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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그리고 타르트 한 조각
1화
<이야기 시작>
로즈, 용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어? 그 생물체는 말이야, 아주아주 커다랗대. 번쩍거리는 비늘로 덮여 있고 꼬리와 목은 굉장히 길어. 그리고 말이지, 화가 나면 불을 뿜는데 그 불에 닿기만 하면 형체도 없이 녹고 만대. 대단하지?
맞아, 용. 공주님을 구하러 온 용사님과 맞서 싸운다는 그 커다란 괴물이 용이지.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아. 세상에는 나쁜 인간들도 있지만 착한 인간들도 많잖아. 용도 그래. 나쁜 용이 있지만 또 착한 용도 있어.
착한 용이 어딨냐고? 아니야. 착한 용은 말이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대. 그래서 멀리서 아이들을 지켜보다 선물로 풍선을 몰래 보낸대. 주면 돈이나 주지, 웬 풍선이냐고? 하하하!
그리고 말이야, 먹는 걸 아주 좋아해서 과자를 보면 절대로 못 지나친대. 특히 어린 용일수록 단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데. 음, 그래서 말이지……. 로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첫 번째. <풍선이 나타난 곳에는 용이 있다>
“이야기 다 끝났니?”
유리로 된 진열대 위에 얼굴을 묻은 아가씨가 물었다. 금발 머리를 리본으로 예쁘게 묶은 그녀는 눈을 반짝거리는 청년을 보았다. 미인이지만 반쯤 뜬 눈동자는 시큰둥하다 못해 냉정해 보인다. 청년은 한참 들떠 있던 제 얼굴을 문지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지나치게 흥분해 있다는 걸 느꼈다. 곧 눈동자를 밑으로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로즈,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내 눈이 어떤데.”
“꼭 정신 나간 사람 보는 거 같아.”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구나. 로즈라 불린 아가씨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뒤돌았다. 마침 쿠키가 알맞게 익었을 시간이다. 그녀는 장갑을 낀 채 오븐을 열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쿠키가 얼굴을 드러냈다.
쿠키를 꺼내는 사이 청년은 가빴던 숨을 고르고 있었다. 굽슬거리는 갈색 머리칼에 커다란 안경 속 눈동자가 유독 반짝거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얌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토록 흥분한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물론 그의 오랜 소꿉친구인 로즈는 한 번 흥분하면 주체하지 못하는 면모까지 잘 알고 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용을 만날 거야.”
하는 말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무미건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제이.”
제이라 불린 청년은 옅게 미소 지었다. 로즈는 기가 막혀 빤히 보다 입을 열었다.
“용이 이런 작은 산골 마을에 어디 있다고 그래.”
청년은 그저 웃기만 한다. 이미 로즈가 뭐라고 할지 알고 있었나 보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곤 손에 쥐고 있는 걸 내밀었다. 로즈는 구두 뒤축을 들어 살펴보았다. ‘이게 뭐?’ 그녀의 눈동자에 의문이 서린 걸 보고 제이가 입을 열었다.
“애들과 소풍 중에 이게 나타났어.”
그의 손 위에 올려진 것은 붉은색 풍선 조각이었다. 제이의 갈색 눈동자가 뚫어질 듯이 풍선을 본다.
“벌써 이틀째라고. 호숫가에 있으면 색색의 풍선들이 날아올라.”
“마을에 누가 몰래 날려 보낸 거겠지.”
“이틀 내내?”
“…….”
제이가 진열대에 팔을 얹은 채 말을 이었다.
“책에서 봤어. 이건 마법이야.”
“제이.”
“아까도 말했잖아. 아이들을 좋아하는 용은 몰래 풍선을 만들어 보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로즈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풍선 조각을 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소꿉친구는 눈을 반짝이며 서 있었다. 그래서 차마 하려던 말을 내뱉지 못하고 그저 이름을 한 번 더 불러 본다.
“제이…….”
그는 마을에서 유명 인사였다. 그게 영 좋은 쪽으로의 유명한 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이는 괴짜였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걸 유난히 좋아했던 제이는 나중에는 마을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 버렸다. 사람이 너무 책을 많이 읽으면 바보가 된다는 말은 제이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었고, 특히나 몽상에 푹 빠져 멍 때리기 일쑤였다. 도서관에 가면 늘 그가 창문을 보며 몽롱한 표정을 짓는 걸 볼 수 있었다. 로즈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이런 제이가 조금 걱정되었다.
‘너무 꿈속에서 사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로즈는 꿈에서 깨어나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차피 제이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이미 두 손 다 들었던 그녀다. 로즈는 노릇하게 구워진 쿠키를 들었다.
“일단 이거 먹어 봐.”
별 모양의 쿠키를 받아 들고 제이는 눈을 깜빡거린다. 곧 아몬드 색 눈동자에 부드러운 웃음이 담겼다.
“고마워. 맛있겠다.”
활짝 웃으니 보조개가 보인다. 청량한 웃음에 로즈도 그만 마주 웃고 말았다. 저 웃음과 구김살 없는 성격 덕에 사람들은 특이하다고 수군거리면서도 호의가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제이는 기본적으로 상냥한 사람이다. 도서관 사서인 그는 책을 좋아할 뿐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것도 즐거워했다. 그러니 마을 아이들은 유난히 제이를 좋아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 일이 생기거나, 궁금한 점이 생길 시에 제이를 찾는다. 그러면 제이는 곧잘 웃으며 설명해 주는 것이다. 엉뚱한 쪽에 빠지면 지나치게 흥분해서 그렇지, 평소에는 얌전하기 그지없으니 멀쩡해 보이기도 하고. 로즈는 쿠키를 씹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맛있어. 잘 구워졌다.”
“다행이네.”
로즈는 초콜릿을 쿠키들 가운데에 뿌리기 시작했다. 진득하면서 달콤한 초콜릿이 듬뿍 뿌려진다. 제이는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면서 말했다.
“로즈, 네 도움이 필요해.”
“도움?”
제이가 혀에 감도는 단맛을 즐기며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잖아. 용은 단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고.”
“……그런데?”
“네 음식을 이용할 거야. 넌 우리 마을에서 제일가는 제빵사니까.”
‘허어.’ 로즈는 초콜릿을 내려놓고 제 친구를 바라보았다. 제이는 그저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을 보며 그녀의 친구가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로즈는 어이가 없었다.
‘용이라니.’
용. 전설 속에서만 사는 생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 멀리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흉포한 존재들로, 전설의 동물만큼이나 희귀한 종족이다. 인간들은 볼 일조차 없다던, 그나마 본다 해도 왕이나 공주님처럼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이 만날 수 있는 생명체였다. 용은 아주 오만하여, 상대가 왕 정도는 되어야 얼굴을 비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용이 이 작은 산골에 있다고 믿는 제이가 이해 가지 않았다. 있었더라면 진작 다른 마을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렸겠지. 하지만 로즈는 하나하나 따지는 건 좀 귀찮았다. 그래서 무덤덤한 목소리로 다른 걸 물었다.
“뭐, 네 말은 이해 가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 줄게. 그래서 나한테 뭘 바라니?”
제이는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러면서 그는 진열대에 있는 과자들을 가리켰다.
“이거 다 줘.”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로즈가 눈을 크게 떴다.
“뭐?! 죄다?”
“응. 용은 아주 많이 먹을 테니까.”
또 원점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과자들로 무얼 어쩌려는 건지……. 머리가 아프다. 로즈는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알았다, 알았어!” 하고 투덜거리며 등을 돌린 그녀를 보며 제이는 웃었다. 로즈의 허리를 묶은 빨간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본 제이는 더 깊게 웃었다. 그녀의 빨간 리본이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