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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단향 1권(6화)
三. 나라엔 반드시 수 명 이상의 인재가 있다(2)
“아무튼 이곳에 잘 왔어. 우리는 몸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몸을 쓰는 법?”
“응, 고작해야 벌모세수를 해 주려고 우리들이 여기에 있겠어?”
“아니었어?”
“당연히 아니지! 셋째 언니가 내공심법 환우일기담(?宇一己憺)을 가르쳐 줬잖니. 그리고 막내가 혈궁의 요상심법으로 철혈강체(鐵血强體)로 체질을 변화시켰고.”
나이순으로 따지면 기녀 중에서 요희는 셋째에 불과했다. 무공의 수위와 실력의 경중을 따져 층을 나누었고 요희가 꼭대기 층을 점거하고 있지만, 궁희들 사이에서는 나이가 서열이 되었다. 요희는 궁희들 가운데서 세 번째 서열이었다.
천화가 고개를 끄덕이다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잠깐만, 사희 엄마. 뭐라고 했어?”
“응? 뭐가?”
“내가 배웠다는 내공심법의 이름말이야.”
“환우제일존의 환우일기담 말이야. 네 몸에 깃들어 있는 내공심법.”
천화는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하고서 천장을 응시했다.
“오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사희 사이에서 가벼운 감탄이 일었지만 천화에겐 그게 들리지도 않았다.
“이 아줌마가 환우제일존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한 거였던가!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내공심법마저 알고 있다니!”
으르렁대는 천화를 바라보며 사화가 다시 웃었다.
“셋째 언니에게 속은 거야?”
“으으으, 이 바보 엄마. 언젠가 두고 보자.”
쌍둥이 기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똑같이 생긴 자매가 똑같이 행동하자 눈이 피로해졌다.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더라.”
“없더라.”
“난 달라!”
“어련하시겠어.”
“아, 사내들은 크나 작으나 어찌나 아이 같은지. 하긴 우리 천화는 아이 맞지. 거시기도 요만하고.”
둘이서 마치 운율을 맞추듯 한 토막씩 말을 던지며 놀려 댔다.
“그보다 철혈강체라는 게 궁금하진 않아?”
“않아?”
“설명해 줄 테니 안 궁금해도 되는 거 아냐?”
천화가 허탈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서 되묻자 두 명의 사희가 어쩔까, 하는 얼굴로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아, 설명해 주세요. 소자 궁금해 죽겠습니다!”
“응. 철혈강체란 말이지, 혈궁의 비전신법이야. 사람의 체질을 바꿔 놓는 거지. 아, 여기서 말하는 체질이라는 건 외부의 신체, 그러니까 외양을 바꾼다기보다는, 내장이나 혈맥을 강화하는 거야.”
“단련한다는 개념이 아니라서 바꾼다고 표현했어. 이 상태만으로도 어지간한 내가권에 맞아도 피를 토할망정 죽지는 않겠지. 거기다 놀라운 사실은 내공으로 신체를 단련하면 더더욱 강해진다는 사실!”
각종 전문용어가 난무해서 잘 알아듣지 못한 천화지만 가까스로 그 말은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좋아진 거야?”
“응! 무척!”
“되게 희귀한 대법이야. 무림에서도 이 대법을 익히고 있는 이들은 열이 안 될걸? 시술을 받은 이도 얼마 안 될 테고.”
“게다가 시전자의 내공이 소모되기 때문에 좀처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회복한다고 나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평생에 한 번 시술 받기도 힘든 거야.”
사이좋게 이어지는 사희의 대답에 천화는 새삼 감탄했다.
자신의 내공이 소모되는 것도 감수하고서 그런 시술을 해 줬다니, 혈희가 수줍어하는 얼굴을 떠올리면서 천화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엄마들은 뭘 가르쳐 줄 거야? 내공심법을 이미 알게 되었고 체질개선도 되었으니 이제 환우제일존의 무공이라도 가르쳐 줄 거야?”
“그런 거 우린 몰라.”
“몰라.”
“천마(天魔)의 무공이라도 가르쳐 줄래, 그럼?”
쌍둥이 기녀들이 호들갑을 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머어머, 여보. 저 말 들었어요? 천마의 무공이래요. 무림은 가 보지도 못한 풋내기 바보가 들은 건 있네요.”
“하여튼 남자란 말만 앞선 허풍선이라니까요.”
“거기까지만 해! 잘못했으니까.”
천화는 자신이 세상 모든 사내 망신을 다 시키는 대죄인이 되었음을 깨닫고 급히 사과했다.
“농담인거 알면서 이러기야? 그래, 뭐든 가르쳐 주면 배울 준비 되어 있어! 배를 째든 몸을 부수든 마음대로 해!”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이 두 명의 사희가 사뿐사뿐 걸어와서 천화의 어깨와 팔, 몸의 이곳저곳을 주물러 댔다. 천화가 당황했지만 사희는 평소처럼 귓가에 한숨을 불어 대고 은밀하게 주물러 대지는 않았다.
“신체의 오른쪽에 무게가 실려 있네. 이래서는 좌우호박권법(左右琥珀拳法)은 무리겠다. 전형적인 오른손잡이야.”
“그리고 이심분뢰(二心分賴)도 어렵겠어. 뇌의 개화가 늦었어. 우리 아들 많이 바보였네.”
“발쪽은 괜찮아. 하긴, 별로 걸어 다닐 일이 없어서 버릇이 들지 않았어. 귀검행(鬼劍行) 익힐 수 있겠다.”
“내공심법이 우월하다 보니까 양극의 무공을 익혀도 괜찮겠네. 빙백장(氷白掌)을 쓰는데 열양공(熱陽功)을 운기 하는 거야. 역시 환우일기담은 최고야. 세상에, 사람의 몸에 내단(內丹)을 만드는 내공심법이라니, 진짜 좀 사기 같긴 해.”
전설에서나 들어 본 무공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그걸 알고 있다는 건 차치하고, 천화는 새삼스레 엄마들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기본적으로 일반인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경험한 결과 이건 뭐 상상을 초월한다.
좌우호박권법은 사람이 할 수 없는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무공법.
그리고 이심분뢰는 제갈세가의 모태가 된 저 와룡(臥龍)이 시간을 아끼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고안해 낸,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귀검행은 귀검(鬼劍)이라 불리던 절세 고수의 경공. 일반 상궤를 벗어난 형태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하나하나가 비전 아닌 것이 없고 이제는 완전히 잊힌 것도 있었다. 그런 무공들이 태연히 열거되는 것이다.
천화가 하도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걸 다 안단 말이에요, 엄마들은?”
쌍둥이 기녀가 서로를 바라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응.”
“응으로 끝날 말이냐 그게! 뭐야 도대체 그런 비전을 어디서 익힌 거야!”
“……어쩌다 보니?”
천화는 유달리 한숨을 많이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거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 잡담은 이쯤하고 다시 하자. 이제부터 우리는 열 가지가 넘는 무공을 서로에게 펼칠 거야.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동하는 걸 고르도록 해.”
“희한한 방식이네요. 보통은 이런 식으로 가르치진 않잖아요?”
“우리가 보통 엄마가 아니라서 그래.”
“그래.”
까르르 웃고는 엄마들은 천화가 생전 처음 보는 무공들을 느리게 펼쳐 나갔다.
그녀들이 펼치는 무공 중에는 정종의 무공과 사도의 무공, 심지어는 마교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진 마공 종류도 있었다. 손에 불덩이를 머금은 듯 피부가 빨갛게 변하는 혈수마공(血手魔功)이라거나 주먹을 마치 딤섬처럼 옹송그려서 휘두르는 탄자권(彈子拳).
혈수마공은 마교(魔敎)의 비전이며 탄자권은 소림칠십이절예 중 하나다. 그런 것들을 너무도 쉽게 사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형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초식을 제대로 된 운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런 무공들을 어떻게, 왜…….”
사희 둘이 뱀처럼 웃으며 동시에 대답했다.
“그야 뱀은 지혜의 열매를 먹었으니까.”
“하물며 우리는 쌍두사인걸.”
“무공을 무작정 익히고 그걸 둘이서 분석하는 것이 일이야.”
“일이야.”
천화는 뜻밖의 단어를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
무공을 분석하는 게 무슨 일이 된단 말인가. 무림이라는 세계를 소설로밖에 접해 보지 못한 천화는 생뚱맞은 표현에 당혹했다.
사희가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붉은 입술 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
“무림인들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작정하고 쳐들어올 때 초식 이름 같은 걸 외치고 그러진 않잖아. 수없이 대련하고 연구해서 약점을 알아내고 딱 보면 파훼법이 떠오를 정도로 무공을 파헤치는 것. 그것도 십요궁희에게 주어진 일이란다.”
“그러려면 많은 무공을 익혀야 해. 황궁이니까 무공서를 구하긴 쉽고 역시 나라님이라니까. 돈을 한 번 풀면 거침이 없어.”
“없어.”
“세상에! 타인의 무공을 연구하고 파훼하다니, 그런 일도 해요?”
“응, 이런 걸 무학자라고 해.”
“좀 큰 문파나 연합에서는 이런 사람들 꼭 있어. 학승(學僧) 중에서도 재능 출중한 사람들을 모아다가 이런 걸 토론하고 하는걸.”
둘은 까르르 웃으면서 서로를 붙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천화가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침내 춤을 다 추고난 후에야 두 명의 사희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무튼 엄마들은 무공을 가르쳐 줄 거야.”
“우리만큼 무리에 박식한 사람도 없으니까 복이 터진 거야.”
“얘는, 복이 터지긴 어떻게 터지니. 복주머니가 터지지.”
“그러네? 깔깔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떨기 시작했다. 천화가 한숨 쉬며 물었다.
“……웃겨?”
두 명은 입을 모아 말했다.
“너무 웃겨!”
“지, 지쳤어.”
엄마들이 무공을 느릿하게 펼치는 것을 보고 가슴에 꽂히는 몇 개의 무공을 발견, 대답했다. 사희는 한 번 보고 묘리까지 파악하진 못했지만 나름의 경로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천화에게 무공을 펼쳐 보라고 말했고 훌륭한 춤 시위를 보고 난 후 그녀들은 의기양양하게 비웃었다.
“진짜 재능 없어. 바보 아들.”
사희는 그렇게 천화를 반쯤 울려 버린 후 재능 없는 이를 위해 서책을 만들어서 주겠다며 묵을 갈았다.
그리고 완전 희기소침해진 천화는 사희들이 부른 혈희의 손을 잡고 일 층으로 내려왔다.
혈희가 토닥거리며 천화를 위로했다.
천화보다야 크지만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아니 엄마라고 불릴 연령도 안 되는 혈희의 토닥임은 별로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천화가 한숨 쉬며 말했다.
“고마워요.”
끄덕.
혈희는 몇 번이고 천희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내 계단을 올라 사라졌다.
천화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일 층으로 내려왔다. 일 층이자 접수계에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흑희가 있었다.
천화는 내심 흑희도 뭔가 특징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 추측했다.
언제나 함께하다 보니 몰랐지만, 엄마들은 뭔가 좀 대단했다.
궁희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가족이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은 독이 되어 상대의 진짜 힘을 실감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림 소설을 그렇게 읽었으면서도 비범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만날 때마다 “먹어 버리겠다!” 면서 사악하게 웃는 사희가 무학자(武學者)라는 것도, 혈희가 혈궁이라는 살벌한 곳에서 자랐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흑희도 평소에 생각했던 일반적인 궁희가 아닐지도 모른다.
흑희는 일 층의 기녀였는데, 궁희들은 나름의 역할과 무공에 따라서 각자의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흑희는 궁희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데다 셈을 잘한다는 장점 덕분에 접수계까지 도맡고 있었다. 접수계에서 접수 업무를 맡으면서 다른 궁희들의 활동 사항까지 파악해야 하고 외부에서 음식들을 사오며 유행하는 것들을 파악하는 일도 해야 했다. 이 모든 게 그녀의 우월한 능력 때문이라고 다른 궁희들은 말하는데 천화가 보기엔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흑희가 때때로 허공을 향해 살기 가득한 주먹질을 하면서 엄마들의 이름을 분노에 찬 언성으로 토해 내는 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