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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텅!
위지웅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갑자기 장거운이 신형을 살짝 흔들어 검을 흘리고는, 반선수를 응용하여 손등으로 위지웅의 검면을 두들겨 튕겨 내며 위지웅의 다리를 노리고 나한각을 내질렀다. 예상치 못한 장거운의 공세에 놀란 위지웅이 황급히 뛰어올라 나한각을 피하고는 허공에서 신형을 회전시키며 장거운의 이어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 어지럽게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장거운의 공격은 즉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지웅이 착지를 하는 순간 장거운의 신형이 폭풍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장거운은 이미 싸움에 있어서 맥을 알고 있는 것이다. 빈틈은 상대가 막 검을 내려고 할 때와 막 검을 거두었을 때 가장 많이 생기는 법이었다.
위지웅이 재빨리 검을 내밀려고 하였지만, 이미 장거운이 접근한 상태여서 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위지웅은 다급한 나머지 가슴으로 파고드는 장거운의 주먹을 왼손바닥을 펴서 막아 내고 있었다.
펑!
폭음이 터져 나오며 뒤로 튕겨져 나온 위지웅이 겨우 신형을 바로 잡으며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뱉었다. 가까스로 장거운의 공세를 받아 내기는 했지만, 약간의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놈!”
위지웅이 당한 것을 보고 적우기가 쌍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대개 쌍검의 묘용은, 검이나 도를 든 상대에게 방어를 주로 하여 싸울 때 제대로 발휘되는 법이었다. 좌수의 검으로 상대의 검이나 도를 막음과 동시에 우수의 검으로 상대를 베는 것이다. 그러나 공격은 그렇지가 못했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분산되어 검의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단점은 장거운과의 대결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적우기는 검기를 머금은 쌍검을 최대한 빠르게 놀려 보지만, 장거운은 한층 여유 있게 그의 검을 흘리며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거운의 입장에서도 계속 여유를 부리며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느새 몰려온 흑의인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장거운은 일단 백연호를 구해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었기 때문에 조금 무리를 하기로 작정을 했다.
쾅!
장거운이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혼원일기의 초식으로 왼 주먹을 내지르자 적우기의 좌수에 들린 검이 원을 그리며 장거운의 팔을 잘라 갔다.
텅!
“철포삼!”
적우기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자신의 검이 장거운의 팔을 자르지 못하고 튕겨 나자, 그는 소매에 내기를 불어넣어 검을 막아 낸다고 하는 소림의 철포삼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철포삼은 검기까지는 막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적우기의 놀라움이 큰 것이었다. 물론 장거운의 경우에는 철포삼이 아니라 금강나한공이기 때문에 검기에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것이다.
웅!
적우기가 놀라는 사이 장거운의 오른 주먹이 쭉 뻗어져 나오며 백보신권이 펼쳐졌다. 적우기는 강력한 기운이 파고듦을 느끼고는 재빨리 신형을 비틀었다.
펑!
적우기는 왼 어깨가 박살이 난 채 뒤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장거운의 백보신권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왼 어깨를 내주고 만 것이다.
장거운은 적우기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며 전각 안을 향해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백연호가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거운의 신형은 얼마 나가지 못하고 다시 멈추어야 했다. 위지웅이 이를 악물고 검을 찔러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장거운이 철판교의 신법으로 급격하게 허리를 뒤로 꺾어 위지웅의 검을 흘리고는, 땅바닥에 닿은 양손을 쭉 밀어내며 관음십팔족의 수법으로 위지웅의 가슴을 노리고 양발을 번갈아 내질렀다.
펑펑펑!
가슴에 연이어 장거운의 발길질을 허용한 위지웅이 뒤로 물러서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막아!”
적우기의 다급한 고함 소리가 들려오자, 몰려왔던 흑의인들이 장거운을 향해 벌 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장거운이 흑의인들의 검을 흘리며 재빠르게 훑어보니 흑의인들의 수는 족히 백에 이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복면만 하지 않았을 뿐, 흑의인들은 모두 백가장에서 자신들을 습격했던 자들과 비슷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이들이 백가장을 습격하여 칠십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해친 흉수들인 것이다.
“이놈들!”
장거운의 입에서 낮지만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흑의인들이 백가장을 멸문시킨 흉수들이라고 생각되자 그로서도 더 이상은 화를 누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팡! 팡! 팡!
연달아 작은 폭음들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장거운을 향해 달려들던 흑의인들이 연신 튕겨져 나오고 있었다. 흑의인들 사이에 파묻힌 장거운의 신형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소림의 전설 가운데 하나인 소림오권을 펼쳐 내고 있었다.
양손과 양발뿐만이 아니라 장거운의 전신이 때로는 굶주린 호랑이의 앞발이 되어 상대의 가슴을 찢어발겼고, 때로는 성난 표범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되어 상대의 목줄을 뜯어 버렸으며, 때로는 독 오른 독사의 독아가 되어 상대의 눈을 멀게 했고, 때로는 성난 천년학의 매서운 부리가 되어 상대의 혈을 후벼 팠으며, 때로는 분노한 광룡의 포효가 되어 상대의 관절 마디마디를 바수어 놓고 있었다.
흑의인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어 보았지만, 그들의 어설픈 검기나 검술로는 절정고수인 적우기마저 베지 못한 장거운의 신체를 제대로 벨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장거운이 폭주를 하여 날뛰는 동안, 어느새 그의 주변으로는 사지가 부서지고 얼굴이 박살이 나서 널브러진 흑의인들로 그득했다.
“괴, 괴물…….”
내상을 입은 채 가슴을 잡고 주저앉아 장거운의 모습을 보고 있던 위지웅의 입에서 두려움에 찬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공포란 전염성이 강한 마물이었다. 백 명에 달하는 흑의인들 중 아직도 멀쩡한 이들은 서른이나 되었지만, 위지웅의 중얼거림처럼 장거운을 괴물로 인식하면서 그들의 얼굴에는 점점 공포심이 어리고 있었다.
피 칠갑을 한 아수라의 얼굴을 한 채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찔러도 찔리지가 않았다. 그의 어깨에 스치기만 하여도 턱이 박살 나고, 그의 주먹이 보이는 순간 뼈가 부서져 내렸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순간 여지없이 관절이 꺾여 제멋대로 휘어져 버렸다. 달려들어 사지를 결박하면 그의 머리가 춤을 추며 사방으로 피를 뿌려 댔다. 시간이 지나면서 흑의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는 이제 괴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흑의인들이 아수라처럼 느끼고 있는 장거운은 이미 거의 자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오직 아함경에서 악마인 마라가 석가세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는 구절만이 되풀이하여 들려오고 있었다.

우스워라, 그대는 이 세상에서
악한 이의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도다.
그대는 악마의 사슬에 매였나니
사문이여, 그대는 자유를 잃었도다.

그렇게 자의식을 잃고 무아지경 속에서 손발을 휘두르던 장거운은 갑자기 들려오는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물러서라!”
내공이 실린 적우기의 고함 소리에 흑의인들이 손을 멈추고 빠르게 물러서고 있었다. 장거운을 얼마나 두려워했던지 뒤로 물러나는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안도감이 어리고 있을 정도였다.
적우기의 외침이 다시 터져 나왔다.
“장거운! 여기를 봐라!”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장거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적우기를 쳐다보았다. 한쪽 어깨가 박살이 난 적우기는 남은 한 손으로 백연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장거운의 가늘어진 눈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백연호의 커다란 눈망울과 마주쳤다. 백연호는 살려 달라고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던 장거운은 시선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떡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흑의인들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던 할아버지의 말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장거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토록 선명하게 들려오던 마라의 속삭임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대신에 적우기의 느물거리는 음성이 그의 귀를 더럽히고 있었다.
“장거운, 이놈을 살리고 싶으면 무릎을 꿇어라!”
장거운이 다시 눈을 뜨며 적우기를 쳐다보았다.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백연호만큼이나 적우기도 겁에 질려 있었다. 백연호가 순수하게 죽음이라는 미지의 두려움 때문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 적우기가 느끼는 공포는 탐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뺏고 싶은 것을 뺏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저급한 두려움이었다.
아함경에 이르기를 석가세존께서는 물에 젖은 찬목으로 불을 피울 수 있겠느냐 하셨고, 펄펄 끓는 물이 네 얼굴을 제대로 비출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고 했다. 이미 탐욕에 물들어 버린 적우기의 마음은 아무리 비벼도 불이 붙을 수가 없는 물에 젖은 찬목이었고, 제대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없는 펄펄 끓는 물이었다.
장거운은 왜 말코 할아버지가 소림의 승려들이 걸핏하면 살계를 여노라고 외쳐 대었다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고 있었다. 적우기를 보면서 난생 처음 진심으로 살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거운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린 백연호를 적우기의 손에 죽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장거운의 다리가 서서히 굽혀지고 있었다.
쿵! 쿵!
바닥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장거운이 무릎을 꿇었다.
“악마 같은 놈……. 뭐하느냐! 어서 놈을 포박하라!”
적우기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외쳤지만, 아무도 선뜻 다가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 장거운은 무서운 존재로 각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놈! 이 악마 같은 놈! 내가 끝내 주마!”
흑의인들이 모두 주저하자 위지웅이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고는 장거운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힘겹게 다가온 위지웅이 검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장거운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백연호가 적우기의 손아귀에 있어 달리 대응을 할 수도 없었지만, 그는 지금 혈루각에서 느꼈던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아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는 애써 죽음 직전에 무리의 요체를 깨달아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며 불안감을 떨쳤는데, 오늘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는 잔혹한 살인마의 자아가 숨어 있음이 분명한 것 같았다. 마라와 같은 악마적 존재가 내면에 숨어서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위지웅이 자신이 검을 쳐들었음에도 장거운이 미동도 하지 않고 있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장거운에게 철저하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위지웅이 내기를 쥐어짜서 검에 불어넣고 장거운의 목을 향해 내려치려는 순간 뒤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호통을 내지른 사람은 바로 제형안찰사인 하진문이었다. 그의 옆에는 그의 동생이자 현재 하가장의 장주인 하정문과 남궁천호를 비롯한 무림맹의 당주들이 서 있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위지웅이 사형인 적우기를 쳐다보았다. 적우기는 이미 체념을 한 듯 검을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위지웅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하진문이 냉랭한 어조로 말을 뱉었다.
“너는 누구냐?”
“절강성 도지휘사사 정천호 위지웅입니다.”
위지웅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하진문의 말이 이어졌다.
“정천호 위지웅? 한데 어찌하여 군영에 있지 않고 내 집에서 이런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안찰사 대인.”
위지웅이 다시 말을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진문이 위지웅을 전혀 모르는 듯이 말을 하자, 남궁천호 등의 눈에는 이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제야 남궁천호는 처음에는 자신을 비롯한 무림맹 무사들의 하가장 진입을 반대하던 하진문이 생각을 바꾸어 진입을 허락한 이유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일을 적우기와 위지웅에게 떠넘겨 꼬리를 잘라 버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진문은 처음에는 자신과 냉가혜, 그리고 악우진밖에 없었으므로 안의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끄는 듯했다. 그러나 신호전을 보고 많은 수의 무림맹 무사들이 몰려오게 되고 냉가혜와 악우진 등이 당장에라도 담을 넘을 것처럼 나서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음을 알고 꼬리를 잘라 내기로 생각을 바꾸고는 자신 등의 진입을 허락한 것이다.
하진문이 다시 동생인 하정문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장주, 자네는 저자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는가?”
“그것이…… 적 대주가 얼마 전에 자신의 사제라고 소개를 하더군요. 전에 한번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장주인 하정문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하진문이 다시 적우기를 향해 소리를 쳤다.
“적 대주!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그 아이는 누구고, 지금 이 소란은 다 무엇이란 말이냐?”
적우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찰사 대인,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이 모든 일이 제가 과욕을 부려서 그렇게 된 일이니 부디 이 못난 사형의 감언이설에 속았던 사제와 그 부하들은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뱉은 적우기는 하진문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고는,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위지웅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상한 기미를 느낀 악우진이 급히 신형을 날려 보았지만, 이미 적우기는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적우기는 하진문이 원하는 바가 자신의 입이 영원히 닫히는 것임을 알고는 심맥을 끊어 자결을 해 버린 것이다. 그만 죽어 버리면 사제인 위지웅도 살 길이 열릴 것이고, 사문인 해남파도 조금 손상은 입겠지만 무림의 공적이 되는 것은 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멍한 눈으로 잠시 적우기의 시체를 보고 있던 악우진이 정신을 차리고 한쪽 구석에서 떨고 있는 백연호를 안아 들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궁천호는 위지웅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위지웅은 멍하니 자결을 한 사형인 적우기를 쳐다만 보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남궁천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위지웅의 곁에 있는 장거운에게 전음을 날리려는 순간, 하진문이 위지웅을 가리키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사사로이 부대를 움직인 저놈을 포박해서 관부로 압송하지 않고 뭐하는 것이냐? 그리고 나머지 놈들도 모두 포박해서 도지휘사사에 넘겨라!”
하진문의 호통에 하가장의 호장무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흑의인들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위지웅과 흑의인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포박을 당하고 있었다. 무림맹의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나 눈에 빤히 보이는 짓이었지만, 하진문이 선수를 쳐서 꼬리를 잘라 내니 딱히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남궁천호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장거운에게 다가가며 말을 건넸다.
“거운! 수고했다. 그만 가자꾸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서 힘없이 걸음을 옮기던 장거운은 월동문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동생인 하정문과 빈객으로 있는 관종호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하진문을 쳐다보았다.
백가장 사건의 진정한 원흉은 하진문이 분명하였지만, 현재로써는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하진문의 태도로 봐서는 자신이 조금 전 들었던 ‘철황비록’에 관한 이야기를 거론한다고 한들 동생인 하정문을 버리고서라도 버틸 것이 뻔했다. 좀 더 완벽하고 확실한 증거를 갖추지 않고서는 하진문을 잡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를 악다물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는 장거운의 귀로 하진문의 전음이 들려왔다.
“장거운이라……. 제법이군. 그 이름 기억해 두지.”
장거운이 걸음을 멈추고 하진문을 쳐다보았다. 하진문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장거운은 언젠가는 하진문의 실체를 밝혀낼 것을 다짐하면서 다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장거운이 나오자 가장 그를 반긴 사람은 황칠과 냉가혜였다. 황칠은 장거운에게 연신 꼬리를 흔들며 파고들었고, 냉가혜는 특유의 차가운 표정으로 눈을 흘기며 ‘멍충이’라는 말을 쌀쌀맞게 내뱉고는 돌아서고 있었다.
그러나 장거운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에 그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매달려 있는 눈물들이 달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돌아선 것도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일 터였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녀에게 다가가 뒤에서 꼭 안아 주며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속삭였을 것이다.



제8장 사대금강(四大金剛)


장거운은 다음 날 잠이 깼을 때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음을 알고는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궁천호가 피곤할 것이니 푹 자라고 했지만 그렇게 늦게까지 잠을 자 본 것은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았다. 아마도 어젯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인 탓인 모양이었다.
장거운은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자 다시 착잡해지고 있었다. 하진문과 하가장의 흑심을 밝혀내지 못한 것도 아쉬웠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잠 못 들게 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파괴적인 자아였다.
장거운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젯밤 하가장에서 격전을 치렀음에도 그 손은 생채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어쩌면 흑의인들과 위지웅이 자신을 보고 괴물이라고 한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의인들 중 얼마나 되는 이들이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쓰러져 있던 자들 중 반수 이상은 죽었을 것 같았다. 수십 명을 때려죽이고도 생채기 하나 없으니 괴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었다.
혈루각에서 처음 살인을 했을 때나, 백가장에서, 그리고 관도에서 흑의인들과 싸웠을 때는 분노보다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동료들을 지키고, 백가 남매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처음엔 백연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싸우기 시작했지만, 점점 그를 지배하는 것은 분노가 만들어 낸 아수라의 마음이었다. 만약 자신이 냉철한 판단으로 백연호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면, 훨씬 빨리 끝날 수 있는 싸움이었다. 어젯밤 자신은 마라의 속삭임에 지배되어 오직 파괴만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장거운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점점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옳은 것인지조차도 확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우두커니 시선을 창문으로 돌리자, 바쁘게 뛰어다니는 무사들과 위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들도 나와 같이 흉중에 아수라를 품고 살아가는 것일까?’
속으로 의문을 던져 보지만 들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삐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유자명이 고개를 내밀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 일어났냐?”
“예, 늦잠을 자서 죄송합니다. 지금 곧 나갈게요.”
“그, 그래. 당주님이 집무실로 바로 오라고 하시더라.”
“예, 바로 갈게요.”
유자명이 다시 문을 닫고 나가자, 침상에서 일어나 무복을 갈아입던 장거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자명의 태도가 평소의 그답지 않고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을 해 봐도 알 수 없는 일이기에 급히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 장거운은 남궁천호의 집무실이 있는 청룡각의 이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남궁천호의 집무실 앞에 이른 장거운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것은 이곳으로 오면서 그와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은 어젯밤 자신을 괴물처럼 쳐다보던 흑의인들의 그것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를 지나친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죽은 놈들이 마흔 명이 넘는다며?’
‘정확하게 마흔세 명이라더군. 죽은 놈 마흔 셋에 사지가 박살 난 놈 서른둘이라니, 그것도 혼자서 말이야. 도저히 인간이 아니야. 완전히 괴물이야!’
그러한 시선이나 말들은 강한 자에 대한 경외심이고 무인으로서의 부러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거운이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마치 그들의 시선이 잔혹한 살인마를 쳐다보는 경멸의 시선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그제야 장거운은 유자명이 자신을 대할 때 왜 그렇게 어색해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장거운이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남궁천호의 집무실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남궁천호와 악우진, 그리고 모용현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거운을 본 남궁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 오너라. 좀 쉬었느냐?”
“예,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무어 있느냐? 어쨌든 네 덕분에 맹의 수치로 남을 수 있는 납치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지 않았느냐? 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서 앉아라. 차나 한 잔 하자.”
남궁천호가 웃는 얼굴로 말을 하며 장거운에게 자리를 권했다.
쪼르르!
장거운이 자리를 하자 악우진이 찻잔을 건네고는 직접 차를 따라 주며 말을 걸었다.
“이젠 제법 청룡무복이 잘 어울리는 것 같군.”
“예.”
장거운이 짤막하게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남궁천호는 장거운의 표정이 좋지 못한 데다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것을 보고는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안색이 좋지 못하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오라고 하셨다던데……?”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 조만간 도지휘사사에서 관리가 찾아와 몇 가지 물을 것이다. 아무래도 관군이 관련된 일이라 그들도 형식적으로나마 조사는 해야 될 터겠지. 그냥 있었던 사실대로만 이야기해 주면 될 것이다.”
“예,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안 그래도 마침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백호당주를 만나고 왔는데, 마운곡은 비어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이번 백가장의 사건은 적우기가 백가장의 검을 탐하여 도지휘사사의 정천호로 있는 사제인 위지웅과 결탁하여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장거운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남궁천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래서 너를 부른 것이다. 지금은 하진문의 권력 때문에 백호당에서 내린 결론을 뒤엎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오죽색마의 사건이 하가장과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나 또한 하진문과 하정문 형제를 곱게 놔둘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냉철하게 접근을 하여야 한다. 완벽한 증거를 잡아서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섣불리 감정을 앞세워 덤비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구나.”
남궁천호의 말에 장거운은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백호당에서 내린 결론을 듣고 다시 하가장에 쳐들어갈까 봐 걱정이 되어 부른 것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장거운은 철황비록에 대해서 떠올리고는 남궁천호에게 말을 할까 망설였다. 악우진과 모용현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가 남매의 안위와 관련된 일인지라 쉽게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비밀이란 아는 사람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잘 지켜지는 법이었다.
그렇게 장거운이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고 있었다.
“남궁 당주, 잠시 실례하겠네.”
청룡당주의 집무실로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감찰당의 당주인 복마삼절 유운생이었다.
남궁천호 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맞이했다.
“유 당주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다른 게 아니고, 자네 휘하에 장거운이라는 청룡무사가 있다고 하더군.”
“예? 접니다만…….”
유운생의 말에 장거운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며 나섰다.
유운생이 차갑게 눈을 빛내며 장거운을 쳐다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흠, 인상착의를 보니 맞는 것 같군. 정휘!”
“예!”
검찰당의 무사 하나가 들어와서 가볍게 읍을 하고는 책자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청룡무사 장거운, 당 십팔 세, 정주 태생. 사문은 소림 속가인 정주 조림사…….”
정휘라는 감찰당 무사가 장거운의 신상 내력을 읽고 나자 유운생이 다시 말을 건넸다.
“맞는가?”
“예, 그렇습니다.”
장거운이 대답을 하자 유운생이 다시 남궁천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뱉었다.
“남궁 당주, 장거운은 신분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 조사를 마칠 때까지 구금을 해야겠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남궁천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뱉으며 악우진을 쳐다보았다. 평소에 악우진이 장거운의 신분에 대해서 회의적인 말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궁천호와 눈이 마주친 악우진은 그 자신도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남궁천호가 다시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
“신분에 무슨 하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유운생이 남궁천호를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림 속가 출신의 무사들 가운데 하나가 투서를 하였네. 소림 속가들 가운데 조림사라는 문파는 없다고 말일세. 우리가 확인을 해 본 결과 소림속가연명록에는 조림사라는 이름의 문파가 없더군.”
“그건…… 연명록에 올라 있지 않은 일인전승(一人傳承)의 작은 문파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소이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나 소림속가연명록에 올라 있지 않은 그런 문파들은 감히 소림 속가라고 사칭할 수가 없네. 그 문제에 대해서 오늘 아침 맹에 도착한 소림사의 사대금강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네.”
“그런……!”
남궁천호는 사대금강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소림사는 자신들의 사문에 대해서 대단히 엄격했다. 오랜 세월 강호무림의 종주로 군림해 온 탓에 비록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그들의 무공이 널리 세상에 퍼져 있었고, 그만큼 소림의 속가임을 사칭하는 무리들이 많아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소림사의 입장에서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림 속가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했고, 소림속가연명록이란 것을 만들어 엄격하게 속가 문파들을 감독해 왔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속가를 감독하는 일은 사대금강의 직접적인 직무이기도 했다.
결국은 어젯밤의 일이 화근이 된 것이다. 하가장의 일을 목도한 다른 당의 무사들이 장거운이 나이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자 그의 사문에 대해 논란이 일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남궁천호는 장거운을 소림사가 있는 숭산과 가까운 정주에서 만났고, 장거운의 실력으로 봐서는 속가제자라기보다는 소림 장로들 중에 누군가가 숭산 근처에 거하면서 무공을 가르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장거운의 사문에 대해 그리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사대금강이 장거운을 모른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로 제자를 키운 소림의 장로들은 대부분 제자들이 출도하기 전에 본산에 데려가 능력과 인성을 검증받고 계를 받아 출가시키든지, 아니면 속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일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속가제자들은 장거운의 존재를 모른다 해도 속가를 감독하는 사대금강은 장거운을 알고 있어야 했다.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남궁천호를 보며 유운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장거운, 얼마 전 자네가 북우촌의 아낙이 자살을 한 사건을 맡았다더군. 사실인가?”
“그건 정식으로 청룡당에서 맡은 사건이 아닙니다.”
악우진이 급히 나서며 말을 뱉었다.
유운생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더군. 청룡당의 기록에 보니 그 사건을 정식으로 맡지는 않았더군. 그런데 장거운 자네는 왜 북우촌을 찾아갔나?”
“그건…… 정식으로 사건을 맡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불쌍하여 제가 가 보라고 한 것입니다.”
악우진이 장거운을 두둔하고 나섰다. 감찰당에서 장거운이 독단적으로 사건을 조사한 일에 대해 문책을 하려는 것 같아서 자신이 나선 것이다. 대주인 자신의 지시였다고 하면 장거운을 문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악우진도 장거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유운생이 묘한 눈으로 악우진과 장거운을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 어쨌든 좋네. 북우촌을 간 것은 악 대주의 지시라고 치고, 장거운, 자네가 거기에서 아이들의 숙부라는 자를 만났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혹시 자네 그자에게서 뭔가 받은 것이 없는가?”
“어, 없습니다.”
장거운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유운생의 말을 듣는 순간 장거운은 허리에 차고 있는 자룡창을 떠올리고는 안색이 확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연이 있는 물건인지 알기에 양충원에게서 자룡창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유운생의 말은 장거운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안색이 변하게 만들었다.
“흠, 오늘 아침 소림사에서 온 사대금강의 말에 의하면 자네가 만난 그 아이들의 숙부라는 자가 바로 소림사에서 대환단을 훔쳐 간 것으로 알려진 금면신투라고 하더군.”
“금면신투!”
모용현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금면신투는 소림에서 대환단을 훔쳐 간 일뿐만 아니라, 중원 제일의 대도라고 명성이 자자한 자였던 것이다.
남궁천호와 악우진도 모용현처럼 놀라서 외치지는 않았지만 딱딱하게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금면신투는 청룡당에서 직접 수배령을 내리고 있는 자는 아니었지만, 그자를 잡는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거운이 그와 만났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장거운이었다. 양충원이 소림에서 대환단을 훔친 금면신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가 했던 말 가운데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모두 설명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될 것이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었고, 결국 자신의 내공이 급증하여 내기를 뿜을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대환단을 자신에게 복용시켰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사자인 장거운을 포함하여 모두들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유운생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자네가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체했는지는 조사해 보면 사실이 드러나겠지. 일단 장거운, 자네는 직무를 정지하고 우리를 따라와야겠네. 남궁 당주, 우리가 장거운을 데리고 가도 되겠지?”
유운생이 말을 건네고 신형을 돌려 걸음을 옮기자, 정휘와 밖에서 들어온 두 명의 감찰당 무사들이 장거운을 에워쌌다. 멍한 표정을 하고 있던 장거운은 묵묵히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남궁천호와 악우진은 그런 장거운의 모습을 착잡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