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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제7장 청룡고(靑龍鼓)
크르릉!
작은 사자 새끼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자가 아니었다. 얼핏 보면 사자 머리와 똑 닮은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몸집도 작았고 특히 털 속에 파묻혀 앞을 볼 수나 있을지 의문이 가는 작은 눈이 사자의 위엄 있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놈은 순찰당주가 애지중지하는 황칠이라는 개였다.
사람들은 개고기를 좋아하는 순찰당주 만리신풍 노웅이 내년 복날에 잡아먹으려고 데려다 키우고 있다고들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노웅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애견이었다. 그런데 개도 주인을 닮는다고 하더니 황칠의 성질 역시 노웅 못지않게 사나웠다.
걸핏하면 밥을 주러 온 순찰당의 위사들을 물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황칠에게 물린 위사들은 노웅이 두려워 욕만 해 댈 뿐 감히 손댈 생각도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제 주인을 믿고 천하에 겁날 게 없는 황칠이었다.
그런 황칠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며 으르렁거리는 존재가 지금 나타난 존재였다. 황칠이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의 손이 까딱거리기만 하면 온몸이 마비가 되어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타나 바보같이 실실거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리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가느다란 침 하나가 박혀 들어 황칠은 졸지에 똥개가 되어 침을 질질 흘리며 멍청하게 서 있어야 했다.
물론 명색이 족보 있는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은 황칠이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말 그대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날아오는 침을 피해 보았지만 침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박혀 들곤 했다.
한 번은 그가 침을 뽑기 위해 다가왔을 때 갑작스럽게 그의 손목을 물어 버렸다. 그날 황칠은 이빨이 모두 아작 나는 줄 알았다. 그의 살갗이 얼마나 질긴지 날카로운 자신의 이빨이 아예 들어가지를 않았다. 만약에 그가 그 커다란 주먹으로 턱을 쥐어박았을 때, 재빠르게 물었던 손을 놓고 머리를 틀지 않았다면 황칠은 그날 이빨이 모조리 털리고 말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가 침을 던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실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황칠은 기회를 봤다. 그가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면 한 번에 도약하여 그의 목줄을 물어뜯어 버릴 수가 있었다. 드디어 두려움에서 벗어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크왕!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황칠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황칠이 노린 회심의 한 수가 성공하여 그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그의 신형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황칠은 어느새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순간적으로 침을 무려 네 군데나 박아 버렸다.
“음, 아직 다섯 개는 힘드네.”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엇! 청룡고!”
나직한 외침과 함께 그가 북소리가 난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장거운이었다. 황칠을 데리고 점혈법을 연습하던 그는 자신이 오늘 청룡고의 당직임을 깨닫고 급히 달려가는 길이었다. 덕분에 황칠은 저녁에 개가 이상하다는 위사의 보고를 받고 주인인 노웅이 달려올 때까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어야 했다.
청룡고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온 장거운은 청룡고 앞에서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울고 있는 두 명의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는 청룡당의 보위사인 여한수를 볼 수 있었다. 두 아이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들이었다.
여한수가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아, 글쎄 안 된다니까!”
“무슨 일입니까?”
“아, 예. 장 무사님, 그게 이 아이들의 어미가 자결을 했는데…….”
“아니에요! 우리 엄니는 자결한 게 아니라니까요!”
여한수가 말하는 도중에 아이들 중 형으로 보이는 아이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고함을 쳤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여한수를 노려보는 아이의 눈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여한수가 아이를 막아서며 말을 뱉었다.
“어허, 이 녀석이!”
장거운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한번 이야기해 보죠.”
“아니, 장 무사님, 그게…….”
장거운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름이 뭐지?”
“공우요. 얘는 공호고요.”
“그래, 공우하고 공호구나. 공우야, 모친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말해 줄 수 있겠니?”
“그게…….”
공우는 제 어미의 죽은 모습을 떠올렸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리다고는 하나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니만큼 제 입으로 그 상황을 담기가 너무 힘든 것이다.
공우가 망설이자 동생인 공호가 대신 말을 했다.
“엄니는 대들보에 매달려 죽었어요.”
“그러니 자결이 아니냐.”
여한수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아니에요. 제가 봤어요. 나쁜 놈이 하늘을 훨훨 날아서 도망갔단 말이에요.”
공우가 다시 여한수를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훨훨 날아서?”
“예, 엄니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제가 문을 여니까 갑자기 시커먼 놈이 튀어나와서는 담장을 휙 하고 올라타더니 허공을 날아서 도망갔어요.”
장거운의 물음에 공우는 손짓까지 해 가며 말을 하고 있었다. 장거운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만약 공우의 말대로라면 흉수는 경공을 쓰는 무림인이었다. 청룡고를 울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무엇보다도 공우의 말을 듣는 순간 장거운은 수배 중인 오죽색마를 떠올렸다. 지난번 장씨의 처와 같이 오죽색마가 아이들의 어미를 간살한 뒤 자결한 것으로 위장했을 수도 있었다.
장거운이 여한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아이들이 소견서를 가지고 왔습니까?”
“아이고, 아닙니다. 관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써 줄 리가 있겠습니까?”
여한수는 급히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장거운으로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한수의 말마따나 고압적인 관원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소견서를 써 줄 리는 만무한 것이다. 장거운로서는 아이들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소견서를 참조해야 했다. 소견서를 보지 않고 청원인의 말만 듣고서 청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절차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와 같은 절차는 무분별한 청원을 막기 위해서 만든 부득이한 조치였다. 그렇지 않다면 무림맹 앞에는 청룡고를 울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곳이 인간 세상이었다.
소견서에는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확인과 함께 검안에 관한 사항이나 특이 사항들이 기록되었는데, 관에서는 청원인이 원할 경우 관원의 판단을 배제하고 소견서를 써 주어야 했다. 그것은 관원들이 토호나 상단과 결탁하여 범죄를 은폐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하지만 두 아이는 청원인으로 인정받기에 너무 나이가 어렸다.
잠시 생각을 하던 장거운이 다시 물었다.
“음, 공우야, 혹시 그 나쁜 놈 얼굴은 못 봤니?”
“봤어요! 제가 문을 열었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눈 밑에 사마귀가 있었어요.”
공우는 확신한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거운은 공우의 말을 들으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죽색마의 용모파기에는 눈 밑의 사마귀가 있다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죽색마가 범인일 것이라는 그의 직감이 빗나간 것이다.
사실 흉수가 오죽색마일 거라 단정하고 있던 장거운은 소견서를 검토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사에 착수할 방법을 생각했다. 공우가 말한 흉수의 용모가 오죽색마와 비슷하다면, 오죽색마는 특급 수배자였기 때문에 비슷한 인상을 가진 자를 봤다는 말만으로도 조사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한수까지 공우의 말을 들었으니 오죽색마를 거론하여 조사를 하기는 어려워졌다. 장거운은 공우의 눈을 보고 아이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용모 따위는 변장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장거운이 여한수를 보며 말을 건넸다.
“음, 일단 청원을 접수하죠.”
“아이고, 장 무사님! 소견서도 없이 안 됩니다.”
“소견서 문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순서가 바뀌기는 해도 제가 관에 가서 소견서를 받아 와서 첨부하면 될 것 아닙니까?”
장거운의 눈빛을 보면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여한수가 난색을 표하며 말을 이었다.
“소견서가 문제가 아니고, 아이들이 어제도 왔었습니다.”
“어제요? 어제 당직이 누구였습니까?”
“악 대주님입니다.”
어제 청룡고를 맡은 사람이 악우진이었다는 말에 장거운이 굳어진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악 대주님이 부패를 내렸습니까?”
“부패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청원을 받아들일 사안이 아니라고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부패가 결정된 사안은 아니니 제가 다시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야 그렇습니다만…….”
얼버무리는 여한수의 말을 무시하고 장거운이 다시 말을 건넸다.
“공우야, 너희 집은 어디냐?”
“북우촌이에요.”
“그렇구나. 이 형이 정식으로 청원을 받아들여 너희 모친의 억울한 죽음을 조사해 보마.”
장거운은 공우와 공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그때 뒤에서 호통이 들려왔다.
“뭐하는 짓이냐?”
악우진이 성난 얼굴로 장거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냉가혜의 놀란 얼굴도 보였다. 아마도 악우진은 이쪽으로 오다가 장거운의 말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장거운이 악우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비록 아이들의 말이라고는 하나 조사를 해 볼 만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말만 듣고 네 마음대로 가패를 결정하겠단 말이냐?”
“가패와 부패의 결정은 청룡고의 당직자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거운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러한 장거운의 모습에 냉가혜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평소에 장거운이 보여 주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가끔 놀라게 하는 행동을 많이 하지만 이제껏 윗사람에게는 항상 깍듯한 장거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주인 악우진에게 정면으로 반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기는 악우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장거운이 예상보다 무공이 높아 그 역시 장거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지만, 바보같이 실실거리는 얼굴 속에 이런 모습을 감추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악우진은 이내 가소롭다는 듯이 조소를 띠며 말을 뱉었다.
“오늘 처음 청룡고의 당직을 맡은 주제에 감히 절차까지 무시하고 네 마음대로 가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냐?”
“청원 절차에 소견서를 첨부하도록 한 절차는 무분별한 청원을 막자는 취지로 알고 있습니다.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절차나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장거운이 굽히지 않고 따지듯이 묻자 악우진의 놀라움이 분노로 바뀌어 표출되기 시작했다.
“감히 네놈 따위가 무시할 절차가 아니다!”
“절차를 무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취지에 따르자는 것입니다. 청원을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오.”
냉가혜의 전음이 장거운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멍충이! 너 미쳤냐?”
악우진의 호통이나 냉가혜의 전음에도 장거운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의 결심은 이미 확고해진 것 같았다.
“닥쳐라! 네놈처럼 어쭙잖게 동정심을 내세우는 놈들이 청룡당을 망쳐 놓는 것이다. 여 위사! 아이들을 빨리 돌려보내지 않고 뭐하는가!”
악우진의 호통에 여한수는 황급히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장거운이 격앙된 감정을 애써 누그러뜨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동정심이 아니라 의혹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악우진은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말을 뱉고 있었다.
“감히 네놈의 판단이 나의 판단보다 옳다는 것이냐?”
“대주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저의 판단을 믿어 달라는 것입니다.”
“네놈이 알량한 살수 따위 하나 잡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악우진의 어투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장거운의 대답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장거운은 좋게 돌려서 말을 하고 있지만 악우진이 듣기에는 결국 그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 따지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냉가혜의 전음이 들려왔다.
“멍충아! 뭐해? 빨리 사과드려!”
장거운이 냉가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짓을 하며 빨리 악우진에게 사과를 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사실 냉가혜는 지금 처음 보는 장거운의 모습이 놀랍기보다는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장거운이 아니었다. 어눌한 표정으로 실없이 헤헤거리고 다니던 장거운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또박또박 분명하게 반박을 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낯선 장거운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여! 왜들 모였나?”
냉랭한 장내의 분위기를 깨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람이 청룡당 일대주인 광풍흑검 모용현임을 알고는 모두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모용현은 분위기가 냉랭함을 느끼고는 눈에 이채를 띠며 다시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닙니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악우진이 나서서 말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런 악우진의 얼굴을 쳐다보는 모용현의 눈가에 점점 주름이 진하게 지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모용현은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용현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이리저리 돌려 보이면서 다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어, 몸이 하도 찌뿌드드해서 말이야. 좀 일찍 쉬려고. 흠, 자네가 이름이……?”
“예, 장거운입니다.”
모용현이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묻자 장거운은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아, 그래. 장거운이라고 했지. 순박하게 생겨서 어떻게 혈인마를 잡았나 했더니 보기보다 성깔이 있구먼.”
“아, 아닙니다.”
모용현이 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하자 장거운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모용현이 손사래를 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 아냐. 모름지기 사내라면 성깔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나, 섬창?”
“…….”
악우진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굳어졌던 그의 표정은 이미 많이 회복을 하고 있었다. 장거운의 행동에, 악우진은 자신이 그답지 않게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실 혈루각의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악우진은 묘하게 장거운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감정이 오늘 일로 인해서 겉으로 분출되고 만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사이좋게 지내라고. 청룡당 식구들이라고는 해 봤자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서로 싸우고 그러면 쓰나.”
야릇한 미소를 띠며 장거운과 악우진 등을 쳐다보던 모용현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건네고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용현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악우진이었다.
“장거운, 분명히 명심하라! 청룡당은 너 혼자 잘난 척하라고 있는 조직이 아니다. 네놈이 그까짓 일을 파헤치든지 말든지 네놈 마음대로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네놈이 그 일을 할 땐 청룡무복을 벗을 각오를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악우진은 장거운을 향해 냉랭한 어조로 말을 뱉고는 몸을 돌려 가 버렸다.
악우진이 가 버리자 남아 있던 냉가혜가 말을 건넸다.
“멍충이! 너 왜 그러는 거야?”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할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장거운이 눈빛을 빛내며 말을 하자 냉가혜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이미 악 대주가 개입할 수 없다고 한 일이잖아?”
“대주님이 뭔가 착각을 하셨을 거야. 가만, 지금 바쁜 일 없지?”
“그, 그야 그렇지.”
갑작스런 장거운의 물음에 냉가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장거운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패와 부패가 든 목패함을 냉가혜에게 건네주며 말을 뱉었다.
“그럼 나 대신 오늘 청룡고 당직 좀 맡아 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엉겁결에 당직자가 보관해야 하는 목패함을 받아 든 냉가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장거운은 이미 저만치 달려가며 외치고 있었다.
“나 잠깐 가 볼 데가 있어! 부탁해!”
“야! 어디 가?”
냉가혜가 장거운의 뒤통수를 향해 외쳐 보지만 장거운은 손만 한 번 들어 주고는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