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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나보다 두 배는 큰 것 같지만.’
제이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찬찬히 관찰했다. 들판에 놓인 음식 주위를 맴도는 용의 눈동자는 예쁜 연두색이었다. 인간의 눈과 달리 세로로 찢어진 모습이 다소 섬뜩했지만 홍채만은 몹시 고왔다.
햇살 아래 빛나는 음식은 유난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만약 그가 나이를 좀 더 먹은 성룡이었으면 단박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들을 한 입도 먹지 않고 두었다는 자체에 의심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린 용은 ‘킁킁’ 하고 냄새를 맡더니 덥석 깨물었다. 제일 처음 먹어 본 건 버터 쿠키였다. 커다란 입으로 쿠키들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그 순간, 용의 동공이 작아졌다.
[……!]
빳빳하게 굳은 모습에 제이는 바짝 긴장했다. 고양이었으면-이 생각이 아주 무례한 게 아닌가 싶은 제이였다-털을 바짝 세운 것과 다름없었다. 용은 그렇게 잠시 동안 바짝 얼어붙은 표정을 짓다가…….
[……!!]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과자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는 그래도 제법 위엄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잎사귀와 크림을 잔뜩 묻힌 채 먹는 걸 보며 제이는 벙 찌고 말았다. 오만하고 현명하고 냉정하다는 종족은 어디 갔어? 먼저 음식을 놓은 건 제이였지만, 그렇다고 굶주린 강아지처럼 먹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하…… 그래도 생각보다…….’
귀엽다. 마음먹으면 자신을 두 동강 낼 것 같은 몸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은 무섭기도, 또 은근히 귀엽기도 했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측은하기까지 하다. 혹시 굶주린 건 아닐까?
그때, 즐겁게 먹던 용이 눈을 댕그랗게 떴다. 용의 시선을 받은 건 바로 큼지막한 딸기 타르트였다. 빠알간 과일들이 가득하게 담긴 노릇노릇한 모습에는 용까지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다른 음식들과 달리 바로 먹지를 못하고 갸웃거리며 구경한다.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먹지’ 하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제이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바삭’ 운이 나쁘게도 제이의 발치에는 나뭇가지가 있었다. 타르트를 구경하느라 용까지 숨을 죽였던 침묵 속에서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제이는 깜짝 놀라 발을 떼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고개를 급하게 든 제이는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는 연두색 눈동자에 말문이 막혔다. 용도 크게 놀랐는지 까만 동공이 더욱 가늘게 찢어졌다.
“저, 저기 그러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이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어어?’ 제이는 더욱 당황해서 그만 뒤쫓고 말았다. 그가 생각한 건 불을 뿜으며 위협하는 용이었지, 허겁지겁 달아나는 모습일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인간 주제에 감히 뒤쫓는 형세를 보이며 소리쳤다.
“잠시만! 잠깐만 기다려!”
용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눈동자는 제이를 한 번 보고 다시 밑을 보고, 또다시 제이를 보았다. 어쩐지 퍽 망설이는 것 같아 제이는 제 발치를 보았다. 용이 한입도 먹어 보지 못한 타르트가 놓여 있었다.
“…….”
‘설마 이걸 못 먹어서 망설이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을 때였다. 머뭇거리던 용은 결국 안 되겠는지 반대편 나무로 숨어 버렸다. 그러나 빼꼼 삐져나온 빨간 꼬리는 채 덤불에 가려지지 않았다. 제이는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저렇게 덩치가 큰데 어떻게 여태 못 찾았던 거지? 풍선이 나타났을 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질 못했는데.
“…….”
“…….”
두 생명체는 서로를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타르트의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제이는 시선을 내려 남은 음식들을 보았다. 응시하는 아몬드 빛 눈동자에 결심의 빛이 어렸다. 과자들 옆에 털썩 주저앉고는 잘린 타르트 한 조각을 들었다.
[……!!]
그러자 꼬리가 좌우로 마구 흔들거렸다. ‘안 돼, 안 돼! 먹지 마!’ 맹렬하게 흔들리는 꼬리는 먹지 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음…….”
제이는 잠깐 망설이다 입을 벌렸다. 그러곤 ‘와작’ 소리와 함께 크게 베어 물었다. 침묵 속에서 타르트 먹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일부러 냠냠 소리 내며 먹성 좋게 먹어 보였다. 그러자 흔들거리던 꼬리가 점점 축 처진다. 그걸 본 제이는 황당함과 폭발과 같은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풉……! 웁.”
급하게 입을 막았다. 아, 안 돼. 웃으면 안 돼. 저 덩치 큰 생물체가 혹 기분이라도 상하는 순간, 화를 입게 될 것이다. 기분 나쁘다고 용이 불을 내뱉기라도 한다면 이십 대의 젊은 나이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이는 먹던 걸 그만두었다. 약 올릴 뜻이 없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대신 반쯤 남은 타르트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덤불 사이에 숨어 있던 연두색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제이는 자신이 잘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용기 내어 말했다.
“먹을……래?”
두 번째. <꽃 이불 그리고 깃털 이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사이로 조금 더 가면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연둣빛 푹신푹신한 잔디 위로 분홍색 꽃잎들이 떨어져 흔들거린다. 언덕 위에는 버드나무처럼 허리가 굽은 벚나무가 있었다. 밤바람의 장난에 가녀린 나뭇가지들이 춤을 춘다. 그럴 때마다 촘촘하게 피어 있던 벚꽃들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꽃잎들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부드럽게 흔들거리다 노란 지붕에 닿는다. 벚나무의 친구, 노란 이층집이다.
언덕 위에 있는 집은 로즈네 식구 것이다. 1층에는 고운 은발을 한 할머니, 로즈 둘이서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 새하얀 옷을 입고 꽃들 속에서 깊이 잠들었다. 그 후로, 로즈는 유난히 제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에서 알아주는 도도한 아가씨는 할머니에게만큼은 어리광쟁이 소녀였다.
2층에는 제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본디 꽤 넉넉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었어도 널찍한 집 한 채 정도는 갖고 있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소년이었던 제이는 혼자 살기를 싫어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나이, 제이는 자신의 친구 집을 찾아가 2층을 쓰겠다고 말했다. 로즈는 그런 친구가 당혹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뒤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노부부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들은 돈을 받는 것도 마다했지만 제이는 금세 집을 팔아 버리곤 꾸준하게 돈을 내었다. 그렇게 노란 지붕 집은 세 사람이 몇 년째 함께 살고 있었다.
따라서 로즈는 머리 장식을 풀어헤치고 하얀 잠옷만 입은 채 제이와 마주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녀는 그저 이 야밤에서야 돌아온 제이가 어이없을 뿐이었다.
“뭐야, 왜 이제야 들어와?”
“미안…….”
그렇게 말하는 제이는 피곤해 보였다. 귀신이라도 홀린 듯 멍한 눈은 대낮에 본 눈과 딴판이다. 인상을 찌푸린 채 보던 로즈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피로한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 무엇 하리. 더 피곤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녀는 밤 귀가 밝은 할머니를 생각해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서 올라가. 할머니 주무셔.”
“으응.”
“……꿀 탄 우유라도 갖다 줘?”
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기다리게 해서 미안. 그럼 올라갈게.”
“알았으면 다음부터는 늦지 마. 들어간다.”
“응, 잘 자. 로즈”
순순한 답에 로즈가 픽 웃으며 답했다.
“너도, 제이.”
두 사람은 인사로 가볍게 볼 키스를 하고 헤어졌다. 제이는 찌뿌듯한 몸을 두드리며 계단 위로 올라갔다. 2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재킷만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눕는다. ‘퉁!’ 소리와 함께 몸이 위아래로 한 번 튕긴다. 제이는 이불을 꽉 껴안으며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푹신한 이불에 파묻힌 채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베이지 색깔의 천장 옆에는 빼곡한 별씨들이 보였다. 커다란 창문 너머 보이는 밤하늘이었다. 제이는 바깥 풍경에 집중했다. 그러자 조용하기만 했던 방 안에 여러 소리들이 빼꼼 올라온다. 새 소리가 간헐적으로 길게 빼며 울어 온다. 그에 맞춰 벚나무가 잔가지들을 부딪쳤다. 꽃잎들이 창문에 찰싹 붙더니 천천히 흘러내린다.
평화로운 광경을 구경하다 제이는 이마를 짚었다. 갑자기 골이 ‘지잉’ 울린다. 새삼스럽게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한 자각이 온 것이다. 그 어마어마했던 사건을 떠올리며 제이는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먹을……래?’
타르트를 건네는 순간, 제이는 아차 했다. 타르트와 함께 팔이 날아가도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과자를 쥐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제이는 마른 침을 연신 삼키며 앞을 응시했다.
다행히 용은 불을 뿜는다든가, 팔과 함께 음식을 삼켜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고민하는 듯 연두색 눈동자를 굴리다 갑자가 기척을 감추고 말았다. 순식간에 사라진 모습에 제이는 당황했지만 감히 뒤져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긴장감이 풀리며 몸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제이는 풀밭에 누워 벌렁거리는 가슴팍을 잡고 ‘으어어’ 신음을 뱉었다.
‘어린 용이었지……?’
분명히 어렸다. 책에서 나온 크기보다 훨씬 작은 데다 동글동글하고 큰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제이는 뺨을 긁적거렸다. 어린 용은 강아지랑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책에 전혀 없던데. 제이는 꼬리로 의사소통하던 용을 떠올리며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
그 어린 용이 이런 산골 마을에 무슨 일일까? 급하게 먹던데 정말로 굶은 건 아니겠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생각들이 줄줄이 꿰어 나온다. 그러다 안경이 이불이 짓눌려 툭 떨어지고 말았다. 제이는 상체를 일으켰다. ‘우선은 잠부터 자자. 욕조에 가서 몸이나 덥히고 있으면 피로가 가실 거야.’까지 생각하며 안경을 쓰던 찰나였다.
제이는 몸을 굳혔다. 그러곤 뿌옇게 변한 풍경에 입을 벌렸다.
“……어?”
사람이 놀라면 말도 안 나온다더니 딱 그렇다. 제이는 침을 삼켰다. 시력이 좋지 않은 그의 눈에 창문이 뿌연 붉은색으로 보였다. 안경을 집어 올렸던 손가락이 가느다랗게 떨린다. 제이는 안경을 쓰고 나서 보게 될 뚜렷한 광경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밤하늘이 보였던 창문이 왜 붉은색으로 변했는지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안경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붉은 몸과 커다란 눈동자에 제이는 혼이 빠져나갔다. 여기서 용케 기절하지 않은 건 놀란 용이 비늘을 바싹 세우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방 안에 있는 사람도, 지켜보던 용도 크게 놀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또다시 먼저 용기를 낸 건 제이였다.
“기, 기다려 봐, 잠시만……!”
제이는 맨발로 바쁘게 방을 돌아다녔다. 책상 위에 두었던 식은 타르트와 쿠키를 챙기고, 커다란 쟁반에 담은 채 창가로 달려갔다. 용은 움찔하면서도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창문을 젖히니 바람과 함께 꽃잎들이 밀려들어 왔다. 봄 향기가 물씬 터지는 밤공기에 제이의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졌다. 침을 한 번 삼키곤 쟁반을 높이 들었다.
“아까 남겨 둔 거야.”
가까이서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제이는 말을 걸고 나서 뒤늦게 후회했다. 아무리 어려 보여도 용이다. 반말은 너무 건방졌나? 쟁반을 들고 있던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때였다. 쟁반 위로 씹는 소리가 들렸다. ‘어라?’ 놀라 눈동자만 올리니 용이 허겁지겁 타르트와 쿠키를 먹고 있었다. 그걸 본 제이는 엉겁결에 쟁반을 더 높이 들었다.
다 먹은 용은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제이도 쟁반을 내리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났다. 그 눈빛의 뜻을 알 수가 없어 제이는 쩔쩔맸다. 그때, 머릿속으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맛있어.]
“어어?”
끝이 살짝 갈라지지만 꽤 예쁜 목소리였다. 제이는 입을 뻐끔거리다 겨우 말했다.
“방금…… 네가 말한 거야?”
그 물음에 용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더니 주위를 둘러본다. 몸짓의 뜻은 명확하다. ‘지금 나에게 한 소리야?’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자 연두색 눈동자가 다시 제이를 본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동그랗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자, 잠시……헉!”
덥석, 용이 제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옷이 주욱 늘어나면서 삽시간에 발이 허공에서 헛발질을 했다. 제이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미처 고함이 목에서 튀어나오기도 전에 다시 땅으로 안착되었다. 그사이 혼이 나간 제이는 비칠비칠 걷다가 풀썩 쓰러졌다.
용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얼굴만 쭉 내밀었다. 생전 처음 보는 생명체와 닿을 거 같아 제이는 ‘으.’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1초 2초 2초……. 달빛 아래 둘은 서로를 응시했다. 잠시 후,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울린다.
[더 줘.]
“어?”
[더.]
못 알아듣겠냐며 약간 답답해하는 목소리다. 그러더니 아프지 않게 주둥이로 제이의 배를 쿡 때렸다. 제이는 기겁하여 그만 용의 얼굴을 잡고 말았다.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붙잡아 두고는, 생각보다 부들부들한 감촉에 깜짝 놀랐다. 털같이 보송한 건 아니었지만 용 비늘은 매끄럽고 탄력이 넘쳤다. 제이가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용은 눈을 깜빡거린다.
[그거 신기해. 씹지도 않았는데 녹아.]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목소리에 기쁨이 실려 있다. 용은 그르렁 소리를 내었다.
[또 줘. 새콤달콤한 거 또 줘.]
칭얼거리는 목소리다. 제이는 상대를 용이 아닌 소년으로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말 그대로 노력에서 끝났다.
“그, 그게 지, 지금 없는데.”
거대한 생명체에게 압도당해 또다시 말을 더듬은 것이다. 정작 그 생명체는 개의치 않은 모양이다. 그저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처음 먹어 보는 거였는데…….]
용이 실망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책들이 경고를 한다. 화가 난 용이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문구들이 퐁퐁 비눗방울처럼 올라왔다. 제이는 기겁하여 손을 마구 내저었다.
“괜찮아! 내일이면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
연두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한다.
[내일?]
“으응…….”
[…….]
“…….”
용은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제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제일 결백한 표정을 짓기 위해 애썼다. 잠시 후, 용은 집을 한번 쳐다보고는 뒤를 돌았다.
[내일 만들어 줘, 그럼.]
그럼 내일 또 오겠다는 뜻인가? 제이는 당황했다. 그리고 별안간 꼬리로 벚나무를 치는 행동에는 질겁하였다. ‘꽥!’ 하고 소리 지른 제이는 급하게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안에 있는 로즈가 깨는 순간, 상황이 더 틀어지고 말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용은 꼬리로 두어 번 쳤다. 그러자 벚꽃잎들이 우수수 수북하게 쌓이고 말았다. 용은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털썩’ 소리와 함께 몸을 웅크렸다. 고양이가 잠을 자듯이 원형으로 웅크린 용은 꼬리로 찰싹 나뭇가지들을 때렸다. 수많은 꽃잎들이 용의 몸을 덮었다.
순식간에 연분홍 꽃이불을 만들어 낸 생명체는 피곤한지 눈을 꼬옥 감아 버리고 만다. 우두커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이는 신음했다.
“맙소사…….”
하루 만에 용을 제 집 앞으로 불러들인 청년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곤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마음 같아선 다시 창문 앞으로 가서 꿈같은 광경을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소동이 걱정돼, 제이는 단 몇 시간이라도 평온을 즐기고 싶었다. 결국 제이는 안경을 대충 던진 채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