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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아, 아아……!”
잔뜩 흐릿해진 눈으로 은서가 신음을 쏟아 냈다. 거세게 몰아치며 내벽을 찔러 대는 강한 페니스가 주는 쾌감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하는 그녀의 부풀어 오른 속살이 먹어 치우는 자신의 분신을 강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엄지손가락으로 은서의 꽃잎 사이, 동그랗게 솟아 있는 쾌락의 정점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 하지 마……!”
놀란 은서가 급박하게 소리쳤다. 지하의 입술 끝이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큭. 이렇게 많이 흘리면서?”
“나쁜……! 흐읏!!”
손가락 끝으로 미끈하게 젖은 음핵을 빠르게 문지르며 그가 허리를 거칠게 밀어 올렸다. 미칠 것 같은 쾌감이 은서를 휘어 감았다.
“아, 으읏……핫! 응, 으읏!”
정신없이 밀어치는 강한 쾌감 앞에 지하의 몸을 꽉 붙든 채로 헐떡였다.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으려는 그녀의 노력에 그가 조소했다.
“참지 마. 차라리 소리 지르는 게 더 편할 텐데?”
“아, 읏.”
“신음을 참는다고 네가 나와 몸을 섞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잖아? 윤은서.”
손가락으로 음핵을 비틀자 은서의 몸이 자지러질 듯 출렁였다.
“아학!”
결국 단말마의 교성을 터뜨린 은서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까지 그녀의 몸을 점령하고 있었다.
“쿡, 네가 그렇게 노려보면 더 자극된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군.”
“입…… 닥쳐……!”
그가 침대헤드를 잡고 은서를 그 안에 가둔 채 그녀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녀의 엉덩이가 들려 올라가자 지하는 엄청난 힘으로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아악!!”
짐승같이 몰아치는 그의 움직임에 은서가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쿵! 쿵!
지하가 깊이 짓쳐들어올 때마다 침대헤드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깊숙이 파고든 그의 남성이 가차 없이 피스톤질을 했다. 온몸을 울리는 강한 마찰에 은서의 뒷머리가 침대헤드에 부딪혔고 날씬한 다리는 공중에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 아악! 윤지하! 흐읏!!”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쾌락에 은서가 그의 등에 손톱을 박으며 소리쳤다.
“계속해.”
지하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을렀다. 은서가 쾌감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노려보자 그가 야수처럼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 지하가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혀가 뒤섞이고 뜨거운 숨이 서로의 입술로 쏟아졌다.
“더러운…… 자식!”
은서가 고개를 홱 돌려 입술을 떼어 내며 내뱉었다. 그녀의 턱을 잡아 다시 자신에게 고정한 채 그가 말했다.
“계속해 봐. 윤은서.”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 그의 진한 숨결이 머릿속을 어지럽히자 은서는 소리치듯 말했다.
“개자식!”
“그거밖에 못 해? 좀 더.”
“닥쳐! 이 나쁜…… 하윽!”
단단한 남성이 순식간에 뜨거운 여성 속으로 쑤셔 들어갔다. 그 순간 그의 몸을 끊어 버릴 듯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지하는 이를 악물고 치밀어 오르는 압박감을 참으며 은서의 몸을 들어 자신의 몸 위에 앉혔다.
“헉……!”
그녀의 몸을 관통하듯 아래에서 뚫고 올라오자 은서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와 마주 보며 앉은 자세에서 은서의 몸이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녀의 허리가 뒤로 확 휘어지자 탱글한 가슴이 그의 눈앞에서 관능적으로 출렁였다. 지하가 은서의 보드라운 가슴살을 한입에 삼키며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갔다.
“아흐읏.”
짜릿한 쾌감이 온몸에 퍼지면서 미칠 듯한 전율이 일었다.
안 돼…….
부옇게 흐려지는 시야로 은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또 이 남자의 품 안에서 아찔한 절정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육체는 이미 그녀의 통제를 벗어났다. 오로지 강렬한 본능만이 남았다.
“헉, 헉…….”
쾌락에 항복한 은서가 그의 목을 껴안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땀으로 범벅된 몸이 찰싹 맞붙어 미끄덩거렸다. 단단한 그의 몸에 잔뜩 부푼 유두가 쓸릴 때마다 은서는 고개를 젖히며 쾌락의 신음을 쏟아 냈다. 아래에서 짓쳐 올리는 힘이 강해지고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은서는 그에게 죽을 듯이 매달렸다. 그가 그녀의 뒷목을 끌어당겨 사납게 입술을 빨았다. 서로의 입술 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땀에 젖은 몸을 짐승같이 움직이며 뜨겁게 질주했다.
“젠장, 윤은서!”
돌아 버릴 것 같은 쾌감에 지하가 으르렁거렸다. 그의 움직임이 믿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다.
삐걱, 삐걱, 삐걱삐걱삐걱!
짐승같이 사납게 움직이는 그의 움직임에 침대가 부서질 듯 요동쳤다. 벼락같이 쏟아지는 쾌감에 은서가 그의 단단한 몸을 손톱으로 날카롭게 할퀴어 댔다. 그녀의 몸을 포박하듯 강하게 껴안은 지하가 부서뜨릴 듯 사납게 들이쳤다.
“아아…… 아아악!”
전쟁 같은 격렬한 행위의 끝에서 끔찍한 절정 속에 몸부림치며 은서가 비명을 내질렀다.

쾅! 철컥.
그가 나가고,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오피스텔 안엔 다시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은서는 엉망으로 흐트러진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닫힌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트를 감고 있는 하얀 피부 위로 실크같이 부드러운 새까만 머리칼이 흘러 내려와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몇 번이나 서로를 뺏고 빼앗기는 동안 모든 것이 남김없이 텅 비어 버렸다. 그가 남기고 간 정사의 흔적들만 낙인처럼 온몸에 남아 있었다.
……미쳤어.
미친 거야, 윤은서. 넌 미쳤어.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윤지하에 대한 뜨거운 증오가 마음속에서 격랑을 일으켰다. 증오? 윤지하를 증오한다? 하, 헛웃음이 은서의 비틀린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알고 있었다. 아무리 원망하고 저주를 퍼부어도 자신은 진심으로 그를 밀어내지 못한다는 걸. 그러기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를 기다려 왔다.
이 밤이 지나면, 또다시 기다리게 될 것이다……. 윤지하, 그 남자를. 수도 없이 많은 밤이 지나고 지옥 같은 그리움에 온몸이 타 버릴 듯 괴로워도 결국 난 그를 기다릴 것이다.
현관 비밀번호도 바꾸지 못한 채.





1.지배당하다





“안녕하세요.”
은서가 로비에 들어서자 인셉션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은서가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클래식한 화이트 재킷에 단정한 블랙 펜슬스커트를 받쳐 입은 은서의 날씬한 몸매에 여기저기서 힐끗거리는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 부윤그룹의 회장의 딸이자 상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윤은서는 누가 봐도 시선을 떼기 힘들 정도의 아름다웠다. 적당한 높이의 힐과 단정히 틀어 올린 머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칼이 그녀의 여성스러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눈처럼 투명한 피부에 커다란 눈과 동그란 이마에서 매끄럽게 이어지는 작고 오뚝한 코, 그리고 붉고 선명한 입술은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선 은서가 바로 뒤따라오는 비서에게 물었다.
“대한리조트는 어떻게 됐죠?”
뒤따라와 옆에 선 비서가 대답했다.
“큰 무리는 없어 보이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됩니다. 한신에서 쉽게 놔줄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요.”
“……그래요.”
은서가 생각에 잠긴 듯 풍성한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전대에는 호텔업 하나만 운영했던 부윤그룹은 아버지 윤 회장이 물려받으며 무차별적 인수합병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 결과 대형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최근 십 년 사이 놀랄 만한 성과를 보이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사실 그건 윤 회장의 능력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은 이쪽 세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은서는 숨을 삼켰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날이 선 블랙 슈트를 입은 윤지하가 서 있었다. 수행원들과 함께인 그는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큰 키에 조각 같은 외모와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한눈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지하는 냉기가 도는 얼굴로 은서를 내려다봤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그는 저 서늘할 정도로 건조한 눈빛으로 대부분의 인생을 보냈다. 그에게서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있을 때는 오직 행위 중일 때뿐이다.
행위…….
새벽에 있었던 그와의 은밀한 행위가 떠오르자 은서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려 왔다. 그녀는 지하가 눈치채지 못하게 얼른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때 그가 태연히 은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수행원들도 차례대로 내려 그를 따랐다.
작게 한숨을 내쉰 은서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수행원들과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비서가 참았던 숨을 후욱 내쉬며 말했다.
“저 사람은 어쩌면 저렇게 칼날 같은지……. 볼 때마다 사람을 긴장시킨단 말이죠.”
“그래요?”
비서의 말에 은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고는 시선을 옆으로 비꼈다. 은색으로 번쩍이는 엘리베이터 내벽에 자신의 창백해진 얼굴이 그대로 내비쳤다. 핏기가 가신 얼굴과 동요하는 눈빛. 그저 그와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눈빛은 명백한 동요로 흔들리고 있었다.
부윤의 개, 윤지하.
암암리에 퍼진 그의 별명이다. 부윤을 이만큼 키운 남자가 저 남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회사 내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지하는 부윤의 개라는 별명에 걸맞게 윤 회장이 지시한 모든 적대적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도베르만 M&A 전문가, 악마 같은 흡수합병의 귀재, 비열한 기업사냥꾼…….
윤지하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은 그의 놀라운 성공사례만큼이나 다양했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업무방식처럼 적나라했다.
“상무님. 15층입니다.”
비서의 목소리에 은서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린 채였다.
“아, 네.”
정신을 차린 은서가 서둘러 내린 뒤 상무실로 향했다.
집무실로 들어온 은서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배치된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결재서류에 막 손을 뻗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네.”
―윤 상무님. 회장님 호출입니다.
결재서류 파일을 열려던 은서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의 시선이 손목시계에 닿았다. 9시 5분. 윤 회장이 부르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알겠어요.”
인터폰을 내려놓은 은서가 커다란 가죽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회장실로 올라가니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은서에게 문을 열어 줬다. 육중한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있는 윤 회장이 몸을 돌려 은서 쪽을 바라봤다.
“부르셨다면서요.”
은서가 똑바로 선 채로 윤 회장을 보며 말했다.
“그래. 들어와라.”
윤 회장이 은서에게 말하고는 그녀 뒤에 서 있는 비서에게 차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은서가 소파 맞은편에 앉은 뒤 윤 회장을 바라봤다. 아직 이룰 것이 많아서일까, 그의 눈은 나이답지 않게 예리한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은서는 늘 그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
평생 동안 윤 회장은 결코 그녀에게 살갑거나 다정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의 관심사는 일관된 한 가지였다. 오로지 부윤그룹의 확장과 번성. 그 외에 어떤 것도 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자식들 역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 목표에 부합되느냐 마느냐가 그에게 좋은 자식인지 아닌지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그 목표에 부합되지 않거나 자신의 기대에서 엇나갔을 때는 소름 끼치도록 잔인해지는 남자였다.
“저녁에 집으로 와라.”
윤 회장이 소파에 느긋하게 앉은 채로 말했다. 은서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오늘 말씀이신가요?”
“그래. 방금 지하 다녀갔다. 이번 유럽 건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모양이니 축하를 해 줘야겠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지하가 이곳에 들렀을 것이라고 은서도 예상했다. 어제 그녀의 오피스텔에 나타난 걸로 그의 유럽 출장이 끝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들렀을 것이다. 윤 회장이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니 그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모양이다. 하긴 그에게 실패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성공 외에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 적이 없으니까. 대외적인 큰 실수를 저지르거나 정해진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적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은서가 표정 없이 대답했다. 윤지하가 가져온 결과가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인지 윤 회장의 얼굴에 번들거리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 미소를 보자 순간 속이 거북해졌다.
“대한리조트 건과 금영푸드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아직 조율 중입니다.”
은서의 대답에 윤 회장의 얼굴에 일순 불만족스러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윤 회장이었다.
“빨리 진행하도록 해. 할 얘기도 있으니 오늘 저녁엔 꼭 참석하고.”
“네.”
은서는 짧게 대답하고 소파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회장실을 빠져나온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무실로 돌아가면서 은서는 저녁에 있을 성북동에서의 식사자리를 생각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은서의 하얀 이마가 슬몃 찌푸려졌다. 벌써 명치 끝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로비를 빠져나온 지하는 회사 앞에 대기시킨 검은색의 미끈한 벤츠 위에 올랐다. 우아한 움직임으로 차에 올라타는 그의 뒤에 마침 지나가던 여비서들의 시선들이 날아들었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남자지만 그에겐 처음 본 순간 여자의 마음을 단번에 움켜잡을 만한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수려한 외모와 쭉 뻗은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날렵한 허리와 긴 다리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윤지하라는 남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위험스러울 정도로 어둡고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가 그의 전신을 감돌고 있었다. 색으로 하자면 어두운 밤하늘을 그대로 녹여낸 듯한 차갑고 고혹적인 블랙.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깊은 그의 눈동자 색과 같은 색이었다.
지하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짧게 말했다.
“송파지사로 가.”
“네.”
운전비서가 차를 출발시키던 그 때 갑자기 한 남자가 차 앞으로 뛰어들며 가로막았다.
“윤지하! 이, 이 더러운 새끼.”
얼굴이 잔뜩 분노로 일그러진 중년의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 남자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구겨진 양복, 그리고 핏발 선 눈이 사지에 몰려 있는 그의 다급한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하는 차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봤다.
“너 이 새끼, 안 나와?! 나와!”
지하를 확인한 남자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사람처럼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보닛을 양 주먹으로 쾅쾅 두들기고 잠긴 차 문을 붙잡고 세게 흔들어 댔다.
“나오라고! 나와, 이 빌어먹을…… 나오라고!”
“출발해.”
남자에게 시선을 둔 채로 지하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운전비서는 출발하고 싶었지만 고함을 내지르며 보닛을 두드리는 남자 때문에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비서가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비서가 남자 쪽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지하가 차가운 얼굴로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새끼는 뭐야? 넌 꺼지고 윤지하 그 자식 나오라고 그래!”
“경찰 부르기 전에 빨리 비키십시오. 자꾸 이러면 당신만 손해라는 거 모릅니까?”
“꺼지라고 넌!”
비서와 남자 사이의 실랑이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자 지하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똑바로 걸어오자 남자의 핏발 선 눈이 흔들렸고 비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본부장님! 위험합니다. 차에 들어가 계세요!”
지하는 비서의 말을 무시한 채 남자의 앞으로 섰다. 그의 냉소적인 얼굴이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남자를 더럽다는 듯 내려다보자 그 남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유, 윤지하 이…….”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내려다보며 지하가 건조하게 말했다.
“용건이 뭡니까.”
“용건이 뭐냐고? 네, 네놈 때문에 내 회사, 내 회사가 싹 털렸는데 그따위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하루아침에 우리 회사가 산산조각이 났단 말이다!”
남자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치자 지하는 입술 끝을 비릿하게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