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화


“오복아, 나는 괜찮아. 그러니 싫다면, 정말 싫다면…… 혼인을 하지 않아도…….”
“시, 싫을 리가 없잖아요.”
“응?”
“싫지 않아요. 부잣집으로 가는 거잖아요. 한양에서도 땅땅거리면서 사는 벼슬아치 집안이래요. 저 같은 것이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집안인데 싫을 리가…… 싫을 리가…….”
이상하게 눈이 아렸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대책도 없이 눈앞이 그냥 부옇게 젖어 들었다. 갑자기 정신도 혼미하고 세상도 흐려졌다. 그런데도 굳어서 안으로 바짝 오그라든 아씨의 왼손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낡은 치마저고리 속에 감추어진 앙상한 팔다리도 눈에 선했다. 그것들 또한 딱 반쪽만 굳은 채 흉하게 안으로 굽어 있었다.
날마다 보고 만지는 아씨의 병증은 어린 오복에게도 고통이었다.
점점 더 말라 가는 그 여리고 쇠약한 몸을 볼 때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 할 수만 있다면 팔다리를 반듯이 펴 드리고 싶고, 안 되면 제 것이라도 떼어 드리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제가 그저 혼인만 하면 고칠 수 있다는데 싫다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제 몸을 팔아서라도 해 드려야 마땅한데 어차피 언젠가는 할 혼인을 미리 해서 고칠 수 있다니 정말로 싫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오복아.”
“싫은 게 아니어요. 그냥, 그냥 죄송해서 그래요. 아씨의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서요. 제가 이렇게 뻔뻔한 계집이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씨.”
후드득 떨어져 기어이 앞섶을 적시는 눈물을 들킬까 봐 그녀는 벌떡 일어나 무작정 방 밖으로 내달렸다.
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들 끓어올라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너무 커서 눈앞을 온통 막막하게 만드는 그것의 정체를 아직 어린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그악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 와중에도 누가 보고 들을세라 무섭고 걱정이 되기만 했다. 그래서 오복은 뒤꼍 울 밑에 숨어 입을 꼭 다물고 소리를 죽인 채 꺽꺽대며 울었다.
‘내 탓이다. 내가 나쁜 년이라서 그래. 꼴좋다. 집안을 말아먹고 마님을 돌아가시게 하고 아씨도 저렇게 만들어 놓았으면서 저는 바라는 대로 살아질 줄 알았니?’
오복은 저가 참 염치없는 인간인 줄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업둥이로 들어온 해부터 이 집안엔 재앙이 닥쳤다고 했다. 개경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던 집안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더니 안방마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해에 살던 집까지 팔고 작은 집으로 옮겨야 했으며 그러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하던 아씨까지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다.
연달아 재앙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오복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불길하고 재수 없는 것을 들여서 집안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끝내 내쳐지지 않은 것은 지나가던 어느 스님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 이 아이는 다섯 가지 복을 다 갖출 팔자입니다. 곁에 두시면 언젠가 이 댁에도 꼭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그 한마디 덕분에 그때까지 ‘이것아, 저것아.’ 하고 불리던 그녀는 쫓겨나는 대신 비로소 오복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 그녀는 그 이름처럼 복을 많이 받아 대감마님께 꼭 은혜를 갚으리라 다짐했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갚아야 할 일이 생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울지 마. 뭐가 억울하다고 이렇게 울어.”
자꾸만 줄줄 쏟아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소매로 훔쳐 내고 오복은 짐짓 야무지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한 번 보고 아씨가 누워 있을 별채 쪽도 바라보다가 가만히 일어나 뒤꼍을 벗어났다. 어디로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발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하듯 저절로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등불도 없이 오복은 더듬더듬 중문을 넘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오늘도 도련님은 밤이 늦도록 글공부를 하고 계셨다. 머잖아 열릴 과거를 볼 거라고 하셨는데 대감마님의 말씀대로라면 생각지도 않게 그 전에 혼인을 먼저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혼인.”
누구와 하게 될까. 어떤 집안의 처자(處子)일까.
이제야 제 나이보다 더 꽉 찬 도련님의 나이가 떠올랐다. 빠른 사람은 열 살에도 장가를 드는 세상인데 도련님의 나이는 벌써 스물이 가까웠다. 그러니 혼인이 늦어도 한참 늦은 노총각인 셈이었다.
번듯하게 잘생긴 데다 품행도 나무랄 데가 없는 분이 아직도 혼자인 것은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장가를 들려고만 들었다면 벌써 들었을 분이 그러고 있는 것은 역시 동생이신 초희 아씨께서 병을 고치지 못하고 저리 누워 계시는 까닭이 가장 컸다. 몰락할 대로 몰락한 집안을 외면하고 장가를 들 만큼 그분의 성품이 모질지 못해서였다.
오복은 창문 위로 희미하게 비치는 그림자를 오랫동안 눈으로 더듬었다.
그녀는 저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 깨어나서 언제 주무시는지, 어떤 도포를 제일 좋아하시는지, 즐겨 찾으시는 찬은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부터 특히 좋아하는 서책과 요즘 함께 어울리는 친우분들에 이르기까지. 저분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만큼 마음 깊이 사모하는 까닭이었다.
“저에게 도련님은 모든 것이어요. 꿈이고 희망이고 사랑이어요.”
꿈을 꾸듯 오복은 고백했다.
이제 열여섯이 된 소녀에게 그는 힘들고 고된 일을 견디게 해 주는 꿈이었고 모진 구박에도 쓰러지지 않게 하는 희망이었으며 때때로 제가 계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가슴을 떨게 만드는 사랑이었다. 태어나서 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져 보지 못한 그녀에게 그는 바라고 싶은 유일한 그 무엇이었다.
담에 기대어 서서 오복은 홀린 듯 그의 그림자를 갈망했다.
그저 스치듯 마주치면 가슴이 떨렸다. 어쩌다 열린 창을 통해 멀리서나마 모습을 대할 때면 얼굴이 붉어지고 공연히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방 앞을 지날 때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돌아보아 주기를, 단 한 번만이라도 창을 열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혼인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고 가기 시작한 후부터 도련님은 방에 들어앉아 통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진지를 들일 때나 빨랫감을 챙길 때 우연인 듯 슬쩍 들여다보면 언제나 붙박이처럼 한자리에 반듯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혼인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셨을 텐데도 그녀를 향해 아직 어떤 말도 해 준 적이 없었다. 그것이 오복은 조금 서럽고 아팠다. 빈말이라도 좋으니 원치 않는다면 그런 혼인 따위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기도 하였으나 그 또한 그녀 혼자만의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염치도 없는 것.”
가증스럽기까지 한 제 생각에 치를 떨다가 오복은 지그시 이를 깨물었다.
아씨의 곱은 손과 움직이지 않는 반쪽의 몸을 보면서도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제가 오복은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스스로를 막 때려서 죽이고도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고 싶지 않아. 그런 혼인은 하고 싶지 않아요, 아씨.”
절절한 한마디가 불어오는 밤바람에 실려 산산이 흩어졌다.

* * *

“나쁜 년.”
자그마한 보따리를 끌어안고 그녀는 기운 한 톨 없는 목소리로 저를 욕했다.
오복은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한 것은, 납폐(納幣)가 곧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얼마 전, 대감마님은 납채를 받고 택일단자(擇日單子)를 보내어 혼인날을 잡았다고 하셨다.
그날부터 곡기도 끊은 채 오복은 꼬박 하루를 앓았다. 혼인날이 다가오는 것이 무서워 밤새도록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다 야윈 얼굴로 일어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쌌다.
원체 빈궁한 살림인 데다 가진 것이 없어 딱히 넣을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부러 시간을 들여 이것저것 넣었다 빼었다 반복을 하다가 속곳이랑 평소 입는 옷가지만 넣어 꽁꽁 싸매 놓았다. 그것을 뒤꼍에 숨겨 놓고 그녀는 낮 동안 집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찬을 마련하는 등 부지런을 떨었다.
“천벌을 받을 거야, 난.”
다시 한숨 같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겨우 작은 바가지만 한 보따리를 끌어안고 오복은 벌써 반 시진째 담 밑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모질게 결심을 하고, 낮 동안 그렇게 부산을 떨어 대 놓고도 그녀는 차마 담을 넘지 못했다.
단단히 작심을 하고 담 밑까지 갔다가도 ‘오복아, 오복아.’ 하고 찾는 아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도로 돌아서고, 또다시 끙끙 앓기 시작한 대감마님의 여윈 얼굴과 벌써 여러 날째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고 있는 도련님 생각에 울기도 몇 번이나 울었다.
“가야 하는데.”
가야 한다.
그녀도 안다. 그녀가 이 집에서 사라져야 모든 일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차피 혼인날은 잡혔고 곧 신랑 쪽에서 보내오는 납폐서와 혼수품까지 받을 터였다. 그러니 그녀만 없으면 싫어도, 몸이 불편해도 아씨는 한양에 계신 분과 혼인을 하게 될 것이었다. 전날에 빙인이 그녀의 모습을 제법 꼼꼼히 보고 갔다고는 하지만 염치 불고하고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다.
“부잣집이라 하였어. 그 집안엔 노비도 많을 거야. 그러니 아씨를 돌보아 줄 계집종 한둘 정도는 따로 내어 주시겠지.”
어쩌면 그렇게라도 혼인을 하여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두 평이 간신히 됨직한 작은 방에 갇히어 하루를 일 년같이 그저 누워만 지내는 것보다 잠깐 괴로운 일을 겪을지언정 그렇게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종들의 수발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백번 나았다. 다행히 부잣집이라 하니 잘하면 용한 의원을 찾아 아씨의 병을 고쳐 줄 수도 있을 터였다.
“대감마님께서도 신의를 잃지 않으실 테고.”
얼굴을 붉히게 되는 일은 피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목숨처럼 여기는 신의를 잃는 일만은 없으리라.
지금도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여 저리 앓고 계신데 정말 이대로 아씨 대신 그녀가 시집이라도 가게 된다면 그 죄책감에 더해 날이면 날마다 ‘일이 잘못되어 들통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지레 말라 돌아가실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련님께도 좋은 일이지. 탁탁한 집안으로 장가를 드시면 아무 걱정 없이 과거 공부만 하실 수 있을 거야. 빌어먹을.”
좋은 일은 좋은 일인데 왜 갑자기 심사가 뒤틀린담. 내가 가질 수 없으니 남도 주기 싫다는 더러운 심보인 겐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이다 오복은 또 한탄했다. 어느 모로 생각하여 보아도 떠나는 것이 맞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싶어서였다. 갈 곳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남겨 둔 걱정거리가 태산처럼 많은 탓인가.
“세 양반 밥은 누가 해 먹이고 거동 불편하신 아씨 수발은 누가 들어 줄까.”
하녀라도 하나 둘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이렇게 고민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형편은 형편대로 어렵고 또 아씨의 일은 그 일대로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히 꺼리시어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러니 함부로 남의 손을 빌릴 수도 없는데 어찌 무사히들 지내실까. 오복으로서는 심각하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발길은 더더욱 떨어지지 않고 시간만 하릴없이 착착 흐르고 있었다. 그 때였다.
“이리 오너라!”
“에구머니나!”
머리 위에서 문득 나직한 외침이 들려왔다.
마침 도모하던 짓도 있었겠다 역적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오복은 ‘어마, 뜨거라.’ 놀라며 고개를 위로 홱 쳐들었다. 그리 낮지 않은 담벼락 위에 웬 낯선 사내 하나가 그린 듯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어쩌다 보니 높낮이가 달라서 그는 내려다보고 그녀는 올려다보고. 결국 허공을 격하고 시선이 딱 마주쳤다.
“뉘, 뉘십니까?”
오복이 조금 긴장한 채 물었다. 그러자 얼마나 입었는지 여기저기 찢어지고 꼬질꼬질 때가 탄 허름한 직령포에 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검은 패랭이를 쓴 사내가 입을 딱 벌리고 선 오복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지나가던 과객이오만.”
말도 안 된다.
그가 과객이면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과객이었다. 점잖은 척 헛기침을 하고 뒷짐을 지는 대신 손에 바가지를 드는 것이 더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내의 몰골은 형편없다 못해 추하고 너절했다. 그렇다. 오복의 기준으로 봤을 때 남자는 딱 봐도 그냥 거지였다.
아무튼, 이 심란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집 안에 거지, 또는 과객 하나 깃드는 것쯤이야 무슨 대수일까마는! 지금은 분명히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때는 한밤중이요, 과객을 사칭한 예의 거지는 멀쩡한 대문을 놔두고 하필이면 남의 집 담 위에 턱 하니 올라앉아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거지 아니오. 분명히 과객이 맞소.”
오복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 가는 것을 눈치챘는지 거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잽싸게 일갈했다.
“그러면 그냥 지나가실 일이지 별안간 남의 집 담은 왜 타시는지?”
“그것이…… 나도 그냥 지나가려 했소이다마는,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집안에 긴한 볼일이 있었지 뭐요.”
“그 긴한 볼일이라는 것이 혹 한밤중에 과년한 처자가 지내는 별채의 담을 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까?”
“어? 어찌 알았소? 이거, 보기보다 낭자의 눈치도 꽤 예리한 구석이 있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