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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처음 뵙겠습니다. 이서연입니다.”
정욱은 시크한 블랙프릴 블라우스와 크림색 재킷을 입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여자를 바라봤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채 아래 드러난 깨끗한 목덜미가 유난히 희고 가는 여자였다.
고개를 들자, 여자의 투명한 피부와 진한 헤이즐넛 빛깔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부터 부사장님 직속 비서 팀 실장으로 배정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았으며 깨끗한 억양은 나쁘지 않게 귀에 감겨 왔다.
“도정욱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가 짧게 말하며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서연은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봤다. 그녀 역시 작은 키가 아님에도 고개를 들어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큰 키에 깎아 놓은 조각처럼 완벽한 얼굴, 고가의 명품 슈트의 절제된 핏을 최대한 살려 주는 날렵한 몸매…….
도원그룹 후계자인 도정욱 부사장은 누가 봐도 완벽한 남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막상 눈앞에서 그를 마주 보니 그녀의 심장에 빠르게 열기가 지펴졌다. 곧게 뻗은 짙은 속눈썹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서연은 자신에게 똑바로 내리박히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떨리는 심장 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4년 후.
“하, 하윽…….”
넥타이로 눈이 가려진 채 두 손이 들려 침대헤드에 묶인 서연이 거친 신음을 쏟아 냈다. 툭 불거진 핑크빛 젖꼭지가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다.
그 정점을 타액으로 번들거리게 만든 그의 혀가 끈질기게 빨아들였다. 지독히도 탐욕스러운 축축한 혀가 바짝 곤두선 유두를 뜨겁게 휘어 감았다가 쭉 빨아올리자 하얀 나신이 세차게 흔들렸다.
“아아, 정욱 씨……!”
서연이 할딱거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 부르지 말랬지.”
그가 으르렁거리며 서연의 탱글한 가슴살을 세게 베어 물자 그녀의 허리가 크게 비틀어졌다.
“하악!”
서연이 진한 키스로 퉁퉁 부어오른 입술을 아찔하게 벌리며 신음을 쏟았다. 눈을 가리고 있어서인지 그녀는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물오른 사과처럼 윤기 나는 피부를 간질이고 깨물 때마다 서연이 자지러질 듯 몸을 비틀었다.
“제발 이것 좀…… 풀어 줘요.”
서연이 숨을 몰아쉬며 묶인 팔을 바르작거리자 정욱이 물고 있던 가슴을 놔주고 고개를 들었다.
“싫다면?”
느긋한 그의 목소리에 서연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애원했다.
“기분이…… 하읏, 이상해서 그래요.”
“어떤 식으로 이상한데?”
바짝 곤두선 유두를 엄지로 둥글게 쓸며 정욱이 물었다.
서연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시야가 가려져 있어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그가 주는 감각에 몰두하게 됐다. 가슴 끝을 빙글빙글 돌리는 그의 손가락이 주는 감각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터질 듯 피가 몰려 땡땡하게 부풀었다.
“대답해.”
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핑크빛 젖꼭지를 튕겨 올렸다. 순간 서연의 몸이 크게 출렁였다.
“그, 그냥 이상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더…… 무서워요.”
서연이 헐떡이며 쏟아내듯 말하자 그의 입술 끝이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유두로 내려갔다.
“무섭게 생각하지 말고 즐겨.”
“아, 아읏…….”
정욱이 속삭이자 서연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바르르 떨리는 유두를 입에 문 채 웅얼대듯 정욱이 말할 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맨살에 닿았다. 그 참을 수 없는 쾌감에 그녀는 가슴을 더욱 그의 입술로 갖다 댔다.
“정욱 씨. 제발…….”
정욱의 눈이 순간 험악해졌다.
“이름 부르지 말랬잖아.”
“……아!”
정욱이 무섭게 으르며 몸을 일으켜 세워 그녀의 하얀 다리를 한껏 벌렸다. 다리 사이로 그가 상체를 숙이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은밀한 곳에 닿자 서연의 숨이 거칠어졌다.
“거, 거긴…….”
서연이 다리를 오므리려 애를 썼지만 강한 그의 손에 의해 벌어진 다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를 밀어내려 해도 묶인 손은 머리 위에서 흔들릴 뿐이었다. 서연은 머릿속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안 돼…….
마침내 뜨거운 입술이 까슬한 수풀에 닿았다.
“아아!”
그가 입술을 벌려 도톰한 속살을 물자 서연의 허리가 확 들쳐 올라갔다. 물컹한 혀가 애액으로 흠뻑 젖은 동그란 음핵을 길게 핥아 올리더니 입술로 강하게 빨아올리기 시작했다.
“아흑! 아, 안 돼요!”
왈칵 치솟는 두려움에 서연이 고개를 흔들며 몸을 비틀어 댔다. 번개 같은 쾌감이 서연의 전신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집요한 그의 혀는 갈라 터진 속살을 은밀하게 핥아 내리더니 흥건한 입구를 쭙, 소리가 나도록 빨아 당겼다.
“이렇게 많이 흘리면서 왜 입으로는 다른 말을 하는 거지? 시트가 다 젖을 지경이야.”
“흐읏……!”
노골적인 정욱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폭풍 같은 쾌감이 밀려닥쳤다. 까슬한 체모에 코를 박은 채 정욱이 음핵을 이로 살짝 깨물었다.
“아학!”
서연의 허리가 튕겨질 듯 솟구쳐 올랐다. 크게 요동치는 서연의 몸을 꽉 움켜잡은 그가 멀건 애액을 흘리는 여성을 강하게 빨아들였다. 서연은 숨이 막혀 왔다. 자신의 은밀한 곳에 머리를 박고 있는 정욱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미칠 것만 같았다.
“제발…… 제발…….”
서연이 울먹이며 애원했다.
“똑바로 말해. 뭘 원하는 거야.”
“흐……읏…… 제발…… 가져 줘요. 정욱 씨…….”
그녀의 애원에 정욱이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를 띠우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팔에서 벗어나자 반사적으로 오므리는 날씬한 다리를 보고 그가 명령하듯 말했다.
“벌려.”
3년의 시간 동안 그녀의 육체는 철저히 그의 지배 아래 놓였다.
01(1)
상하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 청사 안, 입국수속을 끝내고 앞질러 가는 정욱의 뒤를 수행원과 서연이 따라붙었다.
“업무 결과 보고서는 작성해 뒀나?”
비즈니스 슈트를 날렵하게 빼입은 정욱이 쭉 뻗은 긴 다리로 빠르게 걷는 모습에 주변의 여자들의 시선이 단숨에 모아졌다. 그 시선을 익숙하게 훑으며 서연이 대답했다.
“네. 이미 정리해서 부사장님 메일로 보내 놨으니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제안서도?”
“같이 첨부했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따라오는 명료한 대답에 정욱이 서연을 힐끗 바라봤다.
검은 블라우스에 화이트 스커트와 화이트 재킷을 매치시킨 서연은 누가 봐도 시선을 빼앗길 만한 여자였다. 섬세하고 굴곡진 몸매에 작은 얼굴, 그리고 그 안에 큼직하게 박혀 있는 눈동자가 헤이즐넛처럼 풍부하고 부드러운 갈색 빛을 띠고 있어 더욱 신비한 매력을 자아 냈다.
4년째 그를 보좌하고 있는 서연은 본래 탁월한 업무능력과 세심한 배려로 금 전무가 몹시 아끼던 비서였다. 하지만 금 전무의 급작스런 건강 악화와 정욱의 본격적인 경영 참여가 겹쳐져 임원 비서 출신이던 그녀가 그의 비서로 추가 이동됐다.
그 이후 지난 4년간 그녀는 단 한 번의 큰 실수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며 정욱의 비서실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서연의 단정한 얼굴에 닿았던 정욱의 시선은 찰나에 불과한 듯 무감하게 스쳐 정면으로 옮겨 갔다. 그의 수려한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로비를 빠져나오던 정욱이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그만 돌아가도록 하세요. 난 내 차로 움직일 테니.”
“알겠습니다.”
정욱의 말에 수행원들은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돌아섰다. 서연과 둘이 남자 정욱은 그녀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앞장섰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연은 익숙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건물을 빠져나오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11월의 비는 흐린 하늘과 맞물려 서늘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걷는 서연의 심장에 묘한 파동이 일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을 지탱하고 있는 아슬아슬한 힐의 느낌처럼 그의 벌어진 넓은 어깨와 날렵한 허리, 그리고 올라붙은 힙 선이 아찔한 관능미를 풍겼다.
“타.”
정욱이 차에 타며 짧게 말하자 서연도 그의 옆자리에 올랐다.
그녀가 타자마자 정욱이 거칠게 차를 출발시켰다. 어딘가 화가 난 듯 보이는 그의 굳은 옆얼굴을 서연이 조심스럽게 곁눈질로 훑었다.
정욱의 표정은 확실히 지쳐 보였다.
하긴, 힘들기도 하겠지. 4박 5일의 출장 기간 동안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연일 강도 높은 회의에 시달렸으니…….
중국에서의 일정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일정이었다. 보통의 해외 출장이 그렇듯이 그는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움직였고 그를 보좌하는 서연조차 숨 돌릴 틈 없는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수시로 그런 업무에 시달리는 정욱이었기에 바쁜 일정 탓이라 치부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명백한 워커홀릭인 이 남자가 새삼스레…….
말없이 운전만 하는 그의 표정을 살피는 사이 창밖에 빗줄기가 강해졌다. 차창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서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기분이 안 좋으신가요?”
“…….”
정욱은 대답이 없었다. 슈트를 입은 정욱이 굳은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서연이 조심스럽게 그의 옆얼굴을 훑었다. 그녀의 애처로운 시선에도 아무 말도 않는 정욱에 서연은 그저 쏟아지는 빗줄기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
4년 전.
“처음 뵙겠습니다. 이서연입니다.”
“도정욱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짧게 인사를 마친 그는 그녀를 관찰하듯, 혹은 평가하듯 냉정한 눈빛으로 잠시 내려 보다가 집무실로 들어갔다. 서연은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앞에서 너무 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갈 정도로.
……역시 기억은 못 하고 있구나.
예상은 했지만 그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단 사실에 서연은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 일이 그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임팩트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지.
짧은 서운함을 털어 버린 서연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제 막 부사장으로 승진한 정욱은 본격적인 경영권 참여를 위해 움직일 것이고, 이를 위해 그를 보좌할 새로운 비서 팀이 꾸려졌다. 그리고 서연은 그 비서 팀의 실장을 맡게 되었다. 명실공히 도원그룹의 후계자인 그의 위치를 생각해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자리였다.
서연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노트북을 켜고 업무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윤희 씨. 부사장님 일정 체크한 뒤 11시부터 있을 임원회의 시간에 비서 팀도 회의를 가질 거예요. 지금 자리에 없는 최 비서님과 김 비서님께 연락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비서 팀 막내 정 비서에게 전달한 서연은 곧장 일정관리를 위해 태블릿피시를 챙겨 들고 집무실로 걸어갔다.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서연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완벽히 표정을 지우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욱이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일정 확인 괜찮으십니까?”
문을 열고 그와 시선을 맞추며 말하자 정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은 조용히 문을 닫고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정욱의 집무실은 전 상관인 금 전무의 집무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넓고 고급스러웠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넓은 공간과 블랙 앤 화이트를 기본으로 사소한 가구 하나조차 명품으로 배치한 최고급 인테리어, 그리고 고층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도심 전경이 한눈에 보이도록 전면 창을 설치한 구조는 이 회사의 후계자로서의 그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서연이 책상 앞으로 다가가자 정욱의 무감한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의 서늘할 만치 냉기가 도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보자 순간 서연은 숨을 삼켰다.
이 남자의 눈동자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저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닌, 표현하기 어려운 관능과 동시에 잔혹한 냉기를 품은…….
서연은 표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 일정 확인하기에 앞서 비서로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을 질문 드려도 될까요?”
“필요한 일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낮은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 모니터에 향해 있었다.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서연은 태블릿피시를 들고 메모를 할 준비를 한 뒤 말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시는 커피 브랜드와 홍차 종류, 그 외에 좋아하시는 차 종류와 싫어하시는 차 종류를 말씀해 주세요.”
“딱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음식에 있어서 알레르기나 가리는 음식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복용하시는 약이라든가 비서로서 알아야 할 건강상의 문제가 있으십니까?”
화면을 향하고 있던 그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들려 올라갔다. 차가운 빛을 띠고 있는 그의 검은 눈동자와 짙은 헤이즐넛빛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이 실장. 당신은 내 건강이 아니라 업무에 대한 것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정욱의 목소리는 불쾌감을 담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지극히 싫어하는 듯 보였다. 서연은 그의 노골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담은 눈빛에도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의전비서로서 부사장님의 건강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도 케어 해야 하기 때문에 여쭤 본 건데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그때그때 질문 드리는 걸로 할게요. 그럼 일정 부분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서연이 태블릿피시에서 스케줄 표를 열어 브리핑하자 정욱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금 전무가 건강상의 문제로 일선에서 물러나며 특별히 추천했다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