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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탕
1화
1장
한 번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겨 본 적 없던 자리였다. 학교 옥상, 노란 물탱크 옆에 자리한 자그마한 평상. 비에 맞고 또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하느라 낡을 대로 낡은 평상이었다. 비야는 가끔씩 수업을 빼먹고 이곳에 와서 낮잠을 자기도 했고, 남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소심하게 하는 나름의 반항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열심히 하는 공부는 비야를 매번 전교 일등의 자리에 올려놓고는 했다. 처음엔 열심히 하는 자신을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모든 걸 알게 된 지금은 섣불리 알은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은체를 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나는 거다. 그것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사랑할 수는 있겠지만, 다 알게 된 자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였다. 아직도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섭다. 무섭고, 겁났다. 그저 맑은 빛이기만 하던 세상은 고작 반년여 만에 잿빛이 되어 버렸다. 칠흑 같은.
‘미쳤구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오빠 자식도 아닌데, 미연 언니 벌주자고 비야를 키웠단 말이야?’
서재에서 들려오는 고모 석희의 말에 문손잡이를 돌리려던 비야의 손이 허공에 멈춰 버렸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금세 손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심장은 요란스럽게 덜컹대기 시작했고, 두 눈은 아프게 시큰거렸다. 그날, 비야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입을 틀어막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래놓고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시작된 잠깐씩의 반항, 어린 일탈,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훗.”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버림받을까 겁이 나서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는 반항이라…….
“…….”
비야는 평상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남학생 옆에 가만히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자, 빨갛게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후우…….”
혼자서 담배를 피운 지 고작 두 주 남짓, 그럼에도 이렇듯 익숙해진 건 무엇 때문일까?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 어쩌면 그것에 벌써 동화되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잠깐만이라도 뿌옇게 흐려진 시간에 빠져 있고 싶었는지도.
“하아…… 하늘은 빌어먹게도 맑구나.”
“잠 좀 자자.”
옆에서 한 팔로 눈을 가리고 누워 있던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비야의 입술에 물려 있던 담배를 빼앗아 자신의 입술에 무는 것이다. 황당한 비야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남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빌어먹게 맑아, 하늘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비야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담배라니…… 전교 일등하고 안 어울리는 거 알지?”
픽 웃으며 남학생이 삐딱하니 말했다.
“나를 알아?”
비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녀는 이 남자애를 알지 못했다.
“너를 모르는 애들은 없어.”
“난 너를 몰라.”
“훗, 그럴지도. 내가 여기로 잡혀 온 지 겨우 열흘 됐거든.”
잡혀 와?
그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달아나면, 숨어 버리면 잡으러 와줄까 하고.
“훗.”
그런 생각이 들자 좀 어이가 없어졌다.
“재밌어?”
그녀의 웃음에 남학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가?”
잠시 생각했다. 뭐가 재미있냐는 거지?
“잡혀 왔다는 말.”
아아.
“아니.”
“웃었잖아.”
“비…… 왔으면 좋겠다.”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우는 걸 들키는 건 싫었다. 그 누구에게라도. 그것이 닿지 않은 저 높은 하늘일지언정.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비…… 왔으면 좋겠다.”
어이없게도 그 같은 말을 하는 비야를 찬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비야에게선 다른 어떤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 그러다 천천히 평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걸음을 떼더니, 그 자리에 멈췄다. 다시 찬에게 다가온 비야는 평상 위에 하얀 박하사탕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담배 한 개비도 같이 놓는 것이다.
“사탕을 널 주면, 이것도 필요가 없게 돼. 그러니 주는 거야.”
그러면서 제 손에 남은 박하사탕을 까서 입안에 넣었다. 한쪽 뺨을 볼록하게 만들어 오물오물. 찬은 그 모양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천천히 걸음을 떼며 멀어지는 뒷모습도, 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교복치맛자락도…… 괜스레 여운이 남았다.
“훗, 웃기는…… 녀석.”
찬은 다시금 평상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래. 비라도 오면 좋겠다.”
과부하가 된 듯 파팟 하며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이 좀 식혀지게. 그래서 숨 좀 쉬게…….
비야가 찬을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날도 마지막 수업을 아프다는 핑계로 빼먹고, 마지막 담배 한 개비와 박하사탕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왔던 참이었다. 조용하게 있고 싶었는데, 옥상은 평소와 달리 난장판이었다. 네 명의 남학생들이 한 아이와 싸우고 있었다. 그 한 아이가 일방적으로 맞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건 불공평했다. 그렇지. 세상은 항상 불공평해. 속으로 중얼거리며 발을 돌리려는 순간 비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강찬, 그 애였다. 그리고 찬인걸 알아차림과 동시에 두 눈이 마주쳤다. 비야는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놀란 눈이 커지고, 가슴은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를 안 순간부터 두려운 건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심장은 무섭게 속력을 올리며 뛰어 대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비야는 잠시 고민을 했다. 저들 속으로 들어가 말려 보아야 하나, 아니면 잽싸게 교무실로 달려가야 하나 하고. 그렇게 비야가 망설이고 있을 때, 찬이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시작되는 발길질들. 순간순간 찬의 시선이 비야에게로 향했다. 아니, 내내 비야에게로 향해 있던 시선이었는데, 발길질을 해 대는 녀석들에 의해 잠깐 잠깐씩 얼굴이 가려졌던 것이다.
“그만해!”
발길질을 해 대는 녀석들의 시선이 일제히 비야에게로 쏟아졌다.
“어?”
다행이었다. 어찌 되었건 때리는 건 멈췄으니.
“야, 일등. 네가 신경 쓸 일 아냐.”
“너는 내려가서 공부나 하지?”
“어인 행차실까, 공부할 시간 아닌가?”
빈정대는 어투로 한마디씩 하는 녀석들을 비야는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 와,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 왜? 일등 너, 저 새끼 이거야?”
한 녀석이 빙글거리며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비야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비야는 긴장하지 않았다. 이딴 녀석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으니까. 무서운 건, 하나였다. 꼭 하나…….
비야는 턱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한 녀석이 비야에게로 바짝 다가온 녀석에게 말했다.
“걔 건드리지 마. 걔네 아버지 누군지 모르냐? 골치 아파지기 십상이야. 이만 내려가자.……조심해, 새끼야.”
찬의 옆구리를 툭 차며 말하는 녀석.
“훗.”
그에 웃었다, 찬은.
“저 새끼, 저거 지금 웃었냐?”
그러면서 또 툭 차는 녀석이 하나.
“재수 없는 새끼.”
“쿡크크…….”
아주 대놓고 웃었다, 찬이. 그러고는 몇 번의 발길질이 더 이어졌다. 찬은 내내 웃었고, 나중엔 녀석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프니?”
바닥에 누워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찬을 향해 다가간 비야가 그 옆에 천천히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훗.”
멈추었던 찬의 웃음은 또 터졌다.
“안아 줄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안아주고 싶어졌다. 마주치던 그 공허한 눈빛이 아파서. 꼭 제 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아주고 싶어졌다. 공허함이 둘이면 어떻게 될까. 그 공허함이 묽게 희석이 될까. 아니면 더 공허해질까.
“…….”
찬이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났다.
“강찬. 어떨까?”
“무슨 말이야?”
어떨까. 우리가 함께하면 덜 아플까. 아니면…… 죽을 만큼 더 아파질까?
“자.”
비야는 교복 상의에서 담배 한 개비와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찬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마지막이라 아깝지만, 줄게. 위로가 되겠지?”
비야가 미소 지으며 찬에게 말했다. 그에 찬의 눈이 깊게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빛을 뿜어냈다. 그 눈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비야는 그 순간 알아 버렸다. 제 가슴으로 들어와 버린 찬의 눈빛이 내내 자신의 심장과 함께 뛸 거라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두려운 건 꼭 하나였는데…….
“안아 준다며?”
“그래서 안아 달라고?”
“그러겠다고 그랬으니까.”
찬의 말에 비야는 망설임 없이 찬을 안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찬의 등을 쓸어내렸다. 두근두근. 두 심장이 함께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또 불안했다. 왠지 욕심이 날 것만 같아졌다.
“황비야.”
느릿한 찬의 부름에 비야가 몸을 떼어냈다. 그제야 자기가 하고 있던 행동이 평범치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양 볼이 화끈거렸다.
“나, 열아홉 살이거든? 난 삼 학년이야. 넌 열여덟 살, 이 학년생이고.”
“그래서?”
“뭐?”
허! 하더니, 찬은 비야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 선배 대접하라는 거야?”
“너 이런 녀석인 거 아무도 모르지?”
“알면, 버려질까?”
“……!”
“내가 담배도 피우고, 이렇게 버릇없는 녀석인 걸 알면……말이야.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아. 아직은 내가 모르는 줄 아니까.”
비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비…….”
“오면 좋겠다. 그렇지?”
찬이 비야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에 비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찬도 그런 비야를 보며 픽 웃어 버렸다. 그날도 하늘은 맑기만 했다.
“어?”
찬은 교문을 막 나서는 찰나, 그 곁에 기대 선 비야를 보곤 걸음을 멈췄다. 탁탁탁, 발로 땅바닥을 치고 있던 비야는 찬의 목소리에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찬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구나. 늘 무표정한 얼굴이던 비야의 얼굴에 반짝거리는 웃음이 맺히자 찬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뭐 해?”
“기다리던 중.”
교문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비야가 찬의 말에 대꾸했다.
“나?”
찬이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너.”
“왜?”
찬이 걸음을 떼며 물었다. 비야가 타다닥 그 옆으로 와 같이 걸음을 옮겼다.
“모르겠다.”
“뭐?”
“강찬.”
“왜?”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야.”
1화
1장
한 번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겨 본 적 없던 자리였다. 학교 옥상, 노란 물탱크 옆에 자리한 자그마한 평상. 비에 맞고 또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하느라 낡을 대로 낡은 평상이었다. 비야는 가끔씩 수업을 빼먹고 이곳에 와서 낮잠을 자기도 했고, 남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소심하게 하는 나름의 반항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열심히 하는 공부는 비야를 매번 전교 일등의 자리에 올려놓고는 했다. 처음엔 열심히 하는 자신을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모든 걸 알게 된 지금은 섣불리 알은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은체를 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나는 거다. 그것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사랑할 수는 있겠지만, 다 알게 된 자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였다. 아직도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섭다. 무섭고, 겁났다. 그저 맑은 빛이기만 하던 세상은 고작 반년여 만에 잿빛이 되어 버렸다. 칠흑 같은.
‘미쳤구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오빠 자식도 아닌데, 미연 언니 벌주자고 비야를 키웠단 말이야?’
서재에서 들려오는 고모 석희의 말에 문손잡이를 돌리려던 비야의 손이 허공에 멈춰 버렸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금세 손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심장은 요란스럽게 덜컹대기 시작했고, 두 눈은 아프게 시큰거렸다. 그날, 비야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입을 틀어막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래놓고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시작된 잠깐씩의 반항, 어린 일탈,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훗.”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버림받을까 겁이 나서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는 반항이라…….
“…….”
비야는 평상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남학생 옆에 가만히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자, 빨갛게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후우…….”
혼자서 담배를 피운 지 고작 두 주 남짓, 그럼에도 이렇듯 익숙해진 건 무엇 때문일까?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 어쩌면 그것에 벌써 동화되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잠깐만이라도 뿌옇게 흐려진 시간에 빠져 있고 싶었는지도.
“하아…… 하늘은 빌어먹게도 맑구나.”
“잠 좀 자자.”
옆에서 한 팔로 눈을 가리고 누워 있던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비야의 입술에 물려 있던 담배를 빼앗아 자신의 입술에 무는 것이다. 황당한 비야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남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빌어먹게 맑아, 하늘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비야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담배라니…… 전교 일등하고 안 어울리는 거 알지?”
픽 웃으며 남학생이 삐딱하니 말했다.
“나를 알아?”
비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녀는 이 남자애를 알지 못했다.
“너를 모르는 애들은 없어.”
“난 너를 몰라.”
“훗, 그럴지도. 내가 여기로 잡혀 온 지 겨우 열흘 됐거든.”
잡혀 와?
그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달아나면, 숨어 버리면 잡으러 와줄까 하고.
“훗.”
그런 생각이 들자 좀 어이가 없어졌다.
“재밌어?”
그녀의 웃음에 남학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가?”
잠시 생각했다. 뭐가 재미있냐는 거지?
“잡혀 왔다는 말.”
아아.
“아니.”
“웃었잖아.”
“비…… 왔으면 좋겠다.”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우는 걸 들키는 건 싫었다. 그 누구에게라도. 그것이 닿지 않은 저 높은 하늘일지언정.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비…… 왔으면 좋겠다.”
어이없게도 그 같은 말을 하는 비야를 찬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비야에게선 다른 어떤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 그러다 천천히 평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걸음을 떼더니, 그 자리에 멈췄다. 다시 찬에게 다가온 비야는 평상 위에 하얀 박하사탕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담배 한 개비도 같이 놓는 것이다.
“사탕을 널 주면, 이것도 필요가 없게 돼. 그러니 주는 거야.”
그러면서 제 손에 남은 박하사탕을 까서 입안에 넣었다. 한쪽 뺨을 볼록하게 만들어 오물오물. 찬은 그 모양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천천히 걸음을 떼며 멀어지는 뒷모습도, 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교복치맛자락도…… 괜스레 여운이 남았다.
“훗, 웃기는…… 녀석.”
찬은 다시금 평상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래. 비라도 오면 좋겠다.”
과부하가 된 듯 파팟 하며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이 좀 식혀지게. 그래서 숨 좀 쉬게…….
비야가 찬을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날도 마지막 수업을 아프다는 핑계로 빼먹고, 마지막 담배 한 개비와 박하사탕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왔던 참이었다. 조용하게 있고 싶었는데, 옥상은 평소와 달리 난장판이었다. 네 명의 남학생들이 한 아이와 싸우고 있었다. 그 한 아이가 일방적으로 맞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건 불공평했다. 그렇지. 세상은 항상 불공평해. 속으로 중얼거리며 발을 돌리려는 순간 비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강찬, 그 애였다. 그리고 찬인걸 알아차림과 동시에 두 눈이 마주쳤다. 비야는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놀란 눈이 커지고, 가슴은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를 안 순간부터 두려운 건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심장은 무섭게 속력을 올리며 뛰어 대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비야는 잠시 고민을 했다. 저들 속으로 들어가 말려 보아야 하나, 아니면 잽싸게 교무실로 달려가야 하나 하고. 그렇게 비야가 망설이고 있을 때, 찬이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시작되는 발길질들. 순간순간 찬의 시선이 비야에게로 향했다. 아니, 내내 비야에게로 향해 있던 시선이었는데, 발길질을 해 대는 녀석들에 의해 잠깐 잠깐씩 얼굴이 가려졌던 것이다.
“그만해!”
발길질을 해 대는 녀석들의 시선이 일제히 비야에게로 쏟아졌다.
“어?”
다행이었다. 어찌 되었건 때리는 건 멈췄으니.
“야, 일등. 네가 신경 쓸 일 아냐.”
“너는 내려가서 공부나 하지?”
“어인 행차실까, 공부할 시간 아닌가?”
빈정대는 어투로 한마디씩 하는 녀석들을 비야는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 와,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 왜? 일등 너, 저 새끼 이거야?”
한 녀석이 빙글거리며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비야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비야는 긴장하지 않았다. 이딴 녀석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으니까. 무서운 건, 하나였다. 꼭 하나…….
비야는 턱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한 녀석이 비야에게로 바짝 다가온 녀석에게 말했다.
“걔 건드리지 마. 걔네 아버지 누군지 모르냐? 골치 아파지기 십상이야. 이만 내려가자.……조심해, 새끼야.”
찬의 옆구리를 툭 차며 말하는 녀석.
“훗.”
그에 웃었다, 찬은.
“저 새끼, 저거 지금 웃었냐?”
그러면서 또 툭 차는 녀석이 하나.
“재수 없는 새끼.”
“쿡크크…….”
아주 대놓고 웃었다, 찬이. 그러고는 몇 번의 발길질이 더 이어졌다. 찬은 내내 웃었고, 나중엔 녀석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프니?”
바닥에 누워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찬을 향해 다가간 비야가 그 옆에 천천히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훗.”
멈추었던 찬의 웃음은 또 터졌다.
“안아 줄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안아주고 싶어졌다. 마주치던 그 공허한 눈빛이 아파서. 꼭 제 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아주고 싶어졌다. 공허함이 둘이면 어떻게 될까. 그 공허함이 묽게 희석이 될까. 아니면 더 공허해질까.
“…….”
찬이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났다.
“강찬. 어떨까?”
“무슨 말이야?”
어떨까. 우리가 함께하면 덜 아플까. 아니면…… 죽을 만큼 더 아파질까?
“자.”
비야는 교복 상의에서 담배 한 개비와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찬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마지막이라 아깝지만, 줄게. 위로가 되겠지?”
비야가 미소 지으며 찬에게 말했다. 그에 찬의 눈이 깊게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빛을 뿜어냈다. 그 눈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비야는 그 순간 알아 버렸다. 제 가슴으로 들어와 버린 찬의 눈빛이 내내 자신의 심장과 함께 뛸 거라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두려운 건 꼭 하나였는데…….
“안아 준다며?”
“그래서 안아 달라고?”
“그러겠다고 그랬으니까.”
찬의 말에 비야는 망설임 없이 찬을 안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찬의 등을 쓸어내렸다. 두근두근. 두 심장이 함께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또 불안했다. 왠지 욕심이 날 것만 같아졌다.
“황비야.”
느릿한 찬의 부름에 비야가 몸을 떼어냈다. 그제야 자기가 하고 있던 행동이 평범치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양 볼이 화끈거렸다.
“나, 열아홉 살이거든? 난 삼 학년이야. 넌 열여덟 살, 이 학년생이고.”
“그래서?”
“뭐?”
허! 하더니, 찬은 비야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 선배 대접하라는 거야?”
“너 이런 녀석인 거 아무도 모르지?”
“알면, 버려질까?”
“……!”
“내가 담배도 피우고, 이렇게 버릇없는 녀석인 걸 알면……말이야.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아. 아직은 내가 모르는 줄 아니까.”
비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비…….”
“오면 좋겠다. 그렇지?”
찬이 비야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에 비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찬도 그런 비야를 보며 픽 웃어 버렸다. 그날도 하늘은 맑기만 했다.
“어?”
찬은 교문을 막 나서는 찰나, 그 곁에 기대 선 비야를 보곤 걸음을 멈췄다. 탁탁탁, 발로 땅바닥을 치고 있던 비야는 찬의 목소리에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찬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구나. 늘 무표정한 얼굴이던 비야의 얼굴에 반짝거리는 웃음이 맺히자 찬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뭐 해?”
“기다리던 중.”
교문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비야가 찬의 말에 대꾸했다.
“나?”
찬이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너.”
“왜?”
찬이 걸음을 떼며 물었다. 비야가 타다닥 그 옆으로 와 같이 걸음을 옮겼다.
“모르겠다.”
“뭐?”
“강찬.”
“왜?”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