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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 티르 1권 (22화)
제9화. 특별 훈련 (2)


다리를 쓰지 못했을 거라니?
그렇다면 하이포아의 신성력이 다하는 순간 자신은 끝장이란 말 아닌가?
티르의 표정에서 그런 염려를 읽은 건지 나우사는 고개를 끄덕하며 말했다.
“능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그렇게 될 겁니다. 당분간은 제 신성력으로 당신의 능력을 눌러 보긴 하겠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겠죠. 억누르는 만큼 능력의 저항도 더 거세질 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통제할 수 있는 겁니까?”
어느 때보다 진지한 티르의 물음에 나우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방출.”
티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보자 나우사는 말을 이었다.
“실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문적인 거라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능력을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방법이 있다면 단 하나, 능력을 외부로 방출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냔 말입니다.”
티르가 안달하며 따지듯 묻자 나우사는 약간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오라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겠군요.”
“오라? 설마…….”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신성력을 다루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건 노력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니까요.”
나우사의 답이 너무 뜻밖의 것이었던지 티르는 아무 말없이 나우사를 쳐다보기만 했다.
설마하니 오라라니?
오라(Aura)는 깨달음을 이룬 성직자나 일류의 기사들이 자신의 신앙심이나 의지를 밖으로 발현해 낸 무형의 기운을 일컫는 말이었다.
다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이야기에나 등장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 오라가 자신의 능력을 통제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티르뿐 아니라 하스크나 딜크 또한 적잖이 당황한 듯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정적이 흐른 후에야 하스크가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우사 님, 아무리 그래도 오라는 좀……. 저놈이 독한 놈인 건 맞지만 그래도 오라는 무립니다. 태어나서 제대로 검도 잡아 본 적 없을 텐데 어떻게 오라를 쓰겠습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니. 넬하크보다 강한 적이 수두룩할 텐데 그때마다 손목을 긋고 피를 뿌려 댈 순 없을 테니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오라라는 게 어릴 적부터 검을 배운 기사들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던데 고작 촌에서 자란 녀석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듯 하스크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때 티르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 자식아?! 오라라는 건 억지를 쓴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괜히 자기가 열을 내며 하스크가 열변을 토했지만 티르는 하스크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나우사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겠습니다! 며칠 전 당신이 말했죠. 강하게 해 주기 위해 여기 왔다고. 저 혼자선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도와준다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할 겁니다. 무조건!”
단호한 말투만큼이나 눈빛엔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나우사조차 잠시 흠칫했을 정도로 티르의 눈빛은 강렬했다.
잠시 동안 말이 없는 가운데 나우사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러기 위해 온 거죠. 그리고 바로 오늘부터 그렇게 할 겁니다. 오늘 밤부터 티르 당신은 검술 교관인 나우사의 재량으로 뒤지는 검술 훈련을 보충하기 위해 보충 훈련을 하게 될 겁니다. 포기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포기는 저 자신이 먼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티르가 웃음을 띠며 답했다.
나우사는 티르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를 짓더니 이어서 고개를 돌려 하스크와 딜크를 쳐다봤다.
“그리고 하스크와 딜크,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장님과 다른 교관들께는 제가 말해 둘 테니 저녁 직후 검술 훈련장으로 오십시오.”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하스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우사를 쳐다봤다.
그 표정엔 소심한 항의의 뜻이 담겨 있었지만 나우사에게 통할 리 만무했다.
“알겠습니다.”
나우사의 눈빛을 1초도 감당하지 못하고 하스크는 울상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용건은 이 정도입니다. 훈련에 대해 자세한 건 저녁에 말해 줄 테니 이만 나가 보도록 하십시오. 저도 유니케 님을 뵈러 가야 하니.”
나우사의 말에 하스크와 딜크가 집무실을 나가고 마지막으로 티르도 뒤를 따르려다가 문득 문간에 멈춰 서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나우사가 할 말이 있냐는 듯 쳐다보자 티르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당신도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만 어쨌거나 고맙습니다.”
인사가 의외였는지 나우사는 멀뚱히 쳐다보다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저녁쯤 되면 고맙다는 생각을 못하게 될 겁니다. 제 특훈은 그리 만만치 않을 거라서.”
하나 티르 또한 어떤 훈련이라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도 엷은 미소로 답례하며 말했다.
“저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그럼 저녁 때 뵙겠습니다.”

* * *

사실 오후 훈련은 검술 훈련이었기 때문에 나우사를 만날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나우사는 유독 티르의 미숙한 검술 실력을 꼬집었고 훈련이 끝날 쯤엔 안 되겠다며 저녁에 보충 훈련을 할 테니 반드시 혼자 나오란 말을 남겼다.
따지고 보면 연기였던 셈이지만 어쨌거나 다른 훈련생들은 티르가 유독 모자라는 검술 훈련을 보충 훈련하는 걸로 알고 있을 터였다.
에밀리는 괜히 자신이 미안해 했지만 오히려 티르는 자신이 없을 때 루시안 패거리가 에밀리에게 몹쓸 짓을 할까 그게 더 걱정이었다.
‘그래도 낮에 그렇게 해 뒀으니 설마 또 그 쓰레기 짓을 하진 않겠지.’
“티르!”
속으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부르는 목소리 티르는 고개를 들었다.
나우사가 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이 시간에 우리가 여기 있는 건 그냥 바람이나 쐬러 나온 게 아닙니다. 최대한 집중해 주십시오.”
“주의하겠습니다.”
티르가 고개를 숙이며 답하자 훈련장 한편에서 럼주를 병째로 벌컥벌컥 마시고 있던 유니케 소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봐, 나우사.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 모든 사람이 너 같지 않다고.”
티르는 고개를 돌려 유니케 소장을 쳐다봤다.
처음 훈련장에 왔을 때부터 느꼈지만 대체 저 사람은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이었다.
하스크나 딜크도 그게 의아했는지 유니케를 힐끔거렸다. 나우사는 그런 눈치를 채고는 정식으로 유니케를 소개하며 말했다.
“유니케 소장님은 10년 전만 해도 이쪽 세계에선 위력적인 권법으로 유명하셨습니다. 특별히 훈련을 도와주시기로 하셔서 딜크의 대인 격투 훈련과 감정 통제법을 가르쳐 주실 겁니다.”
“감정 통제? 딜크는 굳이 감정을 컨트롤하지 않아도 순박한 성격인데?”
티르가 납득 가지 않는다는 듯 묻자 나우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그 반댑니다. 너무 순박한 성격이 싸움에 장애가 됩니다. 특히, 딜크의 능력에는 더욱. 아마 소장님이 알아서 잘해 주실 겁니다.”
나우사는 이어서 하스크를 쳐다봤다. 하스크가 바짝 긴장해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는데 나우사가 몇 권의 책을 나무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하스크 당신은 불사가 되긴 했지만 이미 상당히 노화가 진행된 몸이라 육체적으로 강해지는 건 무리일 겁니다. 불사라는 능력을 살려서 최대한 지식을 축적해 두는 게 당신의 특훈입니다.”
“예?”
나우사의 말에 하스크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이가 돼서 공부라니?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더 충격이었다.
“딜크와 티르의 특훈이 끝나면 그날 본 책에 대해 무작위로 물어볼 겁니다. 제가 드리는 책들을 필사적으로 암기하고 이해하길 바랍니다.”
“나, 나우사 님…….”
하스크가 불만이 어린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나우사는 밤에도 책을 볼 수 있도록 야광 아티팩트 하나를 건네주곤 티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우사는 옆에 세워 두었던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티르에게 던지며 말했다.
“티르, 당신은 전에 말했다시피 제가 검술을 가르칠 겁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티르의 단호한 대답에 나우사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돌아서서 유니케를 쳐다봤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장님께서도 지금부터 딜크의 특훈을 시작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스크 당신도 그 책을 다 보려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겁니다.”

특훈을 시작하자 유니케는 딜크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 버렸고 하스크는 검술 훈련장의 귀퉁이에 가서 아티팩트 불빛에 의존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널따란 검술 훈련장의 가운데에는 나우사와 티르 두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대련을 시작하나 싶어 티르가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긴장하고 있는데 오히려 나우사는 검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말했다.
“일단 훈련에 앞서 미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전 검술 같은 걸 가르치진 않을 겁니다.”
티르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우사를 쳐다봤다.
검을 주고서 검술을 안 가르친다니? 그렇다면 대체 뭘 가르쳐 줄 거란 말인가?
“체계적으로 검술을 배운 적 없는 당신이 다른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이 검술을 배웠다간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뭣보다 검술은 낮에 하는 훈련을 통해 기본기는 충실히 익힐 수 있을 테니 지금은 실전을 통해 감을 익히는 데 주력할 겁니다.”
“하면 오라는?”
“오라도 실전으로 깨닫는 편이 빠를 겁니다. 오라는 마법이나 검술처럼 체계화되고 규정된 방식으로 익히는 게 아닙니다. 검사의 투지가 유형화된 거라고 하는 게 그나마 맞겠지요. 여담이지만 혹시 오라의 유래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티르?”
갑작스런 물음에 티르는 고개를 저었다.
“천사가 인간을 축복하지도 않고 인간에게 마법이란 힘도 없었을 시절 인간은 악마나 거인 종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철을 제련했고 무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들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지요. 날붙이만으로 쓰러뜨리기에 악마는 물론이고 거인 종족인 테라스는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어릴 적에 들어 본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다만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가물가물하지만…….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하여 티르는 어느새 나우사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