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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9장 단교잔설(斷交殘雪)
오 년 만에 많은 눈이 내린 탓인지 초경이 한참 지나 밤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지만, 서호의 두 제방 중 하나인 백제의 첫 다리인 단교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서호십경의 하나인 단교의 잔설을 보기 위하여 모여든 것이다.
눈이 많이 오지 않는 항주인지라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단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다리의 가장자리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잔설들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
단교의 가운데에 서 있는 늘씬한 미녀 한 명이 아름다운 단교의 풍광에 취해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미녀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날아갈 듯한,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붉은 주작이 새겨진 백색 장삼에다 보드라운 털을 가진 여우 목도리를 감고 있었고. 새치름하니 가냘파 보이는 하얀 얼굴을 호피 모자가 덮고 있었다. 단교 위의 사내들은 눈부신 잔설보다도 그녀에게 더 힐끔힐끔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냉가혜였다. 그녀는 오 년 만에 많은 눈이 내리자 단교잔설을 보기 위해 장거운을 졸라 한껏 치장을 하고 이곳 서호를 찾은 것이다. 그녀의 초승달 같은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다리의 끝에서 차를 사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장거운과 사공한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그들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린 것은 그녀가 처음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 장거운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찮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사공한이 풍류를 모르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바락바락 우기지 않았다면 장거운은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쳇! 멍충이!”
“잠시 실례하겠소.”
샐쭉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던 냉가혜는 옆에서 들려오는 굵은 음성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말을 건넨 주인공은 훤칠한 체격에 부리부리한 눈과 짙은 검미를 지닌 잘생긴 미공자였다.
냉가혜가 특유의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혹시 소저의 방명이 백소정이 아니시오?”
미공자의 말에 냉가혜는 눈가에 살짝 이채를 띠고는 미공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곳 단교의 전설인 백사전(白蛇傳)의 주인공인 백소정에 빗대어 그녀가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냉가혜의 시선이 다시 장거운을 향했다. 장거운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냉가혜가 빠르게 시선을 돌리며 미공자에게 말을 건넸다.
“호호호! 그럼 당신은 이름이 허선인가 보죠?”
“하하하! 그럴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미공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냉가혜가 백사전에서 백소정이 사랑한 연인이었던 허선이냐고 자신에게 물었다는 것은 그가 마음에 든다는 말이었다.
“저놈 뭐냐?”
사공한이 냉가혜 옆에 낯선 사내가 한 명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그는 장거운과 함께 단교의 입구에서 파는 대나무 잔에 든 차를 사 들고 냉가혜가 있는 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옆에 있던 장거운이 무덤덤하게 말을 뱉었다.
“저 사람이 가혜에게 백소정이냐고 물으니 가혜가 다시 허선이냐고 묻는데.”
“뭐? 백소정? 허선? 뭔 백사전설 이야기하냐? 놀고들 있네. 헛! 근데 너 저기서 하는 말이 들리냐?”
같잖다는 투로 중얼거리던 사공한이 흠칫 놀라며 말을 뱉었다.
단교의 입구에 서 있는 자신들과 냉가혜까지의 거리는 못해도 족히 이십 장은 넘어 보였다. 고함을 치면 몰라도 그냥 주고받는 대화를 알아듣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자신의 귀에는 냉가혜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인파가 많은 날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장거운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네? 부대주님은 안 들려요?”
“당연히 안 들리지! 저기서 여기가 거리가 얼만데 말소리가 들린단 말이냐? 어쭈구리! 이 자식이 이제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도 할 줄 아네.”
“에이, 장난치지 마세요.”
장거운이 손사래를 치며 말을 뱉었다.
“뭐? 장난? 햐! 애가 어떻게 이렇게 변하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더니 그토록 순박하던 녀석이 어쩌다 이렇게 됐냐?”
장거운은 사공한이 짐짓 정색을 한 채 말을 해 대는 것을 보고는 약간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자신의 귀에는 냉가혜와 그 옆의 사내가 주고받는 대화가 똑똑히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공한이 장난을 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 진짜! 장난 그만하고 빨리 가요! 잘만 들리는구먼.”
장거운이 약간 짜증이 나는 투로 말을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백호당?”
냉가혜는 미공자가 슬쩍 내민 가슴에 무림맹의 백호당을 표시하는 백호문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보이며 물었다.
“하하! 그렇소이다. 무림맹 백호당에 몸담고 있는 허선이올시다.”
미공자는 낭랑하게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지랄! 그럼 난 청룡당의 백소정이냐? 뭐야, 근데. 백호당에 있으면서 날 몰라?’
속으로 같잖다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냉가혜는 장거운이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며 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간드러지게 교소를 흘리며 다시 미공자에게 말을 건넸다.
“호호호! 백호당의 무사님들은 전부 대문파의 제자들이라고 하시던데, 사문이 어디세요?”
“흠, 혹시 아실런지 모르겠소. 현재 무림맹을 맡고 계신 맹주님이 화산파지요.”
미공자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을 하자 냉가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상대는 마치 화산파 출신인 것처럼 교묘하게 말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어쭈, 이 자식 웃기네.’
냉가혜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머! 그럼 화산파 출신이세요?”
“하하, 맹주님이 제겐 사숙이 되시지요.”
낭랑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을 하는 미공자를 쳐다보는 냉가혜의 눈에 순간적으로 차가운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백호당의 무사들 가운데 맹주인 매화검군 화중혁을 사숙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의 사형인 청풍일검 영호군밖에 없었다. 상대는 사형을 사칭하고 있었다. 그것도 천하의 매화옥녀 냉가혜 앞에서 말이다.
“어쩜! 그러세요! 개자식아!”
냉가혜가 교태가 흐르는 웃음을 흘리며 말을 뱉음과 동시에 상대의 정강이를 노리고 냅다 발을 내질렀다.
사공한과 함께 냉가혜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던 장거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냉가혜와 그 옆에 사내의 대화가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뭔 소리야? 상대가 백호당인데 가혜가 화산파냐고 묻는 건 또 뭐지?’
화산파 출신인 그녀가 백호당의 무사에게 화산파냐고 물을 리는 없었다.
“헛!”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장거운이 놀라서 헛바람을 삼켰다. 웃고 있던 냉가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본 것이다. 갑작스럽게 점혈을 당한 얼굴이었다.
장거운이 갑자기 달려가자 사공한이 물었다.
“야! 왜 그래!”
“가혜가 당했어요!”
이미 저만치 사라지고 있는 장거운의 외침이 들려왔다.
사공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냉가혜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냉가혜는 사내에게 몸을 맡기고 거의 안기듯이 서 있었다. 사공한의 눈에도 긴장의 빛이 흘렀다.
사공한이 아는 한 냉가혜는 저렇게 행동할 여자가 아니었다. 뭔가 사단이 났음이 틀림없었다. 다급해진 사공한이 신형을 날리려다 갑자기 멍한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멈칫거렸다. 그의 눈에 이미 장거운이 사내에게 짓쳐 들고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사공한이 감탄의 눈으로 장거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와! 저 자식 무지 빠르네!”
냉가혜를 제압하고는 득의의 미소를 흘리던 미공자는 자신의 등을 향해 파고드는 미세한 감각에 다급히 옆으로 비켜서며 신형을 돌렸다. 세 개의 침이 그를 스쳐 지나며 냉가혜에게 박혀 들었다. 그의 감각대로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을 노리고 침을 날린 것이다.
그러나 미공자는 안도할 틈도 없이 또다시 신형을 틀어야 했다. 장거운의 오른발이 그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미공자가 한 발 더 옆으로 비켜서며 장거운의 발을 흘리자 장거운의 신형이 공중에서 회전을 하며 이번에는 왼발이 미공자의 안면을 향해 파고들었다.
펑!
폭음이 터지며 장거운이 뒤로 튕겨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미공자의 장풍이 장거운의 가슴에 적중한 것이다.
장거운은 다행히 크게 부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재빠르게 신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설마 상대가 장풍을 구사할 정도의 고수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장거운이 다시 이를 악다물고 신형을 박찼다. 상대가 장풍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당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상대의 공격을 느낀 자신이 순간적으로 뒤로 몸을 튕겨 대부분의 충격을 흘려 버렸다. 상대가 장풍을 쓰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검을 든 상대와 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장거운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재빠르게 달아나려던 미공자는 장거운이 어느새 다시 자신의 등 뒤에서 공격을 해 오는 것을 느끼고는 순간적으로 신형을 돌리며 양팔을 뻗어 장풍을 뿜어냈다.
장거운의 신형이 아래로 꺼지듯이 사라지며 미공자의 정강이를 노리며 파고들었다. 미공자가 놀란 표정으로 허공으로 몸을 띄워 공격을 피하자 장거운이 신형을 팽이처럼 돌리며 떠올라 선풍각으로 미공자의 안면을 찍어 갔다.
스팟!
핏물이 튀어 올랐다. 미공자의 얼굴에는 검에 베인 듯이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그의 눈에는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분명히 순간적으로 고개를 젖혀 장거운의 발을 피했음에도 마치 검에 베인 것 같은 예리한 자상을 얼굴에 입고 만 것이다.
그의 시선이 장거운의 신발로 향했다. 장거운의 혁피화에는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미처 완전하게 그의 발을 피하지 못한 것 같았다. 결국 그만큼 장거운이 고수라는 뜻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냉가혜는 여전히 서 있었고 사람들은 멀찌감치 물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인질이 필요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던 것이다.
장거운이 다시 달려드는 기색을 느낀 미공자가 소매에서 두 개의 비도를 꺼내 들고 재빠르게 날렸다. 하나는 장거운을 향했고 하나는 냉가혜를 향했다. 장거운의 신형이 냉가혜를 향해 섬전처럼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냉가혜를 향해 날아드는 비도를 쳐 낸 장거운이 신형을 바로세우고 미공자를 쳐다보자 그는 이미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를 짚으며 달아나고 있었다.
장거운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뒤에서 사공한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가혜가 이상해!”
장거운이 황급히 몸을 돌려 냉가혜에게 다가갔다. 냉가혜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입술이 파리하게 변해 있었다. 장거운은 그제야 놈이 피하는 바람에 자신이 던진 침이 냉가혜에게 박혔음을 알아차렸다.
장거운은 침을 이용한 점혈법을 가르쳐 준 당영기가 자신에게 늘 강조하던 말이 떠올랐다. 침이란 제대로 쓰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물건이라는 말이었다. 장거운의 점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장거운은 즉시 냉가혜의 전신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급해서 그런지 침두가 보이지 않았다. 고의로 맞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침이 박힌 위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침착해야 한다!’
장거운은 애써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이 침을 던질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각기 등의 신도혈(神道穴)과 꼬리뼈 부분인 장강혈(長强穴), 그리고 뒤 허벅지의 은문혈(殷門穴)을 향해 날렸던 것이 기억이 났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공한이 외쳤다.
“답답한 놈아! 이 밤에 그 작은 침이 보이냐? 손으로 쓸어 보라니까!”
“그, 그게…….”
머뭇거리던 장거운이 작심을 한 듯 냉가혜의 목 밑에서부터 좌우로 조심스럽게 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냉가혜의 성질을 어떻게 감당할지는 도저히 대책이 안 섰지만 지금은 그녀를 살리는 게 더 중요했다.
장거운의 손이 냉가혜의 가슴 어림에 이르자 급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던진 침의 위치로 봐서는 가슴 쪽에 하나가 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장거운은 남궁천호가 자신에게 질책을 하며 외치던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기 시작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냉가혜의 가슴에서 뭉클하는 부드러움과 함께 탱탱한 탄력이 손끝에 전해 오고 있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듯이 심하게 떨면서 냉가혜의 가슴을 쓸어 가던 장거운의 손이 양쪽 가슴의 한가운데에서 떨림을 멈추었다. 침두가 손에 걸린 것이다. 장거운은 조심스럽게 침을 뽑아냈다.
장거운의 손이 빠르게 냉가혜의 복부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번째 침은 그녀의 하복부에 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하나의 침을 제거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장거운은 더 이상 손을 심하게 떨지는 않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 배꼽 아래, 단전 바로 밑에서 침두가 손끝에 걸렸다. 장거운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자칫하였으면 단전을 다치게 할 뻔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장거운이 두 번째 침을 제거하고 세 번째 침을 제거하기 위해 냉가혜의 허벅지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냉랭한 외침이 들려왔다.
“됐어! 두 개뿐이야!”
냉가혜였다. 침을 제거하는 사이 아혈이 풀렸던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도 이제 생기가 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번째 침이 기혈을 막아 위험해졌던 것 같았다. 장거운이 걱정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일어서자 냉가혜가 아무런 말 없이 차갑게 그를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을 깨고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장거운이 고개를 돌려보니 외당 당주인 적면철권 황보명과 그의 부인인 천향선자 당영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도 단교잔설을 보기 위해 들렀다가 소란이 있자 이곳으로 달려온 모양이었다.
장거운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뱉었다.
“가혜가 치한을 잡던 도중 놈에게 혈을 짚였습니다.”
“저런! 어디지?”
“견정(肩井)과 지양(至陽)이에요.”
당영영이 앞으로 나서 혈이 짚인 곳을 묻고는 즉시 해혈을 해 주었다.
“다행…….”
짝!
장거운이 점혈이 풀린 냉가혜에게 말을 건네려는 순간 경쾌한 격타음이 장거운의 뺨에서 터져 나왔다. 냉가혜가 갑자기 장거운의 뺨을 후려갈겨 버린 것이다.
고개가 돌아간 채 묵묵히 서 있는 장거운에게 당영영이 황급히 다가서며 말을 건넸다.
“어머! 어머! 동생, 괜찮아?”
“멍충이, 뭐해! 놈을 쫓아야 될 것 아니야!”
냉가혜가 냉랭하게 말을 뱉자 장거운은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단교의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장거운이 묵묵히 있다가 갑자기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자 황보명이 급히 나서며 말을 건넸다.
“흠흠, 거 뭐 여자한테 한 대 맞을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나? 그냥 참게! 나도 말이야, 예전에 많이 맞아 봤지만 그거 별거 아냐!”
그는 장거운이 냉가혜에게 뺨을 맞은 것이 너무 분해 화를 누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거운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은 물체를 노려보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쳐 낸 냉가혜에게 날아들던 비도였다. 비도는 달빛이 밝은데도 불구하고 전혀 반짝거림 없이 거무튀튀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죽색마!”
장거운의 입에서 갑자기 외침이 터져 나왔다. 비도는 바로 오죽(烏竹)으로 만든 비도였다. 조금 전의 그 미공자가 바로 오죽색마였던 것이다.
* * *
달아난 자가 오죽색마인 것으로 밝혀지자 사공한은 청룡당에 긴급히 연락을 취하기 위해 달려가고 나머지 일행들은 그자가 달아난 방향으로 급히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거운을 비롯한 일행들은 소소소의 묘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곳까지는 놈이 달아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어 금방 찾아올 수 있었지만, 거기에 이르자 더 이상 놈을 봤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곳에서 항주로 가는 갈림길은 네 곳이나 되기 때문에 놈이 어느 길로 갔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행들의 앞에 작은 사자 새끼만 한 개를 끌고 걸어오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 마른 체구에 작달막한 키를 가진 사내는 팔자 눈썹 아래에 자리한 작은 눈을 번뜩이며 일행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무림맹의 순찰당을 맡고 있는 만리신풍 노웅이었다.
황보명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 철권이구먼! 난 또 어떤 시러배 잡놈들이 기집들 끼고 시시덕거리나 했지.”
“노 당주님!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에요?”
노웅이 건들거리며 말을 하자 당영영이 눈을 흘기며 대꾸를 하고 나섰다.
노웅은 능글맞게 웃음을 흘리면서 다시 말을 건넸다.
“이런! 천향선자였네? 웬 미인들하고 같이 있기에 저 친구가 바람이라도 피우는 줄 알았지! 클클클!”
“흥!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시면 그 개새끼 한 달 동안 피똥만 싸게 만들어 드릴 거예요!”
당영영이 정색을 하자 그제야 노웅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을 뱉었다.
“흠흠! 아, 진짜 농담이었다니깐! 근데 분위기가 어째 그러네. 무슨 일이 있나?”
“오죽색마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놈을 쫓고 있던 중입니다.”
“뭣이? 그 니미럴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황보명의 말에 노웅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좀처럼 꼬리가 잡히지 않던 오죽색마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놈은 맹의 일급 수배범이었다.
황보명은 손짓으로 장거운과 냉가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예, 놈이 이 친구들과 싸우다 도주를 하였습니다.”
“이 친구들은?”
노웅은 의아한 표정으로 낯선 얼굴인 장거운과 냉가혜를 쳐다보았다.
“청룡당의 신입 무사들입니다.”
“그런가? 흠, 아무튼 반갑군. 놈이 달아난 지가 얼마나 된 것인가?”
황보명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웅이 다시 물었다. 질문을 건네는 노웅의 얼굴도 좀 전의 능글맞은 모습은 사라지고도 어느새 진지하게 바뀌어 있었다.
다시 황보명의 대답이 이어졌다.
“아마 일각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음, 쫓기에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냉 무사가 부상을 입어서…….”
“보기엔 둘 다 멀쩡해 보이는데?”
“그게, 좀 일이 있었습니다.”
노웅이 장거운과 냉가혜를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황보명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했다. 그도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 데다, 그렇다고 냉가혜가 장거운의 뺨을 때리는 바람에 늦어졌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놈이 싸우다 도주했으면 일단 그놈부터 쫓고 봐야지!”
노웅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냉랭한 어조로 말을 뱉었다. 그는 장거운과 냉가혜가 둘 다 중상을 입은 것도 아닌데, 즉시 오죽색마를 쫓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휘하인 순찰당의 무사들이었다면 경을 칠 일이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당영영이 나섰다.
“일이 있었다고 하잖아요. 영양가 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그 개새끼나 빌려 주세요.”
“엥? 우리 황칠이는 뭣하게?”
당영영의 말에 노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황칠과 당영영을 번갈아 보며 묻고 있었다.
당영영의 말이 이어졌다.
“놈이 사용하던 오죽비도가 있어요. 놈의 냄새가 남아 있을 것이니, 그 개새끼라면 놈을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역시 우리 여보가 최고라니깐!”
당영영의 말에 황보명이 탄성을 지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황보명뿐만이 아니라 일행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개를 이용해서 놈을 추적한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흠흠, 하여간에 누가 출권 아니랄까 봐……. 그 비도나 내놔 봐! 우리 황칠이가 종자가 좋아서 그런 건 잘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당영영의 말에 동의를 하던 노웅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황보명을 쳐다보며 말을 뱉었다.
“거참, 애들 듣는데 출권이 뭡니까?”
“자네가 마누라만 옆에 있으면 철권이 출권으로 바뀐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새삼스럽게 뭔 소리야!”
황보명이 책망하듯이 묻자 노웅이 언성을 높여 가며 대꾸를 했다.
공처가인 적면철권 황보명이 부인인 당영영이 옆에 있을 때에는 팔불출권 황보명으로 바뀐다는 것은 웬만한 무림맹 인사라면 다 아는 이야기였다.
괜스레 따지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황보명이 머쓱한 표정으로 오죽비도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흠흠! 그만하시고, 비도는 여기 있습니다.”
비도를 건네받은 노웅이 오늘따라 유난히 으르렁거리고 있는 황칠에게 냄새를 맡게 하고는 목줄을 놓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가자! 황칠!”
크왕!
목줄이 풀린 황칠이 갑자기 이빨을 번득이며 장거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마도 제 주인을 믿고 평소에 장거운에게 당해온 것을 앙갚음하려는 모양이었다.
“뭐, 뭐야? 얘가 왜 이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노웅이 다급하게 외치며 황칠을 쳐다보았다. 황칠은 장거운에게 목이 틀어잡힌 채 공중에 떠 있었다. 갑작스럽게 황칠이 달려들자 장거운이 자신도 모르게 십이금룡수의 한 수로 황칠의 목을 틀어쥔 것이다.
낑낑낑!
노웅이 황칠을 붙들자 장거운이 손을 놓아주었지만 웬일인지 황칠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낑낑대고만 있었다. 극도의 공포에 빠진 모습이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황칠을 살펴보던 노웅이 벌떡 일어나며 장거운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 이 자식!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그게, 그냥 목만 잡았을 뿐인데요.”
장거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하고 있었다.
“목만 잡았는데, 애가 왜 이래?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노웅은 화가 누그러지지 않는지 삿대질까지 해 가며 장거운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다시 당영영이 나서서 앙칼지게 말을 뱉었다.
“그럼 개새끼가 달려드는데 가만히 있어요? 나 같으면 모가지를 확 비틀어 버렸을 것이에요. 그 개새끼 그냥 똥개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족보까지 있는 놈인데!”
“그만들 하시고. 아마 장 무사가 아까 놈과 싸우는 바람에 냄새가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시 한 번 해 보지요.”
당영영의 말에 노웅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자, 말다툼이 격화될까 봐 황보명이 만류를 하고 나섰다.
노웅으로서도 자신의 개가 장거운에 달려든 것은 분명히 잘못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따지지 못하고 다시 오죽비도를 황칠의 코에 들이대며 냄새를 맡게 했다.
낑낑!
황칠은 여전히 냄새를 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아니, 진짜 갑자기 얘가 왜 이래?”
노웅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뱉고는 다시 일어서자 지켜보고 있던 장거운이 나섰다.
“제가 한 번 시켜 보겠습니다.”
“잉? 자네가?”
“예, 제가 원래 개들하고 친하거든요.”
노웅이 쳐다보자 장거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사실 장거운은 개를 잘 다루지 못한다. 다만, 평소에 사납게 굴던 황칠이 갑자기 자신으로 인해 공포에 빠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나섰던 것이다.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 주려고 말이다.
크르르!
장거운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황칠이 조금은 안정이 되는지 목에 가래가 걸린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장거운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슬쩍 침을 하나 빼 들고 황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말 잘 들어, 이 침 보이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이 침을 꽂은 채 물에 확 던져 버린다.’
낑낑!
황칠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다시 고개를 처박기 시작했다.
장거운은 왠지 황칠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같이 느껴지자 다시 황칠의 눈을 쳐다보며 오죽비도를 코끝에 갖다 대고는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 비도의 냄새를 따라 빨리 놈을 쫓아! 달려!’
웡웡!
황칠이 벌떡 일어서서는 미친 듯이 달려가자 일행들은 급히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일행이 황칠의 뒤를 따라 반 시진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항주 시내의 중심가에 자리한 커다란 장원이었다. 황칠은 굳게 닫힌 장원의 정문 앞에서 큰 소리로 짖고 있었다. 장원은 북경 하가상단의 항주지부인 하가장이었다.
노웅이 황칠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달래고는 목줄을 다시 걸었다. 그러나 노웅은 곧바로 하가장의 문을 두들기지 않고 뒤돌아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일행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황보명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확인은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나도 이 녀석을 믿고는 싶은데…… 쉽지 않다는 것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노웅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침중한 기색으로 반문을 하고 있었다.
하가장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중원 상권의 사 할을 쥐고 있는 거대 상단인 하가상단의 지부일 뿐만 아니라, 절강성의 형벌을 다스리는 수장인 제형안찰사 하진문의 본가였다. 아무리 무림맹의 이름을 내세워도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황보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야…… 그래도 다른 놈도 아니고 오죽색마입니다. 아무리 하가장이라고는 하지만, 놈이 이곳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놈을 찾아내지 못하면 뒷감당을 어찌하겠는가?”
“…….”
노웅의 말에 황보명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르렁!
거대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가장에서 네 명의 호장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색 무복을 입고 가슴에 ‘하(河)’ 자를 새긴 그자들은 별다른 말 없이 무림맹의 일행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들어오려면 재주껏 와 보라는 듯이 거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웅과 황보명은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을 뿐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 판단하였다가는 실질적으로 절강성 최고의 권력자인 안찰사 하진문을 상대해야 하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던 장거운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이 가면 들어가서 찾아보면 그만이었다. 물론 항의는 조금 받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웅과 황보명이 지금 보여 주는 태도는 너무 신중했다. 게다가 거침없는 성격의 당영영까지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나머지 장거운이 앞으로 나서려 하자 냉가혜의 전음이 들려왔다.
“바보야! 지금 분위기 보면 몰라서 그래? 또 나섰다가 너만 당하고 싶어?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진짜 청룡무복을 벗어야 할지도 몰라!”
장거운이 냉가혜를 쳐다보자 그녀는 절대 안 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었다. 잠시 냉가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거운이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선 장거운은 하가장의 호장무사들을 힐긋 쳐다보고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무림맹 순찰당과 외당, 그리고 의당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죄인의 물색은 본 청룡무사 장거운이 단독으로 맡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황보명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장거운이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본래 오죽색마의 사건은 본 청룡당에서 맡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니 청룡무사인 제가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이, 이보게…….”
장거운이 말을 뱉고 하가장의 정문으로 향하자 황보명과 노웅 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들이 뒷일을 생각하여 망설이고 있자 장거운이 혼자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잠시 기다려! 천호 오라버니를 모시고 올 때까지만 들어가지 말고 시간을 끌어라!”
장거운은 당영영의 전음이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당영영은 이미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냉가혜의 얼굴도 보였다. 장거운은 다시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시오?”
장거운이 다가가자 하가장의 호장무사들 가운데 한 명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건넸다.
“청룡무사 장거운이오! 흉악범인 오죽색마를 추적하는 중이오. 놈이 이곳으로 숨어든 정황이 있으니 장원을 살펴봐야겠소.”
“호! 청룡당이 요새 잘나가나 보지. 어이, 청룡무사 나리, 가서 책임자나 모시고 오시지.”
“청룡무사는 개개인이 독단적으로 죄인을 조사하고 처단할 권한이 있소. 비록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흉악범이니만큼 협조하시오.”
호장무사 하나가 빈정거리자 장거운이 단호하게 외치며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거참, 보아하니 막내 동생뻘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린 친구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장거운이 다가서자 호장무사 하나가 말을 뱉으며 손을 내밀어 장거운을 저지하려고 들었다.
뿌드득!
관절이 틀어지는 소리와 함께 호장무사 하나가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장거운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려는 상대의 손을 반선수로 흘리며 팔을 꺾어 버린 것이다.
“이 자식이!”
창! 창! 창!
나머지 세 명의 호장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감히 흉악범을 추적하는 청룡무사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모두들 각오는 했겠지?”
장거운이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말을 뱉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호장무사들의 눈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들도 무림맹 청룡무사들의 무위가 녹녹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금 전의 한 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눈앞에 검을 대하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장거운의 기세도 그들을 주눅 들게 하고 있었다.
장거운이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서자 호장무사들이 이를 악다물었다. 그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오히려 그냥 물러났다가는 그들의 대주에게 더 작살이 날 것이었다.
제일 가장자리에 선 호장무사가 장거운을 향해 달려들기 위해서 검을 고쳐 잡았다.
바로 그 순간, 목에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과 함께 냉랭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움직이는 순간 죽는다! 죽고 싶다면 죽여 주지! 나 청룡무사 냉가혜가 명한다. 모두 물러섯!”
호장무사의 목에 검을 들이댄 사람은 다름 아닌 냉가혜였다. 그녀는 냉기가 풀풀 날리는 차가운 얼굴로 호장무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냉가혜의 가세로 하가장의 정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