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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단향 1권(9화)
四. 고수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돈만 있으면 될 것도 같다(2)


천화가 무림에 나설 때를 대비하여 익힌 대외적인 무공, 그것을 사용했던 전대의 기인인 금포마인. 물경 이백 년 전의 고수였고 후계자도 없었다고 알려져 있는 이로, 사희는 용케 그 무공을 알고 있었다. 천화는 각종 무공을 배웠지만 금포마인의 무공이 자신과 상성이 잘 맞는데다 취향이라는 사실에 열성적으로 훈련했다.
덕분에 화후는 무려 삼성에 머물러 있는 상태.
“금포마인의 무공은 범재(凡才)라고 해도 쉽게 익힐 수 있는 상승무공이야.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익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 그러면서도 위력도 있고 확실한 전과도 올린 바 있어. 그런 무공의 대부분은 무기에 구애 받지 않지.”
“응, 사희 엄마들은 그렇게 말했었어.”
“하지만 기왕이면 전용으로 만들어진 검이 더 좋지 않을까?”
천화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 년 전 화려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에 온갖 거만을 떨고 도도하게 굴던 고수가 있었다. 어디서 나왔는지는 지금까지도 불명이었지만 무림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완성에 가까운 고수였다고 한다. 번쩍번쩍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포를 입고 온갖 화려한 차림새에, 반지도 일곱 개나 끼고 있었다는 괴상한 남자. 그럼에도 인기는 많았는데 얼굴이 매우 준수하며 돈이 많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떤 전장, 혹은 거상의 하나뿐인 자식인가 하는 소문도 돌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고수도 결국 시비를 피할 수는 없었는데, 그때 진정한 사내의 무공을 보며 관중들은 몸을 떨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기인적인 행태에 사람들은 괴인(怪人)으로 분류, 당시에 혼자서 강호를 떠돌며 괴상한 짓을 해 대던 세 명과 엮어 사대마인(四大魔人)이라고 칭했다.
이백 년 전의 무림은 조금이라도 성격이 이상하고 도의에 맞지 않게 행동하면 마교의 후예 따위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는지, 나쁜 짓은 거의 하지 않던 그는 마인이라는 별호를 달았다. 사대마인의 실질적인 수위를 차지했던 이에 비하면 악행이랄 것조차 없었는데.
하지만 금포마인은 마인으로 선포되었음에도 뭐가 어째? 난 나의 길을 간다, 이런 말을 던지고 강호를 주유, 각종 기행을 일으켰다고, 그리고 나타났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금포마인이 사용했던 검이 바로 금고검.
황금빛으로 도야된 화려 무쌍한 보검이었다.
“금고검이 있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히 있어. 그러니까 그 검을 쥐어.”
“괜히 날 이렇게 거칠게 멈춰 세운 게 아니었구나. 정말 화낼 뻔했어.”
천화는 따스한 시선으로 사희들을 바라보았다. 심심해서, 혹은 장난삼아서, 대단찮은 이유로 입을 막고 횡경막을 쳤으면 뭔가 큰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런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천화의 말에 사희 두 명은 손바닥에 난 땀을 번개 같은 속도로 닦아 냈다.
“물론이지!”
“우리는 장난을 잘 치지만 진지할 땐 무척 진지해.”
“그래서 금고검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어?”
사희가 까르르 웃으며 동시에 말했다.
“가장 사치스런 모양!”
그건 금포마인의 특징이기도 했다. 당시 최고로 화려한 차림에 보석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던, 그런 모양새.

천화가 구희의 층계로 향했을 땐 시종, 시녀들이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조용해서 좋군,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 채 안으로 들어서자 방은 온통 칼이 늘어져 있었다.
그 무기들은 전원 한 가지 종류였는데 바로 검이었다.
“전부 검이네요?”
천화는 영문을 몰라 하는 얼굴로 물었다.
“좋아?”
“네, 무지 좋아요. 검이 제일 좋은데요. 역시 마음을 알아줬군요.”
천화가 좋아라 하며 검을 살펴보았다.
구희는 늘어선 검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천화를 응시했다.
천화가 검을 들어도 보고 검신을 쓸어도 보았다. 검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몹시 괴괴한 모양새를 가진 것도 있었고 검막이 없는 괴상한 물건도 보였다. 그런 반면 송문(松紋)이 새겨진 검, 매의 눈동자가 새겨진 정통적인 모습의 검도 보였다. 천화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은 수많은 검 중에서 언뜻 드러나 보이는 예리한 검기를 가진 것들이었다. 흑희가 가르쳐 준 상식 중에는 각양각색의 검도 있었는데, 설명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검들이 다수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 섬뜩한 느낌이 들고 살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의 저 검은 흑염사자(黑髥使者)가 사용하던 천잔검(千殘劍)이며 따뜻한 느낌이 나는 저 검은 무량검(無量劍)이라 하여 무당의 노고수가 사용했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모인다는 시장마냥, 무기들이 있었다.
“뭐를?”
“응? 잘못 들었어요. 아, 뭐를 가지고 싶냐고요?”
“응.”
“한 자루만 돼요?”
“응.”
천화는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겨서 검을 쥐었다.
손잡이를 제외한 전부가 황금색으로 번뜩이는 검, 손잡이도 범상치 않았다. 색색의 보석이 박혀 있고 굉장히 섬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천화가 손잡이를 감싸 쥐듯 움켜쥐었다.
아직 손가락이 짧아서 검을 전부 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지문에 걸리게끔 문양이 오돌토돌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제 아무리 실력 없는 이가 쥐더라도 일반적인 충격으로 검에서 손을 떼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나의 예술품과 다름없는 검. 서역에서 정련한 쇠를 만 번 두드려 만들었다고 하는, 수십 차례의 비무 후에도 관리 한 번이면 이 나간 흔적조차 없게 된다는 금고검이었다.
‘과연 가장 사치스런 모습이긴 하네.’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수실만 해도 열 가족이 일 년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화려한 검이었다. 천화는 검을 단단히 붙잡고 한 차례 휘둘렀다.
스릉.
바람을 에는 소리와 함께 금고검은 대기를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좋은 검이 가지는 요건을 모두 갖춘 이 검은 무게 중심도 적당하며, 가벼울 뿐더러, 칼날마저 예리하기 짝이 없었다.
천화는 몇 번이고 검을 더 휘둘러보았다. 그때마다 대기를 분리하는 느낌을 받는다. 천화는 이렇게 잘 드는 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가볍기까지 하다.
각종 보석이 덕지덕지 발라진 화려하기 짝이 없는 무기지만 무게 중심이 너무도 잘 어울려서 무게를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거칠게 휘두르는데도 손목에 조금도 무리가 오지 않는다.
“하, 이건 정말…….”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검을 올려다보는 천화를 보며 구희는 고개를 슬며시 기울였다가 곧 살래살래 털어 냈다.
구희가 입을 열었다.
“그게 좋아?”
“네, 정말 좋은데요.”
“좋은 검은 맞아. 하지만 그건…….”
“그건……?”
구희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는 사이 천화는 다시 검을 몇 차례 더 휘둘러 보였다.
구희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 많은 검 중에서 그녀가 추천할 만한 검을 꼽으라면 다섯 자루가 전부. 이야기로 들었던 천화의 공부를 떠올리면 그 다섯 가지의 검 중 하나를 꼽게 될 거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다섯 개의 검이 아닌 것을 뽑을 줄이야. 게다가 저렇게 즐거워할 줄이야.
구희는 예상외의 상황에 잠시 당황했다.
“그 검… 좋긴 해.”
분명히 말해서 황금색의 검날을 가진 검은 최고급품이었다. 이 많은 검들 가운데서, 황궁무고의 무기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좋으니까. 하지만 너무 화려한데다 실전적인 검법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면 황금색의 잔상이 남아 무척 아름답게 보이긴 할 테지만, 검날이 좀 넓고 두꺼운 편이었다.
“하지만…….”
다른 검을 가지길 원했다라는 말을 애써 감추며 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좋아하는 천화를 보면서 구희는 다짐했다.
“그럼.”
저 검을 휘두르는 천화를 다른 어느 검을 든 천화보다 강하게 만들면 된다.
다행한 일이지만 구희는 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구희는 눈여겨 봐 둔 다섯 자루의 검 가운데 하나를 꼽았다.
천잔검. 천살성(天殺星)이 뜨는 밤에만 두드려서 만들었다는 희대의 마검이었다. 마검에 깃든 불쾌한 감정과 피 냄새가 비릿하게 올라왔지만 구희는 그 정도에 홀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구희는 천잔검을 한손으로 움켜쥐고 천화를 향해 말했다.
“덤벼.”
너무나 잘 들어 주인의 이름보다 더 위세가 높은 검 중 하나.
구희는 결코 냉정한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자상한 궁희를 꼽으라면 천화가 제일 먼저 추천할 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특유의 말을 잘라먹는 버릇과 큰 키, 그리고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 때문에 오해를 살 때가 조금 있다.
그 성능 덕분에 주인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천잔검을 든 구희는 그 오해를 받기에 충분해 보였다.
좋아라하던 천화가 공포를 느끼며 칼이고 뭐고 내던지고 덜덜 떨 정도였던 것이다.



五. 파고들수록 비범해지는 곳이 국가의 기관(1)


궁희는 나이 순서에 따라서 언니 동생이 정해지지만 그보다는 무공의 정도에 따라서 층계가 정해진다. 외부에서 알려진 바로는 최고층에 있는 이가 모든 궁희의 장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내부 기준으로 따졌을 때 꼭대기 층에 자리 잡고 있는 요희의 경우는 궁희 중에서 세 번째 서열에 불과했다.
궁희가 만들어진 지는 나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고 한다.
시대나 황제의 의견에 따라서 기준이 변하는데, 그래서 처음엔 좀 곤란한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미모를 기준으로 가장 예쁜 기녀가 정상을 차지하는 일도 있었던 듯하다.
현재 흑옥루는 무공의 수준에 따라서 각기 머무는 층수가 다르다.
덕분에 가장 높은 층에 머무는 이는 요희. 그 다음으로 무공이 강한 기녀는 구희였지만 그녀는 요희보다 두 단계 아래층인 칠 층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팔 층은 어디의 누구인가.
구희 단리서라가 살고 있는 칠 층에서 한 계단 올라간 천화는 실로 그윽한 향취에 넋을 잃을 뻔했다.
육부의 장관들이나 찾을 수 있다는 팔 층.
꼭대기 층인 구 층에 머무는 요희가 사실상 황제와 대학사만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팔 층의 그녀가 기녀들의 정점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녀는 기녀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서 모두에게서 언니라 불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아직 무척이나 젊은데다 환골탈태에 반로환동을 해 버려서 청춘을 즐기고 있지만.
“어머, 어서 오세요. 아들.”
옅은 분홍색의 연기를 태워 올리고 붉은색 벽지에 온갖 값비싼 물건으로 호화찬란하게 차려 놓은 옥실. 옥실 한 가운데는 여인이 한 명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화려하게 차렸는데도 불구하고 앉아 있는 여인을 전혀 꾸며 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하게 웃었다.
천화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을 엄마라고 부르고 있어 어지간히 눈이 높았지만 가끔씩 여인을 보면 그 미모에 놀라곤 한다.
그만큼 여인은 아름다웠다.
궁희 전부가 아름다웠지만 그녀는 실로 독특했다.
“와, 춘희 엄마!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오랜만이죠?”
춘희(春姬) 주아란(周阿蘭).
현 황제가 즉위할 때 가장 큰 적이었고 황위 계승 싸움에서 패배한 이후 궁희가 된 국성(國姓)의 여인.
천화는 엄마들 중에서 가장 짙고 달콤한 장미 향기를 맡으며 얼마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도약을 해 춘희의 품에 안겼다.
춘희는 입고 있는 옷에 주름이 지는 것도 상관없는지 팔을 벌리고 천화를 안았다.
“오늘도 엄마는 엄청나게 예뻐요. 궁희 최고!”
“고맙군요. 우리 아들도 엄청나게 튼튼해졌는걸요?”
“히히, 알겠어요?”
“사별삼일 즉당 괄목상대(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더니. 과연, 우리 아들도 남자였군요. 하루만 안 봐도 늠름하게 변하는 모습이 훌륭하군요. 사내는 매일 같이 변한다더니 정말로 우리 아들도 멋지게 자라 주어 기쁘답니다. 때때로 내려가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집중력이 저어될까 우려해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답니다. 이해해 주겠지요?”
“당연하죠, 춘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