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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오러 블레이드!
이 얼마나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말이던가?
마나를 다스릴 수 있는 경지, 즉 소드 마스터가 되면 몸속의 마나를 검에 주입하여 발현시키는 고도의 기술! 그 엄청난 힘을 이제 곧 얻게 되는 것이다.
‘정신을 한군데에 집중해야 한다. 천천히 막힌 둑을 허문다는 생각으로 마나 홀 속의 마나를 몸 전체로 유도해야 한다.’
크루거는 거금을 들여서 역대 소드 마스터들이 기록한 자료들을 죄다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통해서 소드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어떤 과정들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어떻게 소드 마스터가 되는지 크루거는 이미 알고 있었다.
크루거는 대충 글만 배우면 그때부터 검술에만 집중하는 멍청한 기사들과 달랐다.
크루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드 마스터 중 멍청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즉 죽어라고 수련만 한다고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은 아니란 소리였다.
크루거는 꾸준히 책을 읽었고 다방면에 걸쳐서 학식을 갖췄다. 크루거가 베그다에게 하루 만에 폭약 제작술과 폭탄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루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나 홀 속의 마나를 몸 전체로 유도했지만 마나 홀에서 나온 마나는 거센 밀물처럼 크루거의 몸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 양이 크루거의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콰르르릉!
크루거의 머릿속에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쳤다. 머릿속에 뭔가 막혔던 것이 관통되면서 크루거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크루거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마나 수련법에 따라 엄청난 양의 마나를 몸속 전체로 골고루 유도시켰다. 그런 가운데 크루거 몸속을 도는 마나의 흐름의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무아지경에 빠진 크루거는 마나가 몸속을 휘젓고 순환하는 동안 짜릿한 쾌감을 즐겼다. 그 쾌감이 사그라질 때 크루거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투투투툭!
뼈와 내부 장기들이 움직이며 다시 골격을 갖추고 장기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이어 땀샘을 통해 검은 이물질이 피부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이물질들은 이내 딱딱하게 고체로 굳었고 얼마 후 뱀이 허물을 벗듯 크루거의 피부가 한 꺼풀 벗겨졌다.
그리고 크루거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선명하게 빛을 내뿜었다. 이전에 크루거가 마나를 수련하면 아지랑이처럼 푸른 기운이 피어올랐다면 지금은 몸 전체가 발광체처럼 강렬하게 빛을 뿜어냈다.
크루거는 마나 수련을 통해 몸속을 휘젓고 다녔던 마나들을 서서히 마나 홀로 갈무리했다. 마나는 크루거가 원하는 바에 따라 잘 통제가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마나가 마나 홀로 들어간 후 크루거는 힘없이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크루거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헉!”
화들짝 놀란 크루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순간 크루거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어어!”
크루거가 기겁을 하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크루거는 몸이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그 덕에 크루거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크루거는 제법 큰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지만 전혀 통증은 느끼지 못했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크루거는 즉시 마나 홀을 살폈다.
잠시 후 크루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먼저 마나 홀의 크기가 두 배는 더 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속의 마나량 역시 크루거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았다.
크루거는 떨리는 심정으로 수련장 벽 쪽으로 걸어가서 벽에 걸려 있던 검 한 자루를 챙겨들었다.
스릉!
검집에서 수줍게 속살을 드러내듯 검신이 뽑혀 나왔다. 크루거는 불끈 검자루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검끝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검에 마나를 주입시켰다.
바우우웅!
검에서 울려 퍼지는 검명부터 달랐다. 잠시 후 크루거의 검에서 푸른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악!
그 빛은 크루거의 검을 집어삼키고 더욱 강렬하게 빛을 내뿜었다. 그 모습에 크루거는 너무나도 감격에 겨워 넋을 놓고 할 말을 잊었다. 폭탄 제조술에 이어서 폭탄은 이렇게 몇 달 빨리 크루거를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6. 마른하늘에 날벼락
소드 마스터가 전쟁터에서 발휘하는 위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국가 간의 전쟁에서 소드 마스터 간의 대결은 전쟁의 성패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했다.
크루거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이 죽고 가문마저도 망한 상태였다. 그런 그가 다시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소드 마스터가 되자.’
하지만 사라스 제국에서도 10명도 되지 않는 소드 마스터였다.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은 당시 크루거에게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크루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재능은 탁월했고 노력도 모자람이 없었기에 크루거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쑥쑥 늘어 갔다. 비교적 성장이 빨랐던 크루거는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수련 기사가 되었다.
수련 기사 시절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수련에만 매진했던 크루거는 성인이 되기 전인 15살에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30살이 되기 전에 드디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마나를 다스릴 수 있는 경지인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똑똑!
검에 맺힌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크루거는 수련장 입구 쪽에서 들린 노크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크루거가 마나를 거두자 검에 맺혔던 오러 블레이드도 사라졌다.
“들어와.”
크루거의 외침에 곧 수련장 입구의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병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수련장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영주님. 시간이 벌써 자정입니다.”
크루거는 모든 일에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수면이 부족하면 정신이 맑지 않고 올바른 판단은 물론 검술 수련에도 그 진전이 느렸다. 해서 크루거는 자정이 지나면 꼭 잠을 잤다.
하지만 수련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았고 크루거는 그때마다 수련장을 지키던 병사에게 자정이 되면 알릴 것을 명해 두었다. 그 명에 따라 병사가 자정이 되었음을 크루거에게 알린 것이다.
“알았다.”
크루거는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넣고 벽걸이에 다시 걸어 둔 후 수련장을 나섰다. 크루거는 속으로는 괴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소드 마스터! 내가 그 소드 마스터다!’
하지만 자신이 소드 마스터가 된 것은 당분간 비밀로 해 둘 필요가 있었다.
크루거는 애써 그 비밀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다. 하지만 그의 입이 근질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그의 유일한 핏줄인 여동생 리엔에게 달려가서 자신이 소드 마스터가 된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리엔이라면 진심으로 그가 소드 마스터가 된 것을 축하해 줄 터였다.
“너무 늦었지?”
하지만 시간이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내일 얘기하자.”
크루거는 흥분한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일을 위해서 억지로 자 둘 필요가 있었다.
내일은 크루거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먼저 농노 밀집촌의 폭동에 가담한 농노들을 재판하고 처벌을 한 후, 다른 마을에 세금을 거두러 가야 했다.
“그놈들 때문에 세금 걷는 것이 이틀이나 차질이 생겼군. 빨리 처리해야겠어.”
크루거는 내일 아침 일찍 재판을 열고 농노들을 처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정한 재판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싶었다.
크루거의 뇌리에는 내일 세금 거둘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아마 재판이 열림과 동시에 농노들의 머리가 차례로 잘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크루거는 바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는데 바로 잠이 든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일이었다.
“이제 돈만 더 끌어모으면…….”
크루거는 그동안 쓸 거 안 쓰고 악질 영주 소리를 들어가며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자신만 아는 비밀 장소에 그 돈을 숨겨 두었다.
크루거는 1만 골드만 모으면 지방 영주 자리를 버리고 수도로 상경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크루거가 모은 돈은 대략 7천 골드였다. 앞으로 3천 골드만 더 모으면 되는데 영지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거둬들이는 세금은 계속 줄어들고 더불어 영지민들의 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이게 다 크루거가 무고한 영지민들까지 다 목을 베어서 생긴 일이었다.
크루거에게 있어 루멘스 영지는 3천 골드만 더 뜯어내면 떠날 곳에 불과 했다.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에 대해 크루거는 눈곱만큼도 애정이 없었다. 그러니 영지 사정이 좋던 말든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폭탄만 만들면 그깟 3천 골드쯤은 금방 벌 수 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 봐야겠군.”
크루거는 특별히 시간을 내서 폭탄을 만들기 위해 폭약 재료 구입에 나설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세금을 일주일 더 빨리 걷어야겠군.”
크루거는 정작 일은 자기가 만들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영지민들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대충 내일 할 일에 대한 생각을 끝내고 나자 크루거는 잠을 청했다. 하지만 워낙 흥분한 상태이다 보니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때 침대 옆에 누가 있다면 말상대라도 되어 줄 텐데 크루거는 수련 기사 시절부터 금욕적인 생활에 익숙해서 잠잘 때 누가 옆에 있으면 잠을 못 잤다.
보통 영주들은 부인 이외에 첩도 두고 영지에서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있으면 몰래 침대로 불러들이는 것이 다반사였다.
크루거도 원기왕성한 성인 남자고 여자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금욕적인 생활을 한 것은 다 그것이 소드 마스터가 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이제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니 더 이상 여자를 멀리할 필요는 없지.”
크루거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그때 누군가 등불을 들고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거기 서라.”
“어머!”
놀란 듯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크루거가 성큼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리엔이 데리고 다니던 두 하녀 중 한 명이었다. 등불 아래 굴곡진 하녀의 몸이 여실이 드러났다.
‘괜찮군.’
크루거가 더 다가서자 하녀는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크루거의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헉! 왜 이러세요!”
하녀는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그런 하녀를 보며 크루거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이름이 뭐지?”
“에바예요.”
그녀가 대답하자 크루거가 대뜸 말했다.
“네가 내 시중을 들어야겠다.”
“네?”
에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녀인 그녀가 알기로 크루거는 다른 건 몰라도 여색은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딴엔 안심하고 영주관에서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크루거의 취향이 바뀐 모양이었다.
크루거가 잡고 있던 에바의 팔을 당기자 에바는 힘없이 크루거에게 끌려갔다. 하녀인 그녀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지금까지 운이 좋아 처녀를 지켜 왔지만 다른 영지였다면 영주나 관리, 혹은 기사들에 의해서 벌써 순결을 잃었을 터였다.
크루거에게 끌려 가면서 에바는 그녀가 모시고 있던 리엔이 떠올랐다.
‘아가씨!’
그때였다. 그녀의 속엣 말을 리엔이 듣기라도 한 것일까?
덜컹!
리엔의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고 잠옷 차림의 리엔이 방밖으로 나왔다.
“오라버니!”
리엔이 크루거를 보고 소리쳤다. 이어 에바까지 발견한 그녀가 의아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때 크루거는 재빨리 잡고 있던 에바의 팔을 놓았다.
“이 시간에 뭐하세요? 에바. 넌 거기 왜 멍하니 서 있어?”
“볼일 좀 본다고. 전 그럼 이만…….”
에바가 눈치껏 크루거를 피해 거의 뛰듯 성큼성큼 걸어서 사라졌다. 그런 에바를 보면서 크루거가 아쉽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자라.”
크루거는 무뚝뚝하게 그 말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