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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단향 1권(2화)
一. 나라 일이 되면 고수 완성도 속성으로 이루어진다(2)
한때는 재상(宰相), 혹은 태사(太師), 수상(首相)이 존재했지만 황제의 권력을 한곳으로 집중하는 변혁을 통해 육부의 모든 기관은 황제 직속이 되었다. 황제는 이후 내각을 구성, 내각의 수장을 대학사(大學士)로 두어 내각의 임무를 대리했다.
대학사는 사실상의 재상 역할에 위치한 지위지만 권력의 정도는 매우 약하며, 하부 조직이나 다름없는 육부의 장관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작았다. 빛 좋은 개살구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라가 번영하는 과정에서 대학사가 낼 수 있는 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대학사는 나라의 두 번째에 위치한 자리.
그에게 비밀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당대의 대학사인 설악 선생(雪嶽先生)도 흑옥루의 비밀은 알고 있었다.
몇몇 식자들은 흑옥루가 왜 십이지금지가 되었는지에 대해 주사를 부리고 가장 방심했을 상황을 막기 위해, 혹은 술 마시고 주사를 부려 나라의 비밀이 마음껏 공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곳의 기녀들은 그야말로 나라의 핵심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에 나라를 전복시키려면 제일 먼저 점령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일차적인 이유에서일 뿐, 진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설악 선생이 흑옥루에 드나들 수 있는 명패를 내밀자 뙤약볕 내리쬐는 곳에서도 무심한 표정으로 지키고 서 있던 어림군의 금강동인(金剛銅人)들은 문 앞에서 교차했던 창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흑옥루는 황제 바로 다음 자리에 위치한 대학사조차도 명패를 보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설악 선생은 문득 흑색으로 반짝이는 돌로 만든 기루를 올려다보았다.
자금성의 위세에 걸맞게 건물은 몹시 크고 화려했다. 뿐만 아니라 열 개의 단으로 쌓여 있어 높이도 상당했다.
설악 선생은 그 위용에 감탄하기 이전에 지붕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았다. 자색(紫色)의 바탕 가운데서 바람과 함께 휘날리고 있는 황금빛의 용.
깃발은 아홉 개나 동시에 펄럭이고 있었다.
설악 선생은 한숨을 쉬고는 흑옥루의 문을 열었다.
안쪽에는 단아한 외모의 여인과 그 여인의 앞에서 신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소동이 있었다. 저 동쪽에서 온 진주를 꿰어 만들어진 주렴을 걷는 소리에 둘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고 표정도 조금 변했다. 무려 대리석이 깔린 바닥을 달려온 소동이 설악 선생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대인.”
“선생으로 충분하네.”
“이쪽으로 오시죠, 대인, 아니 선생님.”
이제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소동은 멋쩍게 웃으며 말을 고쳤다.
소동은 곧 접수계로 설악 선생을 이끌었다.
접수계에는 장님조차 눈을 뜨게 만들 수 있는 미모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최신 유행하는 복장을 입고 어깨를 살짝 노출시킨,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운 미녀였다. 연령은 십육칠 세쯤 되었을까, 아직 어려 보이는 외양에 비해 풍기는 분위기가 무척이나 원숙한 신비로운 여인이었다. 군청과 흑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짙은 색의 옷을 입은 미인이 설악 선생을 향해 활짝 웃었다.
“어머나, 이른 아침부터 기침하셨나요. 대인?”
“선생으로 충분하네.”
“아차, 선생님. 자꾸 깜빡한단 말이죠.”
소동과 마찬가지로 미녀도 자신의 머리를 콩 하고 때리고 멋쩍게 웃었다.
이런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여인이 세상 전역에 이름을 떨치는 십요궁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설악 선생은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어떤 일로? 아침부터 이곳에 강림하신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아니한지요?”
“으, 으음.”
천하에서 흑옥루의 진정한 비밀을 아는 다섯 명 중 한 사람.
설악 선생은 다른 고관들처럼 중원 최고의 기녀들을 안기 위해서만 오지는 않았다.
나이는 중신들이 비해 파격적으로 젊지만 나라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그의 실력과 인품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설악 선생은 농밀한 웃음을 흘리며 반문하는 그녀를 조금 꺼림칙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애써 말을 정리했다.
“그녀가 있는가?”
“네, 무려 아홉이나 있는데요.”
“어, 어흠. 말을 잘못했군. 자네들 중에서 요희(妖姬)가 있는가?”
“삼 언니 말인가요?”
“그래, 꼭대기 층의 그녀 말일세.”
꼭대기, 즉 구 층이라는 말에 설악 선생의 앞에 있던 미녀 흑희(黑姬)가 조금 긴장했다.
흑옥루는 기녀가 머물고 있었고 층계마다 미녀가 한 명씩 있었다. 쌍둥이 기녀가 머무는 사 층은 특별이 두 명의 기녀가 있지만.
진짜 꼭대기 층인 십 층도 존재하고는 있지만, 그곳을 지키는 기녀는 없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구층이 끝.
구 층에는 요희라는 화명을 쓰는 기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요희를 볼 수 있는 자금성 내의 손님은 단 두 명.
황제와 설악 선생.
나라의 최고 자리에 있는 단 둘 뿐이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만.”
흑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설악 선생은 그녀의 긴장을 느끼고는 빙그레 웃었다.
“큰일은 아닐세. 그저 의문이 있어서 말이야. 걱정하지 말게.”
“그렇습니까?”
“요희 엄마는 왜 찾는지요, 선생님?”
소동이 물었다. 흑희가 깜짝 놀라 소동의 입을 손으로 가렸지만 설악 선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소동은 흑옥루의 유일한 남성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워낙 재간둥이라 못하는 것이 없다. 간단한 안주부터 청소, 단장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동은 흑옥루의 기녀를 전부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문제라면 엄마들 틈에서 사랑을 받다 보니 경우를 모르는 때가 자주 있다는 것.
설악 선생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요희가 무슨 꿍꿍이인지 갑자기 돈을 쓰기 시작해서 말이지. 갑자기 씀씀이가 엄청 커졌지 뭔가.”
설악 선생은 품이 넉넉한 소매에서 세 번 접은 종이를 내밀었다. 소동과 미녀가 그것을 받아 펴서 눈을 굴렸다.
내용을 확인한 순간 과연, 어째서 설악 선생이 여기에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흑옥루에서 사용된 돈의 양이 저번 달에 비해 서른 배 이상 커졌다.
흑옥루의 특성상 최고급 비단과 입욕제, 향수, 화장품 따위를 사기 때문에 사용하는 돈은 꽤 되는 편이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가격이 비싸다는 것들을 둘둘 둘러매는 그녀들의 지출은 확실히 컸지만 이번 달의 지출은 확실히 설악 선생조차 의아함을 느끼기 충분한 액수였다.
소동은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깜짝 쥐고 있던 서류를 구기고 말았다. 목소리도 자연히 커졌다.
“설마 그 서역인가 어딘가에서 왔다는 금강석을 기어코 샀나요, 이 바보 엄마가!”
요희가 있을 방향을 바라보며 으르렁대던 소동을 바라보며 설악 선생은 조금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 그건 아니야. 사용처는 확실하네. 단지 왜 이런 것이 필요한지 몰라서 말이지.”
“이런 것? 뭔가 이상한 걸 샀나 보죠?”
“그렇다네. 평소엔 쓰지도 않는 것이지.”
“뭘 샀나요?”
흑희가 묻자 설악 선생은 이미 암기해 뒀던 것을 유창하게 대답했다.
“극지석균(極止石菌), 공청석유(空淸石乳), 만년삼왕(萬年蔘王), 소환단(小還丹)…… 응? 왜 그런 표정인가?”
“아, 아니 계속하세요.”
설악 선생은 약재의 이름을 덮어쓴 영약을 물경 반각에 이르도록 말한 다음 끝맺었다.
“영약이나 비약 종류는 시중에 풀린 건 전부 다 사들였다네. 그리고 지하 시장에서나 돌던 보검도 구입했다더군.”
내용을 들을수록 고개가 삐뚜름해지는 소동과 미녀였다.
이들도 아는 바가 없는 기색이자 설악 선생은 난감한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그녀에겐 딱히 이런 것이 필요하진 않잖은가.”
그녀, 흑옥루의 꼭대기에 사는 이에겐 확실히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아니, 그녀만이 아니라 다른 기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흑옥루에 사는 기녀들은 그런 것 없이도 이미 강하니까.
황제의 침소 및 요지를 지키고 암살자들을 저지하는 열 명의 궁희가 사는 비처.
삼백의 무림인으로 구성된 암살 집단을 단지 열 명으로 정리해 버린 황궁의 비밀 병기, 십요궁희가 사는 곳. 그곳이 바로 흑옥루였다.
특히 흑옥루의 꼭대기에 위치한 그녀는 다른 아홉 명의 궁희 전부가 덤벼도 거꾸러뜨릴 수 있는 괴물.
이제 와서 영약이니 뭐니에 욕심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왜 이런 걸 사는지 묻기 위해서 방문했지만……. 허허, 어디 갔는지 정녕 모르는가?”
“워낙 출타가 잦은 여성이라 글쎄요. 아, 황상(皇上)께서 불러 출타한 게 아닐지요?”
그녀를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는 천하에 단 둘에 불과했다.
둘 중 한 명인 설악 선생이 여기에 있으니 부른 것은 당연히 다른 한 명인 황제.
설악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설악 선생의 반응에 소동과 미녀는 이미 황상을 뵙고 오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접수계를 사용하고 일 층의 기녀이기도 한 흑희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은 하나뿐이군요. 또 그런 물건을 사기 위해 지하 시장 같은 곳을 간 것이 아닐는지요?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 확실한 것 같아요.”
설악 선생은 가볍게 감탄했다.
“그런가? 그렇군.”
그리고 침묵이 일었다.
흑희도 소동도 그리고 설악 선생도 모두 왜 그녀가 이런 걸 사들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고민에 빠졌다. 그들의 고민은 그리 긴 편은 아니었다.
잠시 후 값비싼 주렴을 걷고 나타난 여인이 바로 화제의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장바구니를 짊어지고 문을 열고 나온 매력적인 여성, 고민의 중심에 놓여 있던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 뭔가 생각에 빠진 세 명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다가 가볍게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냈다. 누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번뇌하는 조각상마냥 침묵하던 이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요희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아침부터 일찍 드셨군요.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으신지?”
설악 선생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소동이 반쯤 구겨 버린 서류를 내밀었다.
토끼처럼 눈이 동그랗게 된 요희가 물었다.
“왜 이런 걸… 제게?”
“우선 읽어 보게.”
“기적(妓籍)에서 빼 준다는 서류면 곤란한데요. 즐기고 있거든요.”
“아니네.”
“아니면 첩으로 맞이하겠다는 건가요? 아, 그건 좀 좋을지도.”
“아니네.”
“제가 주사를 부리다가 뭔가를 분질러 버렸나요? 죄송해요.”
“아니네.”
만년빙정 같은 표정으로 설악 선생이 받아쳤고 소동과 흑희는 다소 감탄했다.
반대로 자신의 의도가 먹히지 않아 조금 불만인 요희가 입을 삐죽 내밀고 서류를 펼쳐 들었다.
“어디 보자, 어머, 왜 이런 걸 제게?”
그동안 소동은 요희가 싸들고 온 짐을 풀어헤쳤다.
과연 단단히 밀랍되어 있는 환약과 서적, 그리고 암기통이 있었다.
하나같이 비보요, 영약이 아닐 수 없었다. 밀랍이 되어 있는데도 청아한 향기가 나는 환약, 그리고 올챙이 머리를 닮은 과두문(㏛?文)으로 쓰인 고서적, 암기통은 저 명망 높은 당문의 솜씨가 엿보였다.
서류를 읽은 요희는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했다. 어째서 설악 선생과 흑희, 그리고 소동이 그런 모습인지. 요희가 단조롭게 물었다.
“소첩이 말씀 드리지 않았던가요?”
“말하지 않았네. 방금 본 서류의 그것과 저 짐은 또 뭔가?”
“고수(高手)를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예요. 요 며칠 무척이나 바빴지요.”
“고수? 고수를 키우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고수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뭔가?”
아무래도 설악 선생은 학사, 무림의 일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물론 무공을 아는 이들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고수를 키우는 일하고 그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히고 있지만 역시 관계없는 흑희와 아무것도 모르는 소동도 고개를 삐뚜름히 하고 요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요희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황상께서는 황실의 힘으로 무림인의 안하무인의 태도를 손봐 주려고 하세요.”
“무림이라니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음, 자세히 말하기는 좀 곤란합니다. 어쨌든 황상께선 직접 어명을 내리셨지요. 무림을 곤혹스럽게 할 수 있는 최강의 고수를 키우라고 말이죠.”
황궁에서 내밀하게 일어난 일까지는 알 수 없는 이들의 의아함이 계속될 무렵 요희가 소동의 뒷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