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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단향 1권(13화)
五. 파고들수록 비범해지는 곳이 국가의 기관(5)
아무리 힘든 수업이라고 해도 사흘, 길어야 닷새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열흘 이상을 전희의 방에 머물러 생활해 왔다.
“오늘 가르쳐 줄 것은 상승의 무학이야.”
“상승 무학?”
“네가 원하는 무술은 후발선제(後發先制)지? 어떤 공격이든 받아치거나 피해 내서 반격을 할 수 있는 기술.”
“응.”
천화는 비무나 대련을 하면서 전희의 공격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공격을 하려고 했다. 전희는 그게 버릇인가 생각했지만 거듭 대련을 해 본 결과 천화가 다른 상황이 되었는데도 시도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제대로 시도된 적이 한 차례도 없기는 했지만 천화는 피하고 친다, 혹은 막고 친다는 전법을 원했다.
참 어려운 걸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녀석다웠다.
“좋은 생각이긴 해.”
후발선제에 의한 필살 반격, 멋지지 않은가.
“이걸 익히기 위해서는 천부적인 전투 감각도 그렇지만, 특히 뭔가가 필요해.”
“뭔가?”
“응, 그걸 위해서는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당장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번엔 감각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하자.”
“감각의 극대화라, 음! 반사 신경 말이지?”
“그래.”
전희가 단봉을 말아 쥐고서 서늘하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전해 주는 불길한 기분에 천화는 몸을 살짝 떨면서 물었다.
“자, 잠깐. 그 방법에 대해서 물어도 될까?”
“뭘 새삼스레.”
기녀의 그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딱딱한 손아귀에서 봉을 돌리고 있던 전희가 어깨를 흔들었다. 동시에 뻗어 나오는 단봉의 일격.
“죽진 않아!”
“으, 으, 으아아아악!”
천화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단봉이 코앞까지 닥쳐왔다. 정확히는 왼쪽 눈꺼풀 위로.
“이렇게 겁이 많아서 어떡해?”
“거, 거리 조절을 한 거야?”
“그래, 어떤 암살 조직이나 나쁜 조직에서야 이 단봉에다가 날을 달고 찔러 댈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그게 정공법이라고 해도 말이지. 거리 조절은 충분히 할 거야.”
눈 바로 앞에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단봉을 보며 천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단련은 어떻게 하는 거야?”
“지금처럼, 찌르는 방향을 정확히 눈치채고 궤도상에서 벗어나면 돼.”
단봉을 끌어들였다가 다시 뻗는다. 천화는 반사적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가 전희가 외치는 소리에 움찔해 몸이 굳었다.
“뒤로 피하지 마. 그럼 안 돼! 후발선제를 원한다고 했잖아? 상대의 공격을 회피, 혹은 받아내는 것과 동시에 너도 반격을 노리려면 오히려 앞으로 나와도 부족해.”
“그, 그 방식이 이렇게 위험한 거였어요?”
난 그냥 멋진 방식일 것 같아서 이렇게 정했단 말이야! 라고 외칠 것만 같은 표정으로 천화가 몸을 덜덜 떨었다.
단봉이 몸에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인적인 속도로 몸의 일정 부분을 향해 노리고 달려드는 게, 겁을 먹지 않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무서운 일이다.
“히, 히익! 차라리 정공법이 좋았어, 이게 뭐야!”
“음? 정공법이 좋다고?”
무림인들 대부분이 사용하는 방식.
정정당당하게 무기를 겨누고 서로의 무공을 피력하며 실력을 증명하는 비무. 그게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 천화는 막고 친다라는 개념으로 후발선제의 필살 반격을 생각했지만 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공법이 좋아요!”
“알았어. 하는 수 없지.”
아쉬운 표정으로 전희는 무기가 걸려 있는 벽으로 다가가 단봉 끝에 날을 달기 시작했다. 날은 봉신연의의 나타(那咤), 혹은 삼국지의 기령이 사용했다는 삼첨도(三尖刀)였는데 길이가 짧은 단봉에 달아 놓으니 굉장히 이상해 보였다.
“저, 저기 그걸 왜 달아요?”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원래의 삼첨도보다도 살벌해 보였다.
“정공법이 좋다며?”
“그런데요?”
“이 수련법을 정공법으로 해 달라는 의미 아니었어?”
전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문했다.
“네?”
그 말을 듣고 천화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희 엄마가 말하는 그건…….
‘어떤 암살 조직이나 나쁜 조직에서야 이 단봉에다가 날을 달고 찔러 댈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그게 정공법이라고 해도 말이지.’
천화의 얼굴을 쪼갤 기세로 삼첨도가 찔러왔다.
천화가 전력을 다해, 온몸에 내공을 싣고 몸을 숙였다. 머리털 몇 가닥을 자르고 벽을 꿰뚫는 삼첨도. 삼첨도가 뽑혀나가다 벽에서 후둑, 후둑 소리를 내며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천화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전희를 바라보았다.
“잘 피하는데? 그럼, 다음 간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말을 할라 치면 삼첨도에 찔릴 것 같았으니까.
천화는 죽음이 코앞에 닥친 것을 느꼈다.
전력을 다해서 삼첨도의 궤적에서 벗어나며 천화는 두 번 다시 말을 번복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전희가 그것까지 노린 건 아니었을 테지만, 천화는 그렇게 말을 바꾸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六. 세상에서 정체를 감춘 건 사실 황궁에 있다(1)
천화는 아직은 어린 아이답게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생활화 되었는데 잠을 자는 것만큼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천화가 온몸을 펴면서 일어났을 땐 옆에 전희가 없었다.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다 주렴이 걷어진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천화는 소리 없이 물러서서 침실에서 기다렸다.
손님방에 주렴이 쳐져 있는 경우는 단 하나 뿐이었다.
손님이 있다.
천화는 기다릴 줄 알았다. 기다리는 건 싫지 않다.
전희의 침실에서 몇 가지 책자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리도 하고 짧게 노래도 흥얼거린다. 그러곤 시종들이 움직이는 것에 맞춰서 방을 빠져나오며 손님의 얼굴을 힐끗 본다.
대장군.
황제의 대장군이자 이 나라 최강의 무장이 전희와 마주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고급 손님이기 때문에 시종들이 바삐 움직인다는 게 이해가 간다.
“악자연, 네가 그런 부탁을 할 처지인가?”
“너무 그러지 마. 관지충. 그러면서도 여기에 온 걸 보면 아주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너도 생각이 있어서 주상 전하께 그렇게 요청했고 우리 흑옥루도 끼어들게 된 것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게 빌려 달라는 말은 과하군.”
“대장군부에서도 후보를 정해 놓았잖아. 기왕이면 이쪽에도 선심을 베풀어 달란 말이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뭔가를 사용하기 위해 대장군을 여기까지 부른 걸까. 십요궁희가 꽤나 대단한 위치에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감히 대장군을 오라 가라 할 줄은 몰랐다. 천화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상황을 보기엔 그랬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무인들 사이에선 지보의 보물이다. 게다가 사용에 제한까지 있지. 소모품이라는 거다.”
“물론이지. 그러니까 빌려 달라는 거야.”
“그렇다면 알겠다. 신세진 것도 있으니 빌려 주지. 하지만 그냥은 안 된다. 소모한 값을 대신 치르도록 해라.”
“그렇겠지. 어지간한 건 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뭐를 요청할 생각이지?”
대장군은 꽤나 긴 침묵 후 입을 열었다.
“칠성검(七星劍).”
분명히 말해서 천화는 복 받은 환경에, 자상한 여인들에게서 배웠다.
제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신념으로 인간성조차 마모될 혹독한 수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각기 잘하는 특기가 있다 보니 몸의 피로에서부터 시작해서 영양,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상담까지도 완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문도.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글자는 자기 이름만 쓸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지만, 무인 중에서 그렇게 똑똑한 이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예란 육체의 단련과 정신적 수련이 겸비되어야 하는 법. 하루 종일 칼을 휘두르고 번뇌에 휩싸여도 한 걸음 내걷기 힘든 무도의 길은 자연적으로 학문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서 축복 받은 신체를 지니고 뛰어난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은 어릴 적부터 공부하던 버릇이 남아 있어 학문에도 뛰어난 성취를 지니는데 그 수는 극소수라고 해도 좋았다.
천화는 그런 의미에서 축복받은 세도가 못잖은 환경이었다.
천화의 앞에서 육경(六經)을 펼치는 여인은 한때 왕의 스승 역할까지 했던 가문의 말예였기 때문에.
왕자의 난, 즉 춘희 주아란과 황제 간의 황위 계승 싸움에서 주아란의 편을 들었다가 가문이 삼대나 관직에 진출할 수 없게 된 가문의 여식인 문희 조설하는 궁희들 가운데서 가장 학식이 높은 이였다.
사서오경을 다섯 살 때 떼고 당시 학문으로는 대학사인 할아버지와 치세에 관련된 토론을 진지하게 나누었을 정도. 권력 투쟁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현재 대학사의 지위는 그녀가 가졌을지도 몰랐다.
여성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그녀의 학문은 실로 범상치 않은 것이었으니까.
하필 흑옥루에 들어와서 무공을 배우고 황제를 지키는 것은 국가적인 손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흑단의 머리칼을 정갈히 정리하고 몇 개나 되는 비녀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꿰었다. 다소 파리한 안색에 유약한 인상이지만 자세가 너무도 똑바르고 등을 곧게 펴고 있어 그렇게 연약해 보이지도 않았다. 화장은 궁희 가운데서 가장 옅었으며 그것도 하다 만 것, 혹은 화장이라는 것을 일단은 했다는 의미가 보일 정도로 중요한 부분만 몇 군데 분을 칠하고 연지를 바른 정도였다.
하얗고 험한 삼베옷 위로 화려한 능라 비단의 궁복을 입고 있는 문희는 궁희 가운데서 가장 차분하고 또한 궁희 답지 않다는 평을 가지고 있었다.
천화는 흑옥루의 모든 엄마를 좋아했고 특히 문희를 좋아했지만, 그녀가 엄하게 나올 때는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쳐서 몇 날 며칠이고 피해 있을 정도였다.
귀족, 그것도 권문세가, 그것도 모자라 황제 다음 지위의 대학사까지 지냈던 가문. 그런 뒷배경은 문희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철인으로 만들었다.
즉 흑옥루의 다른 기녀들이 모두 놀러 가자고 해도 그 달의 계획표를 보고 시각을 맞춰 본 후에 ‘바쁩니다.’ 라고 말한 후 찬바람 숭숭 불게 돌아설 그런 여성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천화의 앞에서 서적을 여섯 개나 쌓아 둔 채로 무뚝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육경, 즉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악기(樂記), 역경(易經), 춘추(春秋)의 여섯 경전(經典)을 보고 천화의 안색은 그 어느 때보다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언니나 동생들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교육 방침은 무조건 매섭게 나갈 것이야. 왜냐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아(華兒)는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머리가 나빠서일 뿐이에요. 공부를 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소심한 변명을 해 보지만 문희는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매몰차게 대답했다.
“말 잘했구나. 그렇다면 두뇌의 회전을 빠르게 해 주는 심법을 가르쳐 주겠어. 무공은 아니고 제자백가 시절에 학자들이 한 자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서 뇌를 단련하던 술법이지. 지금은 무림세가를 비롯한 다른 귀족가에서도 어떻게든 변용하여 사용하는 것 같지만 다행히 나는 원본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이것만 배우면 머리가 나빠서 외우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터. 그걸 통해서 이 육경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다 외워야 할 것이야. 반각마다 어느 지문을 물어보겠어. 그렇다면 그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다음 단락을 읊어야 해. 할 수 있겠지?”
“당연히 못하죠! 너무 심해요!”
“다 필요하니까 그런 것뿐이야. 내가 화아에게 못할 일을 시킬 거라고 생각해?”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시경부터 해 보자.”
맺고 끊는 것이 누구보다 확실한 문희의 언변에 천화는 그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문희는 울 것 같은 천화의 얼굴을 본체만체하고 시경을 펼쳤다.
무인들이 생과 사가 나뉘는 전장에서 목숨을 내걸고 몸 바치는 것처럼, 무인들이 서로의 기량과 노력을 믿고 명예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학자들도 일필휘지처럼 인생을 소비해야 할 때가 있다.
공은 공, 사는 사.
문희는 그런 면에서 매우 확실한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이였고 평소에는 그렇게나 자상스럽던 그녀가 지금은 무서운 스승이 되어서 천화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시경은 주초(周初) 시대부터 춘추(春秋) 시대에 퍼진 민요와 시 등을 모은, 이름 그대로의 서적이었다. 본래는 삼천 편이 넘는 것을 공자가 정리하여 지금 이 상태로 엮은 가장 오랜 시집.
천화의 안색은 이미 백짓장 같아 졌는데 문희는 서두를 펼치고 내용을 읊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노래는 시대를 지나면서 다 잃어버리고 시만 남았기 때문인지 문희가 읊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천화가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중반부를 한참 지나서였다.
그 시라는 것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 들으면 자장가로 딱 어울린다.
문희 조설하의 목소리는 몹시 낭랑했지만 시라는 마력 앞에서는 천상의 소리도 별로 의미가 없었다.
“읊어 보도록 해.”
“…….”
“바지 걷어.”
천화가 바지를 걷었다. 문희는 태어나서 처음 회초리를 들었지만 알다시피 그녀는 궁희고 강력한 무공을 알고 있으며 영약을 통해서 엄청난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놀랍도록 부드러운 동작으로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수법을 섞어 회초리를 휘두르니 천화의 다리가 남아나질 않았다.
“내, 내공을 실었는데도 아파!”
“얕은 수를 써 봐야 소용없어.”
문희는 내공으로 보호하고 있는 다리를 강기를 파괴하는 수법을 사용하여 후려쳤다. 얇은 회초리로 일곱 대 맞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