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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단향 1권(17화)
七. 황금향(2)


그리고 수 년 전 무림을 진동시키는 정보 하나.
독행문이라고 하는, 무려 오백 년 전부터 존재해 왔던 유래 깊은 문파의 다섯 괴인이 무림의 은퇴를 선언하고는 황궁으로 왔다는 소식이었다. 이들 독행문의 다섯 괴인은 무림에서 겪을 대부분의 것을 맛보고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던 도중 유일하게 하지 못한 것을 토의하다 보니 나라의 수호 및 군주에 대한 충정. 그들은 무림인으로서는 은퇴를 결심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위해 관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황제는 독행문의 다섯 괴인을 몰랐지만, 무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이들은 놀라운 사건으로 인식했다.
어지간한 무림인이라면 그냥 내치고 말았을 터이나 결의형제의 의식으로 맺어진 다섯 괴인은 무림에서도 배분이 높고 굉장히 특이한 유래를 지닌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는 직접 문장을 써서 보내 이들에게 머물 곳을 알려 주었고 황궁에서 지내면서 각종 무공서와 무기가 배치된 황궁무고를 정리하는 역할을 주었다고 한다.
흑희가 알아낸 정보는 여기까지.
하지만 그들의 후계자라 자처하는 정수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후편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황상께서는 우리 영감들에게 황금향에 대하여 알려 주기로 하고, 그에 따른 후계자 육성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고 해. 꿀꿀한 은퇴식이 아니라 다행이지. 그래서 나는 다섯 괴인의 후계자이자 당대 독행문의 문주로서 여기에 와 있는 거지.”
문맥도 맞고 꽤나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 신뢰도 간다. 정수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화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정수현을 바라보았다.
소상영과는 다른 의미로 굉장한 소년이었다. 소상영은 명문 세가의 적손으로서 기품과 단정함이 넘쳐났지만, 정수현에게선 느껴지는 야성미 넘치는 활기찬 매력이 넘쳐났다. 아마 성장 기반이 다른 탓이겠지만, 천화는 이런 남자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알겠어, 그럼 당신도 황금향의…….”
소상영이 정리하듯 말할 때 정수현이 끼어들었다.
“어허! 형님이라고 불러. 존댓말도 쓰고! 아무리 봐도 내 나이가 좀 많아 보이지 않아? 아니면…….”
정수현이 짓궂게 물었다.
“아까 했던 말대로 대련 한 번 해서 서열 정해 볼까?”
“흥, 자신감이 넘치는군. 무림인들에게서 자라서 황궁을 무시하는 거야?”
“설마, 무림인이 황궁을 우습게 본다고는 해도 정말 제대로 붙으면 깨지는 건 무림인일걸? 게다가 나도 엄밀히 말하면 황궁 소속인걸. 황궁에서 자란 시간이 훨씬 많아. 보자, 세 살 때 영감들 손잡고 여기로 왔으니까…….”
소상영이 깜짝 놀라 외쳤다.
“당신, 세 살 때의 일을 기억하는 건가요?”
“응? 그런데?”
태연하게 반문하는 정수현의 말에는 천화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뇌라는 건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 아니라서 커 가면서 발달하기도 하고 둔화되기도 한다고 한다. 더불어 하늘이 선택해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체질이야 영약 먹고 수련하면 나을 수도 있고 하늘에 거역하는 의학 등으로 해결된 일도 있었다. 불치의 병도 정성을 들인 기원을 들이면 낫는 경우도 있고 가까스로 고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뇌라는 건 어지간해서는 발달시킬 수도 없고 강화시킬 수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성능이 유독 뛰어난 이를 보고 사람들은 천재라고 부른다.
대개의 경우, 세 살 이전의 기억은 없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이가 없지만 뇌의 기억 발달 부분이 완성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당연하잖아, 라고 되묻는 정수현은 모르겠지만 아니 뭐 이건 대부분의 선택 받은 이들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일이지만 그런 지능을 가지고 있고 나이까지 더 많다면 무공의 습득 정도도 차이가 날 것이다.
정수현이 그런 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무공의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무공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깨달음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거기서 지능이 뛰어나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
천화는 머리 좋아하지는 심법을 통해서 천성적으로 타고난 지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천화는 점점 만만치 않을 거라고 느꼈다.
소상영을 보면 얼마나 잘 단련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수현 또한 그런 강함을 느낄 수 있다.
사 갑자의 내공에 최고의 내공심법을 지니고 있고 각종 특기를 획득한 천화는 최소한 동갑내기 가운데서 자신의 적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도 황궁에서 최대의 지원을 받으며 큰 이들.
만만치 않다.
‘그 점이 재밌어.’
천화는 의미하게 웃으며 소상영과 정수현의 신경전을 바라보았다.
“으윽…….”
소상영도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정수현의 몸은 자신들에 비해 결코 밑이 아니다. 상승의 내공으로 단전을 단련하고 희대의 무공과 공부로 고수의 기량에 올라 있다. 경험이 일천하기에 상대의 기량을 측정하는 방법은 몸을 보고 판단할 뿐이지만, 그렇게 판단할 가치 기준이 부서졌다.
정수현이 도발하듯 은근히 물었다.
“어때, 한 번 붙어 볼래?”
소상영이 식은땀을 흘렸다.
옷만큼이나 거칠고 상처투성이인 그는 여기서 누구보다도 무림인다웠다. 무모해 보이리만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상대를 천천히 압박해 가는 기세.
소상영은 이미 모든 것에서 밀렸다.
“그, 치잇! 알았어. 한 번 붙어 보…….”
하지만 소상영도 대장군부에서 밀고 있는 후계자. 붙어 보지도 않고 감히 물러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소상영이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천화가 내공을 실어 짝하고 박수를 쳤다.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자 천화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현 형님, 그리고 상영. 사이좋게 지내야죠. 안 그래요?”
두 명의 소년이 멍하니 바라보자 천화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어차피 오랫동안 같이 있고 무림도 사이좋게 떠날 처지잖아요. 벌써부터 원수가 되면 곤란하지 않아요?”
“나, 나는 이 사람과 사이좋게 지낼 생각 없어.”
소상영이 그렇게 말하는데 반해 정수현은 파하하 웃으며 가슴을 폈다.
“너 정말로 분위기를 잘 맞추는데? 어디에서 왔다고 했지?”
“흑옥루요.”
“아, 십요궁희가 있는 거기 말이구나. 과연,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자라니 이렇게 뻔뻔한가? 응?”
“아야, 볼 좀 그만 잡아당겨요.”
“마음에 들었어. 이제부터 넌 내 졸개 일 호야. 그리고 소상영은 이 호.”
“아니, 제가 왜 이 호가 되어야 하는 거야!”
“끼어들 부분은 거기가 아니지.”
천화가 그렇게 말하자 소상영이 깜짝 놀라더니 얼굴이 빨갛게 되어 소리쳤다.
“맞아! 왜 우리가 졸개가 되어야 하는 거냐고!”
“나보다 어리잖아.”
소상영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했지만 정수현은 본척만척, 천화의 목을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으로 소상영을 목을 붙잡아 반대편 허리에 끼었다.
“그리고 존댓말을 쓰지? 아무리 봐도 내가 더 크잖아.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해야 할 예의 아냐? 아니면 장군부에서는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아?”
“……알았어요. 존댓말 쓰면 되잖아요!”
소상영이 그렇게 굴복했다. 굴복이라기보다는… 즉 분위기에 말려들었다.
“이건 뭐하는 거예요? 목 감지 마요.”
“친하게 지내자는 거지, 하하하. 이 녀석 말마따나 한 번 보고 말 것도 아닌데 화내 봐야 소용없다니까? 두목으로서의 위엄을 발휘할 테니까 다들 나를 따르도록 졸개 일 호, 이 호여!”
“그러니까 왜 내가 이 호가 되어야 하냐구요!”
“끼어들 부분이 또 틀린 것 같은데…….”
천화가 그렇게 말하자 다시 소상영이 핫 하고 빽빽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이곳에 도착했지만 누구보다 빨리 잊힌 소년은 바닥에 손가락으로 지익, 지익 소리와 함께 낙서를 해 대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래, 인생사 이게 전부지. 나는 언제나 이렇지… 외톨이지, 하지만 이런 말조차도 누구에게도 안 들리게 하는 내가 자처한 거지. 내 말은 나밖에 안 듣지… 고독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래 죽자…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우울해우울해우울…….”
대장군부의 어림군 출신 소상영.
황궁무고 소속 독행문의 후계자 정수현.
흑옥루 십요궁희의 후계자 천화.
그리고 금위반 소속의 독고삭(獨孤朔).
무대는 갖추어졌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한 명만 제외하면 황궁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모였다.

“아참,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못 들었어. 그런데 황금향이 뭐냐니까? 그 계획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인가?”
“무림에 나설 때의 조직 이름이기도 해.”
소상영은 정수현에게서 최대한 떨어진 채 말했다. 아직 관계가 소원했다. 확실히 둘은 성격적으로도 그리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정수현은 나이가 좀 더 많은 대형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려는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을 뿐, 그럭저럭 어른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뭐예요, 그 표정은.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소상영은 시선이 신경이 쓰이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할 말 없어. 그런데 어림군에서는 황금향을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한데?”
“……황금향은 황궁에서 육성한 다섯 명의 후계자의 모임이면서 무림에 나설 때의 조직 이름이야.”
“조직?”
“응, 무림에 나가면 몇 가지 임무가 주어질 거야. 그 임무를 수행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지. 게다가 황궁의 힘을 보여 준다는 목적이 있으니까 무림인과 싸울 때도 있을 거야. 그걸 위한 조직이 바로 황금향이지”
“그렇군, 그런데 왜 엄마들은 안 가르쳐 주지?”
정수현은 천화의 말에 약간의 의문을 느끼고 물었다.
“잠깐만, 엄마들?”
“아, 네. 엄마들이요. 뭐가 이상해요?”
“으음, 이상하다면 이상하달까. 너 궁희를 엄마라고 불러?”
“네, 그런데요? 뭐가 이상해요?”
되묻는 천화를 바라보며 정수현은 잠깐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 궁희들이 사내아이 하나 흑옥루에 집어넣고 가족놀이를 한다고 받아들여야 하나?’
날 때부터 황궁 소속이 아닌 외부인이었으며 무림인들 손에서 자란 정수현은 십요궁희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들을 들어 알고 있었다. 무림인 수백 명을 참살해 버리고 황가를 지키는 무시무시한 여자들. 어떤 무림인은 궁희라는 이름 대신 십나찰녀의 이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할 만큼 무림에서는 비밀스럽고 끔찍한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궁희의 실제는 소문만 못한 건가, 아니면 여자들이라 그런지 동정심 같은 게 넘치는 건가.’
시선을 바로 한 정수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개중에 진짜 엄마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냥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진짜 엄마 있는데요?”
“뭐?”
“엄마 있다고요. 하지만 전부 엄마라고 불러요. 차별하면 안 좋잖아요.”
그 대답에 또 정수현은 고개를 들었다. 노려보는 기세에 천장의 무늬가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아니, 그게 차별이냐? 진짜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른다고 차별이 될 수나 있어?’
공식적으로는 황가를 지키고 황제를 암살에서 보호하는 이들이 아이를 낳았다고? 그걸 황제가 허락해 줄 수나 있는 건가?
잘해 봐야 정수현과 마찬가지로 고아였다가 개중 누군가가 흑옥루에서 시종삼아 키우던 아이라고 생각했던 정수현은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 아무렴 어때.”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결심한 정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속 말해도 돼요?”
“응, 말해.”
소상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에서는 철저하게 비밀주의로 하고 황궁 소속인 걸 들켜서는 곤란해. 그리고 한 번도 패배하는 일 없이 강력한 저력을 선보일 필요가 있어. 그걸 위해선 무공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특기도 외워야겠지. 평소에는 후기지수(後起之秀)처럼 행동하다가 황금향의 이름을 쓸 때는 특별하게 변장을 하고 엄청난 저력을 과시해야 하지. 그걸 위해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는 내공과 무공을 여기서 절정에 이를 때까지 수련하는 거야.”
“즉, 여기서 오랜 시간 있어야 한다?”
“그런 거지.”
천화는 여기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우희의 춤을 보고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니 여기였다. 우희가 그 엄청난 춤을 추기 전에 뭐라고 말했더라?
‘흑옥루에서의 가르침은 여기까지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이 상황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을 찰나 정수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끼어들었다.
“나는 좀 다르게 들었는데.”
“다르게 듣다니요? 내가 틀린 말을 했나요?”
소상영이 쌍심지를 세워 올리고 되물었다.
“아니, 맞는 말이긴 해. 하지만 빠진 내용이 있다는 거지.”
천화는 의아해져 되물었다.
“빠진 내용이라면?”
“음, 모르겠어? 당연히 황금향의 향주를 정하는 일이 필요하잖아?”
“네?”
“황금향에는 다섯 명의 후계자가 있지. 각기 황궁에서 제일가는 세력의 후계자들이야. 이들 후계자들은 황금향에서 서열이 필요해. 조직이니까. 그리고 황금향에서의 서열은 아무래도 나이순보다는 무공의 정도를 따지는 게 옳지 않겠어? 내 말이 틀렸나? 응?”
천화가 급히 돌아보자 소상영은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즉, 서로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세력의 명예를 걸고, 그리고 황금향에서의 서열을 위해서 겨뤄야 한다는 말인가요?”
“응, 그런 거야. 그래서 난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만 있기를 바랐지. 이를테면 오냐오냐 하면서 자라서 자기밖에 모르는 녀석이라거나, 자신이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부모의 권세를 빌려서 우쭐대는 녀석들. 그러면 손쓰기도 쉽잖아?”
싱긋 웃으며 정수현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다 마음에 든단 말이지, 그래서 조금 곤란해.”
천화는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