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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인물 정보.’

롤랑
직업 : 기사
나이 : 32세
국적 : 카르텐 (소왕국)
소속 : 근위 기사단 1사단
레벨 : 소드 익스퍼트 상급
성향 : 정의로움
요약 : 정의감이 투철하며 평민 출신의 바른 인물. 의지가 강함. 덕분에 고지식한 면도 있으나 상관에겐 듬직하며 부하에겐 신뢰를 주고 동료로서는 든든하다.
…….

힌덴 마르고
직업 : 기사
나이 : 20세
국적 : 카르텐 (소왕국)
소속 : 근위 기사단 1사단 휘하 2군. 지방의 소영주 마르고가의 둘째 아들
레벨 : 소드 익스퍼트 중급
성향 : 약간 정의로움
요약 : 카르텐의 듣보잡 지방 영주의 둘째 아들. 아카데미를 나름대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도성에는 볼모로 보내진 셈이며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도 먹고살 거리가 없어서 그대로 수도에 눌러앉음. 중앙 정계 진출 역할은 소영주라 기대 미미. 현실의 벽에 실망 중.
영지의 순박한 형은 뛰어난 기사인 동생을 견제해서 귀향은 곤란. 고향도 없고 지킬 의리도 없는 몸인데다 왕실에서도 먹고 살려할 뿐 아직까지 충성을 바칠 대상을 발견 못했다.
그러다 나타난 영웅의 종자(?) 떨거지가 행색이나 돌아가는 꼴을 보아 하니 몇 년은커녕 몇 개월도 안 가 다 털어먹게 생겼는데, 험지에서 목숨이라도 지켜 주고 무사히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따라가 보세∼ 싶어서 별 기대 없이 나섰음.
소드 익스퍼트 중급으로 알려져 있지만 상급 초입임. 백 없는 기사에 대한 주변의 견제가 피곤해서 놀고먹는 한량 기사로 행세 중이다.
기사단 자리는 만족스러움.
한 자작의 호위로 출사표를 던졌다.
…….

노골적인 표정을 드러내는 힌덴은 인물 정보가 몹시 구체적이었다.
“……반가운 일이군요.”
둘 다 실력이 상당하거니와 무엇보다 인물 정보가 마음에 들었다.
두 젊은 기사는 한을 주인으로 섬기려고 했다기 보다는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쓸모를 다하고 버림받은 영웅을 목숨이나마 지켜 주기 위해 나섰다.
‘뜻밖에 운이 좋군.’
한은 두 기사를 거둔 뒤에 차츰 충성심을 받을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무력이 약한 한에게는 누구보다 강한 힘이 되어 줄 이들이었다.
한은 잔잔히 웃음 짓고 두 기사를 환영했다.
귀족들은 이를 일종의 기사의 로망이 섞인 철부지들의 유흥 정도로 여기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한은 국왕이 베푸는 연회에 붙들려 구경거리 노릇을 하다가 새벽에야 풀려났다.
아직은 체면 때문에 손님 대우를 해 주는지 왕궁 안에 한의 처소가 마련되었다.
고단한 하루였다.
한은 복잡한 머리를 비단 침대에 내려놓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2. 출발 준비



한은 다음날 부랴부랴 불려 온 집사와 시녀장, 행정관을 만났다.

케인
요약 : 독신의 중년 집사. 이전 주인인 멜라민 백작 밑에 있을 때는 유능했지만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된 지금은 실의에 빠져 지방 귀족가의 집사 정도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간단한 서류 업무와 수발들기, 하인들 다루기, 창고 관리와 장부 정리, 단순한 사업이 가능함.
귀족들 간 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암살당한 귀족가의 집사로 오랜 세월 봉직했기에 껄끄러워하는 자들이 많아 유배 처리.
나름대로 귀족 방계 출신이다.

안나
요약 : 중년 시녀장. 케인과 비슷한 처지.
귀족가의 시녀장으로서 적정한 능력. 가족을 전시에 잃고 코흘리개 아들만 남음. 좀 딱딱하고 냉정하지만 할 일은 척척 하며 속마음은 따뜻하다.
다만 귀족가 시녀장의 소양과 아랫사람을 거느려야 하는 위치 때문에 엄격하다.
B사감과 러브레터를 연상시키는…….

토리오
요약 : 신출내기 말단 평민 행정관.
아카데미를 갓 졸업했다. 인맥도 백도 변변찮아 걸려들었다.
불운한 팔밀이에 한탄 중.
소심하며 행동은 어리바리하지만 모범생답게 내실이 있다.

집사 케인과 시녀장 안나는 어느 정도 체념한 상태였지만, 말단 신출내기에 뒷배가 없다는 이유로 희생양이 된 토리오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는지 황망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세 명 다 한의 예상보다 수준이 높아 만족스러웠다.
집사 케인은 부하처럼 다루던 2명의 하인을, 시녀장 안나는 수양딸처럼 키우던 1명의 하녀를 어디선가 알아서 데려왔다.
국왕이 보내 준 시종 둘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들 역시 연고지가 따로 없어서 주인이 가자면 갈 처지였다.
“규모는 상관없으니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상단을 소개해 주시오.”
“저희가 전에 섬기던 멜라민 백작님과 거래하던 상단 목록이 있습니다.”
집사 케인이 즉시 품에서 목록을 꺼내 공손히 건넸다.
귀족가의 집사는 한풀 꺾였어도 과연 녹록치 않았다.
집사 케인과 시녀장 안나는 사실 한과 첫 대면에 약간 실망을 했다.
실리적인 편이지만 극히 귀족적인 품위가 있었던 전 주인 멜라민 백작과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는 새 주인을 믿고 따라도 좋을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한은 걱정하지 않았다. 고용인들의 신용은 앞으로 차차 올려 가면 될 일이었다.
한은 귀족 사회 및 재정 문제에 익숙한 그들에게 몇 곳의 상단을 추천받았다.
그중에서 한은 헤더 남작이 운영하는 헤더 상단을 선택했다. 헤더 상단주는 집사의 친척이라 인물 정보가 보다 자세히 뜬다는 강점이 있었다. 집사를 내세워 상단주와 만남을 성사시켰다. 헤더 상단주는 마침 도성에 있었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한에게 왔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한 자작님.”
피로에 찌들었지만 눈빛에서 상인다운 예리함을 잃지 않은 30대 초반의 헤더 상단주가 방문했다. 헤더 남작은 집사의 5촌 조카답게 얼굴이 약간 닮았다.
“안면을 트고 거래를 문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헤더 남작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
대다수의 귀족들은 상거래를 천시해서 직접 나서기보다는 대리인을 내세우거나 집사에게 일임하곤 했다.
헤더 남작가는 지방의 소지주였다가 돈을 모아 남작위를 사서 중앙에 진출한 흔치 않은 경우로, 출신은 어쩔 수 없다며 손가락질 받았다.
헤더가(家)는 형제들끼리 상단주와 부상단주를 나눠 맡는 전통이 있었다. 귀족이 된 뒤로도 체통이나 체면보다는 실리를 추구했다. 야심이 많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알며, 한편으로 금력(金力)으로 대륙을 흔들어 보고 싶은 작은 웅심이 없지 않아 있었다. 덕분에 멜라민 백작가에 투자함으로써 쫄딱 망할 뻔했다가 겨우겨우 상단을 추슬렀다.
“저희 상단으로부터 금을 빌리길 원하신다면 저희는 아직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멜라민 백작가의 일로 타격이 커서 말입니다.”
한과 헤더 남작은 서로의 성격을 빠르게 파악했다.
물론 한은 인물 정보창의 힘이 컸다.
헤더 남작은 숨기거나 꿍꿍이가 많은 인물이 아니라서 인물 정보창에 표시되는 정보들이 많고 일관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쪽이 유리함을 알았다.
“금전의 차용이 제 용건은 아닙니다. 우선 영지에서 쓸 소모품을 헤더 상단을 통해 구입하고 싶습니다. 물목은 집사가 설명해 줄 것입니다.”
한은 전날 집사와 시녀장과 함께 의논한 물품 목록을 헤더 남작에게 건넸다.
헤더 남작은 빠르게 훑어 읽고 대략의 규모를 셈했다.
“사흘 이내에 준비될 것입니다. 필요한 물건을 정확히 지목해 주시니 편하군요.”
‘아무거나 대충 가져다 주시오’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요구처럼 까다로운 요구는 없었다.
“제가 장인이자 상인이기 때문입니다.”
한은 ‘선수끼리 왜 이래요? 아마추어같이’라는 눈빛을 보내 서로 마주보며 씩 웃었다.
예감대로 뜻이 잘 통할 듯한 상인이었다.
“밀랍은 목록에 없군요.”
헤더 남작은 집사로부터 얻어들은 바가 있어서 지적했다.
“밀랍은 오시오 상단이 공급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 이상은 현재 따로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씀은…….”
“그렇습니다. 당장은 어렵지만 양초 외에 다른 거래품을 헤더 상단에 맡기고 싶습니다. 물론 독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상단마다 판매 대상이 다르니 딱히 분쟁이 되지는 않는 선에서 조절해야겠지요.”
“자작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저희 상단을 택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차후 고정 거래처로 낙점했다는 한의 말에 헤더 남작은 정중히 화답했다.
한은 피식 웃었다.
“아직 보여 드린 것도 없고 다들 제가 목숨이나 겨우 부지해서 도망쳐 나오면 다행일 거라 여기는데 어찌 미리 이러십니까?”
헤더 남작은 정색했다.
“저는 저의 안목을 믿습니다. 한 님과는 어떤 거래를 하던 서로에게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님이 만드셨다는 양초를 봤습니다. 그 정도 물품이 더 있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허황된 소리는 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초는 고위 귀족들이나 거상의 전유물입니다. 저희 상단은 그쪽에 특화되어 있지 않지요. 한 님이 저희를 선택할 때 그 점을 유념하셨을 테니까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한과 헤더 남작은 유대감과 신용도를 올렸다.
여유가 있다면 술이라도 나누겠지만 서로 일정이 촉박하다 보니 정중한 인사로 대신하고 헤어졌다.
“왕실 도서관으로 가고 싶네.”
집사는 궁정에서 한의 시중을 들라며 배정한 시동을 불러 길 안내를 맡겼다.
한은 빈손으로 털레털레 시종을 따라나섰다.

왕실 도서관은 스무 평 남짓한 규모였다.
그나마 실내 치장이 대다수이고 서가는 두 수레나 채우면 다일 정도였다.
크고 두꺼운 양피지 책들과 두루마리들은 화려한 필체와 색체로 꾸며져 있었다.
한마디로 거실에 과시용으로 갖다 둔 장식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다수 귀족들이 글자를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다.
너도 나도 글을 모르니 문자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귀족들에게는 대필가나 글을 읽어 주는 서관이 따로 있으므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서류 작성은 행정관이나 집사에게 일임하면 그만이었다.
한은 놀라지 않았다.
「드래곤 쇼크」와 비슷한 세계여서인지 이런 무지몽매한 학문의 암흑기라는 점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유리한 점이지.’
한은 품에서 작은 연고를 꺼냈다.
책장을 넘길 때 손에 침 대신 바르는 용도로, 양피지를 상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한이 직접 만든 연고였다.
한은 무거운 책을 꺼내 고급스러운 탁자에 펼쳐서 한 장 한 장 빠르게 넘겼다.

―띠링!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야 한쪽에 독서창이 떴다.
한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서창에 축소된 책의 모형이 파라락 넘어갔다.
한이 시야에 담으며 읽듯이 넘긴 책의 내용은 모두 정보창에 책의 형태로 저장이 되었다. 특히 한은 고대어와 특수어 및 암호에도 숙련되어 있으며, 그림과 지도 또한 있는 그대로 복사하듯이 찍혔다.
게임의 문서 정보 저장 기능이었다.
유저가 중요하게 느끼는 대화 일부나 독서 스킬을 이용한 책 읽기는 정보창에 저장이 되었다.
한 번 저장이 되면 책을 불필요하다 여겨 삭제하기 전까지 언제든지 키워드나 문장, 날짜, 연관어 등으로 검색할 수 있었다.
특히 한은 출판, 인쇄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지도 작성, 미술품 감정 스킬까지 마스터 하고 있어서 꼼꼼히만 보아 두면 책장을 정밀 사진 찍듯이 저장시키는 게 가능했다.
도둑이나 모험가가 직업인 유저들은 풍경을 파노라마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저장하는 일도 가능하지만 한에게는 문서 저장 스킬이 훨씬 유용했다.
오랫동안 「드래곤 쇼크」의 광활한 생산직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난감하면서 까다로운 퀘스트들을 깨기 위해 마구잡이로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다.
일반 서점이나 이북 업체에서 판매되는 이북들은 「드래곤 쇼크」내에서 매우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판타지 게임인 「드래곤 쇼크」이지만, 게임 내 서점에서 교육 방송 대입 시험 교재와 문제집들을 당당히 판매했다.
이는 게임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전 국민 평생 교육이라는 취지의 교육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 덕분이었다.
한은 각종 사전류와 제작 기법, 설계도, 역사, 문화, 기타 퀘스트에 도움이 되는 잡다한 책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여서 정보창에 저장시켰다.
게임 내 서점에서 산 책들은 읽지 않아도 저장시킬 수 있으므로 편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북이 아니라 실물 책을 만지고 있으니, 독서 스킬을 활용해 읽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책에 장시간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도 다음엔 기회가 오기 어려움을 알기에 집중해서 책을 완독했다.
결국 두 수레의 책을 모두 독파한 한은 오후 느지막이 다 되어서야 처소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시녀장 안나를 통해 청탁이 들어왔다.
“벨치스 상단주가 자작님께 뵙기를 청합니다.”
“벨치스 상단주가?”
상단 정보창을 열었다.
벨치스 상단은 집사가 언급한 수도 내 소(小)상단들 명단에 끼어 있었다.
단서가 주어지면 정보창의 내용이 늘어나곤 했으니까 만나서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불러오도록.”
찾아온 것은 20대 중반의 젊은이였다.
“벨치스 상단의 부상단주 벨치스입니다.”
“상단 이름이…….”
“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따서 붙이셨지요. 아버지 성함은 벨입니다.”
자식의 이름을 따서 개업한 ‘동수 식당’, ‘윤미 슈퍼’ 정도의 네이밍 센스였다.
약간의 탐색 시간을 가진 뒤 서로의 진솔한 성격을 파악한 두 사람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는 전란 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왕국 곳곳에 생필품과 물자를 조달했습니다. 군상(軍商) 같은 거창한 규모는 아니고 보따리 장사로 시작했지요. 그래도 저희만의 유통 경험과 손님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상단주이자 창업자인 벨은 정치 감각이 떨어져서 인맥은 별 볼일 없었지만 인덕이 있고 성실했다.
아들인 벨치스는 영리하고 상재(商才)가 뛰어났다.
부자가 운영하는 작은 상단은 내실을 갖추며 성장했다.
“전시에 좋은 점은 도적 떼만 조심하면 칙령으로 상단에 대한 영주들의 수탈이 적다는 것입니다.”
‘물자의 유통이 끊기면 동맥경화에 걸릴 테니까.’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저희 상단이 알토란 같은지라 수도에서 집어삼킬 사냥감이 없나 혈안이 된 중앙 귀족들뿐 아니라, 지방 영주들까지 노리기에 딱 좋지요. 이대로 평화가 정착되면 이리저리 살점을 뜯기다 뼈도 못추리게 될 겁니다.”
벨치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이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 비장의 카드 하나쯤은 있을 텐데요.”
“맞습니다. 그러나 비장의 무기는 비장한 시기에 꺼내야 되겠지요. 저희는 상단의 운을 맡길 만한 거래선을 찾고 있습니다.”
“상단의 운이라… 거창하군요. 대체 뭘 보고 날 찾아온 겁니까?”
벨치스는 품에서 작은 양초 도막을 꺼냈다.
어떻게 입수했는지 상당히 수완이 좋은 사내였다.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눈치 빠른 몇 상단에서는 이 정도는 손에 넣었을 겁니다. 귀족 분들이 놀란 만큼 꽤 화제가 되었으니, 오시오 상단의 눈을 피해 밀거래를 청할 자도 나오겠지요. 오시오 상단주도 으름장을 놓겠지만 뇌물을 먹이면 어느 정도 눈감아주는 도량을 가졌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양초가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저는 자작님께서 연회에서 보이셨다는 태도와 대화를 전해 듣고 직감했습니다. 돈 냄새가 나거든요. 이렇게 직접 만나 보니 기막힌 금맥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벨치스는 자기 상단의 약점과 장점을 가감 없이 피력했다.
수도와 지방의 하급 귀족들 및 지주들과 친분이 강한 헤더 상단에 비해 벨치스는 주로 서민층을 폭넓게 공략하고 있었다.
카테르니아 대륙은 아직 상업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주로 장원 내의 자급자족이나 물물교환에 의지하는 바가 많았다.
구매력의 수준은 소수의 왕후귀족들이 가장 크고, 인구수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평민층은 경제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사업 규모는 헤더 상단에 미칠 바가 못될 만큼 작았지만, 한의 관점에서 벨치스 상단은 무엇보다 큰 강점이 있었다.
너른 영업망과 뿌리 내리기 어려운 평민들을 고객층으로 대응하는 놀랍도록 유연성 있고 실리적인 영업력이 그것이었다.
“앞으로 드릴 말씀은 자작님과 절충이 가능합니다. 현재는 그렇고 미래 전망은…….”
한은 좋은 협력자가 될 상단의 책임자와 환담을 나누고 즐거운 기분으로 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