 나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다가오자 곽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오셨는가?”
“예,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남에서 온 장거운이라고 합니다.”
“장거운이라…… 그래, 반갑네. 근데 누구?”
곽호는 다른 지원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장거운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저…… 무사 시험에 지원하려고요.”
“오! 그러신가? 그럼 진작 그렇게 말을 하지 그랬나? 난 또 내가 아는 사람인가 했네.”
“예? 아, 예. 이제부터 알면 되지요. 헤.”
장거운이 머쓱한 표정으로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곽호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장거운에게 접수부 책자를 내밀었다.
“뭐 사해는 동도라 하였으니 친하게 지내세. 자, 여기에 출신 문파와 이름을 적으시게. 그리고 맨 아래에는 지원하는 당을 적고 말이야.”
“아, 예. 알겠습니다.”
장거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접수부를 받아 펼치고는 붓을 잡아 갔다.
붓을 든 장거운은 자신의 이름을 적을 공간 옆에 깔끔한 필체로 적혀 있는 앞에 접수한 사람의 이름을 쳐다보았다. 장거운의 바로 앞에 접수한 사람은 냉가혜였다.
華山派, 冷嘉慧, 靑龍堂.
‘화산파였구나. 냉가혜? 근데 이름이 인상처럼 조금 쌀쌀맞네. 어! 청룡당이네.’
장거운은 접수부에 적힌 냉가혜의 이름을 보고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샐쭉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자신의 자리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操林寺, 長鉅運, 靑龍堂.
‘소림사? 소(少) 자는 아닌데…….’
장거운이 건네준 접수부를 쳐다보던 곽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글자가 무슨 자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곽호가 손가락으로 첫 글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무슨 자인가?”
“그거 조 자인데요.”
“조림사? 사문이 소림사 속가인가 보군.”
“예? 아 예, 뭐 그런 셈이네요.”
곽호의 말에 장거운이 얼버무리듯이 대답을 했다.
할아버지가 소림사의 제자라고 했으니 곽호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장거운이 얼버무리듯이 말을 한 것은 자신이 할아버지의 법명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그저 할아버지라고만 불렀고 무당파의 제자라던 말코 할아버지도 늘 땡초라고만 불렀지 한 번도 할아버지의 법명을 부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두 분도 치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장거운에게 자신들의 법명이나 도명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그래도 장거운은 갑자기 자신을 길러 준 두 분 할아버지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나중에 시간이 나면 소림사로 가서 꼭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는 자신과 같이 정주를 떠나 소림사로 향했다.
곽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건넸다.
“어쨌든 선택은 잘했구먼, 청룡당이라면 달랑 두 명밖에 지원자가 없으니 삼관만 무사히 통과하면 될 수도 있겠네그려.”
“삼관이라면?”
“무사 시험을 본다면서 삼관이 뭔지 모르는가?”
장거운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곽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을 했다.
무사 시험을 지원한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삼관에 대해 장거운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곽호가 보기에 장거운은 촌놈 티가 나는 행색만큼이나 무림에 처음 출도한 완전 초짜인 모양이었다.
“예, 그게 제가 잘 몰라서요.”
장거운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사실 장거운은 막연히 청룡무사가 되겠다고 찾아온 터라 무림맹이나 무사 시험 등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했다. 입맹 시험이 언제 있는지조차 모르고 왔다가 때마침 공고가 나자 지원을 한 것이었다.
곽호가 다소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자네의 말대로 이제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으니 내가 특별히 설명을 해 주지.”
“감사합니다.”
장거운이 반색을 하며 고개를 조아리자 곽호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삼관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무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니 감사할 것까지는 아니고. 무사 시험은 자격시험과 면접시험으로 나뉘는데 삼관은 곧 자격시험을 말하는 것이지. 삼관은 경공관, 암기관, 목인관으로 나뉘는데 일관인 경공관을 통과해야 그다음 암기관에 들 수 있네. 물론 암기관을 통과해야만 목인관에 들어갈 수가 있지.”
“그게…… 어렵나요?”
설명이 끝나자 장거운의 표정에 불안감이 살짝 어렸다.
장거운은 이제까지 연로한 두 분 할아버지들하고만 손을 섞어 봤기 때문에 자신의 무공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무사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무공 실력이 되는지 불안한 것이다.
곽호는 장거운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글쎄……. 대부분의 무사 지원자들은 삼관 통과가 목적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목인관을 얼마나 빨리 통과할 것이냐에 관심을 두는 것 같더군.”
“그럼 별로 어렵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곽호의 대답에 장거운은 다소 표정이 밝아졌다. 다른 지원자들이 통과 여부보다는 기록에 관심을 둔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감히 엄두도 못 내지만, 대문파의 제자들이야 쉽게 느낄 수도 있지 않겠나?”
“쩝,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네요.”
장거운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곽호가 좀 더 상세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그러니까, 가령 경공관의 경우에는 너비가 오 장이 되는 연못을 경공으로 건너야 한다고 하더군.”
“오 장이면……?”
“음, 여기서 저기 저 정문까지 정도 되겠군.”
“여기서 저기까지요?”
곽호가 손짓에 장거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생각보다 오 장의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게다가 장거운은 자신이 딱히 경공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배운 기억이 없었다. 정주에 갔다 오거나 산을 다닐 때 그저 용형보를 펼치면서 빨리 뛰어다녔을 뿐 넓은 거리를 날아서 건너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곽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말을 했다.
“그렇지, 나도 한 삼 장은 갈 것 같은데 오 장은 좀 어렵더군.”
“그러니까 여기서 저기까지 허공을 날아서 가야 한다고요?”
“뭐, 꼭 날지는 않아도 되네. 어쨌든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너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야. 등평도수처럼 물 위를 걸어가도 되고, 아니면 일위도강의 신법으로 건너도 된다는 말이지. 소림 문하이니까 일위도강은 잘 알겠네? 그 옛날 달마조사께서 갈댓잎 하나로 장강을 건넜다는 그 신법 말일세.”
“잘 모르는데요?”
“그, 그런가? 뭐 어쨌든, 빠지지 않고 연못을 건너기만 하면 되네.”
장거운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곽호는 다소 어이없는 기색으로 대충 대답을 했다.
곽호는 장거운이 오 장의 거리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보인 데다 무사를 지원하는 소림사의 속가제자가 일위도강의 신법을 모른다고 하니 장거운의 무공 실력도 그의 행색만큼이나 초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거운이 재차 확인하듯이 물었다.
“빠지지 않고 건너기만 하면 된단 말이죠?”
“흠흠,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자네 접수 번호는 삼십삼 번이니 그리 알고 가게. 시험은 사흘 후 진시부터 있을 예정이니 너무 늦지 않도록 하고.”
“예,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나는 위사인 곽호라고 하네. 혹시라도 담에 보게 되면 아는 체를 하게. 나도 자네가 마음에 드는군.”
곽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장거운을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다른 무사 지원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데다 장거운의 어려 보이는 얼굴과 순박한 인상이 마음에 들었던 곽호는 장거운이 실망을 하고 돌아갈 모습을 떠올리자 안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장거운이 밝게 웃음을 보여 주고는 돌아가는 모습을 쳐다보던 곽호가 다시 장거운을 불러 세웠다.
“이보게! 어디 묵을 데는 정했나?”
“아뇨, 이제부터 찾아봐야지요!”
“그러지 말고, 어차피 지금은 사람들이 몰려서 방을 구하기 힘들 것이니 나중에 신시경에 이리로 오게! 나와 같이 가세. 내가 돈도 별로 안 드는 괜찮은 곳을 소개해 주겠네.”
“예? 감사합니다. 곽 위사님!”
“뭘, 우리는 이제 잘 아는 사이지 않은가?”
“그렇죠? 헤헤!”
장거운은 환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운두령의 정상을 향해 난 소로를 따라 달려가고 있던 적의를 입은 세 명의 사내들 중 뚱뚱한 체격을 가진 사내가 거칠게 숨을 쉬며 말을 뱉었다.
“헉헉헉! 형님, 좀 쉬었다 갑시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뒈지고 싶어?”
앞장서서 달려가던 키가 큰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일갈을 내질렀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는 그의 표정에는 초초함이 어려 있었다.
뚱뚱한 사내는 더 이상은 도저히 못 가겠다는 표정으로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볼멘소리를 해 댔다.
“젠장! 놈들한테 잡히기 전에 숨이 차서 먼저 뒈지겠소.”
“아, 시파! 그러니까 내가 항주 근처에서는 사고 치지 말자고 그랬잖아! 작은형 때문에 이게 뭐야! 시바…….”
맨 뒤에서 따라가던 뱀눈을 가진 사내가 원망 어린 시선으로 뚱뚱한 사내를 쳐다보며 말을 뱉었다.
“니미럴, 이 새끼가? 한 번이라도 더 해 보겠다고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지랄이야!”
“그만해! 저기 운두령만 넘으면 해염현(海鹽縣)이 코앞이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과 합친다면 놈들도 어쩌지 못할 것이니 어서 가자!”
키가 큰 사내가 티격태격하는 두 사내를 만류하고는 뚱뚱한 사내에게 달래듯이 말을 건넸다.
그러나 뚱뚱한 사내는 운두령의 정상을 힐긋 쳐다보고는 도저히 못 가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시발! 그냥 한판 뜹시다. 천하의 적해삼살이 청룡무사 새끼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도망간다는 게 말이 돼요?”
“말이 되지!”
뚱뚱한 사내, 즉 적해삼살의 둘째인 막구창은 나직하게 귀속을 파고드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숲 쪽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명의 흑의인이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흑의인의 가슴에 새겨진 한 마리의 청룡이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리며 막구창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헉! 니미…….”
숲 쪽에서 나타난 자가 청룡무사임을 알고는 막구창은 헛바람을 삼키며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느새 일 장 앞에까지 다가온 청룡무사는 냉소를 흘리며 적해삼살 형제들에게 말을 건넸다.
“겨우 여기까지밖에 못 온 것인가?”
차앙!
“시발! 개소리 말고 덤벼, 새꺄!”
막구창이 도를 뽑아 들며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호기롭게 도를 뽑아 든 그의 행동과는 달리 막구창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상대가 한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번 해 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한 명이 무림맹 최고의 정예 무사라는 청룡무사이기에 불안한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막구창의 기대를 여지없이 박살 내 버렸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사신을 몰라보고 설쳐 대는군. 그렇지 않은가, 섬창?”
또 한 명의 청룡무사가 다섯 명의 흑의인들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흑의인들의 가슴에는 청룡 대신 흰색 수실로 ‘무(武)’ 자가 새겨져 있었다. 청룡당의 보위사들이었다.
“섬창…… 냉면섬창 악우진!”
적해삼살의 맏이인 막구홍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막우홍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처음에 나타난 청룡무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막우홍은 그의 손에 단창이 들려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다부진 턱과 차가운 눈매를 가진 사내는 산동악가의 소가주인 냉면섬창 악우진이었다.
새로이 나타난 청룡무사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악우진에게 말을 건넸다.
“호! 이 버러지 같은 놈들도 자네의 명성을 알고 있군.”
“네놈들 따위가 부르라고 있는 명호가 아니다. 적해삼살! 네놈들을 부녀자 간살 혐의로 처단한다. 돼지 같은 놈, 네놈부터 주둥이를 꿰어 주지.”
악우진이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냉랭하게 말을 뱉고는 단창을 들어 막구창의 얼굴을 가리켰다.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고 있던 막구창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뱉었다.
“니미, 섬창이고…… 컥!”
거칠게 말을 뱉던 막구창의 입에 악우진의 단창이 뇌전처럼 박혀 들었다. 튀어나온 앞니를 모조리 박살 내며 파고든 단창은 맹렬히 회전하며 막구창의 입속을 휘저어 버렸다.
“작은형! 이, 이 개새끼야!”
적해삼살의 막내인 막구삼이 울부짖음과 함께 미친 듯이 악우진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새로이 나타난 청룡무사가 맏이인 막구홍에게 말을 걸며 검을 뽑아 들었다.
“거기 네놈은 나와 같이 놀아 볼까?”
차앙!
‘흑검! 제기랄! 냉면섬창에 이어 광풍흑검까지…….’
막구홍은 청룡무사가 뽑아 든 검은 빛깔의 검을 보고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넙데데한 얼굴에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는 상대는 광풍흑검 모용현이었다. 청룡당의 무사들 가운데 가장 손속이 잔혹하기로 유명한 자였던 것이다.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던 막구홍은 한 발 물러서며 말을 뱉었다.
“나, 나는 항복하겠소.”
“저런! 천하에 흉명이 자자한 적해삼살의 큰 버러지가 너무 쉽게 항복하는군. 근데 어쩌나? 난 전혀 항복을 받아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걸.”
모용현이 경멸에 찬 시선으로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뱉었다.
“무, 무슨 소리요?”
막구홍이 놀란 표정으로 다시 한 발 물러서며 말을 더듬었다.
모용현이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말을 뱉었다.
“어차피 맹으로 끌려가도 참형이니 귀찮게 굴지 말고 그냥 나한테 죽어 주게.”
“이, 이…… 죽엇!”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던 막구홍이 벼락같이 검을 찔렀다. 그러나 모용현은 막구홍의 기습에도 별반 놀라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막구홍의 검을 슬쩍 밀어냄과 동시에 검을 되돌려 막구홍의 목을 베어 갔다.
막구홍이 다급하게 철판교의 신법으로 허리를 뒤로 젖혀 모용현의 검을 피하려고 했다. 그 순간 모용현의 검이 직각으로 꺾이면서 막구홍의 배를 위에서 아래로 갈라 버렸다. 마치 막구홍의 행동을 모두 예측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절묘한 검의 운용이었다.
“크으…….”
막구홍이 무릎을 꿇은 채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자신의 창자들을 쑤셔 넣으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런, 실수로 배를 가르고 말았군. 그러게 왜 드러눕고 그러나? 어쨌든 내가 필요한 것은 자네의 목이니 가져가겠네.”
모용현이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는 돌아서자 막구홍의 목이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모용현이 막구홍을 베어 버릴 때 악우진도 이미 적해삼살의 막내인 막구삼을 해치우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모용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해적 집단인 적해방의 조장급인 적해삼살 따위는 어차피 그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모용현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보위사들을 향해 냉랭하게 말을 뱉었다.
“정리하라!”
모용현의 지시가 떨어지자 보위사들은 적해삼살의 목을 수거하며 시체들을 구덩이에 묻기 시작했다. 보위사들이 적해삼살의 목을 수거한 것은 효시(梟示)를 하기 위해서였다.
청룡당의 진무사로서 일대주를 맡고 있는 모용현은 자신이 처리한 중죄인의 목을 효시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같은 진무사로서 부대주를 맡고 있는 악우진은 모용현과는 달리 효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막구창의 안면을 박살 내어 버린 것도 그러한 성향 때문이었다. 아마도 모용현이었다면 막구창의 얼굴은 베지 않았을 것이다.
중죄인의 목을 효시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기도 했고, 흉악범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지만, 악우진은 모용현이 효시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많이 있었지만 말이다.
“대주님! 대주님!”
보위사들이 적해삼살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광풍흑검 모용현과 냉면섬창 악우진은 호들갑스럽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황급히 달려오고 있는 자는 다섯 명의 보위사들을 데리고 후방에 매복을 하고 있던 청룡일대의 선무사인 천운검 천방추였다.
모용현이 냉랭하게 말을 뱉었다.
“무슨 일이냐?”
“옛! 맹에서 전언이 왔습니다.”
“전언이라니?”
모용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천방추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당주님이 사임을 하셨다고 합니다.”
“흐음, 사임을 한 이유가 뭐라고 하더냐?”
“예? 그야 저도 모르죠.”
모용현이 낯빛을 바꾸며 재차 묻자 천방추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결국 사임을 하고 말았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악우진이 무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역시 그렇게 되었군. 아무래도 관 당주가 하가장과의 관계에서 선을 넘은 게 들통이 난 모양이야.”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검군과는 둘도 없는 견원지간이었지 않습니까? 그래도 예상보다는 오래 버텼지요.”
“하긴 그도 그렇군.”
“그나저나 빨리 복귀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 서두르도록 하지.”
악우진의 말에 모용현은 약간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