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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청룡당 일행이 막간산의 초입이 자리한 백가장의 장원에 도착하니 곳곳에서 수상한 기척들이 감지되고 있었다. 백가장의 검을 탐내는 무림인들이 제법 많이 모여든 것이다. 어쩌면 상당수는 이미 백가장의 담을 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한 사정은 백가장의 주위에서 번을 서고 있던 포쾌들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었다. 포쾌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굳어 있다가 나타난 무리가 청룡당임을 알고는 반색을 했다.
악우진이 번을 서고 있는 포쾌에게 말을 건넸다.
“책임자는 어디 있느냐?”
“예, 안에 계십니다. 기별을 하러 사람을 보냈으니 곧 나오실 것입니다.”
번을 서고 있던 늙수그레한 포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선 악우진은 보위사들에게 장원의 주위를 경계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보위사들이 조를 이루어 경계를 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보고 있던 악우진이 주변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백가장 주변의 무림인들은 들어라! 본인은 청룡당의 이대주인 냉면섬창 악우진이다. 지금부터 청룡당의 허락 없이 백가장에 들어서는 자는 무조건 이번 일의 흉수로 간주하고 추살하겠다.”
악우진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백가장 주변에 울려 퍼지자 주변의 숲 속 여러 곳에서 움직임들이 감지되었다.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자들이 청룡당의 출현에 포기를 하고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후,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백가장 안에서 세 명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맨 앞에 선 자는 항주부의 추관인 신규진이었다. 그가 이번 일에 책임자로 파견된 모양이었다.
신규진이 악우진에게 다가서며 말을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냉면섬창께서 직접 오셨구려!”
“신 추관이 이곳 책임자로 온 것인가?”
자연스레 하대를 하는 것을 보니 악우진도 신규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신규진의 대답이 이어졌다.
“예, 아무래도 사안이 중대한 것 같아 직접 왔습니다.”
“일은 언제 벌어진 것인가?”
“어제 새벽에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희도 초경 무렵이 되어서야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새벽에 일어난 일을 초경이 되어서야 연락을 받았단 말인가?”
악우진이 질책을 하는 어조로 말을 뱉자, 신규진은 난색을 표하며 대답을 이어 갔다.
“아무래도 이곳이 덕청현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보니 신속하게 처리가 되지 않은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생존자가 없어 고별이 늦어진 것 같습니다.”
“생존자가 아무도 없다고?”
악우진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물었다. 이만한 장원에 생존자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사건이 심각하다는 이야기였다.
신규진의 대답이 이어졌다.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그나마 덕청현의 주민들 가운데 이곳 장원에 왕래하는 자들이 많은 탓에 아침 일찍이라도 발견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제법 시일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단 들어가 보지.”
신규진의 변명과도 같은 말이 못마땅한지 악우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냉랭하게 말을 뱉고는 장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악우진의 뒤를 따라 장원 안으로 들어선 장거운은 코를 찔러 오는 매캐한 냄새와 역겨운 노린내를 맡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옆을 돌아보니 좀처럼 차가운 인상이 변하지 않는 냉가혜도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장거운이 다시 시선을 돌려 전각들을 살펴보니, 대부분의 전각들이 불에 타서 거의 내려앉아 있었고, 석조로 된 부분들만이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제법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는 전각들이 한 채도 남김없이 다 타 버린 것으로 보아, 흉수들이 모든 전각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것으로 보였다.
크르릉!
장거운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던 황칠이 갑자기 자세를 낮추고 앞쪽으로 다가가며 으르렁거렸다. 황칠은 앞쪽에 보이는 세 구의 시체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일행들과 함께 걸음을 멈추고 황칠의 행동을 지켜보던 장거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칠이 다가가고 있는 세 구의 시체들은 불에 탄 시체라고 보기에는 너무 상태가 깨끗했던 것이다.
“황칠! 멈춰!”
장거운이 황칠에게 다가가며 나직하게 외치자 황칠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몸을 낮춘 채 계속 으르렁거리고만 있었다.
황칠의 옆으로 다가간 장거운은 황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천천히 세 구의 시체들 곁으로 다가갔다. 장거운이 살펴보니 세 구의 시체에서 생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너무 깨끗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파!”
시체들에게 다가간 장거운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세 구의 시체들이 벌떡 일어나며 장거운을 향해 일제히 검을 찔러 왔다. 아마도 놈들은 귀식대법으로 숨을 죽인 채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장거운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별반 놀란 기색 없이 반선수로 맨 앞쪽의 검을 흘려버리고는, 상대의 팔을 타고 등 뒤로 돌아가 점혈을 해 버렸다. 졸지에 자신의 동료를 찌르게 된 나머지 두 명은 다급하게 검을 비틀었다. 바로 그 순간 장거운이 자신에게 점혈을 당해 멍하니 서 있는 자의 어깨를 누르며 앞으로 넘어가서는 두 명의 목을 양발로 찍어 버렸다.
그런데 장거운의 발에 목이 찍혀 양쪽으로 나가떨어진 두 명의 사내들은 일격에 죽어 버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장거운은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을 만큼 강하게 차지도 않았는데 두 사내가 개구리마냥 뻗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여긴 장거운이 다시 두 사내에게 다가가려 하자 사공한이 냉소를 흘리며 말을 뱉었다.
“흥! 여항삼서, 네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누구 앞에서 감히 죽은 체 헛짓거리를 하는 게냐?”
사공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죽은 줄 알았던 두 명의 사내가 벌떡 일어나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서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사공 형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거소습불이여구(渠所習不以與狗, 제 버릇 개 못 준다)라고 어째 네놈들이 안 보이나 했다.”
사공한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뱉자 두 명의 사내는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을 기어와서는 사공한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러나 사공한의 눈은 여전히 뻣뻣하게 서 있는 사내에게 가 있었다. 그는 맨 처음 장거운에게 점혈을 당했던 자였다.
사공한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햐! 이것 봐라? 야, 방춘이 이 새끼, 계속 개기지?”
“저, 점혈을 당한 것 같은데요?”
사공한의 발 앞에 엎드려 있던 사내가 뒤를 힐긋 돌아보고는 말을 했다.
사공한이 발로 방금 말한 사내의 머리를 툭툭 쥐어박으며 다시 말을 뱉었다.
“장고야, 거운이 저 녀석은 점혈을 할 줄 모르거든. 그러니 헛소리하지 마라. 알았지?”
“저…… 점혈한 거 맞는데요.”
“이 자식이! 그…… 엉? 너 점혈할 줄 아냐?”
사공한은 짜증난다는 듯이 말을 내뱉다가, 자신에게 말을 한 사람이 장고가 아니라 장거운임을 알고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게…… 점혈이 되네요.”
장거운이 머쓱하게 대답을 하자 일행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보였다. 모두들 장거운이 점혈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냉가혜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장거운이 전음에 이어 점혈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확실히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신규진과 함께 앞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악우진이 다가오며 사공한에게 물었다.
“아는 놈들인가?”
“예, 여항삼서라고 여항현의 도둑놈 패거리인데 아마도 백가장의 검을 노리고 이곳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별 잡놈들이 다 설치는군.”
“아직 이런 놈들이 몇 놈 더 있을 것 같습니다.”
사공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악우진이 시선을 돌려 장거운을 향해 말을 뱉었다.
“당주님이 혹시 쓸데가 있을지도 모를 거라고 하면서 개새끼를 데려가라고 하더니, 확실히 한 군데는 쓸데가 있군. 장거운, 너는 지금부터 저 개새끼를 데리고 시체로 위장하고 있는 놈들을 모두 색출하라!”
“예. 황칠아, 가자!”
장거운이 대답을 하고는 곧바로 황칠을 데리고 시체들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악우진의 말에 뼈가 있음을 알지만 굳이 다투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시체로 위장하고 숨어 있는 자들을 색출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악우진의 지시로 시체들을 헤집고 다니던 장거운은 시체로 위장한 채 숨어 있던 자들을 두 명 더 찾아내었다. 두 명 모두 삼류 수준의 무공을 익힌 자들로 무림인이라기보다는 저잣거리의 파락호 정도로 보였다.
장거운이 그 두 명을 앞서 붙잡았던 여항삼서와 함께 정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 포쾌들에게 넘겨주고 나자 어느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꼬박 날을 지새운 탓인지 살짝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훤하게 날이 밝으면서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 참상을 바라보는 순간, 장거운은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어둠 속에서 보이던 상황과 훤하게 날이 밝은 상태에서 보이는 상황은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눈에 드러난 색감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시커멓게 잿더미가 되어 무너져 있는 전각들과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불에 타서 오그라든 시체들. 그을음으로 온통 잿빛 눈꽃을 피우고 있던 마당의 석등이며, 담장 위의 기와들이 얼마나 참혹한 참사가 이곳에서 벌어졌는지를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한 느낌을 장거운 혼자만이 받은 것은 아닌지, 모두들 침울한 표정으로 화마가 휩쓸고 간 백가장의 잔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을 침통하게 만든 것은 참혹한 잿더미들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인간의 탐욕이 가지는 잔혹성인 것인지도 몰랐다.
“뭣들 하느냐? 날이 밝았으니 본격적으로 시체들을 모아야 할 것 아니냐!”
악우진의 호통에 퍼뜩 정신을 차린 청룡당 일행은 경계를 서고 있던 보위사들과 함께 잿더미 속에서 시체들을 찾아 한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시체를 수거하는 작업이 끝이 났다.
청룡당 일행이 수거한 시체는 모두 칠십여 구에 달했다. 장원의 규모로 보아 생각보다 적은 숫자였다. 신규진의 말로는 아직 찾지 못한 시체들도 있고, 백가장의 식솔들 중에 덕청현에 거주하는 자들도 상당수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피해 인원이 적은 것이라고 했다.
시체들을 처리하고 수습하기 위해서는 백가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청룡당 일행들은 아침 식사도 할 겸해서 덕청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만 장거운만이 보위사 네 명과 함께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그곳에 남기로 했다.
일행들이 떠나고 나자 장거운은 시체들을 모아 둔 곳으로 다가가 차근차근 시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체들의 입을 열어 보기도 하고 불에 타서 상한 부위들을 면밀히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장거운이 모든 시체를 살펴보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룡당 일행과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백가장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들은 이곳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백가장에 생존자가 없다면 그들이 이곳을 수습해야 할 터였다.
어제 관원들의 통제로 각자 집으로 돌아가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그들은 모아 놓은 시체들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시체들 가운데에는 그들과 같이 땀 흘리며 웃고 술을 나누던 지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참변을 당하여 시커멓게 그을린 시체가 되어 말없이 누워 있으니, 그 참담함에 통곡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청룡당 일행들은 통곡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져 다시 장원 밖으로 나와 버렸다.
장원 입구에 있는 송림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장거운에게 유자명이 다가오며 대바구니를 내밀었다.
“시체랑 노느라 수고했다. 별로 입맛도 없겠지만 너 주려고 만두 좀 사 왔으니 이것으로라도 요기를 좀 해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야.”
“예, 잘 먹을게요.”
침통한 표정으로 대바구니를 받아 든 장거운은 만두를 입으로 가져가다가 자신과 같이 굶고 있던 황칠이 생각이 나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머쓱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냉가혜가 황칠이에게 오리 구이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거운이 만두를 손에 들고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황칠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오리 구이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치사한 자식! 안 먹는다, 인마!’
장거운이 속으로 중얼거리자, 신통하게도 황칠은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경계를 풀더니 느긋하게 오리 구이를 뜯기 시작했다.
‘쩝, 황칠이는 오리 구이고 난 식은 만두냐?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그래, 어쩌면 네가 나보다 나을지도 모르지.’
장거운은 속으로 탄식을 하며 우걱우걱 만두를 씹기 시작했다.
누가 보기에도 맛있게 만두를 먹고 있는 장거운이었지만, 사실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처참하게 죽어 있는 시체들을 보고도 어느새 무덤덤해져 가는 자신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유자명이 사다 준 만두로 대충 요기를 때우던 장거운은 사공한의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공한이 악우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놈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건 모르지. 이 정도로 불을 지를 정도면 몇 명만 가지고 되지는 않을 터이니 적어도 십여 명은 되겠지.”
악우진의 말을 들은 장거운은 그에게 다가가며 말을 건넸다.
“저기 대주님, 아무래도 놈들의 숫자가 그보다는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시체들을 살펴보았는데, 불에 타서 죽은 시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장거운의 말에 사공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각이 모두 불에 타서 내려앉았는데 타 죽은 사람이 없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게, 불이 나기 전에 모두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놈들이 저 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다 죽인 다음에 불을 질렀단 말이야?”
“그런 것 같아요.”
사공한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장거운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우진이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죽은 사람들의 코와 입에는 재가 들어가 있었지만, 목구멍 안에는 재가 없었습니다.”
“목구멍 안에 재가 없었다고?”
장거운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불이 났을 때 살아 있었다면 불길을 피하거나 불과 다투다가 호흡을 하게 되어 코와 입은 물론이고 기도에까지 재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목구멍 안의 기도에까지 재가 들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장거운의 설명이 끝나자, 악우진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네가 저 시체들을 모두 살펴보았단 말이냐?”
“예, 그리고 몸에 예리한 자상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흉수들은 칼 솜씨가 뛰어난 자들인 것 같습니다. 단칼에 뼈까지 잘라 버린 흔적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사공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그럼 뭐야? 뼈까지 단칼에 잘라 버릴 정도의 솜씨를 가진 놈들에다가, 적어도 수십 명은 가담을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현재 수거된 사체들만 해도 칠십 구가 넘으니 흉수들의 숫자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제법 솜씨가 있는 자들 수십 명이 참가했단 말이지?”
악우진이 나직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룡당 일행들도 생각보다 흉수들의 인원이 많고 솜씨가 뛰어난 자들도 속했을 거라는 말에 살짝 긴장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깨고 악우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뱉었다.
“후후, 잘됐군. 너의 말대로 제법 많은 인원이 움직였다면, 놈들의 흔적을 찾아내기가 더 쉬워지겠지.”
악우진의 말에 장거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조심을 하더라도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흔적은 잘 드러나는 법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장거운이 갑자기 흠칫하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와 동시에 오리 구이로 배를 채우고는 멍하니 바닥에 엎드려 있던 황칠도 귀를 쫑긋하며 몸을 세우고 있었다. 장거운과 황칠은 동시에 미약한 소리를 들은 것이다. 황칠과 눈을 마주친 장거운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황칠의 반응으로 보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쿵. 쿵. 쿵.
아주 미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어떠한 울림이 땅 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장거운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리는 장원의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장거운과 황칠이 갑자기 장원 안으로 달려가자 일행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장원 안으로 들어선 장거운은 시체들이 모아 놓은 곳에 이르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그곳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늙수그레한 중늙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곳 장원에 지하실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생산된 검을 모아 놓은 검고(劍庫)가 지하 어디에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위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알 수가 없지요.”
중늙은이의 말을 들은 장거운의 눈에 잠시 이채가 스쳤다. 지하에 검고가 있다면, 자신의 귀에 들렸던 소리로 미루어 그곳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면 누군가가 검고로 들어가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청각이 발달한 황칠도 소리의 정확한 진원지를 찾을 수가 없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만 있었다.
“무슨 일이야?”
뒤따라온 사공한이 다급하게 물었다.
“지하에서 뭔가 울리는 소리가 났어요. 이분에게 물어보니 지하 어딘가에 검을 모아 놓은 검고가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어요.”
“무슨 소리? 난 안 들리는데?”
“지금은 안 나지만, 조금 전에 분명히 들렸어요.”
사공한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장거운은 단호하게 말을 뱉었다.
장거운의 옆에서 잠시 생각을 하고 있던 냉가혜가 나섰다.
“지하에 검고가 있다면 아무래도 장주의 처소에 통로가 있을 거예요. 이봐요, 장주의 처소가 어디였어요?”
냉가혜의 물음에 중늙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너진 전각들을 둘러보고는 전방의 세 번째 전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였소.”
확실히 그의 말대로 전각의 크기가 유난히 큰 것으로 보아 그곳이 장주의 처소였을 것 같았다. 장거운을 비롯한 일행들은 일제히 그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제3장 백가남매(百家男妹)


노인이 가리킨 곳은 백가장 장주였던 백문우의 처소로 성검각이라고 하는 전각이었다. 그곳은 이미 화재로 무너져 내린 서까래와 대들보 등이 뒤엉켜 엉망이 되어 있어서, 지하실로 통하는 출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면 바닥의 울림이 다른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청룡당 일행들은 각자 바닥을 두드려 보며 신중하게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탐색은 반 시진 가까이나 계속되었지만, 지하로 통하는 입구로 여겨지는 곳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장거운이었다. 직접적으로 지하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그밖에 없기 때문이다.
초조해진 장거운이 고개를 돌려 보니 자신을 쳐다보는 악우진의 눈빛이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정말로 지하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 맞는지 묻고 있는 듯했다. 그런 악우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장거운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황칠을 쳐다보았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황칠이만이 유일하게 자신과 같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칠을 쳐다본 장거운은 다급하게 신형을 날려야 했다. 냉가혜가 갑자기 검을 뽑아 들고는 황칠이에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빠르게 황칠의 앞을 막아선 장거운이 냉가혜에게 고함을 질렀다.
“야! 너 미쳤어?”
“헛소리하지 말고 비켜.”
냉가혜의 냉랭한 대꾸에 장거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뭘 왜 이래? 너야말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무슨 생각이라니? 네가 검을 뽑아 들고…….”
냉가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머뭇거리며 대꾸를 하던 장거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만 해도 황칠이에게 오리 구이를 사다 주던 냉가혜였다. 그녀가 아무리 변덕이 팥죽 끓듯이 하는 성격이상자라도 갑자기 황칠을 죽이려 든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이상했다.
냉가혜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래서? 누가 황칠이를 죽이기라도 한대?”
“그, 그럼?”
장거운이 멀뚱한 표정으로 되묻자, 냉가혜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버럭 고함을 쳤다.
“비켜, 멍충아! 검고라면 검들이 보관되어 있을 거잖아. 거기에 있는 검들은 정향유를 발라 놓았을 것이고. 내 검도 그와 같은 정향유로 손질하였으니 황칠이라면 정향유 냄새로 검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 그, 그렇구나!”
“멍충이! 비켜!”
“어, 그, 그래.”
장거운은 머쓱한 표정으로 비켜섰다.
냉가혜의 말대로 일반적으로 검을 손질하고 보관할 때는 정향나무의 연보라색 꽃잎에서 추출한 정향유를 사용한다. 신맛이 나는 정향유는 냄새가 강해 오랫동안 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후각이 발달한 황칠이라면 그 냄새만으로도 검고의 위치를 찾아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냉가혜는 검의 명가인 화산파의 제자답게 장거운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황칠에게 다가간 냉가혜는 자신의 검에서 나는 정향유의 냄새를 맡게 하고는 황칠에게 속삭이듯이 말을 건넸다.
“황칠아, 이 냄새가 강한 곳을 찾아야 해. 알았지?”
웡! 웡!
황칠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두어 번 짖어 대고는 땅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공한이 유자명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흠흠, 여자라도 가끔은 쓸모가 있단 말이야.”
“그럼요. 사매가 여자라도 검에는 일가견이 있죠. 그러니 우리 화산이 중원 최고의 검문으로 불리는 것 아니겠어요?”
냉가혜의 말에 공감이 가는 바가 있어 말을 건넸던 사공한은 유자명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미간에 주름을 모으고 있었다. 유자명이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의 사문인 화산파를 두고 중원 최고의 검문이라고 자랑하자, 같은 검문인 점창파의 제자로서 조금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문에 대한 자긍심은 강한 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공한이 같잖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호! 근데 그렇게 대단한 화산의 제자인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예? 내가 뭐 어때서요?”
“당구삼년음풍월(堂狗三年吟風月)이라 하였거늘 너는 어째 입당 삼 년차인 놈이 이제 갓 들어온 신입보다 못하냔 말이다.”
“나 참, 내가 뭘 못하다고 그러세요?”
“아, 됐고.”
웡! 웡!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유자명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던 사공한은 황칠이 짖어 대는 소리가 나자 말을 끊고는 즉시 황칠이에게로 신형을 날렸다.
황칠이 짖어 대며 서 있는 곳은 장주의 처소였던 성검각의 왼쪽 벽이 있던 자리 앞이었다. 불에 타다 남은 잔해로 보아 아마도 장주의 침상의 놓여 있던 곳 같았다.
황칠의 옆에서 바닥에 엎드려 냄새를 맡아 보던 장거운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코로는 정향유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사람이 개의 후각과 청각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물러서라!”
악우진의 외침에 장거운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황칠을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악우진이 자신의 단창을 꼬나 쥐고 앞으로 나섰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창에 내기를 불어넣어 파르스름한 광망이 번뜩이는 창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꽝!
악우진이 단창에 창기를 실어 바닥을 내려치자 폭음과 함께 바닥의 청석이 쩍 갈라져 버렸다.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악우진의 창은 섬창이라는 그의 별호처럼 단지 빠르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갈라진 청석들 사이로 시커먼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검고로 가는 지하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통로를 막고 있는 청석을 들어내던 장거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단단한 청석의 두께가 한 자는 족히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조금 전에는 웬만큼 두들겨 보아도 울림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검고로 가는 통로의 입구를 막고 있던 청석을 모두 치운 후, 청룡당 일행들은 보위사들로 하여금 입구를 지키게 하고는 모두 긴장된 눈빛으로 지하 통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일행의 선두에는 장거운이 섰다. 혹시나 기관 장치에 의한 공격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암기를 막는 것에는 자신이 있는 장거운이 자진하여 앞장을 선 것이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서자 제법 넓은 공간을 가진 복도가 나타났다. 다행히 우려했던 갑작스런 암기의 공격 따위는 없었다. 지하실로 내려선 장거운의 눈에 복도 끝에 자리한 문이 보였다. 아마도 검을 보관하고 있는 석실로 통하는 입구인 모양이었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장거운이 갑자기 다급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안쪽으로부터 미약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신음 소리는 장거운뿐만이 아니라 뒤따르던 일행들도 모두 들었는지, 모두들 장거운의 뒤를 급히 따르고 있었다.
석실의 문 앞에 이른 장거운은 문이 잠겨 있음을 알고 문을 두들기면서 큰 소리로 외쳐 댔다.
“안에 누가 있습니까? 무림맹의 청룡당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석실 안에서는 여전히 신음 소리만 들려올 뿐 별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안에 갇힌 사람들은 부상이 심해서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조급해진 장거운은 좀 전에 악우진이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막고 있던 청석을 박살 내어 버렸던 행동을 떠올리고는 대뜸 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직!
두꺼운 자단목으로 된 석실의 문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악우진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청석을 박살 낸 자신의 창기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장거운의 주먹도 생각보다 위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이다.
석실의 문을 박살 내고 들어선 장거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벽면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검들과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자신 또래의 여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열네다섯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둘 다 탈진하였는지 미약한 신음만 흘릴 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년의 손에는 주먹만 한 돌이 쥐어져 있었다. 아마도 처음 장거운과 황칠이 들은 소리는 소년이 그 돌로 바닥을 내리치던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장거운이 급히 다가가 소년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해 보았다. 소년의 심장은 약하지만 일정하게 뛰고 있었다. 아마도 단순히 지쳐서 탈진을 한 모양이었다.
장거운이 소년을 안아 올려서 벽에 기대어 앉게 하자 냉가혜가 환약 하나를 내밀었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지니고 다니는 속명환이었다.
약을 받아 든 장거운은 소년의 턱을 눌러 입을 벌리게 하여 속명환을 넣어 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냉가혜도 쓰러져 있던 소저를 벽에 기대어 앉히고는 속명환을 복용시키고 나서 빨리 약효가 퍼질 수 있도록 양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얼굴이 닮아 있어 남매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장거운은 북우촌에서 양충원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양충원과 양숙현, 그들 남매도 백가장과 같은 멸문지화를 당하여 지하에 숨어 있다가 겨우 살아났다고 했다. 화를 입은 백가장의 지하에서 남매로 보이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 장거운은 양충원이 생각났던 것이다.
잠시 상념에 잠겼던 장거운은 백가 남매의 상세를 살피는 것은 냉가혜에게 맡기고 악우진과 사공한 등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벽면을 가득 채운 검들을 보면서 왠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거운이 악우진에게 말을 건넸다.
“입고 있는 복색으로 봐서는 아마도 이곳 백가장의 후인들 같습니다.”
“그래, 백연화와 백연호인 모양이군.”
악우진은 두 남매를 힐긋 쳐다보고는 무덤덤하게 말을 뱉었다. 그 말을 들은 장거운은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험이 일천한 장거운만 몰랐을 뿐, 백가 남매는 항주 일대에서 제법 유명했던 것이다. 특히 백연화는 절강삼미의 일인으로 그 미모가 항주 제일이라고 알려진 미녀였다.
지금까지 옆에서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추관 신규진이 입을 열었다.
“악 대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백가 남매가 정신을 차리는 대로 검과 함께 맹으로 호송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백가장의 후인과 검들을 관에서 맡기는 좀 힘들겠지?”
“그야 당연하겠지요. 한데…… 괜찮을까요?”
“음, 아무래도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어쩌겠나? 청룡당에서 손을 댄 이상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신규진의 물음에 악우진은 굳어진 표정으로 반문을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악우진의 말과 표정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은 장거운이 사공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까?”
“흠, 거운아! 저 검이 몇 자루나 되어 보이냐?”
“글쎄요, 한 이백 자루는 족히 되어 보이네요.”
“그러니 하는 말이잖아. 고가의 명검을 만들기로 유명한 백가장의 검고에서 이백 자루가 넘는 명검이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그렇군요.”
그제야 장거운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공한의 말대로 그런 소문이 퍼진다면 백가장의 검을 노리고 달려드는 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악우진과 신규진 등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과 청룡당 일행은 험난한 귀로를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두들 굳은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냉가혜가 나직하게 소리를 쳤다.
“깨어났어요!”
“으음…….”
백연화가 미약하게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는가?”
“누, 누구……?”
백연화가 가늘게 실눈을 뜨며 말을 흘리자 냉가혜가 말을 받았다.
“청룡당에서 나왔어요.”
“아! 여, 연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