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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로마네스 왕국에서 그 초석을 들여오려면 꽤 번거롭겠군. 돈도 많이 들고 말이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 구입 비용은 그리 비싼 편은 아닙니다.”
초석을 구입하는 비용이 비싸지 않다는 말에 크루거가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것 참 다행이로군.”
베그다는 남은 초석 통에서 남은 초석들 다 긁어내서 황과 숯을 혼합시켰다.
“황과 숯, 그리고 초석의 혼합 비율에 따라서 폭발력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 비율은…….”
크루거는 밤새도록 베그다로부터 폭약을 제조하고 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베그다가 만들어 낸 폭탄은 특히 그 배합 비율에 따라서 폭발에 차이가 컸다. 크루거는 특히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합 비율을 베그다에게 집중적으로 배웠다.

폭탄을 만드는 법을 배운 뒤 크루거는 베그다의 도움을 받아서 실제 몇 차례에 걸쳐서 폭발 실험까지 해 보았다.
펑!
폭약이 많지 않아 폭발력은 약했다. 하지만 폭발에 앞서 번쩍하고 일어난 하얀 섬광이 크루거의 뇌리에 너무도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아름답다.’
크루거는 폭탄의 터질 때 그 불꽃과 엄청난 폭발력, 그리고 귀를 찢는 듯 울리는 굉음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초석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폭탄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쉽군.”
크루거 본인에게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베그다로써는 초석이 다 떨어진 것이 천만 다행스런 일이었다.
실제 크루거는 사람을 상대로 폭탄의 위력을 실험하려 들었다. 그래야 정확히 폭탄의 살상 반경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말이다.
그 말은 곧 초석만 더 있었다면 폭탄을 만들어서 농노들을 세워 놓고 터트려 보았을 거란 소리였다.
“수고했어. 하지만 네가 지은 죗값은 치러야 할 거야.”
결국 베그다를 재판대에 세우겠다는 소리였다. 그 말은 곧 베그다를 죽이겠다는 말인데 베그다는 비교적 담담하니 말했다.
“대신 약속대로 아이들은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베그다의 말에 크루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를 바로 재판대에 바로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폭약을 만드는 일을 돕고 나서 네가 필요 없어지면 그때 나는 너를 내 재판대에 서게 할 것이다.”
충분히 이용할 만큼 이용해 먹고 나서 죽이겠다는 소리였다. 듣기에 따라 흥분할 수 있는 말임에도 베그다는 그 말을 의연히 받아들였다.
‘아이들만 구할 수 있다면…….’
베그다는 어쨌든 당장 마을 아이들만 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리고 그 뒤의 문제는 별로 고민스럽지도 않았다.
‘늙은 목숨 하나 끊는 것쯤이야.’
죽었으면 죽었지 베그다는 악질 영주인 크루거를 도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크루거는 베그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영악했다.
“여기 아이들을 두세 명 데리고 갈 것이니 늙은이도 심심치는 않을 것이다.”
크루거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런…….”
그 말을 듣고 베그다의 얼굴에 주름이 심하게 잡혔다. 크루거가 데리고 가겠다는 아이들은 인질인 셈이다. 베그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크루거는 언제든 그 아이들을 죽이려 들 터였다.
‘아! 내가 저자를 너무 쉽게 봤구나.’
베그다는 크루거에게 폭약 제조술과 폭탄을 만드는 법을 알려 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그 내용들은 크루거의 뇌리에 깊게 각인 된 뒤였다.
‘폭탄을 만들어서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전투에서 폭탄을 사용하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폭탄을 구하려 할 것이고, 크루거는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초석을 많이 구해야 해. 제길, 하필 초석이 나는 곳이 타국일 것은 뭐람. 별수 없지. 일단 은밀히 초석을 끌어 모아서 폭탄을 만든 후 몰래 팔 수밖에.’
크루거는 잔머리가 뛰어났다. 어차피 대량으로 폭탄을 만들 수 없다면 크루거는 한정 수량만 폭탄을 만들어서 몰래 유통시킬 생각이었다. 당연히 누가 폭탄을 만들었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말이다.
폭탄을 사용해 보고 나면 귀족들은 너도 나도 폭탄을 구입하려 들 터였다. 그렇게 폭탄의 가격을 올릴 만큼 올려놓고 나서 크루거는 그사이 초석을 다시 구해서 폭탄을 만들 생각이었다.
“흐흐흐. 그때는 부르는 것이 값이 될 것이다.”
폭탄을 통해서 아마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자신에게 폭약 제조술을 전수한 베그다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세상에 폭약 제작술을 아는 건 나만으로 족하다.’
크루거는 일단 베그다를 이용해서 폭탄을 만든 후, 그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5. 마스터 크루거



크루거는 날이 밝자 베그다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마을 관리의 집으로 향했다. 크루거와 밤을 새웠던 베그다는 다시 결박 지어져 농노들에게 보내졌다.
죽은 마을 관리 데우스의 집에는 그의 사촌 형이자 총관인 게르만이 있었다. 게르만은 어제 크루거에게 가슴을 걷어차인 후 데우스의 집에서 상처를 치료받았다.
가슴에 시커멓게 멍이 든 게르만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영주인 크루거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아침 먹고 떠날 것이다. 그러니 준비해.”
크루거는 게르만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고 모른 척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데우스가 사용하던 이제 주인 없는 그 방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방에 들어간 크루거는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물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서 마나 수련을 시작했다.
크루거는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나 수련으로 몸속에 불필요한 노폐물을 배출해 내고 피로 따위를 회복시켰다.
하룻밤 자지 않은 피로 따윈 마나 수련만으로도 충분히 회복이 가능했다.
우우우웅!
마나 수련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루거의 몸 주위로 푸르스름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답게 크루거의 체내 마나량은 대단히 많았다. 그런 크루거가 오늘 따라 체내에 움직이는 마나의 움직임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마나 수련을 시작한 직후였다.
‘너무 빠르다.’
마치 들뜬 듯 체내에 유입되어 마나 홀로 흘러들어 가는 마나가 너무 빨랐다. 뭐든 성급한 것은 좋을 것이 없었다. 마나 유입이 빠른 것은 그만큼 많은 양의 마나가 마나 홀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인데 언뜻 그럼 더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었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았다. 그것은 마나 홀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루거는 마나 홀로 흘러들어 가는 마나가 너무 빠르고 많아 통제가 어려워지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능숙하게 마나 홀 속으로 유입되어 들어온 마나를 조절해 나갔다.
잠시 후 크루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도 비릿한 냄새와 함께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몸속의 노폐물을 모두 배출하고 나자 크루거는 한층 몸이 가뿐해졌다. 대략 30여 분의 시간이 흐르고 크루거는 서둘러 마나 수련을 마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크루거는 다시 몸에 맺힌 땀을 물수건으로 닦은 후 갑옷을 챙겨 입었다. 혼자 갑옷 입는 버릇이 들다 보니 갑옷 입는 것도 옷 입는 것처럼 혼자서도 간단하게 착용이 가능해졌다.
갑옷을 모두 착용하고 나서 크루거는 방을 나섰다.
크루거가 마나 수련을 하고 나서 바로 아침 식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총관 게르만이 식사 준비를 해 놓았다.
크루거는 바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곧장 집 밖으로 나갔다. 크루거가 식사를 하는 사이 총관은 영지성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크루거가 나왔을 때 그 준비도 끝이 났다.
크루거는 곧장 자신의 말에 올랐다.
총관 게르만은 어제 데우스가 거둬들였던 물건들과 식량과 가축들을 모두 챙긴 상태였다. 만약 게르만이 그것들을 챙기지 못했다면 영지성에 가는 즉시 게르만의 목이 성문에 내걸렸을 터였다.
게르만이 세금을 챙기는 사이 기사 웨든과 다른 기사들은 영지성으로 끌고 갈 폭도들을 줄줄이 밧줄로 엮었다.
단 폭동의 주동자인 연금술사 베그다와 테베스는 말이 끄는 죄수용 수레에 갇혀 있었다. 죄수들 뒤로 각종 물건과 식량, 가축을 실은 수레들이 떠날 준비를 마친 채 대기 중이었다.
크루거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가자 총관 게르만이 소리쳤다.
“출발!”
걸어야 하는 농노들을 끌고 가느라 자연 시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출발한 크루거 일행은 오후 무렵 영지성 가까이 도착했다.

아침부터 거의 뛰다시피 했던 농노들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병사들이 말로 그들을 짓밟아 죽일 테니 말이다.
폭도들에 의해 수십 명의 병사들이 희생되었다. 병사들의 눈에 농노들이 마땅찮을 리 없었다.
“어서 움직여.”
퍽퍽!
병사들이 발로 차고 창대로 농노들을 후려쳤다.
“아악!”
비명과 함께 쓰러진 농노들은 벌떡 일어섰다. 그렇지 않으면 병사들이 곧장 말로 짓밟아 버릴 테니 말이다. 다행히 그 악몽 같은 여정도 곧 끝이 났다.
“영주님이시다!”
영지성 망루에서 크루거 일행을 발견한 병사가 비상종을 쳐 댔다.
땡! 땡! 땡!
한 시간여 뒤 크루거 일행이 성문 앞에 도착했다. 성문 안에서 기사와 병사들이 성문 밖으로 뛰어나와 크루거를 맞았다.
“농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놈들인 모양이군요?”
크루거가 없는 동안 성을 지키고 있던 기사 보르탱이 크루거를 맞으며 말했다.
“그래. 저놈들 감옥에 처넣어. 내일 재판한 후 전부 처단할 것이다. 성에 무슨 일은 없었겠지?”
“물론입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크루거는 곧장 성문을 지나서 영주관이 있는 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런 그의 뒤를 총관 게르만과 네 명의 기사들이 뒤따랐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은 기사 보르탱과 성내 병사들과 같이 폭동에 가담했던 농노들을 끌고 감옥 쪽으로 향했다.
“아차, 깜박했군.”
그때 크루거가 뭔가 생각이 난 것이 있는지 기사 하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 뭐라고 그 기사에게 얘기하자 기사가 즉시 말머리를 돌렸다. 그 기사는 기사 보르탱이 감옥으로 끌고 가던 폭동을 일으킨 농노들 무리로 곧장 달려갔다.
“멈춰라.”
“무슨 일인가?”
뒤쪽에서 달려오는 기사를 보며 기사 보르탱이 말을 멈춘 채 기다렸다가 그 기사에게 물었다.
“보르탱 님. 영주님의 명령입니다.”
“영주님의 명령? 뭔가?”
“농노들 중에 영주관으로 데려오라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 그들이 누군지 찾아보게.”
“네.”
크루거의 명령을 받은 기사는 농노들 사이에 있던 연금술사 베그다와 용병 출신 테베스를 빼냈다.
“이들입니다.”
“알았네. 데려가게.”
보르탱은 베그다와 테베스를 기사에게 내어 주고 나서 병사들에게 외쳤다.
“어서 끌고 가라! 이러다가 해 떨어지겠다!”
보르탱의 명령에 병사들이 서둘러 농노들을 밀치며 감옥 쪽으로 끌고 갔다.

영주가 온다는 종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을 치료하고 있던 크루거의 동생 리엔은 황급히 두 시녀들과 같이 영주관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영주관의 현관에서 크루거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잠시 후 말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나서 현관문을 통해 크루거가 나타났다.
“오라버니!”
리엔이 반가운 얼굴로 크루거에게 다가갔다. 크루거도 리엔을 보고 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별일 없었지?”
“네.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요? 어제 가실 때 해지기 전에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음, 그게 말이다… 나중에 얘기하자.”
아무래도 현관에 계속 서서 얘기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크루거가 리엔의 팔을 가볍게 다독이고는 그 옆을 스쳐 지나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럼 저녁 식사 때 자세히 얘기해 줘요.”
리엔이 걸어가는 크루거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알았다는 듯 크루거가 한 손을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