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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장거운이 감찰당의 지하에 마련된 금옥에 들어갈 때까지 정휘를 비롯한 세 명의 감찰당 무사들은 최대한 청룡무사의 예우를 갖추어 주고 있었다. 포승줄로 장거운을 포박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밀치거나 당기지도 않았다. 그저 에워싼 채 묵묵히 안내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장거운은 금옥에 갇힌 뒤 간수로 있는 위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들이 자신이 청룡무사이기 때문에 예우를 갖춰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은 금옥을 지키고 있는 위사들이 더욱 심했다. 금옥의 위사들은 수군거리면서 자신을 소광룡(少狂龍)이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자신이 청룡무사이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위사들은 장거운을 곁눈질로 힐긋힐긋 쳐다보며, 감찰당의 무사들이 소광룡이 날뛸까 봐 두려워 형틀을 씌우거나 포승줄로 포박을 하지도 않았다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점혈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투덜대기도 했다.
장거운은 왠지 자신이 악한이 되어 버린 느낌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였지만, 결국은 그러한 시선들을 스스로 이겨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아수라를 다스릴 사람은 결국 자신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소광룡이라…….’
장거운은 위사들이 자신을 칭하는 소광룡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자신을 남들이 광인 취급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지만, 묘하게 친근감이 가는 말이었다. 어쩌면 세상에는 자신과 같은 존재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을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 마음에 안정을 찾은 장거운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소림의 속가를 사칭하였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금면신투로 알려진 양충원과의 문제는 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거운은 양충원의 정체가 금면신투라는 유명한 대도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충원이 말한 그의 삶과 자룡창에 얽힌 이야기에 대한 진실성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분명히 타인의 재물을 훔쳐 온 도둑이라는 사실도 변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의 신분이 도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양충원이라는 인간 전체를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둑이라는 사실을 배제하고 그를 평가하는 것 또한 지나치게 자의적인 판단이 될 수 있었다.
사실 그러한 점은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미묘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은 나쁜 관리들의 행태를 보게 되면 부패한 관리들이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부정한 뇌물을 써서라도 관리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곤 하는 것이다.
더구나 청룡무사인 자신의 입장에서, 나와 상관이 없는 자는 타인의 재물을 훔친 도둑이니 때려잡아야 하고, 나에게 호의를 베푼 자는 도둑이라고 하더라도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환단이었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었다. 자신이 대환단을 복용한 사실을 안다면 남들은 분명히 대환단을 받고 양충원을 놓아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의혹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청룡무사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물론 자신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는 대환단의 주인인 소림사의 승려들을 쳐다보며 거짓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 하가장에서 벌인 살육과 함께 대환단의 일까지 겹치게 되어 장거운으로서는 이래저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거운이 구금되어 있는 금옥에 첫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장거운을 처음으로 찾아온 사람은 네 명의 소림승들이었다. 바로 사대금강이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사대금강은 모두 장거운 못지않게 장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승려들답지 않게 눈에서는 부리부리한 정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네 명의 승려 중에 가장 연배가 많아 보이는 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승은 범각이라고 하오. 먼저 장 시주의 사문이 본사의 속가라고 하던데, 맞소이까?”
장거운은 범각이라고 밝힌 승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네 명의 승려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탓인지, 눈빛이 유난히 깊고 인상이 충후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진 그의 입에서 완고한 고집을 느낄 수 있었다.
장거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나를 길러 주신 할아버지에게서 소림의 무공을 배웠을 뿐입니다.”
범각이 눈에 이채를 띠며 다시 물었다.
“그분의 존함이 어떻게 되시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할아버지의 법명을 알지 못합니다.”
장거운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범각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법명이면 승려라는 말인데, 어찌 속가처럼 할아버지라 부르시오?”
“그게…… 갓난아기 때부터 그렇게 부르다 보니…….”
범각은 잠깐 눈빛을 빛내며 장거운을 쳐다보았다. 장거운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말을 하면서 장거운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잠깐 떠올린 것 같았다.
범각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좋소이다. 그래, 그분에게서 배운 소림의 무공이 무엇이오?”
“그것을 다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렇소이다.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는 모르지만, 그 진위를 알기 위해서는 다 말씀을 하셔야 하오.”
“너무 많은데…….”
범각의 말에 장거운은 혼잣말을 하며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소림의 무공은 종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름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무공까지 합친다면 한참을 불러야 할 터였다.
“도대체 속가 주제에 아는 무공이 얼마나 된다고 그리 말하는가!”
유난히 체격이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승려가 버럭 호통을 질렀다. 그는 장거운이 속가를 사칭한 주제에 익힌 무공이 너무 많다고 하자 가소롭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범각이 타이르듯이 말을 뱉었다.
“어허, 범호! 조용히 하라.”
“예, 사형. 죄송합니다.”
범호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하자, 범각이 다시 장거운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 많다면 주로 익힌 무공만 말씀해 보시게.”
“그게…… 철두공하고 용형보, 반선수, 십이금룡수, 그리고 나한각과 관음십팔족, 또 아라한신권과 나한십팔세, 오권, 백보신권, 일선지, 탄지신통…….”
“그만하시게. 그러다간 역근과 세수도 익혔다고 하겠군.”
장거운이 이름만 대도 다 알 만한 소림의 절기를 줄줄이 늘어놓자, 범각은 약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장거운의 말을 끊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범각의 중얼거림을 들은 장거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그것들도 익혔는데요.”
“갈! 지금 농지거리나 하자고 우리가 널 찾아온 줄 아느냐!”
범호가 벌떡 일어나며 호통을 내질렀다. 장거운이 역근과 세수마저 익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역근과 세수를 익힌 사람은 소림사 전체를 통틀어도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장거운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만하라!”
범각이 손을 저으며 만류를 하자 범호가 언성을 높이며 말을 뱉어 내고 있었다.
“사형!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는 자입니다. 자신의 스승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존함이나 법명도 모르는 자입니다. 게다가 사문의 이름이 조림사(操林寺)입니다. 그야말로 발칙한 이름이 아닙니까?”
“그래도 정주에서는 꽤 유명한 이름인데…….”
장거운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하자 범각의 눈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사실 범각은 약간의 혼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보기엔 장거운의 눈은 일체의 거짓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장거운의 말은 허황되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범각은 장거운을 사람들이 소광룡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가 광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광인은 정직한 눈빛으로 얼마든지 허황된 말을 쏟아 낼 수 있는 존재였다.
범호를 진정시킨 범각은 다시 말을 이었다.
“좋소이다. 본사의 속가를 사칭한 문제는 그만 이야기하기로 하고, 장 시주가 양충원이라는 자를 만났다고 들었소이다.”
“예, 북우촌에서 만났습니다.”
범각의 눈에 다시 이채가 스쳤다. 장거운은 이번에도 순순히 대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범각이 다시 물었다.
“그자가 금면신투인지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습니다. 처음엔 기웃거리는 것이 수상하여 쫓아가서 잡고 보니 아이들의 숙부였습니다.”
장거운의 말에 범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경공에서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금면신투를 쫓아가서 잡았다고? 지금 우리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말인가!”
“경공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를 붙잡은 것은 맞습니다.”
장거운은 범호를 쳐다보고는 단호하게 대꾸를 했다. 양충원의 경공 실력이 뛰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이 그를 쫓아가 잡은 것도 사실이었다.
범각이 반박을 하려는 범호를 제지하며 다시 말을 건넸다.
“좋소이다. 그래도 청룡무사이니 그 말은 믿어드리지요. 하면, 그자에게서 받은 것이 정녕 하나도 없소이까?”
장거운이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제가 원해서 받은 것은 아니고, 제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그가 복용시킨 게 있었습니다.”
“무엇을 복용시켰단 말이오?”
복용을 시켰다는 말에 범각이 얼굴이 굳어지며 다그치듯이 물었다.
장거운이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게…… 아무래도 대환단 같습니다.”
“정녕 대환단이란 말이오?”
“직접 보지 못하였으니 확신은 못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공이 급증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것이…….”
“허!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범각은 장거운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지자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대환단을 훔쳐 간 금면신투를 잡기 위해 오 년이 넘는 시간을 쫓아다녔는데 정작 대환단은 엉뚱하게도 장거운이 복용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쾅!
범호가 탁자를 내려치며 벌떡 일어서서는 호통을 쳤다.
“솔직히 말하라! 금면신투는 지금 어디 있느냐?”
“멀리 간다고 하던데,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고!”
범호가 고함을 치며 장거운을 향해 손을 뻗자 범각이 재빨리 그를 제지하며 나직하게 호통을 쳤다.
“그만! 범호, 그만하라!”
“사형!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거짓말만 하고 있는 자입니다. 보나마나 금면신투와 한패일 것입니다.”
“그래도 청룡무사이다. 어찌 도적과 한패로 모는 것이냐?”
범각이 꾸짖듯이 말을 뱉자 범호의 항변이 이어졌다.
“어차피 청룡무사도 본사의 속가를 사칭하여 된 자 아닙니까? 이런 자가 어찌 청룡무사일 리가 있습니까!”
“말조심하시오! 나는 분명히 청룡무사요!”
장거운이 굳어진 얼굴로 범호를 노려보며 말을 뱉었다.
“이놈!”
범호가 노성을 지르며 다시 장거운의 멱살을 잡아 갔다.
장거운이 손바닥을 슬쩍 흔들어 범호의 주먹을 바깥으로 흘리고는 범호의 팔꿈치를 틀어쥐기 위해 십이금룡수를 펼쳤다. 그러자 범호는 장거운의 반선수에 의해 튕겨 난 팔에 회전을 주어서 전사경의 힘을 일으키며 용조수의 수법으로 장거운의 오른쪽 어깨를 잡아 갔다.
장거운은 상대가 사대금강답게 당황하지 않고 용조수를 펼치자 슬쩍 어깨를 떨어뜨렸다가 강하게 튕겨 범호의 손을 위로 쳐 내고는, 빈틈이 생긴 범호의 가슴을 향해 금강권을 뻗었다.
범호는 벼락같이 파고는 장거운의 공격에 다급히 왼손으로 항마장을 운용하며 그의 주먹을 막았으나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찰나지간에 벌어진 짧은 공방이었지만, 두 사람의 실력 차이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갈! 그만하라!”
범각의 호통에 범호는 다시 공격을 하지 못하고 멈추어 섰지만, 그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속가를 사칭하는 근본도 모르는 자라고 가소롭게만 봤던 장거운에게 한순간의 공방에서 크게 낭패를 봤던 것이다.
사대금강을 노려보며 장거운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뱉고 있었다.
“내가 본의 아니게 소림의 대환단을 복용한 것은 사실이나, 청룡무사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소! 당신들이 소림의 사대금강이듯이 나 역시 무림맹의 청룡무사요!”
평소의 순박한 장거운의 모습으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단호한 모습이었다.
청룡무사로서의 자부심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러한 마음은 장거운의 기세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소림사를 대표하는 사대금강을 혼자 마주하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달리 소광룡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장거운의 폭풍 같은 기세에 사대금강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리고 있었다. 이제껏 겪어 보지 못했던 강력한 긴장감이 그들의 심장을 강하게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장거운의 순박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아수라의 단면을 엿본 것일지도 몰랐다.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범각이 입을 열었다.
“사제가 성정이 급하여 실수를 한 것 같으니 장 시주는 기세를 거두시오. 아무튼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무림맹과 협의를 하여 본사의 뜻을 전하겠소이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
“…….”
범각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는 나머지 사대금강들을 데리고 금옥을 벗어날 때까지도 장거운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제9장 재회(再會)


무림맹의 맹주인 화중혁의 집무실에서는 화중혁과 그의 사질인 백호무사 청풍일검 영호군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중혁이 이번에 있었던 백호당의 출정에 대해 영호군에게 자세히 묻고 있었다. 화중혁은 자신이 백호당 출신이어서 회의 때에는 백리문의 손을 들어주기는 하였지만,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구심은 맹에서 보호하고 있던 백가 남매에 대한 납치 사건까지 벌어지자 더욱 짙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백호당이 마운곡으로 출정을 떠나면서 백호각의 경계 인원을 너무 적게 배치한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는 백호당 내에 심어 둔 자신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호군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두 숙질 간의 심각한 논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방문객으로 인해 중단되어야 했다. 바로 냉가혜가 화중혁을 찾아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냉가혜를 반갑게 맞이한 화중혁과 영호군은 그녀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차를 따라 주었다.
냉가혜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자 화중혁이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그래, 청룡당의 생활은 할 만하냐?”
“예, 잘 지내고 있어요.”
“흠, 그래도 최근에 일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늘 조심하여라. 행여 네게 일이 생기면 사형과 사매의 등쌀을 어찌 감당할지 걱정이 앞서는구나.”
“하하하! 사매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영호군이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을 하자 화중혁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글쎄다. 내가 보기에는 혜아와 가까이 있는 자명이가 더 믿음이 가는데…….”
“사숙! 어찌 저를 그 어리바리한 자명이 녀석과 비교를 하십니까?”
“호! 그러냐?”
“이거야 원, 저를 그렇게 못 믿으시니 제가 청룡당으로 옮기든지 해야겠군요. 하하하!”
영호군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화중혁의 시선은 계속 냉가혜를 향해 있었다.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부터 계속해서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화중혁이 냉가혜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그런데 혜아는 어찌 그리 얼굴이 어두운 게냐?”
“사숙,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요.”
“부탁?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그게…… 저…….”
냉가혜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저하자, 화중혁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말을 건넸다.
“괜찮으니 편하게 말해 보아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부탁인데 내가 어찌 모른 체하겠느냐?”
“청룡무사들 중에 이틀 전에 감찰당에 의해 구금을 당한 친구가 있어요.”
냉가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영호군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소광룡 그놈 말이냐?”
“소광룡이 아니라 장거운이죠.”
“그놈이 그놈이잖아?”
“그놈 소리는 그만하시죠.”
냉가혜가 냉랭하게 말을 뱉으며 노려보자 영호군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화중혁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 장거운이라는 아이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안 그래도 오후에 그 아이 문제로 집법회의가 열리기로 되어 있다.”
“혹시 어떻게 결정이 날지……?”
냉가혜가 걱정이 되는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묻자 화중혁은 침중한 기색으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흠, 그 아이 문제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할 것 같구나. 맹 내부의 문제라면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소림과 엮였으니 나로서도 어떻게 결정이 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구나.”
“소림의 힘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소림과 무당은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는 무림의 태산북두다. 양대 문파가 본 맹에는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두 문파의 속가제자들이 본 맹의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무림맹 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화중혁의 설명에 영호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해서 말을 이었다.
“하긴 우리 백호당도 절반이 소림과 무당의 속가제자들이니까 말이야.”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살짝 깨물며 잠시 생각을 해 보던 냉가혜가 다시 말을 건넸다.
“하지만 거운이 그간 세운 공적도 많이 있잖아요?”
“그래, 살펴보니 대단하더구나. 혈인마 구충을 잡은 것도 그렇고, 이번에 백가장의 일에서도 많은 공적을 세웠더구나. 그러니 내부적인 문제였다면 결코 그런 인재를 내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적이 많으면 뭐합니까? 완전히 광인이나 다를 바 없는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사대금강과도 싸우려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자를 남겨 두면 결국 맹의 명예만 훼손시키게 될 것입니다.”
화중혁의 말에 영호군이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다.
“사형, 말이 심하시네요!”
냉가혜가 갑자기 화가 난 목소리로 외치자, 영호군은 왜 그러느냐는 듯이 멀뚱멀뚱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화중혁은 냉가혜의 속내를 짐작하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단순히 동료이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장거운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화중혁은 냉가혜를 보며 그녀의 모친인 설은향을 떠올리고 있었다. 냉가혜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설은향은 그의 사매이자 그가 한 번도 드러내 보지 못한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영호군은 자신을 닮았다. 화중혁은 자신도 지금의 영호군처럼 사매인 설은향을 좋아하면서도 늘 티격태격하기만 했던 것이다.
사실 냉가혜는 그녀의 모친인 설은향을 꼭 닮아 있었다. 성격도 그러하거니와, 빼어난 미모에 천부적인 무재까지 쏙 빼닮아 있었다. 어쩌면 지금 그녀가 장거운을 좋아하는 것도 모친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녀의 모친인 설은향도 명문의 준수한 귀공자들의 구애를 무시하고 평범한 유생과 결혼을 하여 사문을 떠났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냉가혜가 세 살이 되던 해에 혼자 아이를 안고 사문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가난한 유생의 아내로서의 삶은 사문의 그늘을 벗어난 그녀에게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냉가혜의 모친인 설은향의 삶을 잘 알고 있는 화중혁은 냉가혜만큼은 그녀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냉가혜가 장거운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자 미간을 찌푸린 것이다. 하지만 냉가혜도 그녀의 모친인 설은향만큼이나 고집이 세다는 것이 문제였다.
잠시 회상에 잠겼던 화중혁이 다시 말을 건넸다.
“그 아이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신분도 불확실한 아이를 남궁 당주가 사사로이 입당시켰다는 말도 있고, 특히 금면신투와 거래를 하여 대환단을 삼켰다는 소문까지 있더구나.”
“그렇다니까요. 그놈이 처음 들어올 때는 점혈도 못했는데, 대환단 먹고 나서 갑자기 무공이 강해진 거라네요. 근데 그 대환단을 먹은 부작용으로 광증이 와서 하가장에서도 야차처럼 사람을 때려죽인 거라고 합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혼자서 마흔이 넘는 사람을, 그것도 주먹과 발길질로 때려죽인다는 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가능하겠습니까?”
“사형이라면 적이 달려드는데 가만히 목 내밀고 서 있을 거예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영호군이 장거운에 대해서 악평을 늘어놓자 냉가혜는 눈까지 빨갛게 변한 채 따지고 들었다.
“그거랑은 다르지! 그놈은 그냥 미친 듯이 때려죽였다니깐! 사람이 돼지 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영호군이 손사래까지 쳐 가며 또다시 장거운의 험담을 하자 화중혁이 만류를 하고는 냉가혜를 유심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만하여라! 한데 네가 그 아이와 친하였더냐?”
“그야 뭐…… 아무래도 하나밖에 없는 동기니까요.”
냉가혜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우물쭈물 대답을 하자, 영호군이 또다시 퉁명스럽게 말을 뱉으며 끼어들었다.
“사문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대환단 처먹고 미쳐 날뛰는 그런 놈이 무슨 동기냐?”
“사형! 사형이 거운이를 얼마나 안다고 그러세요?”
“아니, 난 뭐……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근데, 뭘 그리 화를 내냐?”
영호군은 버럭 화를 내는 냉가혜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을 지켜보고 있던 화중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냉가혜에게 달래듯이 말을 건넸다.
“혜아야, 네가 그 아이와 그간의 정리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아마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 것 같으니 그 아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그래, 사매. 그딴 놈은 신경 쓰지 말고 현이 녀석 복귀한다던데 그 녀석하고나 잘 지내봐라.”
“현이라니?”
영호군의 말에 화중혁이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백리현 말이에요. 우리 백리 당주님 동생 있잖아요.”
“송학신룡 백리현 말이냐?”
“예, 그 녀석이 재작년에 폐관에 들어간다고 잠시 청성파로 돌아갔잖아요. 조만간에 청룡당으로 복귀한다고 하네요.”
“호!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그래, 그 아이라면 차기 청룡당주로 손색이 없지!”
화중혁의 안색이 환하게 바뀌고 있었다.
영호군이 언급한 백리현은 자신이 알기에도 가히 인중지룡이라고 할 수 있는 출중한 인재였다. 백호당을 맡고 있는 백리문의 동생으로 백리세가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청성파 최고의 기재로 이름을 날렸던 촉망받는 후기지수였다.
백리현은 삼 년 전 청룡당에 입당했다가 청성파의 부탁으로 잠시 사문에 복귀했는데, 아마도 다시 청룡당으로 돌아올 모양이었다. 화중혁의 생각에도 냉가혜와는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냉가혜는 백리현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혼자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더니, 화중혁에게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사숙, 감찰당의 금옥에 있는 거운이를 좀 만나 볼 수 없을까요?”
“금옥에 갇힌 자는 집법회의가 열리기 전에는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것이 맹의 율법이다. 나라고 해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야.”
“……예.”
자신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숙이는 냉가혜를 화중혁은 착잡한 심정으로 보고 있었다. 딸은 엄마의 삶을 닮는다는 말도 있지만, 두 모녀가 닮아도 너무 닮아 있었던 것이다.

* * *

“웬일이냐? 만날 바빠서 제 집에도 몇 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여 줬다는 녀석이 이 땡초를 다 찾아오고 말이야.”
소림사의 나한당을 맡고 있는 후덕한 인상의 백우선사는 영은사로 자신을 찾아온 남궁천호를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항주에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어찌 모른 체하고 있겠습니까?”
“흠, 어째 네 녀석 말하는 투가 심히 수상쩍은데…….”
남궁천호가 유난히 정중하게 대답을 하자 백우선사는 실눈을 뜨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껏 그의 경험에 의하면, 남궁천호가 처음 말을 꺼낼 때 유난히 어투가 정중하면 자신에게 부탁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말을 하면서 정중한 어투는 점점 사라지지만 말이다.
남궁천호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젠 항주부 한복판에 깃발 하나 꽂으셔도 되겠습니다. 글은 제가 직접 써 드리지요. 천하제일신복(天下第一神卜)이라고 말입니다.”
“객쩍은 소리 하지 말고, 뭔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예 꺼내지도 말거라. 이번에는 나도 경황이 없어서 어디 돌아다닐 형편이 못 된다.”
백우선사가 손사래를 치며 미리 남궁천호의 입을 막아 보지만, 남궁천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잇고 있었다.
“굳이 돌아다닐 필요 없이 맹에만 한번 다녀가시면 되는 일입니다.”
“맹에? 맹의 문제라면 지금 사대금강 아이들이 그곳에 있다고 하던데 그놈들한테 말하지 그러냐? 범각이란 놈은 너도 알지 않느냐?”
“바로 그 사대금강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남궁천호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대답을 하자 백우선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놈들 때문이라니? 왜? 그놈들 하고 싸우기라도 했냐?”
“참 내, 제가 무슨 아직도 어린애입니까?”
남궁천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백우선사가 정색을 한 채 말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헐, 이놈아! 네놈 어릴 때 범천이 놈하고 대가리 터지게 싸우는 바람에 너희 안휘 본가가 멸문의 위기에 처했던 것은 기억 안 나냐?”
“애들끼리 싸운 거 가지고 멸문은 무슨 멸문입니까? 그리고 어째 너희 안휘 본가입니까? 우리 본가이지요. 참, 범천, 그 친구는 잘 있습니까?”
남궁천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네고는 오랜 지기인 범천을 떠올렸다.
지금 십팔나한승의 수좌로 있는 범천은 백우선사의 대제자였다. 남궁천호는 속가의 인연으로는 숙부인 백우선사를 만나기 위해 부친과 함께 소림사에 들렀다가 범천과 심하게 싸운 적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둘 다 하루 종일 마보를 서는 체벌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백우선사는 그 일을 두고두고 놀려 먹곤 했다.
백우선사는 남궁천호가 범천의 안부를 묻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에휴! 그놈, 불쌍하게 되었지. 하필이면 이 사부를 잘못 만나 가지고…… 아미타불.”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쩝, 그런 일이 있다.”
남궁천호의 물음에 백우선사는 그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젓고만 있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이냐?”
이어지는 백우선사의 물음에 남궁천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 휘하의 청룡무사들 가운데 장거운이란 녀석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소림과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청룡무사와 소림이 무슨 문제가 생겼단 말이냐? 어떤 썩을 놈의 땡중 새끼가 사고라도 쳤단 말이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아이 사문이 소림의 속가로 되어 있는데, 연명록에는 기록이 없는 곳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속가를 사칭하였단 말이구나.”
백우선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뱉었다. 소림 속가를 사칭하는 일은 그만큼 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남궁천호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사칭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아무튼 천성이 순후하고 협심도 강직한 녀석입니다.”
“뭐 어쨌든, 그 정도 사안이라면 네 선에서 무마할 수도 있지 않느냐?”
백우선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사실 남궁천호가 청룡당의 당주인 만큼 부하들의 신상에 관한 웬만한 문제는 그의 선에서 적당하게 무마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궁천호가 장거운의 사문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점도 있었던 것이다.
남궁천호는 난색을 표하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누가 그 아이를 시기하여 감찰당에 투서를 하는 바람에 마침 맹에 들렀던 사대금강이 알게 된 모양입니다.”
“저런! 일이 꼬였구나. 범각이 그놈이 제법 깐깐한 놈인데……. 어쩐담?”
말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백우선사는 남궁천호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궁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백우선사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궁천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기는 한데…….”
“다른 문제라니?”
“그 아이가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에 금면신투를 만났던 모양입니다.”
“뭣이? 그 얼어 죽을 놈의 도적놈을 만났단 말이냐?”
남궁천호가 금면신투를 거론하자 백우선사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소림사의 모든 제자들에게 있어 금면신투는 악적 중의 악적이었다. 그야말로 소림의 명예를 땅바닥에 내던져 짓밟아 버린 자였기 때문이다.
남궁천호가 급히 변명조로 말을 건넸다.
“물론 그 아이가 그자가 금면신투인 것을 알고 만난 것은 아니고, 다른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모양입니다.”
“하면 그놈을 청룡당에서 잡았느냐?”
“그야 당연히 잡지 않았지요. 그자가 금면신투인지 몰랐다니까요.”
“크험! 아깝구나. 그 도적놈을 잡아서 대환단을 회수해야 하는데.”
남궁천호가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백우선사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뱉었지만, 백우선사는 여전히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결국 남궁천호의 입에서 직접적인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바로 그 대환단을 그 아이가 복용한 모양입니다.”
쾅!
“뭐야! 아니, 이런 때려죽일 놈이 있나! 누구 마음대로 대환단을 복용해!”
장거운이 대환단을 복용했다는 남궁천호의 말에, 백우선사는 얼마나 화가 나는지 다탁을 내려치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사문의 지보인 대환단이 날아가 버린 것이니 그토록 화를 낼 만한 일이었다.
남궁천호가 백우선사를 달래기 위해 말을 건넸다.
“진정하십시오. 그 아이가 알고 먹은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해 뻗어 있는 사이에 금면신투 그자가 강제로 복용을 시킨 모양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다른 사람을 술에 취하게 하고는 강제로 대환단을 복용시킬 미친놈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금면신투 그자가 그렇게 했다니까요!”
“천호, 이놈아! 지금 그게 말이 되냐?”
남궁천호가 언성을 높이며 대꾸를 해 보지만, 백우선사는 좀처럼 화가 식지 않는지 여전히 흥분해서 고함을 질렀다.
백우선사가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자 남궁천호도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뱉고 있었다.
“아무튼, 거운이 그놈은 제가 데리고 있어야 합니다.”
“이놈이, 산서 촌구석에 있다가 오더니 북방귀신이 붙었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게냐? 끼고돌 놈을 끼고돌아야지, 속가를 사칭한 데다 대환단을 꿀꺽한 놈을 감싸고돈단 말이냐?”
백우선사가 장거운을 보호하려는 자신에게 힐난을 퍼붓자 남궁천호의 언성도 높아지고 있었다.
“속가 사칭은 아니라니까요! 속가를 사칭한 놈이 어떻게 나한십팔세를 익히고 있습니까?”
“뭐야? 그놈이 나한십팔세까지 훔쳐 배웠어?”
“훔쳐 배우기는 뭘 훔쳐 배웁니까? 무상곤법까지 익히고 있는 녀석인데, 무상곤이 훔쳐 배울 수 있는 절기입니까?”
“지, 지금 뭐라고 했느냐? 그놈이 어찌 무상곤을 안단 말이냐?”
장거운이 무상곤을 익히고 있다는 말에 백우선사는 얼마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반문을 했다. 무상곤은 본산의 제자라 해도 아무나 익힐 수 있는 절기가 아니었다. 물론 속가를 사칭하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상곤에 입문을 하기 위해서는 소림의 곤법이 극성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고, 아무튼 냉면섬창 악우진이 직접 두 눈으로 봤다고 하니까 녀석이 무상곤을 펼친 건 확실한 모양입니다.”
남궁천호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악우진의 이야기를 전하였지만, 백우선사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는 표정이었다.
“미친! 나도 무상곤은 못해! 이놈이 진짜 북방귀신이 붙었나, 계속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말이 안되는 게 아니고, 영기 말로는 거운이 그놈이 제 입으로 역근과 세수를 익히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영기가 직접 진맥을 해 보니까, 거운이 그놈을 누가 벌모세수를 해 줬는지 세맥이 타통되어 있다고 하던데, 혹시 본산의 장로님들 중에 누가 그 아이를 키우면서 가르쳤을 수도 있잖습니까?”
남궁천호가 다시 당영기에게 들었던 말을 전하자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백우선사의 표정이 급변하고 있었다.
“뭐? 역근과 세수에 벌모세수라고? 호, 혹시 다른 이야기는 없었느냐?”
갑작스럽게 변하고 있는 백우선사의 표정을 보며 남궁천호는 장거운에 대해 계속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거운이 녀석을 제가 정주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곳에 있는 조림사라는 작은 암자에서 스님인 할아버지 밑에서 컸다고 하였습니다. 가끔 무당의 도사 할아버지도 놀러 왔다고 말한 것으로 보면 무당의 장로 한 분과도 꽤 친한 분이신 것 같은데, 혹시 아시는 분 없으십니까?”
남궁천호의 말이 끝나자 백우선사는 안색이 흙빛이 되어 다시 반문을 하고 있었다.
“조, 조림사라고 했느냐?”
“예, 사대금강이 그 이름도 소림을 능멸하는 것이라고 화가 단단히 났다고 합디다.”
“이런 젠장! 왜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
“예? 혹시 뭐 생각나시는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백우선사가 경악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남궁천호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묻고 있었다.
백우선사는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태세로 다급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염병할! 어쩐지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용정차가 어쩌고저쩌고 하시더니, 사대금강 그 죽일 놈들, 지금 어디에 있느냐?”
“사대금강이야 맹에 있지요. 오후에 집법회의가 있으니 맹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근데 왜 사대금강이 죽일 놈이 됩니까?”
“가자!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자!”
백우선사의 신형은 이미 사라지고 그가 내뱉은 말만 허공에 남아 맴돌다 뒤늦게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