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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단향 1권(12화)
五. 파고들수록 비범해지는 곳이 국가의 기관(4)
천화가 전희를 바라보면서 외쳤다.
“이거 재밌어!”
“그래?”
“응. 못 이길 걸 뻔히 아는데도 비무를 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정말 즐거워! 아무것도 한 거 없이 공격만 막았는데도, 이거 즐거워!”
“흐음, 역시 사내아이네. 나 때는 그런 거 안 했는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들, 왜 내공을 안 쓰지?”
“아, 내공 써야 하는 거였어?”
전희가 이마를 짚으며 신음했다.
“하지만 내공을 쓰면…… 엄청 강해지는데? 못 막을지도 몰라.”
“어이쿠야, 아들이 지금 엄마 걱정한 거였어? 당연히 써야지.”
“나 내공 사 갑자나 되는데?”
“엄마도 사 갑자야.”
“설마 영약빨?”
“응.”
천화는 같은 사 갑자인데도 이렇게 격차가 나는 것을 느끼며 뭔가 좀 해탈한 표정이 되었다. 그건 곧 사라졌지만, 다른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사 갑자끼리 부딪히면 흑옥루가 무사할까?”
“호오, 흐음, 후후. 흥미로운 관점인걸? 사 갑자의 내공을 가진 무인끼리 부딪치면 흑옥루가 평지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전력을 다하면 그렇지 않을까?”
“그럼 아들은 사 갑자의 내공을 전부 소모해야 할 무공을 알고는 있어?”
뜻밖의 말에 천화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으잉?”
그러고 보니 없었다.
사 갑자의 내공을 한 번에 전부 소모할 수 있는 무공 같은 건.
“있어도 한 번에 다 못 쓰니까 괜찮아. 내공이 많다고 강한 힘을 낸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혀 달라.”
“어? 그래?”
전희는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거라고 충고했다.
“내공은 많을수록 좋아. 하지만 말이지 결국 내공이란 결국 얼마만큼의 소비를 어느 정도까지 버텨낼 수 있느냐는 창고에 불과해. 창고의 용량이 크면 좋긴 하겠지만, 그것도 결국 소비를 하는 정도에 따라 다른 거야. 내공이 아무리 많아도 초식을 사용하는 것에 따라서 내공이 소모되는데 아들은 전 내공을 쏟아 부을 초식을 익히고 있지 않잖아?”
“그렇죠.”
“가령 검법을 펼칠 때는 얼마만큼의 내공이 일정한 속도로 줄어들어. 그중에서 절기라 불릴 만한 것들은 더욱더 많은 내공을 소모하고 더 빠르게 휘두르거나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그리 많지는 않아. 훌륭한 무공이란 사용하는 술자의 능력을 안정화시키는데 주력하니까. 훌륭한 무공이 뭐라고 생각해?”
“그, 글쎄?”
“효율 좋은 무공이야. 얼마의 힘으로 얼마의 속도와 어느 정도의 기교를 보여 주냐는 거지. 그걸 무시한 무공은 곧 자멸하거나 약점이 밝혀지기 마련이고.”
“잠깐만. 그럼 사 갑자의 내공이라는 건…….”
“사 갑자의 내공으로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내공은 무공의 완성도처럼 닦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양을 불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지. 물론 내공이 많으면 오랫동안 싸울 수 있으니 유리해지긴 하겠지만.”
천화는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검법, 좋은 무공이란 결국 얼마만큼 내공을 아끼며 높은 효율을 보이느냐 뭐… 이런 거야.”
“그럼 내공심법은 뭐야? 내공을 늘려 주는 기술에 불과한 건가?”
“음, 단정하긴 곤란한데. 내공심법은 그거지. 내공이 쌓이는 정도를 높이거나 잔부상에 당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야. 기본적으로 내공심법을 운용할수록 내공이 축척되는 건 맞는데, 그 외에도 무공을 펼치는데 약간의 이익을 더할 수도 있어.”
“이익이라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럼 다르게 생각해 보자. 명문 문파의 경우, 익히는 내공심법이 존재하기 마련이잖아? 이 내공심법은 그쪽에서 익히고 있는 무공과 매우 잘 어우러져. 즉 다른 내공으로 그 무공을 펼치는 것보다 여기서 습득한 내공으로 무공을 펼치면 내공의 소모가 줄고 효율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거지. 그게 바로 명문 정파가 같은 내공에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뜨내기보다 강한 이유야. 내공심법은 결국 우물이야.”
“우물?”
“우물마다 물맛이 다르다고 하는 경우, 있잖아?”
“응, 그런 경우 있지!”
“얼마나 팠느냐에 따라서 물이 차는 정도도 다르고.”
그제야 천화는 명확히 이해를 했다.
“내공심법은 즉 물맛을 바꾸어 주고 고갈되어도 다시 차오르는 우물을 만드는 기술이야.”
전희가 빙긋 웃었다.
“이 비유 마음에 드는걸. 우물이 내공심법이라고 했지? 내공은 그 우물에 최대한 찰 수 있는 물의 양이고. 그런데 우물의 물을 사용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겠어?”
천화가 감을 못 잡자 전희는 단봉으로 살짝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내야겠지?”
“아, 그렇지.”
쿡 하고 웃으며 전희가 말을 이었다.
“그 우물에서 물이 필요하면 두레박으로 물을 푸지? 이 두레박이 바로 무공이야. 두레박의 크기에 따라서 퍼낼 수 있는 물이 차이가 나고.”
천화가 고개를 들고 먼 시선을 한 채로 전희의 말을 연상하고 있었다.
“양이 줄었으면 다시 지하수의 물이 퐁퐁퐁 하고 솟아오르겠지? 내공이 다시 차오르는 거야.”
과연 그런 거였던가.
천화는 그제야 명확히 무공과 내공, 그리고 내공심법을 이해했다.
“명쾌한 해석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천화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자 전희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모자는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 사 갑자의 내공 모두를 사용하는 그런 무공도 있어?”
“당연히 있지. 그런데 보통 그런 건 전신의 모든 잠력을 끌어서 사용하는 형태라서 말이지. 질풍신뢰(疾風迅雷)처럼 빠르게 달려들어 동귀어진(同歸於盡)을 이끌어 버리지, 좀 명문의 무림 방파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을 거야. 이런 거에 발달한 녀석들은 마교라는 건 알지?”
“마교? 어째서?”
“마교에 투신한 신자들은 무림인을 비롯한 나라님에게 붙잡힌다고 해도 결과가 똑같이 때문이야. 잡히자마자 죽거나 잔혹한 고문 뒤에 죽거나. 그래서 그들은 최후를 앞두고 결코 몸을 아끼지 않아. 무공이 좀 미완성이든 심한 부작용이 있든 어쨌든 전력을 다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무공이 하나씩 있어.”
같이 죽자, 뭐 이런 말이지 하면서 전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좀 애매하게 들릴 수 있으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파나 명문의 경우엔 몸을 던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최후에 발휘할 수 있는 어떤 구명절초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야. 귀진공(歸盡功) 같은 것들. 아무 내공도 없는데 최후에 숨 한 번 들이쉬면 한 줌의 내공이 돌아온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흑희에게서 얼추 들었던 것 같지만, 이렇듯 자세하게 듣지는 못했던 터라 천화는 감탄 일색이었다.
최후의 최후에 일격을 먹일 수 있는 절초라니!
‘남자답잖아!’
“자, 휴식은 여기까지. 이제 내공을 사용하기다?”
“응!”
“칼을 떨어뜨리면 공수 교대야?”
천화는 기세 좋게 일어나 검을 쥐었다.
그리고 짧은 기합과 함께 전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법의 이름은 표리십삼검(表裏十三劍).
검법의 기본이 되는 검으로 무림인들은 거의 모르고 황궁의 위사들이 검을 사용할 때 처음 익히는 것이었다. 위력보다는 검법을 사용할 때 좋지 않은 버릇이 드는 것을 방지하고 확실한 경로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검법.
하지만 엄청난 내공을 불어넣은 천화의 검법은 자못 가슴 떨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검법의 앞에 선 전희가 짙은 웃음과 함께 단봉을 고쳐 쥐었다.
여전히 전희에게는 법칙이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약점도 없었다.
“자아, 팔에도 힘주고 검을 대들보처럼 꾹 쥐고 흔들리지 않게!”
“이잇, 알아!”
천 번, 만 번을 익혀 이제 칼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경지에 달한 이의 솜씨에 맞서 소동의 검이 춤춘다.
칼과 검이 부딪혀 경쾌한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속도가 느려졌어! 이래서야 무림인이 되겠어? 하앗, 핫! 이번엔 엄마 공격이야?”
“으윽, 이익! 으리야아앗!”
전희의 공격에 쉬지도 못하고 집중한 채 검을 휘두르는 천화와 그에 맞서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며 막아서는 전희. 그 모습은 마치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연인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살벌한 검무, 비무와 비슷한 대련.
“멀었어, 아직 아니야.”
흑옥루에서 엄마들의 교육을 받는 일은 천화에게 있어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모든 교육 가운데서 제일 큰 만족을 느끼는 것이라면 이번. 전희와의 대련.
전희 악자연은 정말 봐주는 것이 없었다.
크게 휘둘러 허점을 유도하고 미끼를 무는 즉시 공격을 퍼부어 댔다. 천화는 몇 번이고 튕겨 나가고 무기를 떨어뜨리길 반복했다. 어딘가의 무가에서 일대 제자, 그것도 수제자를 키울 때나 할 법한 단련 같았다.
“힘들다면 그만둘게, 힘들다고 해.”
“아니, 이런 공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천화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몸속에 깃든 거대한 내공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지만 내공은 육체를 대신할 수 있었다. 단전이 뜨거워질 때까지 내공을 일으켜 몸을 세운 천화가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나는 충분히 사랑 받으면서 자라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어차피 나 잘되라고 해 주는 거잖아? 그러니까 최소한 엄마들 중에서 한두 명 정도는 이렇게 냉철하게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해.”
“그래?”
“응, 그러니까 이렇게 죽을 정도로 힘들어도 참을 수 있어. 버틸 수 있어.”
전희 악자연은 부드럽게 미소 짓더니 한층 더 힘을 가해 봉을 휘둘렀다. 천화가 그것을 받아 내다 튕겨 날아갔다.
“하체가 부실해, 싸움의 기본은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 가르쳐 줬을 텐데.”
천화가 벽에 등을 세게 부딪치고 격렬하게 기침했다. 전희가 오만하게 천화를 내려다본다. 봉을 천화의 눈앞까지 밀어 놓고 반대편 손으로 도발했다.
“뭐야, 사내 녀석이 여기서 끝이냐?”
천화가 잇소리를 내며 일어서려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내공을 밀어 넣어 보아도 아예 일어설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천화가 한숨을 쉬고 다친 손아귀를 감싸 쥐었다.
“졌어.”
“승부 근성도 부족한걸? 잔말 말고 일어서.”
“……끄응.”
천화가 평생에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었다.
전희가 싱긋 웃으며 천화의 이마를 밀었다. 안 그래도 비틀거리던 천화는 저항조차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수고했어. 하지만 천화야, 잘못했다는 거 알지?”
“무슨 잘못 말이야?”
잔뜩 지친 목소리로 천화가 묻자 전희가 봉을 거두고서 말했다. 그녀는 수 시진 동안 대련을 했고 주로 공격을 퍼부어서 훨씬 체력 소모가 심할 텐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대련이든 뭐든 생사투(生死鬪)가 아닌 한 역전을 위한 한 수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좋아.”
“아.”
“알고는 있었지만 실감하진 못했지? 하지만 이번에 도발당해서 일어난 그 약간의 힘. 그걸 키워 봐. 그렇다면 분명히 초주검이 되어 버린 상태로도 딱 한 번 무기를 휘둘러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응, 고마워. 전희 엄마.”
안색마저 질린 천화가 위태위태하게 몸을 흔들면서도 편안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전희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천화를 끌어안았다.
“자, 그럼 모처럼 같이 씻을까?”
“아, 아니. 나도 이제 나이도 있고…….”
“푸핫. 그렇게 말하는 게 애라는 거야. 게다가 반항할 힘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해서 뭣하겠어.”
천화는 동감이라며 기진맥진한 채 전희에게 끌려갔다.
“아참, 그리고 다음엔 네가 쓰는 검을 가져와도 좋아.”
“내겐 비밀이 없는 건가…….”
“최소한 내겐 그렇지.”
전희는 악동처럼 웃으면서 천화를 끌고 욕탕으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가기 싫다고 발버둥이라도 쳤겠지만 지금은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전희는 구희와 마찬가지로 외유를 할 일이 잦기 때문에 흑옥루를 자주 비웠다. 태평성대라고까지 할 만한 상황도 아니고 변방의 위협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전희도 나서야 할 일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전희와의 대련은 몇날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