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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영주가 폭정으로 힘들게 할 때마다 테베스를 따르는 농노들의 수는 점점 늘어 갔다. 그리고 이제는 베그다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마을 대부분의 남자 농노들이 테베스를 따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가?”
베그다는 벌써 50살이 넘었다. 평민들의 평균 수명이 50살인 점을 감안한다면 베그다는 벌써 평균 수명만큼은 산 셈이었다.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그동안 자신과 같이 동고동락해 온 농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것을 그 역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은 다해야지. 그러고 나서 그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베그다는 굳은 표정으로 단상을 내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베그다의 집에는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것들이 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해서 말이다.
연금술사란 연금술에 대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연금술이란 구리, 납, 주석 따위의 비금속으로 금과 은과 같은 귀금속을 제조하는 기술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화학에 대한 기술이 발달하게 된 연금술사들은 다양한 영약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야금술을 통해서 합금술을 발달 시켜서 더 가볍고 강력한 금속을 찾아냈다.
베그다는 그중에서 폭발에 관한 연구에 주력했다. 베그다가 계속 고집을 피우며 농노 밀집촌에 산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농노 밀집촌과 가까운 곳에 유황이 많은 동굴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유황을 캐낸 베그다는 다년간 연구를 통해서 꽤 폭발력이 강력한 폭탄을 제조해 냈다.
베그다는 그 폭탄이면 영주와 기사, 병사들로부터 농노들을 지켜 낼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굳은 표정의 베그다는 자신이 만든 그 폭탄을 가지러 자신의 집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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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는 군영이나 대형을 갖추고 있을 때 기사와 병사들을 철저히 통제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 크루거의 습성을 알고 기사와 병사들은 막무가내로 행동했다. 그들이 사고를 쳐도 그들의 영주는 그들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영지와 달리 농노 밀집촌은 농노들이 사는 곳이었다. 농노란 영주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영주 휘하의 기사와 병사들에게도 농노들은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상관없었다.
“아아악!”
“흐흐흐. 예쁘장하게 생겼군.”
기사와 병사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괜찮게 생긴 젊은 여자는 다 끌어내서 아무 곳에서나 욕심을 채웠다. 마을은 데우스와 병사들의 강탈과 영주가 데려온 기사와 병사들의 강간으로 인해 온통 난장판으로 변했다.
이때 크루거는 막 점심 식사를 끝낸 상태였다. 크루거의 옆에서 그가 식사하던 것을 줄곧 지켜보고 있던 총관 게르만이 크루거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자 하녀들에게 명했다.
“어서 치우고 차를 대령해라.”
하녀들이 음식들을 치우고 나자 크루거가 게르만에게 물었다.
“세금은 다 준비됐나?”
“그, 그것이…….”
크루거의 물음에 게르만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크루거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문제야?”
문제는 데우스가 특별 세금을 거두는 것을 몰랐던 데 있었지만 게르만은 그 사실을 그대로 크루거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시, 실은 그 베그다란 자가 농노들을 선동하는 바람에 세금을 거두는 것이 좀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 잘못을 다른 자에게 전가시키는데 이골이 난 게르만이었다. 게르만은 베그다를 희생시켜서 데우스의 잘못을 숨기려 하고 있었다.
“뭐라고?”
크루거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베그다라면 그 연금술사 영감 말이로군. 내 논에 수차를 만들고 방앗간을 지은 것을 기특하게 여겨서 마을에 계속 살게 해 주었더니, 그 영감이 기어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군 그래. 당장 그 영감을 잡아들이고 세금을 내지 않은 자들은 모조리 잡아들여라.”
크루거의 명에 게르만이 즉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게르만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렸다. 집 밖으로 나온 게르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명했다.
“당장 기사와 병사들을 불러라.”
총관의 명령에 재수 없게 즐기지도 못하고 영주를 지키고 있던 병사 중 하나가 허리에 차고 있던 긴 나팔을 불었다.
뿌우우우!
나팔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자 마을 여자들을 상대로 끔찍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황급히 옷을 추스르고 영주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나팔이 울린 후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기사와 병사들이 집결해서 대열을 갖추었다.
대형을 갖추고 대기 상태에 있는 기사와 병사들에게 총관인 게르만이 다가가서 크루거의 명령을 전달했다.
“베그다란 연금술사 영감을 잡아오고 세금 내지 않고 버티는 자들 몇 놈 잡아와.”
그때 무기도 어디다 버렸는지 맨손으로 마을 병사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소리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폭동입니다, 폭동!”
“폭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총관이 다급히 묻자 그 병사가 창백히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농노들이 무기를 들고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덜컹!
그 소리를 들었던지 집안 문을 박차고 크루거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마을 병사는 자신이 본 것을 소상히 크루거에게 설명했다. 그때 크루거 옆에 있던 게르만이 사촌 동생이 걱정되었던지 황급히 그 마을 병사에게 물었다.
“데우스는?”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폭동이라? 후후후. 웃기는군.”
크루거의 입가에 조롱 어린 미소가 어렸다.
데우스는 마을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병사들과 같이 닥치는 대로 돈 될 만한 물건이며 식량, 가축들은 뺐었다.
논에 일하러 간 농노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반발이 거셀 테지만 지금 데우스에게는 당장 영주인 크루거에게 세금을 주고 마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시급했다. 다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데우스가 한창 마을을 뒤지고 다닐 때 크루거의 기사와 병사들이 마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들을 잡아서는 몹쓸 짓을 해 댔다. 하지만 마을 관리인 데우스와 마을 병사들은 농노들을 지켜 주기는커녕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했다.
얼마 후, 나팔 소리와 함께 기사와 병사들이 영주가 있는 데우스의 집으로 몰려갔다. 그때 데우스와 마을 병사들도 뜯어 낼 만큼 뜯어 낸 터라 지금까지 뺏은 것을 챙겨서 돌아가려 했다.
“저기다. 저기 데우스와 병사들이 있다.”
농노 몇 명이 나타나서 소리를 쳤다.
“아니, 저놈이 감히 내 이름을…….”
관리인 자신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막 불러 대는 농노를 보고 데우스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저 새끼 잡아와! 어서!”
“네.”
병사 네 명이 그 농노를 잡으러 뛰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곧 걸음을 멈춰야 했다. 잡으려던 그 농노 앞으로 갑자기 수십 명이 넘는 농노들이 손에 무기를 든 채 나타났던 것이다.
“뭐, 뭐야?”
데우스와 마을 병사들이 놀라고 있을 때였다.
“데우스다. 잡아라.”
“와아아아!”
농노들의 수가 계속 늘어났다. 그것도 모두 손에 무기를 든 채 말이다. 그 수가 순식간에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데우스와 마을 병사들은 10명밖에 되지 않았다. 100여 명의 농노들이 우르르 다려들자 데우스와 병사들은 덜컥 겁을 집어 먹었다.
“가, 가자.”
먼저 데우스가 꽁무니를 내렸다.
“그럼 이것들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강제로 뺏은 물건이며 식량이 다섯 대 수레에 가득 실려 있었다. 그리고 가축들 역시 병사들의 수중에 있었다.
“죽기 싫음 나두고 튀어.”
눈치 빠른 데우스는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농노들이 폭도들이란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데우스와 병사들은 그동안 거뒀던 것들을 버리고 도망을 쳤다. 그때 데우스는 걸음이 빠른 병사에게 먼저 달려가서 이 사실을 영주에게 알리라고 했다.
뒤이어서 데우스와 병사들이 영주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영주인 크루거와 기사를 포함한 50여 명의 병사들이 전투 준비를 다 끝낸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영주인 크루거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여, 영주님!”
“무기를 든 폭도의 수는 얼마인가?”
크루거가 무덤덤한 얼굴로 데우스에게 물었다.
“제가 본 것만 100여 명이 넘었습니다.”
폭도의 수가 100명도 넘는다는 데우스의 말에 크루거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농노들이 전부 폭동에 가담한 건가?”
성인 남자 농노의 수가 200여 명 정도였다. 그런데 데우스가 본 폭도만 100명이 넘었다는 것은 벌써 반수 이상이 폭동에 가담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농노 전부가 폭동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많은 전투에서 항상 최일선에서 싸웠고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크루거와 그 기사, 병사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농노가 일으킨 폭동 따위는 그들에게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닌 크루거와 다소 여유로운 표정까지 지어 보이는 기사와 병사들을 보면서 데우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데우스의 사촌 형인 게르만이 데우스에게 자기에게 오라고 손짓을 보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데우스는 기사와 병사들 맨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크루거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게르만에게로 걸어갔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게르만이 걱정스런 얼굴로 데우스의 몸을 여기저기 살피며 물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폭동이 일어났는데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어서 영지성에 연락해서 기사와 병사들을 더 오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데우스의 말에 게르만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폭동? 웃기고 있네. 놈들은 곧 깨닫게 될 거다. 얼마나 무모한 짓을 저질렀는지 말이야. 그리고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야. 영주님께 감히 이빨을 드러낸 것을 말이다. 영지성에 사람을 보낼 필요도 없어. 폭도들 따윌 처리하는데 지원은 무슨.”
너무도 자신 있게 말하는 게르만을 보고 데우스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동안 악질 영주인 크루거에게 맞서 폭동을 일으키려 한 마을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지 못한 것은 다 악질 영주 휘하의 기사와 병사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악질 영주 크루거의 폭정에 견디지 못한 농노들이 가장 먼저 루멘스 영지 내에서는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와아아아!”
데우스가 도착하고 나서 얼마 후 함성 소리와 함께 폭도들이 나타났다.
“저기다!”
“헉! 영주다!”
폭도로 돌변한 농노들의 수는 대략 50여 명 정도 되었는데 도망치던 데우스와 병사들을 쫓으며 한껏 흥분한 그들은 그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영주와 그 기사, 병사들을 보고 일단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한 번 기세가 오른 그들은 그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저자가 그 데라도스의 개다! 우리가 잡자!”
“그래! 저놈만 잡으면 우린 자유다!”
자유란 말에 농노들은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았다.
“와아아아!”
50여 명의 농노들이 우르르 크루거와 그 휘하 기사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크루거는 겁도 없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농노들을 보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
하지만 그 표정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루거는 누구든 자신을 향해 무기를 겨눈 자는 결코 살려 두지 않았다. 그것이 기사든 병사든 농노든 상관없었다.
‘다 죽여 주마!’
크루거가 막 검자루를 손에 쥐려 할 때였다. 크루거가 신임하는 기사 웨든이 나섰다.
“영주님의 검에 피를 묻히기에 너무 천한 자들입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크루거와 같이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했던 웨든이라면 믿을 만했다. 웨든의 말에 크루거가 잡고 있던 검 자루에서 손을 놓자, 웨든이 검을 뽑아 들고 앞쪽을 가리키며 크루거를 대신해서 명했다.
“전방에 밀집대형으로 헤쳐 모여.”
웨든의 명령이 내려지자 기사를 제외한 병사들이 우르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크루거의 병사들은 기병들이기 앞서서 전부 보병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농노들과 달리 튼튼한 갑옷을 걸치고 있었고, 또 수중에는 방패와 창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롱 소드 보다는 짧고 검면이 두꺼운 검을 차고 있었다. 방패는 둥근 원형으로 웅크리고 앉으면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