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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현 1권(14화)
5. 당설혜(唐設惠)(4)


사천당가가 어디인가!
물론 무공도 그만큼 고강하지만 그래도 당가 하면 독. 독 하나 만으로 온 강호에 이름을 날린 전설적인 무림세가였다. 그런 당가와 사돈을 맺는다는 것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음과도 같은데, 그것을 다른 이에게 쉽사리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남궁건은 조심스레 당설혜의 심중을 물었다.
“그것이,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느냐?”
남궁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당설혜의 입술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그럴 수는 없습니다!! 파혼이라니요! 남궁세가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혀, 형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남궁천천이었다. 그는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몇 달 전까지 혼인을 그리도 싫어하던 천천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를 대경실색하며 말리는 궁현이었지만, 사랑에 눈이 먼 천천에게 동생은 그저 방해물일 뿐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다, 혜아야. 너의 마음은 알겠지만 네 할아버님과 남궁적 선배와의 정혼이야. 그러니…….”
“남궁현 소협이에요!! 전, 벌써 현 가가에게 마음을 넘겨드렸습니다. 상대가 현 가가라면, 파혼은 아니겠지요?”
벌써 세 번째, 좌중들을 놀라게 하는 말이었다. 지금보다 더 놀라고 화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궁천천은, 그 말에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하, 가가? 가가라고 했소?! 나와 현이는 소저 같은 여동생을 둔 적이 없소!”
억지였다. 당설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천천이 아니건만, 일부러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한편, 궁현은 또 궁현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한 듯 검지로 자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 장난하는 것이지요, 소저?”
“장난이라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지는 않는답니다, 가가.”
다소곳하게 앉아 유혹하듯 나긋나긋 말하는 설혜의 말투에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궁현은 천천의 표정을 돌아보았다.
“…….”
어째서인지 무표정했다.
‘아, 그러고 보니 형님은 혼인하기 싫어하셨지. 세가의 체면을 세우느라 큰 소리를 치셨던 건가? 아하, 그렇군.’
궁현은 나름대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설혜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 창창한 나이에 혼인이라니. 하,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건 엄청난 행운이 아닐까? 아니, 아니 그렇다고 팔자에도 없는 혼인은……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츠캉!
“음……?!”
그렇게 고민하던 궁현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애검인 충천(衝天)을 빼어 들은 천천이 궁현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남. 궁. 현. 칠천회에 참가해라. 네가 직접 고안하고 발전시켜 온 간진(簡陣:간소화한 진)이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 거기서 나와 우열을 가려서 이기는 자가, 당 소저와 약혼하는 거다.”
차가운 눈으로 그리 말한 천천은 남궁건이나 다른 어른들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환인각을 떠났다.
조금 억지스럽기는 했지만,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궁현의 경우 경신법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축지법이라는 독자적인 진을 개발해 낼 정도이니 말이다.
“아니, 이노옴!! 거기 서지 못할까!!”
“이놈!!”
그런 천천을 보며 역정을 내는 남궁건과 남궁적이었다. 그리고…….
‘에, 에에엑?!’
……그리고 안 그래도 나갈 생각 만만이었던 궁현이 당황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천천이 나가자, 환인각은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남궁적이었다.
“어흠, 흠. 현아?”
“에, 예. 할아버님.”
아직까지 얼떨떨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한 궁현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당설혜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어찌할 생각이더냐? 네 실력은 익히 아는 바이다만.”
궁현의 자존심을 생각했는지 뒷말을 얼버무리는 남궁적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자존심 상할 궁현은 아닐 뿐더러, 궁현에게는 남들에게 계속 숨겨 온 패가 있었다.
“하아, 아우로서 형님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너희 형제는 우애가 깊…….”
“……만, 본디부터 참가할 생각이었습니다. 말리지 말아 주십시오.”
궁현을 위로하려던 남궁적은 이어지는 궁현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아아, 나를 위해 형제간의 우애도 버리시다니. 어쩜.’
그런 궁현이 이미 콩깍지가 두 겹, 세 겹으로 씌인 당설혜의 눈에는 자신을 위한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존재했는지조차 불확실한 그 옆의 인영은 양 미간을 괴상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아아, 한심해. 대체 난 왜 여기 있어야 했던 거지? 아니, 있긴 한 건가?’
그렇게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바로 당가의 소가주이지만, 소가주 답지 않게 존재감이 희미한, 그리고 앞으로도 비중 있는 역할이 될지 안 될지조차 예상이 불가능한 당호영이었다.

한편, 환인각을 나선 천천은 씩씩거리며 세가 안을 거닐다, 문득 자신이 했던 짓을 돌이켜 보고는 우뚝 멈춰 섰다.
‘……바보냐, 남궁천천?! 현이가 칠천회에 참가해서 이겨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다치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
잠시 걱정스런 마음에 울상이 된 천천이었지만, 이내 당설혜의 그 말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

‘전 벌써 현 가가에게 마음을 넘겨드렸습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혼인을 싫어했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겨우 그 말 한마디로 이성을 잃고 그런 짓을 하다니.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 아니,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런 짓을 했다간 오히려 내가 현이에게 깔보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 싫었던 천천이었다. 결국 하루 종일 이리저리 고민하던 천천은, 상황을 뒤집지 않기로 결심하고야 말았다.
결국 천천과 궁현은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칠천회 전날의 아침을 맞았다.



6. 칠천회(一)(1)


칠천회의 비무대회는 각각 세가에서 다섯 명을 선정하여 이기는 자가 다음 경기로 나아가는 진출전(進出戰:토너먼트식 경기) 형식으로, 웬만하면 후지기수로 하여금 출전하게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이 주일 동안 진행되었다. 즉, 총 행해지는 비무의 수는 최대 삼십사 회지만, 출전거부권을 가진 제갈세가는 원체 출전을 하지 않는지라, 웬만하면 29회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갈세가도 두 명뿐이긴 했지만 참가를 신청해 왔고, 회주인 남궁건은 이례적이기는 해도 한 세가에서의 두 명 참가를 허락했다.
결국 칠천회의 참가 인원은 삼십이 인으로 정해졌다. 그에 따라 칠천회 비무대회의 일정은 열하루 동안으로 잡혀졌고, 그 참가 명단은 이러했다.

·남궁세가(南宮世家):남궁천천, 남궁현, 남궁서기(南宮瑞技), 남궁무연, 남궁수혁(南宮收?)
·모용세가(慕容世家):모용서현, 모용서겸(慕容栖謙), 모용운락(慕容雲落), 모용운혜(慕容雲暳), 모용운강(慕容雲江)
·황보세가(皇甫世家):황보진평(皇甫進平), 황보진충(皇甫進衝), 황보진량(皇甫進倆), 황보현성(皇甫玄星), 황보소미(皇甫小美)
·단목세가(端木世家):단목청산(端木靑山), 단목청비(端木靑翡), 단목청휘(端木靑暉), 단목청학(端木靑鶴), 단목문량(端木文凉)
·사천당가(四川唐家):당호영, 당호천(唐扈千), 당호진(唐扈震), 당추평(唐追平), 당설혜(唐設惠)
·하북팽가(河北彭家):팽천호(彭天虎), 팽천명(彭天明), 팽조운(彭雕雲), 팽조군(彭雕君), 팽은설(彭銀雪)
·제갈세가(諸葛世家):제갈영영(諸葛永英), 제갈영영(諸葛永瑛)

제갈세가에서 참가한 이들은 둘 다 여인이었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신기한데, 둘의 이름이 거의 똑같아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자신의 전각인 협소전(俠蘇殿)에서 그 대진표를 받아 본 궁현은 새삼 자신이 천천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뭐, 그래도 이것대로라면 결승이나 되어야 만나겠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결승은 무리겠지.’
궁현의 첫 상대는 팽은설이라는 이였다. 이름으로 보아 여인일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실전 경험 전무(全無)니까…… 팽가라, 강력한 도법으로 이름난 가문이었지. 아마? 그렇다면 여인이긴 해도 강공(强攻)으로 오려나? 아니면 그런 의외성을 파고들어 속공(速攻)으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궁현은 말로나 팽가의 무공이 패력적이라고 들었을 뿐, 그 무공이 시전되는 것은 한 번도 견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아아― 모르겠어! 할아버님! 뭐, 어떻게 방법이 좀 없겠습니까?”
―에잉, 이놈아! 내가 뭐! 너한테는 보이지도 않는데,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라도 펼쳐 주랴?!
그건 그랬다. 사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남궁상현은 목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하우, 진짜 필요한 곳에는 도움을 못 주신다니까.”
궁현의 말에 노인은 발끈했지만, 궁현이 그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자 들키면 곤란한 입장인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각설하고, 그런 궁현은 오랜만에 산책이나 하자는 생각에 세가를 나섰다. 언제나 다니던 연단호나 도원호가 아닌 천주봉(天柱峰)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하아, 하아. 캬아, 참, 설악산하고 많이 비슷하단 말이야.”
―응? 뭐라고 했느냐?
그렇다. 천주산은 여러 곳에 널려 있는 기암괴석(奇岩怪石)이나 그 형태 등이 마치 설악산과도 비슷했다.
한참을 천뢰무한기궁법집편 상의 경신법(輕身法)인 풍뢰천리호정(風雷千里戶庭)을 4성 정도로만 펼쳐 풍광(風光)을 구경하며 산을 오르던 궁현의 귀에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 그것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핫! 백호도간(白虎跳澗)!”
백호도간! 그것은 오호단문도의 첫 초식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궁현은 다른 사람의 수련을 지켜보는 것이 금기(禁忌)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척을 죽이며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가고 있었다.
“일소풍생(一嘯風生)!”
―이, 이 녀석아. 아무리 그래도…….
“쉿! 좀 조용히 해 보세요, 할아버님.”
―으이구.
노인은 말리려고는 했지만, 그것도 최소한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현세(現世)에 있어서도, 어떤 영향을 끼쳐서도 안 되는 존재. 물론 사부라고 할 수 있는 배풍인(徘風人)의 안배에 의해 자신이 이렇게 궁현을 지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 현세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좋지 않았다.
“후우, 전박자여(剪撲自如)!”
팽가의 여식으로 보이는 그 여인은 쉬지도 않고 초식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패도법(覇刀法)을 시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뿐더러, 대부분 팽가의 도법은 기본적으로 양강(陽剛)의 기운을 전제로 한다. 여인이 시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궁현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호기(好機)로 다가왔다. 아직 실력이 부족한 그로서는 완벽한 초식보다는 오히려 보기 쉽도록 조금 수준을 낮춘 무공을 보이는 것이 그 무공을 견식하는 데에 더 쉬운 것이었다. 결국 여인이 몇 번이나 오호단문도를 시전하는 것을 구경한 궁현은 오호단문도를 아는 데다, 덤으로 자신의 첫 상대의 실력 또한 알았다는 생각에 콧노래까지 부르며 산을 내려갔다.
“음 흠, 흥흥 그렇구나, 오호단문도라는 건 저런 거였어.”
―금기를 저질러 놓고 아무렇지도 않느냐?
“예? 제가 무슨 죄 지었나요? 좋은 것은 나눌수록 더욱 좋은 거예요, 후후후후.”
과연, 정말 그럴까? 그건 아직 모를 일이었다.

한편, 궁현이 떠나간 그 자리에서, 여인은 미소 짓고 있었다.
“……갔구나. 후훗, 바보 같은 사람. 은하섬연(銀河閃聯)! 하앗!”
여인의 도에서부터 은은한 별빛이 흐르며 허공을 베어 갔다.
도기(刀氣)!
그것은 도기였다. 거기다 그녀의 손에서 펼쳐진 초식은 은하섬연. 은하유성도(銀河流星刀)라는 직계의 여식이나 세가의 안주인에게만 전수되는 팽가의 비전도법(非傳刀法)의 초식이었던 것이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답니다, 소협. 그중에서도 특히 여인은 더더욱 말이죠, 후훗.”
그녀는 그렇게 짧게 독백한 후, 다시금 도를 휘둘러 허공을 베고 찌르고, 쳤다.
“유성만천(流星滿天)!”
다음 날 펼쳐질 비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