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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몸의 힘이 자꾸 빠진다. 눈물이 시야를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월은 걷고 또 걸었다.
머릿속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이 떠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아버지를 찌르는 사내 앞을 막고 싶었다. 우리 가문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이런 일을 벌이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무서워서 다가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지만, 자신은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리가 풀리고 몸이 무너졌다. 그늘 속에 몸을 가리고, 있는 힘껏 입을 막았다. 소리 없는 통곡이 칼이 되어 온몸을 찢고 갈랐다. 떠날 때까지 버티고 있던 아버지는 고통 속에서도 웃고 계셨다.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도 아버지는 어서 피하라며 힘겹게 손짓하였다.
“아아악.”
참고 있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파 오는 심장을 있는 힘껏 움켜쥐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무력한 현실에 월은 절규했다.
손톱이 빠질 정도로 땅을 긁어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력했기에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도 없었고, 그 살인자가 아버지의 목을 베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이 다시 머릿속을 스쳐 간다.
자신이 몸을 완전히 숨길 때까지 아버지는 쓰러지지 않았다. 자신이 지켜 줄 테니 안심하고 도망가라는 듯 마지막까지 그의 시선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도대체 하우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현실은 자꾸 무너져 가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도 아픈 심장이 나아지지 않았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주저앉아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월의 뇌리에 천후가 지나갔다.
살아남은 하우의 후계, 그리고 자신의 동생.
하우천이 살린 것은 월의 목숨만이 아니다. 천후도 들어갔다.
나락에서 허우적대던 감정을 이성이 끌어 올렸다. 엉망이 된 얼굴을 닦고 흐르던 눈물을 꾹 눌러 참았다. 아버지의 희생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지금은 무너지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천후를 완전히 구해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월이 안채를 향해 달려갔다.
주영이 죽인 다섯 구의 시신에서 나는 비릿한 피 냄새가 안채에 가득했다. 땅에 흥건하게 고인 피를 밟아 가며 월이 안채를 향해 걸어갔다. 안채와 연결이 된 계단을 오르던 월은 후각을 자극하는 기름 냄새에 걸음을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보이는 방의 풍경은 떠날 때와 달랐다. 가구와 천들이 엉망으로 부서지고, 찢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걸음이 무겁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라는 불길함이 밑바닥에서부터 생겨났다. 방 안에 들어간 월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아…….”
조금 전에 나갔던 방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지 채 얼마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런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엉망이 된 안채 안에는 항아리 조각에 목이 찔린 시체가 한 구 더 있었다. 다른 시체와는 달리 찔린 시체는 반라의 상태였다. 그 옆,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혼례복을 입은 이수가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흐트러져 있는 머리카락, 몸에 생긴 붉은 멍과 상처.
월이 숨을 삼키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온몸이 떨린다. 각오하고 왔음에도 다시 한 번 온몸에 진한 불길함이 다가왔다.
꿈일 것이다. 지독하고 무서운 꿈. 일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 깨어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눈을 뜨면 진짜 현실이 나타날 것이다.
월은 떠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잠시 후, 긴 숨과 함께 손을 내렸다.
“아…….”
꿈이 아니었다. 이수의 복부에 커다란 검이 관통되어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이수가 흐르는 피와 함께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아아악.”
신이시여…….
나한테 이러지 마세요.
도대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고 내 모든 것을 가져가시려 하십니까!
“아……가씨.”
힘겹게 눈을 뜬 이수가 월을 불렀다. 평소였다면 그녀의 목소리에 단번에 달려갔겠지만 이상하게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추스르고, 재촉하며 버텨 왔던 다리의 힘이 이수의 목소리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이수에게 다가가는 대신 월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참아 왔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온몸에 공포가 휘감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죽어 가는 이수.
“제발 와 주세요……. 아니 와 줘.”
마지막을 예감했기 때문이었을까? 평소에는 그렇게 해 보라고 해도 하지 않았던 반말을 이수는 하고 있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임에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녀의 변화가 무서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월의 귀한 사람들을 모조리 삼켜 버리고 있었다.
떨고 있는 월에게 이수가 다시 와 달라고 말하였다. 연이은 이수의 말에 월이 무릎을 꿇은 채로 그녀에게 기어갔다.
떨리는 월의 손이 이수의 복부에 관통된 검 주변을 맴돌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났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는 빛이 월의 눈 안에 가득했다.
“같이, 같이 가야지. 함께 가기로 했잖아. 이수야.”
힘겹게 하는 월의 말에 이수가 미소를 지었다.
“나도…… 가고 싶었어.”
이수의 말에 월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따뜻한 봄날인데도 월은 지독하게 추웠다. 온몸을 감싸는 절망에 모든 힘을 잃어버렸다. 이대로 떠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끔찍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월의 세상은 평온하고 단단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눈앞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이수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월이 통곡하였다.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는 월의 머리에 이수의 손이 닿았다. 이수의 손길이 지나갈 때마다 월의 뺨에 붉은 얼룩이 새겨졌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이수의 혈향에 월이 절망하였다.
월을 보고 있던 이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넌…… 이수야. 알았지? 하우월은…… 여기서 죽은 거야.”
이수의 말에 월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지금 이수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바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월은 이수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깨달았다.
찢어졌지만 현재 이수가 입고 있는 옷은 월이 입고 있던 혼례복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매달려 있는 장식 또한 월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이수가 하려는 일을 월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끔찍한 현실이 칼이 되어 월을 찔렀다. 네가 서 있는 곳이 모든 일의 끝이 아니라는 듯 현실은 자꾸 그녀를 절벽 끝으로 떠밀었다.
고개를 저으려는 월의 뺨에 이수가 손을 갖다 댔다.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이수가 월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냈다.
“나 대신 살아 줘. 알았지?”
“안 돼. 그러지 마.”
“네가 안전해질 때까지…… 내 이름이 널 지켜 주기를…… 약속해. 어서.”
부정하려는 월을 이수가 막았다. 월과 시선을 맞춘 이수가 답을 재촉하자 월은 결국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제발,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이수의 이름을 가지면서까지 목숨을 구원받을 자격 따위 월에게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살 자신도, 그리고 자격도 없었다.
이수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는 월의 손을 잡았다.
이수의 손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럴수록 월의 심장 또한 가라앉았다. 이수는 웃었지만 월은 울었다. 죽어 가는 자와 살아 있는 자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월이 고개를 들자 생이 얼마 안 남은 이수가 짧게 숨을 내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월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지나갔다.
결국 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에 이수가 힘겹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동생에게 가.”
이수의 말에 월이 싫다는 듯 힘껏 고개를 저었다.
“곁에 있을래. 이수 말대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곁에 있을래.”
밀어내는 이수의 손을 월이 붙잡았다. 그런 그녀의 손을 이수가 다시 밀어냈다.
생의 마지막에서 나오는 힘이었을까?
있는 힘껏 밀어내는 이수에 의해 월이 방 밖으로 쫓겨났다.
“월아, 어서 가…….”
힘없는 이수의 목소리에 월이 있는 힘껏 고개를 젓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이수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이수가 웃었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운 곡선이 이수의 입에 그려졌다.
그 미소에 월 또한 억지로 웃음을 만들어 냈다.
월을 보고 있던 이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천을 잡아당겼다. 천의 끝에 놓여 있던 촛대의 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혈향과 같이 나던 기름 냄새.
“안 돼!!”
순간 웃고 있던 월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조롱하듯 순식간에 불이 이수가 있는 방 안을 삼켰다.
“아아아악!”
타오르는 방을 지켜보고 있던 월이 비명을 질렀다.
올려다보는 하늘조차 붉게 보일 정도로 안채는 활활 타올랐다. 현실을 부정하듯 월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규와 함께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걸 생각할 이성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수를 태우는 불을 향해 월이 소리를 질렀다. 더는 자신의 것을 가져가지 말라는 위협과 같은 고함이 월에게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듯 화염이 만들어 낸 굉음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곳곳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에 코가 얼얼했다. 연이어 일어나는 일에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웠지만 월은 입을 악문 채 참아 냈다. 안채 뒤로 나 있는 비밀 통로를 지나면, 유사시 하우를 바로 떠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었다. 천후는 그곳에서 월을 기다린다 했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통로가 있는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앞의 모습에 숨을 삼켰다. 괜찮다며, 견딜 수 있다며 힘을 내도 한 걸음만 앞으로 나가면 바로 지옥이었다.
숨을 멈춘 월의 눈에는 산처럼 쌓여 있는 시체의 뒤에 무릎 꿇고 있는 주영의 모습이 보였다.
선물 받은 검을 어색하게 들고 갔던 날, 서 있는 꼴이 우습다며 놀리면서도 하나씩 가르쳐 주던 스승이었다. 하나씩 익힐 때마다 아버지를 닮아 곧잘 배운다며 칭찬하면서도 여인에게 검은 멀리하는 게 좋은 것이니 가까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충고를 하던 스승이었다.
천후를 먼저 들여보내고 월을 기다렸을 것이다. 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적을 베고 또 베었을 것이다. 그러다 모든 기운을 소진하자 마지막 생의 힘으로 무릎을 꿇은 채 양팔로 문을 막은 것이리라. 그녀가 올 때까지 스승이었던 그는 그렇게 자신을 불태웠다.
그의 앞으로 다가온 월이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마주하였다.
“주영.”
부릅뜬 눈은 무섭고 위압적이었다. 떨리는 손이 주영을 향해 다가갔지만 차마 만질 수 없었다. 난도질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주영의 몸은 베이고 찔린 상처로 엉망이었다.
“늦게 와서 미안해요.”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흐르는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문의 양옆을 붙잡고 있는 손을 떼어 낸 월은 그를 평평한 곳에 반듯이 눕혔다.
하늘을 노려보듯 부릅뜬 주영의 눈은 서러워 보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냐며 묻는 것 같은 시선에 월 또한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끔찍했다. 홀로 서서 견디라고 말하는 것 같은 밝은 태양이 지독히 미웠다. 차라리 죽었다면 이런 고통도 없으련만, 살아남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월의 손이 천천히 주영의 눈을 덮었다. 손과 함께 부릅뜨고 있던 주영의 눈이 감겼다.
“살아남을게요. 살아남아 천후와 꼭 이곳을 떠날게요.”
답을 듣지 못하는 망자의 옆에서 월이 일어났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 월이 통로를 향해 뛰어갔다.
자신은 살아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다친 곳은 하나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생의 마지막에 보았던 모든 사람은 월에게 살아남으라고 하였다. 살아남아 반드시 이 지옥에서 도망치라고 하였다. 그들의 말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그녀가 맹목적으로 잡고 있는 삶의 끈은 동생인 천후였다.
살아서 동생을 지켜야 했다. 그녀의 세상과 다르게 동생의 세상만큼은 지켜야 했다.
“누나!”
준비되어 있는 말에 짐을 실은 채 옆에 서 있던 천후가 월을 보자 그대로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범벅이 된 천후를 달려가 껴안은 월이 길게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었다. 다치지도 않았고 무사했다.
손으로 만지는 천후의 뺨은 따뜻했다. 천후의 온기에 월은 원망하던 하늘에 몇 번이고 감사해했다.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힘이 솟아났다.
월은 이리저리 천후를 살폈다. 주영이 철저히 준비를 한 듯 천후는 가벼운 재질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주영이 마련해 준 짐에는 약간의 자금과 본가에서 가장 가까운 분가로 가라는 서신이 있었다.
짐을 챙긴 월이 천후를 말 앞에 태우려 하였다. 그러자 천후가 손을 저었다.
“내가 누나 뒤에 탈게. 빨리 도망가야 하잖아. 나보다는 누나가 말을 더 잘 다루니 내가 뒤에 타는 게 나을 거야.”
“안 돼, 천후야. 위험해. 어서 앞으로 와.”
“난 갑옷을 입었잖아. 그리고 지금 출발하면 안전할 거야. 어서 타. 누나, 빨리 가야 돼.”
천후의 말에 월은 결국 말 앞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천후가 월의 허리를 꼭 잡았다.
천후를 뒤에 태운 월이 말의 배를 힘껏 찼다.
“이럇!”
월의 외침에 말은 짧은소리와 함께 힘차게 달려갔다. 조금만 더 가면 하우를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초조한 마음으로 월이 서둘러 말을 몰았다.
말 머리가 숲 안으로 들어가자 작게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
살았다. 천후만큼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말의 허벅지에 커다란 화살이 푹 박혔다.
말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었다. 월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돌려 천후를 감쌌다.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
말의 허벅지에 박혀 있는 것과 똑같은 커다란 화살이 천후의 등에 박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둘은 말에서 굴러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