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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와아아아!”
30여 명의 중무장한 병사들이 막 공터의 한복판을 지날 때였다.
콰앙!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밀집 대형을 갖춘 채 돌격하던 병사들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폭발은 순식간에 십여 명의 병사들의 몸을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주위의 병사들 역시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대부분 쓰러졌다.
“헉!”
폭발 후 서 있는 병사들은 지휘관인 웨든과 같이 약간 뒤쪽에 쳐져 있던 다섯 명의 병사들뿐이었다. 그때 공터로 데우스를 앞장세운 채 크루거 일행이 나타났다.
데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크루거 일행은 농노들과 병사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연금술사 베그다의 집으로 움직였다.
“저기입니다.”
데우스가 다른 허술한 집들과 달리 마을에서 유일한 2층집인 베그다의 집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 폭발이 일었다. 그 폭발 소리에 크루거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어서 움직여라. 어서!”
크루거의 외침에 데우스가 베그다의 집 쪽으로 뛰었다. 잠시 후 크루거 일행이 공터에 도착했을 때 공터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폭발에 휩쓸린 십여 명의 병사들은 죽거나 다쳐서 공터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폭발에 떠밀려 쓰러진 병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와아아아!”
설상가상으로 베그다의 집 앞에 모여 있던 농노들이 함성과 함께 병사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은 앞서 허망하게 죽은 농노들과는 달랐다. 눈앞의 병사들이 어떤 식으로 참혹하게 동료 농노들을 학살했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지켜봤던 농노들이었다.
그런 농노들에게 더 이상 살인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눈앞의 병사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 깨닫고 있었다. 농노들도 이제 병사로 거듭 난 것이다.
퍽!
농노가 휘두른 도끼가 사정없이 병사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크악!”
병사가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힘껏 내려친 도끼를 감당해 내지는 못했다. 투구가 찌그러지고 병사의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푹!
커다란 포크처럼 생긴 삼지창이 병사의 배에 박혔다. 병사의 가죽 갑옷도 힘껏 돌진해서 내지른 삼지창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크아아악!”
농노들의 공격에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기사 웨든과 다섯 병사들, 그리고 크루거를 지키던 네 명의 기사들이 그냥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공터로 뛰어들자 농노들이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기, 기사들이다!”
“물러나라, 물러나!”
농노들은 기사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들인지, 그들에게 무턱대고 덤벼들면 어떻게 되는지 불과 얼마 전 직접 겪어 봐서 잘 알았다.
“후퇴, 후퇴!”
이때 병사들의 지휘관인 웨든이 소리를 치자 농노들의 공격을 받지 않은 나머지 병사들이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십여 명의 병사들이 농노들에게 희생된 뒤였다. 뒤로 물러난 병사들은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30여 명의 병사들이 다시 폭발과 농노들의 공격에 십여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아직 기사가 5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분노한 영주 크루거가 있었다.
“이놈들이…….”
두 번의 폭발과 농노들의 공격으로 자신의 눈앞에 쓰러져 있는 20여 명의 병사들을 보면서 크루거의 눈이 뒤집어져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쐐애액!
크루거의 전면에서 창이 빠르게 날아왔다. 창의 궤적은 크루거를 벗어났다. 때문에 크루거는 움직이지 않았다.
퍽!
창은 그대로 크루거의 옆에 있던 마을 관리인 데우스의 입을 꿰뚫었다.
“꿰엑!”
창에 입을 관통당한 데우스는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피거품을 토하며 쓰러졌다.
“데우스!”
총관 게르만이 대경실색하며 쓰러진 데우스를 부축했다. 하지만 데우스는 이미 즉사한 상태였다.
“이 새…….”
그 모습에 격분한 크루거가 막 욕을 내뱉으려던 순간 그의 가슴팍으로 묵직한 뭔가가 날아들었다. 크루거는 겉옷 속에 갑옷은 물론 두 손에도 질긴 가죽에 쇠 미늘을 붙여 만든 건틀렛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늦었다.’
데우스가 창에 맞아 죽고 총관 게르만의 움직임을 지켜보느라 잠시 방심해서 앞쪽에서 시선을 뗀 것이 화근이었다. 몸을 피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한 크루거는 재빨리 손을 들어서 가슴을 보호했다. 투창은 여지없이 그의 가슴을 찔러 들어왔다.
콰직!
둔중한 충격에 크루거는 손등이 얼얼했다. 마을 관리인 데우스에 이어서 두 번째 투창은 크루거의 가슴을 노렸다.
“이것들이!”
크루거의 눈에서 살기가 폭사되었다. 크루거는 자신을 향해 창을 던진 농노를 곧 죽일 듯 쏘아보았다. 그때였다.
슝! 슝! 슝!
이번에는 화살 세례였다. 지붕 위에서 10명의 농노들이 기사와 살아남은 병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방패를 들어서 화살 공격을 막아냈고 기사들은 검으로 화살들을 쉽사리 쳐냈다.
“아주 작정을 했군. 함정을 파놓고 우릴 기다린 것인가?”
지붕 위에서 화살까지 쏘아대는 것을 보고 크루거는 폭도들이 파 놓은 함정에 어이없게 걸려들었음을 깨달았다.
슝! 슝! 슝!
그런데 화살의 방향이 갑자기 영주인 크루거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크루거는 아직 검도 뽑아 들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은 화살을 막을 수 없으니 피해야 했다. 크루거는 이를 악물고 빠르게 지그재그 스텝을 밟으면서 뒤로 물러나다가 오른쪽 무릎을 축으로 회전하면서 날아오는 화살 공격을 피해 냈다.
하지만 모두 피할 수는 없었고 두 개의 화살이 그의 옆구리와 허벅지를 맞혔다.
티팅!
그러나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일반 병사들이 입는 가죽 갑옷이 아니었다. 강철로 제작된 갑옷에 맞아 화살이 튕겨 나갔다.
크루거에게 창을 던진 주인공은 바로 테베스였다. 테베스는 뜻밖에 영주인 크루거가 공터에 나타나자 눈빛을 빛냈다.
“저자만 죽인다면…….”
테베스가 주위를 둘러보자 창을 들고 있는 농노들이 보였다.
“어서 그 창을.”
테베스의 외침에 농노들이 들고 있던 자신들의 창을 테베스에게 건넸다. 테베스는 그중 창 하나를 챙겨서 크루거를 향해 투창했다.
테베스는 실전에서도 여러 차례 투창으로 적 지휘관을 잡은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창대가 휘어져 있어서 첫 번째 창은 테베스가 아닌 그 옆에 서 있던 마을 관리 데우스를 맞혔다.
테베스는 아쉬워하면 다른 창을 받아서 다시 투창했다. 두 번째 창은 정확히 크루거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됐다!”
테베스의 환호성과 달리 창은 크루거의 가슴에 맞고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창이 크루거의 건틀렛에 맞은 것이다. 농노들이 만든 창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창은 크루거의 건틀렛도 뚫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테베스가 경악하고 있을 때 크루거가 날카로운 눈으로 투창을 한 테베스를 쏘아보았다. 바로 그때 지붕 위에 올라간 농노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몰래 만들어 온 화살을 쏘았다.
그것을 보고 테베스가 소리쳤다.
“저기 영주부터 쏘십시오!”
테베스의 외침에 지붕 위의 농노들이 일제히 크루거를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지붕 위의 농노들이 화살을 재장전할 때 크루거는 이미 검을 뽑아 들었다. 화가 날 대로 난 크루거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들을 간단히 검으로 쳐 내며 소리쳤다.
“다 죽여! 쓸어 버리란 말이다!”
크루거의 명령에 웨든을 비롯한 기사 다섯과 살아남은 십여 명의 병사들이 베그다의 집 앞에 모여 있는 농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사들은 화살 공격을 막기 위해 병사들이 사용하던 방패를 한 손에 들고 돌진했고 병사들은 밀집대형을 유지한 채 돌격했다.
그런 그들의 맨 뒤에 크루거가 있었다. 크루거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은 보지도 않고 간단히 검으로 쳐 내며 뛰지도 않고 빠르게 걸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공격해 오는 기사와 병사들을 보고 테베스가 내릴 수 있는 명령은 하나뿐이었다.
“공격!”
“와아아아!”
40여 명의 농노들이 일제히 기사와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맨 앞에는 테베스가 섰다.
“기사들에게 거리를 내주지 마라!”
테베스는 물러나면서 어떤 식으로 기사들을 상대해야 하는지 농노들에게 주지시켰다. 때문에 농노들은 대놓고 기사들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반면 밀집 대형의 병사들에게는 괴성과 함께 적극적으로 돌진했다.
콰콰쾅!
앞서와 달리 밀집 대형의 병사들에게 달려든 농노들은 들고 있던 도끼로 사정없이 방패를 내려찍었다.
“크윽!”
그러자 방패를 들고 있던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 나왔다. 병사들의 방패는 대개 나무 위에 철판을 덧댄 것이었다. 얇은 철판이 도끼를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도끼가 그대로 방패를 뚫고 병사의 팔을 부러트려 버렸다.
하지만 노련한 병사들은 방패를 비껴들어 도끼 공격을 흘려 냈다. 그때 도끼 공격을 가했던 농노 한 명이 소리쳤다.
“후퇴!”
테베스에 의해 뽑힌 힘 좋은 농노들이 도끼로 밀집 대형의 방패를 부수고는 도끼까지 버리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때문에 도끼 공격에 이어 반격을 가하려던 병사들은 멍하니 선 채 목표물을 놓쳤다.
“전진!”
하지만 병사들은 도끼 공격에 팔을 다친 병사는 뒤로 빼고 밀집대형을 갖춰 농노들을 향해 움직였다.
힘 좋은 농노들이 도끼로 밀집 대형의 병사들을 상대할 때 나머지 농노들은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기사들을 상대했다.
농노들은 전부 창으로 무장한 채 자신이 맡은 기사가 접근하지 못하게 계속 찔러댔다.
“이 자식들이!”
격분한 기사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면 농노들은 대놓고 도망을 쳤다. 하지만 기사는 계속해서 그 농노들을 쫓지 못했다. 다른 농노들이 기사 뒤와 옆에서 창을 찔러 댔으니 말이다.
그러자 기사가 공격해 오는 농노들의 창을 검으로 자르려 했다. 하지만 농노들은 자신들의 목숨과 같은 창이 잘리지 않게 조심해서 기사를 위협했다.
차차차창!
그때 테베스는 기사 한 명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놈들이 곧 내 의도를 눈치챌 것이다.’
농노들이 기사들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기사들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테베스가 유일했다. 해서 테베스는 다른 농노들이 기사들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동안 자신이 차례로 기사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무슨 평기사가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테베스의 계획은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크루거의 기사가 너무 강했던 것이다. 물론 테베스가 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렇게 되면 예상보다 기사들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테베스는 보통 용병이 아니었다. 그는 용병 시절 운 좋게 마나 수련을 받을 수 있었고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웬만한 영지의 기사단장 자리는 얼마든지 맡을 수 있었다.
그런 출중한 실력을 갖춘 테베스가 노예가 되었다가 다시 농노로 이곳에 살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테베스의 고향인 세리아 마을에는 소수 부족이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그룬족이라 했고 사람들은 흔히 빅맨이라고 불렀다.
그룬족의 그룬은 고대어로 ‘위대한’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룬족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덩치도 우람했다.
테베스는 바로 그 그룬족 출신으로 태어났다. 그러다가 사연이 있어 마을을 떠나게 되었고 용병으로 전전하다가 역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노예가 되었다가 도망쳐서 이곳 농노 밀집촌까지 오게 되었다.
테베스에게 이곳은 피신 장소였다. 보통 사라진 노예는 3년까지 잡지 못하면 노예 명부에서 그 이름이 지워졌다.
그 3년이 바로 어제였다. 테베스는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니었다.
차차차창!
테베스가 상대하는 기사는 마나를 사용할 줄은 알았지만 아직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도 오르지 못한 햇병아리 기사였다. 하지만 테베스도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째든 상대는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기사란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