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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단향 1권(15화)
六. 세상에서 정체를 감춘 건 사실 황궁에 있다(3)
우희(虞姬) 소소군(蘇素君)은 엄마들 가운데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요염하며, 가장 인기가 많은 이였다. 미모야 다들 천상의 선녀와 같이 비등비등하다고 해도 꾸미는 것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건 자명한 일. 춘희가 손댈 수 없는 고귀한 꽃이라면 우희 소소군은 손대면 그대로 향기가 묻어 버릴 것처럼 청초하고 만지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유혹하는 꽃이었다.
속살을 많이 드러내는 당나라 시대의 궁녀 복장을 더욱 화려하게 고친 옷을 차려입은 우희는 동작 하나하나가 누군가를 홀리기 위한 것 같았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도 여자에 관련된 것.
여자를 보는 눈이 천자의 그것만큼 높아진 천화라도 작정하고 달려드는 여성을 상대하면 곤란을 겪게 될 것이라 우려한 우희는 역사 속 여성들의 활약상과 그로 인해 일어난 효과 등을 설명하며 여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도록 교육했다.
“여자의 매력에 빠져 정력을 해치고 이지마저 상실하여 국정 운영을 위태하게 하는 것부터 패망하는 것까지, 이 땅의 역사는 같은 일을 반복하고 또한 멸망해 왔어.”
역사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금부터 배울 과정은 그것을 선행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의 교육을 담당하는 이는 우희.
우희 소소군.
미모로는 춘희와 맞먹고 잡기(雜技)로는 다른 궁희 모두를 능가하며 춤과 노래는 실로 국보급.
그녀의 웃음을 보기 위해 천금을 들여서라도 흑옥루로 오려는 유력자들이 넘쳐나고 흑옥루의 손님 중 팔 할을 그녀가 감당해 낸다. 그야말로 우물(尤物). 저 초한쟁패 당시 초패왕의 총희(寵姬)의 별칭을 화명으로 정한 이유도 납득이 간다.
소소군이라면 저 초한쟁패 당시의 우희와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미소를 본 이라면 모두가 동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극히 화려하고 우아한 차림새에, 궁정이 문란하기로 이름 높았던 당나라 시대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유행에 맞게 다소 개량되어 있다고는 하나 속살이 보이고 어깨가 다 드러나는 차림새는 그녀의 매력을 한층 더 농밀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소년이 된 천화가 있었다.
“그러나 여자를 바람직하게 배려하고 또한 정략적으로 이용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고 자신에게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사람과 돈은 쓰기 나름이라지만, 여자를 잘 쓴다면 충성스러운 무장과 천금보다도 귀히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매력적인 여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이해했니?”
“네, 우희 엄마.”
십이 세, 아직 엄마의 품에서 칭얼거려도 그리 흉을 보지 않을 연령. 하지만 가슴속에 품은 이상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준비할 수도 있는 시기.
천화는 엄마의 품속에 있으면서도 무림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점점 완성되고 있었다.
우희는 무림에 나가기 전의 인간관계를 교육하고 있었다.
역사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의 최후와 충정, 그리고 바람처럼 사라져 간 많은 조연들. 그리고 주연을 빛내 주는 여자들.
우희는 궁희들 가운데서 무공의 수위는 가장 떨어졌다. 심지어 흑옥루를 나갈 자유조차 없는 춘희나 평소에 무예를 알지도 못하는 척하던 문희보다도, 신입이라서 일 층에 위치한 흑희보다도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궁희로서 떳떳했는데 그녀는 암살에 대한 대처법과 여성의 매력을 어느 누구보다 절륜하게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여자를 조심할 것, 이것만은 반드시 명심해. 그러나 언제나 배려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심어 줄 것.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여성이 나타난다면 정말로 그렇게 보호해 줄 것. 그러나 그녀를 구속해선 안 돼.”
“어째서죠?”
“말했다시피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 점점 그녀를 위한다는 배려 속에서 스스로를 잊어가니까. 천화야, 하늘의 사슬은 성기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는 없어. 그만큼 남에게 신경을 쓰면 자신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는 법이지. 여성을 떳떳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 줄 아니?”
“그게 뭐지요?”
“여성을 배려하는 것. 여성이 원하는 바대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야.”
“여성이 원하는 것이라.”
천화는 곰곰이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우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밝게 입을 열었다.
“고민해. 그리고 나름의 답을 내.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면 그 과정을 살펴 봐. 네가 살아온 삶의 기반이 되는 생각이 그 과정에 있어. 굳이 문제에 대한 답이 없어도 좋아. 하지만 네 생각을 부정하지는 마.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하고 남에게 인생을 빼앗기지 않고서, 당당히 나아간다면 그렇다면 분명히 넌 강해질 거야.”
“강해질까요?”
“응, 누구 아들인걸!”
“어렵네요.”
아직 치기가 가시지 않은 소년, 천화가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이지.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건 법이나 도덕, 원칙과 규칙 따위가 아니라 여자의 마음이야.”
“우희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정말, 하하하.”
이제 천화는 궁희들의 품속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모두를 부르는 명칭인 ‘엄마’가 ‘어머니’가 된 이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터였다. 비록 중요한 임무를 위해 일을 벌여 가는 중이라고 해도.
우희는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천화의 앞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뭐예요?”
“춤.”
옆으로 손을 흔들었다가 반대편으로 돌아가 손을 흔들어 댄다.
사랑스러움과 애정이 넘쳐나는 춤이었다. 마치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몸으로 표현하는 그런 느낌.
중원, 그것도 무림에서의 여자들은 일반인들과는 달리 당당하고 나설 곳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춤을 추는 와중에도 기습을 하는 경우도, 또 이상한 무공을 섞어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모양이었다. 어찌 그런 것을 다 알았냐는 질문에 우희는 눈을 찡긋해 보이며 넘어갔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우희는 그런 것을 직접 보여 주면서 판별력을 기르게 했다. 아마 실전까지 겪어 봤을 우려한 춤 솜씨. 시야를 흐리게 하고 넋을 잃게 만들어 버리는 춤부터 발정하게 만드는 춤까지, 종류는 실로 여럿이었다.
천화는 아직 그런걸 알 만한 나이가 아니라 멀뚱히 바라보는데 우희가 달콤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젠 이 춤이 마지막이야. 당분간은 말이지.”
“마지막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흑옥루에서의 가르침은 여기까지라는 말이지.”
“아직 덜 배웠잖아?”
우희에게서는 역사에서 나오는 여자의 중요성과 활약상 따위를 배웠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기르고 여자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를테면 여자를 좋아하라 하지만 마음을 다 주지는 마라. 그것뿐만이 아니라 여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향이나 은밀한 수법 따위도 배웠다. 남자의 마음을 홀리는 방법이나 목소리,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잡는 방법 등등. 덕분에 여자 암살자가 온다고 해도 천화는 앉아서 농담 따먹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흑희와 일부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피력한 거라 이것도 역시 도움이 되었다. 흑희와 우희가 나름대로 수업에 관해 이야기해서 조절을 잘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하는 수 없어. 저쪽에서는 되게 보채고 있거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는 천화를 향해 우희는 고관이 올 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추었던 춤을 추었다.
“그러니까 이건 엄마가 배웅하는 춤이야, 하지만 단순한 춤은 아니라는 사실. 사실은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 없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야.”
우희는 언제나 홀로 춤추고 혼자서 노래하며 악기를 다룬다.
그녀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이는 없으니까.
그 궁희들 중에서도 우희는 독보적이었다.
마치 남자를 홀리기 위해서, 즐겁게 하기 위해서만 태어난 것 같았다. 춘희의 태어나면서부터 타고 난 기품이나 구희의 기묘한 이질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괜히 우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마치…….
우희가 말했다.
“이번은 진짜야. 정말로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죽어.”
천화는 우희의 말 속에 전해지는 진심을 깨닫고 잠시 몸을 떨었다. 예쁜 얼굴이 어떤 각오로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심법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엄마가 가르쳐 준 심법을 운기 해.”
“자, 잠깐만.”
그러나 천화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우희의 춤은 시작되었다. 천화는 급히 우희가 가르쳐 준 열세 단어의 심법을 외웠다.
무섭도록 요염하고 우아한 춤.
옷의 주름 하나에 까지 신경 쓰며 몸을 놀리고 공간을 지배해 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귓가에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내공을 사용하지도 않는데 눈물이 흘러 눈가를 덮는데도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섭혼술(攝魂術)을 당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기세가 다르다. 이건 춤 자체만으로 어떤 무공을 닮아 있었다.
시대와 함께 발전한 비의. 그 비의란 실로 끔찍하고 사이해서 일인전승으로 계승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복잡 미묘한 춤 속에 봉인되었다. 이 춤을 본 이들이 넋을 잃고 혼을 빼앗겨 쓴 것들이 무림에 퍼져 있는 몇 가지의 무공.
어디에서는 열다섯 장이나 되는 미녀의 그림에 그 비의가 일부 깃들어 있기도 했고 복잡한 암호로 쓰인 서적에도 있었다. 그리고 일부의 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춤의 동작 중 일부를 무공에 접목할 수 있었다.
시대를 되짚어 올라가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오래 전.
농경 사회가 있기도 전의 그런 이야기.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이었고 아이를 낳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그런 시절보다도 옛날. 모두가 신화이며 이제는 흔적도 남지 않은 그런 옛 시대.
지구를 중심으로 아홉 개의 천체, 즉 일천(日天), 월천(月天), 수성천(水星天), 금성천(金星天), 화성천(火星天), 목성천(木星天), 토성천(土星天), 항성천(恒星天), 종동천(宗動天)이 일렬로 늘어섰던 때 어떤 여성이 지상에 내려섰다. 그리고 그녀를 본 이들은 신처럼 숭배하고 여와(女휶)라고 칭했다. 그녀가 자신의 권위를 보일 때 사용했다는 그것이 바로 구천(九天)의 신공.
속칭 천외천(天外天)의 무공이었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훨씬 접합한 이 무공은 시대의 흐름에 길을 잘못 들어 끔찍하리만치 두려운 마공이 되었고 마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바른 길을 걷던 천외천에게 토벌, 사라진 무공이라고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남긴 것은 수 가지가 넘어 대부분 마교에 흡수되었고 일부의 것은 사파에 남아 궁극의 무공이라고까지 칭해졌다.
정파에도 파생된 무공이 몇 개쯤 남았는데 그럼에도 사이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아서 습득을 꺼리고 있었다. 물론 그 무공을 지닌 문파에서는 비장의 무기 삼아서 그에 관련한 무공을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익히고 있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크윽!”
천화는 즉시 우희가 가르쳐 준 심법을 펼쳤다.
흑희에게 물어본 결과 정종(正宗)의 주문이라고 말했던 심법.
저 높은 이의 힘을 빌어 마음을 지키고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한 주문이 아직 남아 있었냐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귀 음음 급급 여율령 사바아(邪鬼 唵唵 急急 如律令 娑婆핞).’
마음은 철석이 되고 세상을 관조하는 눈빛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희의 춤을 보면 몸이 떨리고 당장이라도 운기를 멈추고 달려들고 싶었다. 천화는 그동안 우희가 가르쳐 준 내용들을 상기하고 심법에 의지하면서 단 한 순간도 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춤이 종막에 다다르자 이윽고 천화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동선이 떠올랐다. 춤의 동선? 팔다리를 놀리던 움직임? 아니, 이건 뱀이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천화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이윽고 천화는 춤의 끝을 보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