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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창! 촤창! 창!
차분하게 기사의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내던 테베스가 갑자기 몸을 날려 상대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헉!”
혼비백산한 기사가 급히 몸을 틀었지만 이미 테베스의 어깨가 가슴팍에 맞닿아 있었다.
콰쾅!
폭음과 함께 기사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어깨로 가볍게 툭 건드린 것 같은데도 기사의 가슴팍에 흉갑이 움푹 껴져 있었다. 역시 힘에서 기사는 테베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은 기사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지만 테베스는 그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달려들어 몇 차례 검을 섞은 테베스가 틈을 보아 기사의 발을 잽싸게 걷어찼다.
“큭!”
설마 상대가 발을 찰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사의 몸이 볼썽사납게 벌렁 나자빠졌다.
퍽!
급히 몸을 일으키던 기사는 투구에 강력한 일격을 맞고 또다시 뒤로 나가떨어졌다. 테베스가 기다렸다는 듯 무릎으로 강타해 버린 것이다.
그 무릎에 맞은 기사는 맞은 쪽 투구 한쪽 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상태로 떨어져 나갔다. 입에서 질펀하게 피가 흘러나왔지만 기사는 질 수 없다는 듯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근성 하나는 알아줄 만했지만 애석하게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더 상대해 줄 수 없어 애석하군.”
말을 마친 테베스가 기사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마나를 머금은 테베스의 검이 기사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기사는 몸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몸을 떨다가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테베스가 검을 뽑자 기사의 몸이 맥없이 허물어졌다.
“와아아아!”
테베스가 기사를 쓰러트리자 주위 농노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때 농노들에 둘러싸여 있던 기사 웨든이 소리쳤다.
“글루버!”
죽은 기사는 바로 기사 웨든의 친동생이었다. 격분한 웨든이 죽은 글루버가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놀란 농노들이 웨든을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농노들이 내지르는 창을 웨든이 그대로 몸으로 맞으며 내달렸던 것이다.
등과 한쪽 팔을 창에 찔렸지만 웨든의 튼튼한 갑옷이 어느 정도 부상이 심하지 않을 선에서 막아 주었다.

웨든이 테베스 앞에 섰다. 테베스의 발아래는 싸늘하게 죽은 기사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웨든의 시선이 그 죽은 기사에게서 테베스에게로 옮겨졌다.
“네놈이 감히…….”
웨든이 검을 치켜들자 테베스가 죽은 기사에게서 비켜나며 검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테베스는 원래 왼손잡이였다. 앞서 기사를 상대할 때 테베스는 오른손을 사용했다. 하지만 눈앞의 웨든을 상대할 때는 왼손으로 검을 고쳐 쥐었다.
‘강한 자다.’
기사 웨든은 테베스도 경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기사였다. 웨든 역시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 있는 기사였던 것이다. 테베스가 검을 왼손으로 바꿔 쥐는 것을 보고 웨든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흥분했던 그의 가슴이 천천히 안정을 되찾아 갔다. 기사 웨든도 눈앞의 테베스가 강자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어떻게 너 같은 자가 농노일 수 있단 말이냐?”
웨든의 말에 테베스가 싱긋 웃었다.
“지금 너하고 느긋하게 대화나 나눌 때가 아니어서 말이야.”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테베스의 검이 불쑥 웨든의 눈앞으로 나타났다.
촤창!
바로 검과 검이 맞부딪쳤다. 병기에 서린 자줏빛과 노란빛의 마나가 서로 작렬하며 스파크를 만들어 냈다.
파파파팟!
빠른 속도로 부딪히며 나눈 한 차례 공방에서 기사 웨든과 테베스는 서로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인정했다.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테베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이었다. 농노들의 포위 공격에 주춤 했던 기사들이 테베스에게 동료 기사가 죽자 완전 사납게 농노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차앗!”
기합과 함께 테베스가 먼저 몸을 날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웨든이 테베스의 검을 맞받았다.
창! 촤차앙! 창!
병기가 연속적으로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웨든의 검을 튕겨 낸 테베스의 검이 날카롭게 웨든의 어깨를 일직선으로 찔러 왔다. 그러자 웨든이 몸을 틀었는데 그때 테베스의 검의 궤적이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헉!”
용병 출신인 테베스의 변칙적인 검술에 웨든은 적잖게 놀랐다.
콰직!
웨든이 최대한 몸을 틀었지만 테베스의 검은 웨든의 왼쪽 견갑을 부수고 그의 어깨에 상처를 만들었다. 테베스의 검은 변칙적이었지만 그 검에 실린 힘은 엄청났다.
파팟!
어깨가 베이며 피가 튀었다.
‘됐다.’
자신의 변칙적인 공격이 먹혀들자 테베스가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부상당한 웨든을 압박했다.
차차차창!
연속적인 테베스의 공격에 웨든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웨든은 테베스의 파상적인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타앗!”
그때 한 기사의 냉혹한 일갈과 함께 고통으로 일그러진 농노의 얼굴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동시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기사 한 명이 결국 농노들의 포위망을 부수고 농노 세 명을 베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본 테베스의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테베스가 미친 듯이 웨든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웨든은 정신없이 테베스의 검을 막았다. 그러다 뒤로 밀리던 웨든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렸다.
“허억!”
그때를 놓치지 않고 테베스의 검이 웨든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차앙!
그때 테베스의 검이 갑자기 위로 튕겨 올랐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던 웨든은 결국 뒤로 주저앉았다. 그때 웨든의 앞에 누가 서 있었다.
“다, 당신은…….”
테베스는 자신의 검을 튕겨 내고 자신의 앞에 버티고 선 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크루거는 기사 글루버가 테베스에게 당하자 그 형인 기사 웨든이 수비는 도외시하고 곧장 테베스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기사가 평정심을 잃으면 그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고 내 누누이 일렀거늘.’
웨든은 동생의 죽음에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테베스를 상대하면서 웨든은 잃었던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 격돌이 벌어지면서 둘은 치열하게 싸웠다.
그 싸움을 보면서 크루거는 테베스의 실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기사 웨든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저런 자가 농노가 되었단 말인가?’
그때 테베스가 살짝 변칙 공격을 가했고 멍청하게도 웨든이 그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어깨에 부상을 입은 웨든은 계속 테베스에게 밀렸다.
‘저대로 두면 웨든이 위험하다.’
결국 크루거가 테베스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죽어!”
그때 삼지창과 낫을 든 농노들이 겁도 없이 크루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썰미가 좋은 크루거는 상대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바로 크루거에서 화살을 쏴댔던 그 지붕 위의 농노들이었던 것이다.
지붕에서 활을 쏘던 농노들은 동료 농노들과 기사와 병사들의 백병전이 벌어지자 더 이상 화살을 쏘지 않고 지붕에서 사라졌다. 그 농노들이 아래로 내려와서 농노들에 가세하면서 포위망을 뚫은 기사가 다른 기사들을 돕지 못하게 막았다.
테베스로써는 그들의 등장으로 당장 위기를 모면하게 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진짜 재앙은 이때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테베스는 몰랐다.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상대가 누군지 아는 순간, 크루거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잔뜩 집어넣고는 강하게 휘둘렀다.
바우우웅!
크루거의 검이 사나운 울음을 토해냈다. 이어 크루거를 향해 찔러 들어오던 삼지창이 잘리고 낫이 튕겨 하늘 위로 솟구쳤다. 크루거는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파팟!
두 농노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이어서 목을 잃은 두 농노의 몸에서 피가 뿜어졌다.
“으아아아!”
그 피를 뒤집어쓴 한 농노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다가 죽은 병사의 시신에 걸려 넘어졌다. 크루거는 망설임 없이 검 끝을 그 농노의 얼굴에 내려찍었다.
쿡!
검이 얼굴에 박히는 소리가 섬뜩했다.
푸직!
농노의 얼굴에서 뿜어진 피가 크루거의 몸을 적셨다.


4. 농노들의 봉기Ⅲ



신은 불공평하게도 이 악질 영주에게 뛰어난 검술적 재능을 부여했다. 크루거는 성인이 되기 전인 15살의 어린 나이에 벌써 마나를 다룰 줄 알았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벌써 소드 익스퍼트의 실력을 갖춘 유능한 기사였다.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으로 레오폴드 공작의 기사들 중 가장 강한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지금까지 크루거를 상대로 싸웠다가 살아남은 기사는 없었다. 그만큼 1대1의 승부에서 크루거는 최강의 기사였다.
크루거가 순식간에 세 명의 농노를 처치하자 겁을 집어먹은 농노들이 더 이상 크루거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크루거는 여유 있게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바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테베스와 웨든 쪽으로 움직였다.
기사 웨든은 테베스의 변칙 공격에 당한 뒤 변변히 공격도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계속 밀리다가, 운까지 나빠 그만 돌부리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턱!
“허억!”
테베스의 검은 그 행운을 놓치지 않고 바로 웨든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슈욱!
하지만 테베스의 검보다 크루거의 검이 더 빨랐다.
터엉!
크루거는 테베스의 검을 튕겨 냄과 동시에 테베스 앞에 버티고 섰다.
“영주님!”
뒤쪽에서 웨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루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 뒤의 웨든에게 명했다.
“이놈은 내가 맡겠다. 너는 나머지 놈들을 처리해. 그리고 그 연금술사는 반드시 생포하도록.”
“존명!”
웨든이 몸을 일으킨 후, 크루거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 즉시 물러났다.

웨든은 크루거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았다. 테베스도 강하긴 했다. 하지만 크루거에 비하면 그 수준이 달랐다.
웨든은 크루거가 테베스를 철저히 가지고 놀다가 참혹하게 죽일 거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글루버에 대한 복수심도 바로 접을 수 있었다. 테베스는 절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대를 건드린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지금 당장 들고 있는 검으로 내 목을 그었을 것이다.’
여러 차례 크루거와 대련을 해 봤던 웨든은 크루거가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존재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 된 것도 알고 보면 다 크루거의 수련을 돕는다는 핑계로 죽을 뻔할 정도로 심하게 당하면서 오른 경지였다.
‘다시는 영주님과 검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수련이라도, 또 그 검이 목검일지라도 자신에게 검을 겨눈 자에게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는 크루거였다. 실제 대련을 핑계로 웨든은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크악!”
웨든의 검이 번쩍일 때마다 기사들을 포위하고 있던 농노들이 쓰러졌다. 어째든 웨든이 이렇게 강해진 것은 크루거 덕분이니 웨든도 더 이상 크루거에 대해 불만은 없었다. 웨든은 우리를 탈출한 맹수처럼 날뛰었다.
웨든의 활약으로 기사들이 농노들의 포위망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농노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다.
기사들이 활약하면서 농노들의 전투 대형은 금방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병사들이 학살에 동참하면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아아아악!”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도 테베스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기사 웨든 때와 달리 테베스는 크루거에게 먼저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아니, 가할 수 없었다.
크루거의 몸에서 내뿜는 기운은 순식간에 테베스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대외적으로 크루거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알려져 있는 사실일 뿐이었다.
실제 크루거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다. 크루거의 생각대로라면 빠르면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쯤이면 소드 마스터가 될 터였다. 그러니 지금 테베스는 소드 마스터를 눈앞에 둔 엄청난 존재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